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3화
빗나간 예상
남궁가가 쫓고 있단 소식을 들은 게 바로 어제였다.
무신은 흠칫 놀랐지만 내색 않고 말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도 모르게 허리춤의 흑라신검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이름 모를 남궁가의 무사가 말했다.
“댁이 최 대협이오?”
강호에 널린 최씨만 하더라도 수십만은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가리키는 지칭임을 무신은 금방 알아챘다.
질문한 무사의 뒤로 걸어오는 두 사내.
일전에 마주쳤던 얼굴이었다.
“그렇소만.”
무사는 무신의 대답을 듣고 옆으로 빠졌다.
그 사이를 두 사내가 채웠다.
“오랜만이오, 최 대협.”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반갑소.”
남궁호와 남궁수.
그날, 남궁성과 함께 산동 객잔을 찾았던 자들.
두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포권을 취했다. 마지막 모습과 다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무신은 우선 인사를 받았다.
“무슨 일로 날 찾았소?”
연배가 더 있어 보이는 남궁호가 답했다.
“소식은 들었을 거요.”
“어떤 소식?”
“남궁성이 몇 달 전 산서 근처에서 죽었소.”
널따란 강호 바닥에서 사람 한 명 죽는 것이야 길바닥에서 개미새끼 밟히는 것과 진배없었다.
하지만 남궁가 사람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이 산서 안에서만큼은 소문이 다 돌았을 것이다.
무신이야… 남궁성을 죽인 장본인이니 더더욱.
“아아, 들었소. 참 딱하게 됐소 .”
말에는 걱정이 가득하지만 표정은 시큰둥했다. 그런 무신이 마음에 안 드는지 남궁호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남궁수는 아예 노골적으로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남궁호가 갑자기 다른 화두를 던졌다.
“최 대협이 자주 가던 객잔 말이오.”
“내가 자주 가던 객잔?”
“그 왜 있잖소. 산동에서.”
산동의 객잔.
명화진.
그녀가 있던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거기 점소이가 급사해 그녀의 죽음을 기리고 갔다 들었소.”
“잘 대해주던 아이라서 말이지. 헌데 어찌 알았소? 대단하신 남궁가 나으리들께서 내 뒷조사를 하신 겐가?”
“뒷조사라기보다는 그냥 앞조사요.”
무신은 실소를 터뜨렸다.
“뭐, 말장난하자는 거요?”
“그게 아니라… 최 대협도 이미 알 것 같은데. 그 점소이가 남궁성에게 당한 것이란 것을.”
아무래도 이미 그 객잔 주인장을 털고 온 모양이었다.
부정해 봤자 소용없겠지.
“그래, 알고 있소.”
“그 복수를 하겠답시고 남궁성을 죽였소?”
정확히 짚었다.
그게 정말 무신이 남궁성을 죽인 이유였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도 남궁호와 남궁수의 입장에선 심증일 뿐이었다.
무신은 태연하게 답했다.
“세상에 점소이 하나 죽었다고 남궁가를 건드리는 미친놈이 어디 있소?”
나름 의표를 찔렀지만, 남궁호는 예상했다는 듯 반박했다.
“그날 객잔에서도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이겠다 협박하지 않았소?”
“그거와 비교하면 곤란하지.”
“어째서?”
“나와 관련된 일과 점소이가 관련된 일이 같소?”
“이유가 뭐든 간에 남궁가를 건드리는 것 자체는 똑같…….”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이유가 다르면 애당초 남궁가를 건드릴 리가 없다니까?”
“모르겠고, 현재까지는 당신이 남궁성을 죽였을 공산이 가장 크오. 그러니 협조 좀 부탁하겠소.”
말이 협조지 강제로 남궁가에 끌고 가겠단 뜻이었다.
보아하니 양쪽 벽 뒤로 스멀스멀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끌고 갈 인력들이겠지.
무신은 여유롭게 대응했다.
“이야, 나를 그렇게나 높이 평가해 주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요?”
“남궁성이 죽은 자리에 남궁선검대도 함께였다지? 남궁 대협 말대로라면 내가 그들도 같이 죽였단 거 아니요?”
당당하던 남궁호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 그것은 다른 문제요.”
