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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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70화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백산의 깨우침을 단전과 합하여 심을 다스리니…….”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무신은 목청수가 말하는 심법을 이미 떠올리고 있었다.
백산자화신공(白山自和劍法).
정파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순정을 지키면서 마교의 마공에도 힘이 밀리지 않는 강력한 심법이었다.
“그것을 나는 백산자화신공이라 이름 붙였다.”
설명이 끝나자 숨 죽여 듣고 있던 이나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입은 마른침을 꼴깍꼴깍 넘기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의 반응이었으나 무신은 저 마음을 이해했다.
그도 ‘처음 들었다면’ 아마 더했을 것이다. 양팔 높이 들고 엉덩이를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믿지 못할 상황이었다.
화경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심법을 배운다는 것은.
하지만…….
“백산자화신공이 너희들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맞지 않다 하심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과 같지. 배울지언정 써먹질 못할 게다.”
“저런.”
아쉬움에 혀를 차는 이나희를 보며 무신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회귀 전에 백산자화신공 연마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에 그녀가 목청수의 수련을 받았다는 게 남아있질 않는 것이고.
물론 그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장차 삼봉이 되든 어쩌든 어차피 그녀는 남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자신이었다.
‘이건 계산에 없던 경운데.’
그는 애매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우선은 목청수의 입에 주목했다.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해보고 나서 욕을 하던 후회를 하던 하면 될 것이다.
“기본은 운기조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
“네.”
그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손은 가볍게 말아 쥐어 무릎 위에 올렸고, 입술은 굳게 다물었다.
벌써부터 저 멀리 산새의 지저귐이 들렸다.
눈을 감자 그 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고 선명했다.
목청수가 입을 뗐다.
“뭐든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지. 헌데 백산자화신공은 반이 훨씬 넘는다.”
운기조식 간에 입을 여는 것은 취침 중에 눈을 뜨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무신과 이나희는 가만히 경청만 했다.
“시작만 잘하면, 백산자화신공을 거의 다 깨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나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신도 조금 동요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공을 단전이 아닌 온몸에서 축적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내공은 ‘무조건’ 단전에서만 축적하고 운용한다는 게 무(武)의 법칙이었다.
이나희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부릅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다. 단전이 아닌 온몸으로 내공을 느껴라. 운용법은 느끼게 되면 찬찬히 알려주마.”
이나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백산자화신공이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단 게… 그래서였군요.”
“그렇지.”
“하지만 말도 안 돼…….”
해보지도 않고 포기부터 하겠느냐마는, 이나희의 반응은 오히려 침착한 편이었다. 지금 목청수는 황무지에서 새싹을 피우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는 웃고 있었다.
목청수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기한은 반 년 정도면 될 게다.”
“반 년이요? 그 안에 성공할 수 있단 말씀이세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반 년이면 백산자화신공을 연마할 자격이 되는지 없는지 판단하기에 충분하단 뜻이다.”
“만약 그때까지 진도가 없으면…….”
“포기해야겠지.”
우습게도 이나희는 지금 포기해도 되었다. 회귀 전에 안 된 것이 회귀 후라고 달라질 리 없었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면, 그녀에겐 시간낭비였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그녀는 의지가 철철 넘쳤다.
“어떻게 하면 몸 전체로 내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방법을 묻는 게냐?”
“네, 사부님.”
“그것은 너 혼자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애당초 말해준들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이나희의 입술이 꼼지락 거렸다. 말은 안 하지만 ‘말해주는데 어째서 이해해지 못하겠느냐’ 하는 투였다.
목청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장 내가 화경에 오르며 깨달은 것을 알려주면, 네 녀석은 화경이 될 수 있겠느냐?”
“…….”
이나희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꾸벅 머리를 숙였다. 바보 같은 의문을 던졌음을 이제야 안 것이다.
목청수가 괜찮다는 듯 만류하며 벌떡 일어섰다.
“우리 가문의 비기를 백산자화신공으로 변형시키기까지 나도 석 달이 넘게 걸렸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까도 말했듯 반년은 가야 될 게다.”
