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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4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4화

모용선화

 

 

1552년 3월 25일 밤.

바로 지금.

이 자리에는 모용가와 팽가의 정략혼인에 관련된 자들, 그리고 그들을 죽이려는 세 채의 녹림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눈앞의 흑장포인들은 분명 마청대였다.

문양을 보면 확실했다.

무신은 기억을 되짚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같은 답만 내놓았다.

마청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사실은 마청대가 주범이었던 건가?’

 

정보가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귀로만 접했으니 말이 와전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아니, 전무했다.

팽가가 세 채의 녹림을 습격해 직접 자백을 받아냈다는 것만큼은 분명 ‘확실한 사실’이었다.

결국, 회귀 전에는 없었는데 회귀 후에는 생긴 셈이었다.

 

‘회귀 전과 회귀 후의 모든 것은 전부 똑같이 돌아가. 그런데 바뀌었다면…….’

 

무신의 행동이 영향을 준 것이다.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무신은 자신에게 걸어오는 마향대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의 어떠한 행동이 저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을까.

마청대.

마교.

답은 금방이었다.

 

‘마향대가 문제였군.’

 

백야평야에서 몰살당한 그들의 조사를 위해 마청대가 내려 왔는데, 우연찮게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것.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어쩌면 세 채의 녹림을 마향대 몰살의 원흉으로 오인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신은 마향대의 대장 당우청을 쳐다보았다.

낯선 얼굴이었으나 이름값은 확실히 느껴졌다.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차원이 달랐다.

 

“네놈은 또 뭐야?”

 

하지만 그렇다 한들 무신에겐 한주먹거리였다.

아니, 주먹을 쓰는 것도 아까웠다.

호 하고 입바람만 불어도 저 중 태반이 고통에 허덕이다 숨질 것이다.

무신은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를.

 

“마향대 조사를 위해 내려왔다가 우연히 이 일에 끼어든 건가?”

“뭐?”

“저 세 채의 녹림이 마향대를 몰살시켰다 오인한 거고?”

 

오인했느냔 것은 순전히 넘겨짚기였는데, 당우청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마 맞는 모양이었다.

 

‘회귀하면서 예지력이 생겼나?’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두어 발 앞으로 걸어갔다.

당우청의 것을 포함해 놀란 눈이 수십 쌍은 더 되었다.

그냥 마향대 전체가 경악에 물들었다.

 

“…어떻게 안 거냐?”

“대충 때려 맞췄는데.”

 

무신은 사실을 말했으나 당우청의 귀에는 이죽거리는 것으로 들렸다.

 

“네놈이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느냐? 대마교의 기둥, 마청대다!”

“마청대. 알고 있지, 물론.”

“아는데 그 따위로 입을 나불거리느냐?”

 

무신은 하품하며 답했다.

 

“너야말로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마향대 얘길 꺼낸 걸 보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네가 누구 간에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내 방금 일렀…….”

“니들이 찾는 사람이 바로 나다.”

“뭐라고?”

 

무신은 검을 뽑았다.

 

“내가 마향대를 몰살시켰다고.”

“저, 저 미친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오죽 당황했으면 당우청이 제 위신도 잊고 말을 더듬었다.

무신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 한 명에게 마향대 전원이 당했다니 안 믿기나? 그럼 믿게 해주지.”

 

믿게 하는 방법.

어렵지 않다.

그날 마향대가 처했던 상황을 똑같이 재현해 주면, 몸부터 알아서 반응할 것이다.

 

“……!”

 

위엄 있게 서 있던 마청대 대원 전원이 숨을 헐떡이더니 이내 즉사했다.

말 그대로였다.

서른일곱 구의 송장.

오히려 방금까지 살아 있었다는 게 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검만 한번 휘둘렀을 뿐.

 

“그놈들, 끽해봐야 절정 아니야? 최소 초절정은 돼야 나랑 검 부딪칠 실력은 되지.”

“네, 네놈이 그럼 정말 마향대를…….”

“그렇다니까.”

 

무신은 ‘진작 믿지 그랬어. 뭐, 믿는다고 바뀔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하고 덧붙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튀어나갔단 말이 무색하게 그의 몸은 공간을 이동하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당우청의 코앞까지 붙었다.

까앙!

일합은 의외였다.

당우청이 수준급 발검으로 무신의 검을 막았다.

고수들의 합이었기에 파장은 엄청났다.

