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3화
심장
인간의 마물화.
회귀 전, 듣기는 들었다. 하지만 그저 뜬소문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마물로 변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그런데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마형추의 입에서 마력이 쏘아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무신은 우선 그것을 피했다.
마력이 무신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굉음과 함께 두터운 석벽이 가루처럼 바스라졌다. 석벽? 이상하다 싶어 돌아보니 석벽이 아니라 죽은 석상의 몸뚱이였다. 방우돈이 기를 쓰고 악을 써서 겨우 잘라냈던 게 입김 한 번에 꺼진 것이다.
“지랄났군.”
제 심정을 육성으로 토할 만큼 무신은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직접 보고 느끼고 심지어는 당하고 있음에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얻은 능력일까. 애당초 마형추가 마물화를 가지고 있었단 기억도 없었다. 알기로 강호 전체를 통틀어 마물화가 가능했던 자는… 한가로이 과거나 되짚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검을 쳐들고 마형추에게 달려갔다. 놈이 또 한 움큼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번쩍이는 전구를 보는 듯했다. 마력이 내공과 섞여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무신은 토악질이 쏠렸다. 마형추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놈이 더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근육질로 뒤덮였던 몸에 두꺼비의 그것처럼 오돌토돌한 게 잔뜩 돋아났고, 귀까지 찢어진 입은 뻐드렁니 같은 것을 열댓 개는 더 빼물었다. 흰 자와 검은 자 대신 시뻘겋기만 한 눈도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짐승이나 낼 법한 소리를 질러대는 게 머릿속도 이미 마물이 된 모양이었다. 저러고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방법이 있더라도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신은 그 전에 마형추를 죽일 생각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쿵!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으리란 것을 무신은 겨우 두어 번 부딪쳐보고 깨달았다. 마형추는 마물을 넘어 괴물이었다. 맨손으로 검강이 깃든 흑라신검을 막는가 하면, 완력으로 반격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검을 앞으로 갖다 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슴팍이 죄다 갈릴 뻔했다. 무신은 기가 찼다. 강골(强骨)의 몸이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숱한 운기조식 덕에 강골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그것이 말이다.
무신은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빼려는 게 아니었다. 놈을 죽이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가 노리는 추진력이야 뻔했다. 전력. 전력이었다. 단전이란 주머니에서 늘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 꺼내 쓰다가 이번에는 아예 다 꺼내고 보는 것이다.
무신의 몸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혈관이 조금 두드러진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속에서는 용광로 하나가 들끓고 있었다. 백산왕의 내단까지 섭취한 그였으니 내공의 양은 가히 작은 호숫가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마형추도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온몸에서 시뻘건 기운을 터뜨리며 매섭게 무신에게 돌진했다.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그의 발은 마치 야생의 들소 같았다. 가공할 속도였다. 지켜보던 서예림이 꼴깍 침을 한번 삼키기도 전에, 그는 무신의 면전까지 달라붙었다. 그리고 무자비한 주먹질을 시작했다.
까아아아아아아앙!
뮤라한과 붙을 때 났던 소리가 났다. 호각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검과 검의 싸움이었고, 지금은 검과 주먹의 싸움이었다. 강철도 찢는 예리한 날이 여리디여린 인간의 살갗을 못 잡아먹는 것이다. 게다가 무신은 지금 전력이었다. 이러다가는 그가 이승을 떠날지도 몰랐다.
무신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밀리면 어떻게 될까. 어깻죽지라도 잘리면 어떻게 될까. 유림의 검. 다시 그게 발동할까. 영구 소멸을 풀어주려 또 저승에 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화려한 검술을 꺼내 들었다.
춤을 추듯 움직이며 열뢰대섬검의 산검을 펼치는 모습은, 정말 화려했다. 약이 오르는지 마형추가 완력으로 잡고 다시 마력을 쏘려 했으나 무신은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아니, 피한단 말도 수치였다. 사실 정통으로 맞은들 별다른 타격도 없을 것이다.
“크앙?”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렸는지 마형추가 괴상한 소릴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번들거리는 눈알에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잡혀 있었다. 그 의문이 당혹으로 변하기까지 채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무신의 검이 마형추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마형추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부풀어 오른 그의 근육이 다른 의미로 더 부풀어 올랐다. 흥분, 흥분이었다. 그는 마물로 변하고서도 무신에게 밀렸단 것에 발광을 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
마형추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렀다. 내리고 있던 오른손을 무신의 오른쪽 광대에 휘두… 르기 전에, 명령을 하달하는 매개체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그의 머리통이었다.