그렇게 말하며 목청수는 담담히 귀를 열고 있는 무신을 쳐다보았다. 이번만큼은, 정말 이번만큼은 ‘네 녀석도 안 될 것이다’ 하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타고난 자질이 너무나도 뛰어나 초절정 주제에 화경과 호각을 다툴 수 있다고는 해도 심법은 아니었다.
특히 백산자화신공이라면 더더욱.
그것은 숱한 절세의 고수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니까.
목청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럼 이 사부는 한숨 자고 오마. 아니, 꽤 오래 자리를 비울지도 모른다. 어차피 네 녀석들의 백산자화신공은 아직 걸음마도 안 뗀 수준이니 말이다.”
“저, 사부님.”
내내 한 마디도 않던 무신이 입을 열었다.
목청수는 ‘네 녀석도 드디어 못 하겠단 소릴 하려는 게구나’하고 생각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의 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온몸에 심지라도 돋아난 듯이.
목청수가 경악스럽게 입을 벌리는 순간, 그는 주먹을 말아 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콰콰콰콰쾃!
단전 내 내공을 육신에 회전시킨 게 아니었다.
육신이 내공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다시 밖으로 배출시키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내공 운용.
그리고, 목청수가 말한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
섬서성 종남파.
모종의 사건 이후로 그곳은 두 달째 비상이었다. 장문 진해천까지 발 뻗고 나서서 뒤처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슨 뒤처리인지야 뻔했다.
성태귀의 품에서 발견된 정파의 기밀이 종남파에서 나간 게 아님을 숨기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진 장문.”
“아닐세. 난 괜찮으니 마음껏 조사하게.”
“예, 그럼…….”
무림맹 조사단은 불시에 찾아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마교와 관련된 흔적을 모두 숨겨 다행히 우려한 사단은 나지 않았다.
조사단장이 진해천에게 머리를 숙였다.
“청렴키로 소문난 진 장문을 이렇게 쥐 잡듯 조사하다니… 다시 한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괜찮네. 일이 났으면 부모 관짝인들 열어서 조사해야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말일세.”
진해천은 넌지시 물었다.
“마교에게 정파의 기밀을 떠넘긴 게 꼭 같은 정파의 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사파의 농간일지도 모르는 것인데.”
“그럴 리는 없습니다.”
조사단장은 단호했다.
“사파쪽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도 지천이었습니다. 특히 각 문파의 비기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그렇구만.”
비기뿐인가.
소가주로 누가 있고 그 자식의 이름은 무엇인지 하는 사사로운 것까지 모두 넘겼다.
진해천은 괜히 뜨끔해서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조사단장의 얼굴이 근심에 찼다.
“어떤 놈들 짓인지… 아마 밝혀지면 뼈도 못 추릴 겁니다.”
“그래, 그래. 아주 아작을 내야 해.”
더 말을 섞다간 제 발에 저려 사실을 실토할 것만 같았다.
진해천은 그대로 조사단을 보내고 내내 참아온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그나마 좀 뚫렸다.
‘시팔, 태청운과 비슷한 부객 구해다 줬으면 얌전히 마교로 돌아갈 것이지 왜 백야평야를 가고 지랄이야?’
백 번 천 번 욕해봤자였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왜 백야평야를 갔느냐가 아니었다.
갔는데 왜 죽었느냐였다.
그것은 진해천뿐 아니라 온 강호에서 두 달간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단체로 벼락을 맞았나.’
***
온몸을 단전으로 승화시키는 것.
무신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22만 년을 그렇게 해왔으니까.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단전도 없는 망령으로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지독했던 나날이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그는 불과 1분 만에 목청수의 숙제를 끝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목청수는 눈을 깜빡거리며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무신의 몸은 이제 활활 타오르다 못해 터질듯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활화산(活火山).
뜨거운 열기에 이나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단 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부가 무조건 반 년은 걸린다 단언한 일을 1분 만에 끝냈으니 같은 제자로서 어안이 벙벙하겠지.
“네, 네 녀석은 반로환동한 게 틀림없어.”