두 사람의 등 뒤로 작은 폭풍이 일었고, 양옆 나무들은 뿌리가 뽑혀 난리였다.

이대로 열댓 번 더 부딪치면 하늘이 쪼개지지는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네 번에 끝났다.

 

“커헉!”

 

기둥이라 불릴 만큼 마교 안에서 마청대의 입지는 크다.

하지만 무신 앞에선 밤 한 톨보다도 작은 입지였다.

무신은 양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하는 당우청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감회가 새로웠다.

회귀 전이었으면 아마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쳤을 상대.

아니, 눈 마주칠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면 이미 죽고 없었겠지.

그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힘이란 것은 너무도 환상적이다.

짜릿하고 흥분된다.

그는 윗입술을 핥으며 당우청에게 말했다.

 

“마청대마저 이리 만들었으니 마교가 아주 난리가 나겠구나.”

“어, 어떻게 이런 힘을…”

“어떻게는. 열심히 수련했지.”

 

열심히란 말 앞에 22만 년 동안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하겠지만, 무신은 이번에는 친절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당우청의 이어진 말이 아니꼬와서였다.

 

“나, 날 죽이면 후환이 두려울 것이다!”

 

살려 달라 애걸복걸해도 모자랄 판에 왜 되도 않는 협박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무신은 ‘후환이 두려웠으면 니들뿐 아니라 마향대도 안 건드렸을 거다’ 하고 당우청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허벅지만큼 굵었던 목덜미가 힘없이 잘려 나갔다.

깨끗하게 나뉜 단면에 피가 물씬 튀었다.

희뿌연 뼈대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옷에 튄 것을 대충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누가 있군.’

 

마청대와 당우청에게 가려져 있어 여태 티가 나지 않은 놈이었다.

하지만 기운이 작았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무인이라기엔 삼류무사도 못 될 만큼 형편없었다.

호위무사에 녹림에 마청대까지 있었던 곳에 그런 자가 있을 리 만무… 무신은 설마 하며 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땅바닥에 붙다시피 기울어진 마차였다. 뒷다리가 낀 말 두 마리가 빠져 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저 짐승들을 사람의 기운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었다. 날아간 마차의 창 사이로 흩뿌려진 머리칼이 보였다.

무신은 순식간에 도달해서 창을 열어젖혔다.

 

“사, 살려주세요…….”

 

저것이 시체인가.

이것이 시체인가.

사방에 깔린 시체들과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어느 여인이었다.

무신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눈살이 파르르 떨렸다. 겁에 잔뜩 질린 개새끼도 이보단 나을 것이다.

하기야.

호위무사들, 녹림, 그리고 마청대까지 백 명도 넘는 사내들이 죽어나갔으니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했다.

물론, 무신은 여인의 정체를 이미 눈치챘다.

모용세가의 육녀 모용선화.

그가 구하려 했던 바로 그녀였다.

마청대로 인해 일이 제대로 꼬였지만, 용케도 그녀는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호재였다.

 

“괜찮으십니까?”

 

무신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여인은 살려달란 말만 연발했다. 어쩌면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신은 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소저를 해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여전한 불신의 기색.

하지만 잠깐이었다.

모용가와 팽가의 호위 무사들을 녹림이 쳤고, 그 녹림을 마청대가 쳤고, 다시 그 마청대를 무신이 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떨궜다.

살았다는 안도였다.

무신은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마차를 양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위험하니 밖으로 나오시지요.”

“네!”

 

여인이 냉큼 답하며 무신의 손길을 따라 무사히 마차 안에서 빠져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마차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말 뒷다리에 압사를 당했거나 복부가 터졌을지도 몰랐다.

마차가 그 지경이었으니 여인의 행색은 더 말이 아니었다.

옷가지가 죄 찢어져 허연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허벅다리에는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얼굴은 밝았다.

사실 목숨 부지에 옷가지 찢어진 것이나 허벅지 찍힌 것 정도는 굉장히 싼값이었다.

 

무신은 걸칠 것과 금창약 등을 넘겨주며 ‘그녀의 안위를 살피는 척’했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멀쩡하셨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고맙다며 그가 주는 것을 받아 들던 여인이 화들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요!”

“그리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더 큰 은인으로 각인되게 하려는 술수임을 순수한 처자가 알아챌 리 없었다.

여인이 꾸벅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아이구, 죽을 때까지라니요.”

 

겉으로만 또 아닌 척 반응하지만…….

죽을 때까지.