무신은 비로소 검을 거두며 목만 남은 마형추를 바라보았다. 몸이 본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물화된 것은 일종의 주술이었을까. 누구나 가능한 것일까. 해보고 싶단 생각은 안 들었다. 결국 마력을 위한 짓인데, 그에게는 마력보다 더한 자연경의 그것이 있었다. 아직 힘이 부족해 완벽하게 쓰긴 버겁지만.
“……!”
인기척이 나서 보니 누군가 새끼손톱을 깨물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서예림이었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가 식은땀에 젖어 몇 가닥 이마 아래로 내려왔다. 얼마나 긴장되면 웃옷도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 있었다. 속옷을 안 입었는지 맨 살에 그대로 달라붙어 젖가슴의 굴곡이 어렴풋 드러났다. 보기보다 크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그녀에게 물었다.
“너도 싸울 생각이야?”
마형추의 죽음.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서예림은 대답은커녕 눈에 초점도 제대로 못 맞췄다. 무신은 구보전답으로 그녀에게 쇄도한 후, 코앞에 검을 갖다 댔다.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뭐라고 하셨죠?”
“너도 싸울 생각이냐고.”
서예림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였다. 아주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단언했다.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재차 물었다.
“나가는 방법 알지?”
서예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슬 퍼런 검이 제 목에 닿아 있는 탓이었다.
“저기 얌전히 앉아 있어.”
백야평야에서 만났던 서예림은 고고한 학이 따로 없었다. 존대만 사용했지 콧대는 한 없이 높았으며 은연중에 방우돈과 우청길을 깔보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순한 양이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할 정도로 고분고분 무신의 말에 따랐다.
무신은 실제로 굴욕스러운 지시를 내렸다.
“아차차, 옷 다 벗고.”
“예?”
“옷 다 벗고 있으라고.”
주술사라고는 해도 서예림 역시 결국 마형추와 한 패였다. 못 믿을 년이란 것이다. 그러니 품에 비수라도 하나 쥐고 있을지 몰랐다. 비단 그 점을 떠나서도 대부분 주술사의 자기 방어였다. 품속에 비수 하나쯤은.
서예림의 눈살이 파르르 떨렸다. 소리 없는 저항이었다. 하지만 무신에게 먹힐 턱이 없었다. 그는 수틀리면 코흘리개 애새끼도 죽일 수 있을 만큼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회귀 전 어느 날, 열한 살짜리 꼬마에게 속아 독약을 먹은 이후부터는.
“빨리빨리 벗어. 이걸로 살갗까지 벗겨 버리기 전에.”
검을 흔들며 위협하자 서예림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는 옷을 벗었다. 한 오라기도 없는 전라가 되기까지 눈 세 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주술사다 보니 여무사들의 탄력 있는 몸매는 아니었다. 그래도 군살은 없었다. 아까 윤곽으로 대충 짐작하기는 했는데, 젖가슴도 제법 볼록했다.
무신은 윗입술을 핥으며 그녀의 옷을 뒤적였다. 과연 허리끈 안쪽에 날이 바짝 선 단검이 하나 메여져 있었다. 손잡이는 작고 날은 긴 것이 틀림없는 암살용이었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물었다.
“이게 개수작을 부리려고 했어?”
“저, 절대 아닙니다!”
억울한지 기어들어 갔었던 목소리가 이 방 너머까지 울릴 만큼 크게 터져 나왔다. 서예림은 그러고도 또 증명하고 싶은지 ‘주술사라면 원래 하나씩은 지니고 다니는 물건입니다!’하고 덧붙였다. 무신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단검과 옷가지를 멀리 내던지며 말했다.
“그러고 있어.”
“왜, 왜…….”
무신은 마형추의 시체를 가리켰다.
“이의 달면 너도 저 꼴 되는 거야.”
“아, 알겠습니다.”
웅크린 나신의 여성을 뒤로하고 무신이 걸어간 곳은 번쩍번쩍 빛을 내는 어느 광산이었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갖가지 보석들. 정말 광산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보석들 틈에 스멀스멀 검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것이 마물의 산물임을 그는 대번에 알아챘다.
