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5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5화
석가장의 부인
백산검(白山劒) 목청수.
유수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타고나기를 무인의 무골이었으며 검에 대한 재능도 대단했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단전을 갈고 닦았는지 심법 이해력은 초장부터 일류무사를 거뜬히 뛰어넘을 정도였다.
가문으로부터 좋단 영약도 죄다 받아먹어 약관도 전에 절정의 경지에 다다랐다. 이후 가볍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급기야 마흔 즈음해서는 깨달음의 경지라는 화경까지 도달했다. 영약을 빼고라도 그는 고금을 통틀어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였다.
세상이 천재를 가만둘 리 없었다. 여기저기서 그를 포섭하려는 손짓이 빗발쳤다. 그는 그 달달한 꿀을 모두 뿌리쳤다. 권력 투쟁.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평생을 가문의 무사로만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산서성 북쪽의 백산에 입산했다. 그리고 은거기인을 자처하며 한순간에 속세를 떠났다. 하지만 외딴 생활이 지겨웠는지 5년째 되던 해부터 제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 무신이 그를 찾는 이유였다.
검신. 목청수가 아무렴 고수라고는 해도 이미 정점에 달한 무신이 그의 제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뭘 하든 시간 낭비일 게 뻔했다. 하지만 정확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수련을 마친 그의 제자들은 하산 전에 몇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모두 합격하면 비기를 하나 전수받을 수 있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것을 그가 독창적으로 변형시킨 심법. 그것은 무려 남궁가의 창궁대연신공에도 비할 정도였다.
백산으로 가기 전, 무신은 마구간에 들려 말 한 필을 구입했다. 원래 타던 것이 백야평야에서 목이 꺾여 죽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산 것은 새 주인을 맞았는데도 뒷발 한번 안 흔드는 순한 놈이었다. 말이란 자고로 좀 거칠어야 더 속도가 붙는 법이지만, 요놈도 괜찮을 것이다. 백산이 멀다고는 해도 중원 한가운데를 주행할 만큼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말을 끌고 무신이 향한 곳은 산서성 북부시장이었다. 중앙시장보다는 아무래도 좌판도 몇 개 없고, 오가는 행인도 적었다. 하지만 좌판이나 행인 보자고 온 곳이 아니었다. 그는 그 근처 보석점을 찾았다. 돈 많은 장사치들이나 유명 가문의 가솔들이 자주 들리는 유명 보석점이었다.
마침 웬 중년 부인 하나가 일을 보고 있었다. 꽃무늬가 그려진 장삼을 입고 있었는데, 허리춤에 남주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귀걸이는 그 귀하다는 녹주석이었다. 양쪽 약지에 낀 반지야 안 봐도 뻔했다. 못해도 단백석은 되겠지. 온몸을 보석으로 칭칭 감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몸 자체는 그다지 가꾼 티가 없었다. 뱃살이 젖가슴보다 튀어나올 정도로 살이 뒤룩뒤룩 쪄 있었다.
몸집이 어떻든 무신이 알 바는 없었다. 그는 큼지막한 배낭 두 개를 들고 보석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그와 중년 부인뿐이었다. 진열된 보석을 살피던 그녀가 그를 힐끗 쳐다봤다. 파천의에 흑라신검. 알고 보면 당장 예를 갖출 행색이지만, 모르고 보면 흔하디흔한 무복에 흑검이었다. 그녀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은자도 없어 보이게 생겨가지고 여긴 왜 왔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얼마나 컸으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중년 부인의 시중들까지 반응했다. 무신은 그녀의 아가리를 잡아 양쪽으로 확 찢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고통에 찬 신음은 언제나 듣기 좋지만, 돼지 멱따는 소리까지 즐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무시하고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보석 좀 팔까 하는데.”
“예예, 어떤 겁니까? 한번 올려 보시죠.”
무신은 배낭 두 개를 통째로 턱 올려놓았다.
“이만큼인데 전부 거래됩니까?”
“예?”
멀뚱멀뚱 배낭을 바라보는 주인장 앞에, 무신은 마물의 무덤에서 얻은 보석을 죄 꺼내 놓았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이 수십 개는 있어야 셀 수 있는 숫자였다. 종류도 다양했다. 금덩이부터 중년 부인이 걸친 남주석이나 녹주석이 손 한번 훑으면 몇 개씩 걸려 나왔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금강석까지 있었다.