무신이 여인에게 듣고자 한 말이었다. 고로 이번 일은 거의 9할 이상 성공했다 봐도 무방했다.

이후 전개야 뻔했다.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고 이렇게 된 상황의 전후도 설명했다.

과연 그녀는 모용가의 육녀 모용선화였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무신은 전혀 몰랐다는 듯 대가문의 여식을 만나 영광이라는 듯 과장되게 행동했다. 그리고 정략혼인 이야기를 듣자마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혼인 중에 이런 일을 당하시다니…….”

 

연기 하나는 자신 있는 그였다.

그는 마치 제 일처럼 슬퍼하며 머리통만 덩그러니 남은 한 남자를 돌아보았다.

모용선화의 혼인자, 팽방호였다.

 

“억장이 무너지실 것 같습니다.”

“혼인자가 저렇게 돼서요?”

 

되묻는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침착했다.

아니, 뭔가 이상했다.

혼인자의 죽음.

거기에 ‘의외’라는 것은 결코 나올 수 없는 성질이었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반응했다.

 

“예?”

 

그리고, 이어진 모용선화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잘됐어요. 잘 죽었어.”

“……?”

“나쁜 놈. 벌 받은 거야.”

 

그녀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팽방호를 쳐다보았다. 녹림이나 마청대보다도 더 저주하는 눈빛이었다.

무신은 의아하다 못해 그녀의 정체성을 의심했다.

 

‘미친… 년이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이유가 드러났다.

 

“혼인이 아니에요. 제가 팔려간 거지.”

“팔려가요?”

“가문의 입지가 너무 안 좋아져서 다시 도약할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때 마침 팽가와 연이 닿은 거죠.”

 

회귀 전에도 몰랐고, 배춘삼에게서도 못 들은 정보였다.

무신은 잠자코 경청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아버님도 오죽했으면 딸을 넘기려 하셨을까. 하지만 저자가 문제였어요.”

“팽방호요?”

“네.”

 

팽방호를 가리키는 모용선화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심경이 엿보였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 멀쩡한 척하지만 둘만 남으면 본성을 드러내요.”

“본성이라니요?”

“우선 때리는 건 기본이에요.”

 

그녀가 제 허벅다리를 가리켰다.

 

“설마 그 상처가…….”

“네. 마차가 무너져서가 아니라 저자의 짓이에요. 갑자기 기분 나쁘다며 단검으로 찔렀죠.”

“갑자기 기분이 나빠요?”

“아무 이유 없어요. 정말 갑자기, 그냥 찔렀어요.”

“설사 이유가 있더라도 혼인자를 그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녀의 눈가에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맞아요. 나쁜 놈, 나쁜 놈.”

“허.”

“그것뿐이면 다행이죠.”

 

그녀는 그때부터 온갖 설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하기 힘들다는 것보다도 안에서부터 쌓인 것이 더 그녀를 옭아맸던 것이다.

한참 얘기를 듣던 무신은 ‘팽가의 집안 교육’을 의심했다.

소변을 먹이고.

젖가슴을 양 갈래로 찢고.

발바닥에 바늘을 꽂고.

과연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왜 참으셨습니까?”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무신의 질문에 모용선화는 씩씩하게 답했다.

 

“가문을 위해서요. 팽가와 연이 닿으면 아무래도 저희 모용가가 다시 발돋움할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아무렴 가문을 위한 일이라고는 해도 자신을 그렇게까지 포기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무신의 생각에는 그랬다.

하지만 모용선화는 확고했다.

 

“저 한 명 희생하는 게 낫잖아요?”

“모용가주께서 훌륭한 따님을 둔 것 같습니다.”

“그치만…….”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팽방호가 죽어버렸으니 팽가와의 연은 없던 게 되겠죠. 맞아, 잘됐다고 할 게 아니었는데…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무신은 자책하는 그녀를 위로했다.

 

“모용가는 굳이 팽가와 접점이 없더라도 잘될 겁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말만 드리는 게 아니에요.”

“네?”

 

회귀 전에도 모용가는 팽가와 접점이 없었다. 그때는 심지어 모용선화도 죽었다. 그럼에도 모용가는 보란 듯이 일어섰다. 꽤 시일이 걸렸으나 분명 옛 오대세가의 위용을 되찾았다.

무신에게는 그 시일을 ‘지금 당장’으로 앞당길 방법이 있었다.

 

“제가 도움을 좀 드려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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