“아, 그럼 남궁선검대를 피해 남궁성만 죽이고 쏙 빠졌다? 좋아, 그렇다 칩시다. 그럼 남궁선검대는 왜 죽은 거요? 날 뒤쫓다가 단체로 고꾸라져 머리통을 찧기라도 한 거요?”
남궁호는 대답이 없었다.
산동의 객잔까지가서 뒤를 캔 주제에 정작 가장 단순한 문제는 생각해 보질 않은 것이다.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을 놓고 보면 그가 미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무신이 남궁선검대도 같이 죽인 게 맞으니까.
단지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고 단정 지어서 그럴 뿐.
무신은 양손을 내밀었다.
“뭐, 잡아가려든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강호전역에 ‘남궁선검대가 일개 검객에게 당했다’ 하는 식으로 소문이 나는 것은 감수해야 할 거요.”
“…….”
“심지어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까지 밝혀지면 비난은 더욱 거세겠지. 호, 그거 아주 볼만하겠어.”
내용은 다르지만, 대화는 그날 객잔에서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심지어 결과도 똑같았다.
상대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우리가 실례한 거 같소. 가보시오.”
“가라니 가기야 가겠는데, 갑자기 뒤통수치는 거 아니오?”
무신이 양쪽 벽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남궁호가 절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비단 남궁성 일을 떠나서 남궁가가 최 대협을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하시오.”
“나를 왜?”
“그날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소.”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남궁호가 바짝 이를 앙다물었다.
“남궁가를 상대로 너무 겁 없이 나서잖소? 대화하는 것부터.”
“남궁가에서는 눈 마주치며 바른 소리하는 것도 ‘겁 없이’란 말로 치부하오?”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무신은 다시 남궁호의 말을 끊었다.
“그럼 겁 없는 소리 한 번 더 하겠소. 나도 남궁가를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하시오.”
“뭐라고?”
“하하, 농이오, 농.”
무신은 남궁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대로 걸어 나갔다.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남궁가 무사들의 수십 개 시선을 무시한 채.
“이것도 인연인데 기회가 되면 또 봅시다.”
***
산서 서부.
마교 부교주의 지시로 정파의 영역을 찾은 마청대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여긴 백야평야와 정반대가 아닙니까, 대장? 아무리 뒤져봐야 마향대와 성태귀를 죽인 자들 흔적은 없을 것 같은데.”
“안다, 나도.”
“헌데 왜……?”
마청대 대장 당우청.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보고할 거리라도 만들어야지.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잖느냐.”
“엄한 데 왜 갔느냐 하지 않을까요?”
예리한 지적이었으나 부대장은 그 말을 곧 후회했다.
당우청의 얼굴이 순간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가뜩이나 지랄 같은데 너까지 왜 지랄이야?”
“죄, 죄송합니다.”
“일단 뒤져.”
“예!”
장소를 떠나서 마향대와 성태귀의 시체도 정파가 수거해 간 판국에 뭘 조사하겠느냐마는, 몇 가지 확증은 있었다.
장검을 쓴다는 점.
성태귀를 제외한 대부분을 기압으로 죽였다는 점.
합이 길지 않았다는 점.
머릿수는 대략 열댓 정도로 추측되는데, 그렇다면 근방의 검술 가문을 예상해 볼 수도 있었다.
이를 테면 남궁가라던가.
터무니없는 소리겠지만 마향대를 건드리려면 그 정도 위상은 되어야 한다.
물론 거기까지였다.
확증이든 남궁가든 뭐든 간에 일이 터진지 벌써 몇 달.
잡으려면 진즉에 잡았을 것이다.
아닌 말이 아니라 그냥 시간 때우기였다.
부대장의 말처럼 괜히 지탄만 받을지도 모르고.
당우청은 그래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혹시 알아. 갑자기 떡하니 나타나 줄지.’
***
먹구름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안개도 잔뜩 껴 대낮임에도 주위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겨울 다 지나간 3월인데 찬바람까지 뺨을 할퀴고 지나가니 흑룡강 여정은 시작부터 최악이었다.
그래도 더위보다는 나았다.
옷 갈아입을 필요도 수시로 목 축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무신만의 경우였다.
말 대가리가 그새 축 늘어졌다.
이럴 때를 대비해 건초를 세 바가지나 먹였는데, 굽으로는 영양분이 전혀 안 간 모양이었다.