간신히 입을 뗀 목청수가 철 지난 반로환동 이야길 다시 꺼내 들었다.
믿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 헤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무신이 아니라고 말하기 전에 그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반로환동이란 것은 현경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현경의 고수가 한 수 아래의 화경에게 수련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가 던질 수 있는 의문은…….
“도대체 어떻게 한 게냐?”
방법이었다.
백산자화신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 첫 걸음을 무슨 수로 1분 만에 해결했는지.
하지만 답은 목청수 본인이 이미 말한 바 있었다.
“방법은 말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사부께서…….”
“그, 그렇긴 하다만 무언가 수가 있었을 것 아니냐?”
“그냥 온몸으로 느끼려 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우연찮게 됐다는 것.
이번에도 답은 목청수 본인이 이미 밝힌 바 있었다.
“…재능이구나. 네 녀석의.”
“그런 것 같습니다.”
무신은 ‘실은 사후 세계에서 22만 년 간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저 목청수에게 그 얘길 했다간 몇 대 얻어맞을지도 몰랐다.
목청수가 멍 하니 서 있는 이나희에게 말했다.
“네 녀석은 남아 계속 수련하거라.”
“네? 아, 네네!”
“나는 이 녀석에게 백산자화신공을 마저 가르치고, 약조한 대로 화경의 길목에 서는 법을 알려주도록 하마.”
목청수는 혼이 나가 있었다. 늘 담담한 말투에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던 그 화경의 고수가 아니었다.
무신은 조금 죄송했다.
‘번데기 앞에서 번데기보다 더 주름을 잡아버렸으니.’
그에겐 옛말도 우스웠다.
그는 목청수를 따라 백산 어딘가를 올랐다. 굽이굽이 기슭을 밟고, 높다란 봉우리를 지났다.
허연 눈이 사방에 깔린 곳에 도착해서야 목청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백산의 정상이었다.
“온몸을 단전화하였으니 이제 네 녀석은 거의 백산자화신공의 정상에 다다른 셈이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처럼 말이지. 자, 가부좌를 틀고 앉거라.”
“예, 사부님.”
과연 목청수의 말은 틀림없었다.
이후 과정은 무신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인데도 불과 열흘 만에 통달했다.
백산자화신공의 정상이었다.
‘놀랍군.’
내공이 축적되는 양과 속도.
그리고 회전.
나아가 겉으로 발산하는 그 일련의 과정까지.
귀곡심법보다 ‘낫다’ 정도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였다.
무신은 몹시 흥분되었다.
맹수가 먹잇감을 물어뜯듯 그는 미친놈처럼 백산자화신공을 파고들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또 열흘이 지나서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목청수가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제, 진짜 마지막 수련을 할 차례였다.
화경의 길목에 서는.
“신검합일이란 것을 아느냐?”
“예.”
“그래? 그게 무엇이냐?”
“몸은 검이 되고 검은 몸이 되어 서로 하나가 되는 심신 수양입니다. 사부께서 말씀하셨듯이 화경으로 가는 깨달음의 전초이기도 하고요.”
“맞다. 깨우치는 것으로만 따지면 백산자화신공보다 곱절에 곱절은 더 어렵지.”
목청수는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녀석이 아무렴 잘난 재능을 가졌어도 신검합일까지 단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
그의 미소에 감춰진 의미를 무신은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그래서 그에게 죄송했다.
곱절에 곱절은 더 어려운 게 아니라 곱절에 곱절은 더 쉬우니까.
“……!”
눈치껏 사흘 정도 헤매는 척 하려던 무신은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끝냈다.
그새 한 해가 넘어가 1552년.
갈 길이 바쁘다.
괜한 일에 지지부진 시간 끌 필요가 없었다.
“좋은 가르침 감사했습니다, 사부님.”
목청수는 말이 없었다.
그대로 작별을 고하려던 무신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수련이 끝나거든 저와 다시 대련을 하겠다 하셨는데… 정말 이기어검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대련은 없다. 아니, 못하겠다.”
“예?”
목청수가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 녀석에게 질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