난데없는 보석 홍수에 가장 기겁한 자는 의외로 주인장이 아니었다. ‘흥, 은괴나 박박 긁어 모아온 모양이지?’ 하고 코웃음을 치던 중년 부인이었다. 그녀가 그 몸에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무신 앞으로 달려왔다.
“어, 어머! 이게 뭐야?”
그녀가 허락도 없이 금강석을 손에 쥐고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편육처럼 생긴 두툼한 입술에는 침이 고여 있었다. 이 보석을 장식구로 사용하면 더 고풍스럽게 보일 거야! 하는 탐욕.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순간 그것의 주인이 그녀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신은 뭐가 엄지고 뭐가 중지인지 분간도 안 되는 그녀의 손에서 그것을 뺏어 들었다.
“남의 물건을 누가 함부로 만집니까?”
“그거 나한테 팔아요!”
막무가내였다. 아직 열지 않은 배낭을 뒤져 다른 금강석을 꺼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제멋대로 값을 치더니 전표 몇 장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금강석을 제 귀에 대보며 ‘호호호’하고 웃었다. 그야말로 정신 나간 년이었다. 무신은 그녀에게 전표를 그대로 돌려주며 주인장에게 말했다.
“주인장한테 다 팔겠습니다.”
“저야 좋습죠!”
남주석이나 녹주석은 비쌀 뿐이지 돈만 있다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보석이었다. 하지만 금강석은 다르다. 워낙 희귀해 거래는커녕 발견하기도 어렵다. 주인장의 입꼬리가 귓불까지 찢어 올라간 이유였다.
중년 부인이 꿱 소리를 질렀다.
“나한테 팔라니까! 값도 잘 쳐준다고!”
“안 팝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리는 게 싫어서가 아니었다. 가문 믿고 나대는 저 오만방자함. 무신은 그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러웠다. 더러운 돈은 아무리 액수가 커도 주머니 안에 들어가면 썩을 것이다.
무신은 그녀가 제 가슴팍에 걸어둔 금강석을 잡아뗐다. 옷섬에 껴 놓은 탓에 부득이하게 살덩이 느낌이 만져졌다. 여인네 살결은 어딜 만져도 좋다는데, 그녀의 것은 별 감흥이 없었다. 손만 잡아도 발딱 서는 아랫도리가 잠잠했다. 하지만 그녀는 붉으락푸르락 온 몸으로 지랄염병이었다.
“이게 어딜 만져!”
“그러게 남의 보석을 왜 거따 달아둡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 그게 중요하냐고!”
몸을 들이밀며 그녀가 시끄럽게 떠들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그녀의 시중들이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우르르 들어왔다. 절반은 말 그대로 시중을 드는 여인들이었고, 절반은 호위를 위한 무사들이었다. 이러다 일 나겠다 싶었는지 주인장이 급하게 중재했다.
“하하, 진정하십시오.”
“댁은 빠져 있어요.”
팔을 걷어붙이며 나서는 중년부인에게 주인장은 아무 말도 못했다. 호위무사들이 서슬 퍼런 검을 빼 들어서가 아니었다. 석가장. 그녀의 손목에 오대세가 바로 다음 간다는 곳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팔을 걷어붙인 것은 사실 자신의 출신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굴이 파랗게 질려 뒤로 빠진 주인장과 달리 무신은 지극히 평온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석가장에서 나온 부인께서 왜 이리 교양이 없습니까?”
“뭐야?!”
“그리고 지금 내가 부인 거기 만졌다고 이러는 모양인데, 톡 까놓고 말해봅시다. 댁이 남자면 댁 거기 만지…….”
장법을 배우면 일류무사까지는 대성할 것 같은 넙적한 손바닥이 무신의 뺨에 날아왔다.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손을 잡았다. 중년부인이 ‘이거 안 놔?’ 하며 호위무사들을 돌아보는 순간, 그는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다 진열대 위에 내려쳤다. 살집 때문인지 둔탁한 소리가 났다. 서너 번을 더 반복하니 그제야 빠각빠각 코뼈인지 광대뼈인지 뭐가 부러졌다. 콸콸 쏟아진 피에 그가 꺼내놓은 보석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진열대에 박았다.
“네년 때문에 더러운 게 묻었잖아.”
그가 보석을 한쪽으로 밀어 넣는 동안,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코와 광대가 으스러진 중년부인이 바닥에 너부러지고서야 누군가 입을 열었다.