무신은 되는 대로 놈의 갈기라도 쓰다듬었다.
“히이잉!”
놈이 굽을 번쩍 들고 울부짖었다. 그나마 좀 말을 잘 들었다.
물론 말 따위는 지금 당장 버려도 좋았다.
보법만 쓰면 저 멀리 수평 너머도 금방이었다. 하지만 굳이 내공을 소모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무신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혈교.
아무렴 자신 있어도 힘은 비축해 둬야 한다.
다만…….
‘늦어지면 25일까지 거기에 못 도착할 것 같은데.’
모용선화가 녹림에게 급습을 당하는 것은 산서 서부 끄트머리에서였다.
현재 무신이 있는 곳은 산서 서부의 시작점.
멀쩡한 날씨에 달려도 25일 전까지는 빠듯하다.
‘모용세가와의 인연이야 모용선화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엮을 수 있으니까.’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고삐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었다.
‘녹림이 왜 모용선화를 쳤더라?’
비단 모용선화만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정략혼인을 위해 동행하던 팽방호까지 죽였다.
‘세 채가 한 번에 나섰던 걸 보면 분명 무슨 원한이…….’
아, 무신은 그제야 기억해 냈다.
원한을 넘어 숙원이었다.
‘팽가가 창룡채 채주를 죽였었지.’
창룡채는 그 세 채의 녹림 중 하나였다.
하북팽가 본거를 칠 순 없는 노릇이니 대신 그 아들놈을 죽인 것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게 산서 서부의 어느 평야에서.
하지만 팽가가 바보도 아니고 그들의 짓임을 예측 못 할 리가 없었다.
팽가의 가주 팽영권은 그길로 창룡채, 그리고 같이 작당한 두 녹림까지 싹 다 잡아 죽였다.
꽤 오래 회자될 만큼 처참했다.
허벅지를 반으로 갈라 거기에 달군 인두를 집어넣었고, 채주들의 경우에는 그게 입 속에 들어갔다.
무신이 남궁성에게 가했던 고문은 고문 축에도 못 꼈다.
‘녹림 놈들, 만약 나한테 죽는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겠군. 팽가한테 걸리면 그 몹쓸 꼴을 당할 테니.’
무신은 피식 웃으며 저 멀리 서산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안개 너머 노을이 붉게 지고 있었다. 모처럼의 눈호강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말을 몰았다.
노을이 지고 밤이 오고 그 밤이 지나 다시 아침 해가 뜨고… 금세 며칠이 지나갔다.
일이 터졌던 3월 25일까지도 금방이었다.
무신은 다시 저 멀리 서산을 바라보았다.
우연찮게 또 노을도 붉게 지고 있었는데, 그가 이번에 보는 것은 노을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진 평야.
어둑한 것만 빼면 백야평야의 전경과 비슷했다.
그는 군침을 다셨다.
‘여기서부터 서두르면 늦지는 않겠어.’
녹림 세 채가 덮쳤을 테니 당해도 벌써 당했을 테지만, 두 세가의 호위 무사들이 그리 쉽게 당할 위인들은 아니었다.
특히나 팽방호는 가문의 촉망을 받는 실력자이고.
‘근데 왜 이렇게 기압이 짙어?’
무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구보전답을 이용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 한번 들이키면 아홉 걸음을 내딛는 그의 보법은 그를 순식간에 목적지까지 데려갔다.
‘뭐야?’
하지만 그곳의 풍경은 ‘늦지 않았다’ 하는 그의 예상을 완벽히 빗겨냈다.
사방에 이미 팽가와 모용가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저기 한 가운데에는 팽방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통이 굴러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녹림의 시체도 함께였다.
싸우다 죽은 자들?
아니었다.
녹림 세 채에 해당될 만큼의 시체가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무신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다른 놈들이 끼어들었군. 그래서 기압이 짙게 느껴졌던 거야. 헌데 어찌? 이 일에는 분명 녹림 세 채만 끼어들…….’
그때였다.
무신과 같은 흑장포를 두른 스물여덟의 거한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산서를 나오며 마주쳤던 남궁가의 무사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그들에게도 익숙한 문양이 박혀 있었다.
무신은 기가 차서 웃었다.
‘저놈들이 여기 왜 있어?’
마청대(魔淸隊)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