“네, 네놈 지금 무슨 짓을!”
“무슨 짓은. 먼저 손찌검 하려길래 똑같이 해준 것뿐인데.”
퉁명스럽게 말하는 무신에게 너덧 명의 무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비대한 안방마님과 다르게 그들은 하나같이 호리호리하고 날렵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보다 몇 곱절은 강한 고수였다. 비좁은 보석점 구석에 순식간에 머리통 네 개가 쌓였다. 이번에는 사방으로 피가 튀었기에 보석뿐 아니라 내부 전체에 붉은 빛이 돌았다. 무신은 눈을 가린 채 반대편 구석에 박혀 있는 시중들을 돌아보았다.
“변상은 니들이 해.”
“아, 알겠습니다.”
“시체는 관부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인장을 모셨다. 그리고 다시 거래를 이어갔다.
“알아서 잘 매겨주십시오.”
머리통이 잘려나간 무사들. 흉한 몰골을 하고서 기절한 석가장의 부인. 시체 다섯 구와 시체와 다름없는 몸뚱이 한 구를 보며 주인장이 모두 제 값을 불렀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든 후려치려 했을 양반인데, 심지어 전표 서너 장 더 웃돈을 주기도 했다. 목구멍을 자꾸 비비는 게 아무래도 성의를 보여야 본인은 저 꼴이 안 난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신은 피식 웃었다. 시비도 안 턴 사람까지 죽일 만큼 살육에 미치지는 않았다.
두둑한 전표를 안고 보석점을 나온 무신은 그제야말로 백산을 향했다. 다그닥다그닥 시장을 벗어난 말이 힘껏 굽질을 시작했다. 좌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행인들까지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 북쪽에서 기승을 부리는 녹림 탓이었다. ‘잘 살고 있으려나’, 그는 문득 광후채에 머물고 있을 여인들이 떠올랐다. 언제 시간 나면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백산. 목청수의 은거지. 녹림도 피해간다는 그곳의 입구에 검이나 창, 도끼 따위를 든 무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풍채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자는 하북팽가도 저리가라 할 만큼 무골이 좋았고, 어떤 자는 부객들이 환장을 한다는 장인의 도끼를 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여무사도 있었는데, 어느 장한이 ‘가시나가 뭐 할 줄 안다고 설치려 해?’ 하고 지껄이자 그를 단칼에 죽였다.
“이야, 끝내주는구만.”
“그러게 여자라고 왜 무시를 해? 다 같은 초절정고수일 텐데.”
그 말 그대로였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전부 초절정고수였다. 목청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여무사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놀랍기는 했다. 장한의 몸뚱이가 도살장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깨끗이 네 등분돼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그 짧은 찰나에 검을 네 번이나 휘둘렀단 뜻이었다. 쾌검을 얼마만큼 다뤄야 가능할까. 남무사들의 머릿속에서 이제 저 여무사는 ‘건드리면 일 난다’ 하는 식으로 각인되었다.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 입구에 모여든 무사들의 수는 자그마치 마흔이 넘었다. 그들 전부가 초절정고수란 것을 감안하면 걸출한 문파 하나가 조직된 셈이었다. 하지만 각자 본인이 최고인 줄 아는 강자들이 누군가는 위에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있는 조직도를 따를 리 없었다. 통성명이나 하면 다행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흑장포를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올라왔다. 오다가 산짐승과 뒹굴었는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짐승 피 냄새가 아닌데?”
“그러게 말이오.”
짐승의 것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 사람의 것이었다. 범인들이었으면 기겁을 했겠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초절정이나 되는 자들에게 사람 목 따는 일은 흔했다. 당장 오는 길에 녹림을 마주쳤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유독 심하게 반응하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죽일 듯 쳐다보는 게 아무래도 피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입만 산 줄 알았더니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이구나.”
들창코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그는 저 흑장포인을 알고 있었다. 어제, 객잔에서 시비가 붙었던 검객. 동료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벌써 저세상에 가 있을 놈. 그는 그대로 검을 쳐들고 흑장포인에게 걸어갔다. 정말로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었다. 여기 왔다는 것은 저자도 같은 초절정고수란 뜻이겠지만, 신경 쓸 바 없었다. 그는 이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오늘 아침, 영약까지 한 뿌리 챙겨 먹었다. 온몸에 힘이 끓어넘쳤다.
“다들 오는 길 수고 많았다.”
하필이면 그때, 목청수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