목구멍에 꿀꺽 침이 넘어갔다. 긴장이었다. 마형추와 붙을 때도 없었던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이내 곧 탐욕으로 바뀌었다. 집자. 얻자. 쟁취하자. 잔잔하던 가슴에 높은 파도가 일었다. 무신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검붉은 기운을 들췄다. 이 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 알고 있었음에도 흥분될 만큼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주먹 반 개쯤 되는 크기.
검붉은 빛깔.
쌉싸름한 향.
무신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회귀 전, 마형추를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로 만들어준 바로 그것이었다. 손바닥 위에 올리자 찌릿찌릿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놀랍게도 그것 역시 쿵쾅거리며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우습게도, 마치가 아니었다. 정말 심장이었다.
“어떠한 마물의 심장이라고 했지.”
육성으로 토할 만큼 이 순간 무신의 기쁨은 컸다. 그는 마물의 심장을 찬찬히 입에 가져갔다. 영약이나 내단처럼 먹어서 효력을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무인의 입장에선, 그냥 먹어서 효력만 보면 되는 것이다.
입에 넣기에는 조금 큰 크기였다. 그럼에도 무신은 한 번에 죄다 밀어 넣었다. 한 입 두 입 베어 물면 왠지 효력이 감소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검붉은 빛깔과 쌉싸름한 향이 식욕을 떨어뜨렸지만, 그의 입은 거침없이 마물의 심장을 씹었다. 위아래 어금니가 부딪칠 때마다 이질적인 기운이 온몸에 파고들었다.
마력.
마물의 힘.
어떤 의미에서는 무신도 지금 마물화를 이루는 셈이었다. 마형추와 비교하면 진짜 그렇게 되는 것과 그냥 빌리기만 하는 것의 차이가 있겠지만.
한참을 오물거리던 무신이 반쯤 남은 수통을 입에 문 것은 무려 반 시진이 지나서였다. 삼키기야 진즉에 삼켰으나 몸, 특히 단전이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영양이나 내단과 비교하면 거의 백배는 더 더뎠다. 더딘 만큼 효력은 끝내준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볍게 몸을 털었다.
그 순간, 뒤에 박혀 있던 어느 석상의 팔뚝 하나가 한 줌의 가루로 화했다. 조각조각 쪼개진 게 아니라 정말 쥐면 흘러내리는 가루가 돼있었다. 무신은 흡족하게 웃으며 잠깐 내려둔 검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 또 가볍게 뻗어 보았다. 이번에는 전부였다. 세 개의 석상이 모두 가루로 화해 휘날렸다.
초절정이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힘이었다. 그 이상이었다. 마물의 심장으로 인한 내공 증폭 덕분일까. 단순히 보면 그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무언가 단전이 곱절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축적되는 양이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무신은 한참 새로운 힘을 만끽하다 배낭 속에 차곡차곡 보석을 채워 넣었다.
젖가슴과 음부를 가린 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서예림은 무신의 방금 전 힘 때문인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대(大 )자로 뻗는 바람에 그녀가 그토록 가리고자 했던 치부가 볼썽사납게 모두 드러나 있었다.
무신은 수통에 남은 물을 전부 그녀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어, 어어, 아아어아!”
마형추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더니 같이 마물이 된 모양이었다. 서예림이 괴상한 소릴 내며 몸을 일으켰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는 꼴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흠뻑 젖어 미역처럼 뒤엉킨 머리칼도 볼만했다.
“일어나. 나갈 거니까.”
“예, 예예!”
입에서 침인지 땀인지 질질 흘리는 게 얼굴은 여전히 정신이 없는데, 뇌는 의외로 상황파악이 빨랐다. 그녀가 엉거주춤 일어나 출구를 찾아 걸어갔다. 아까 입구가 됐던 곳이었다.
“뭐야? 나가는 길도 똑같아?”
“예! 왔던 내로 나가시기만 하면…….”
“그럼 필요 없잖아.”
무신은 그대로 서예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허공에 붕 뜬 그녀가 케케케켁케켁 알 수 없는 소릴 냈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살려달란 뜻으로 들렸다. 그는 동정은커녕 고민조차 안 하고 손아귀에 더 힘을 실었다. 허우적거리던 그녀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살려두면 뽑아먹을 요소가 있기는 하다. 마물을 잡으며 살려준 적도 있으니 더더욱. 하지만 무신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한번 누군가를 따랐던 자를 포섭하는 것은 적을 살려주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었다. 회귀 전, 이미 한번 경험도 해보았다.
목이 꺾여 죽은 비참한 나신의 여성을 두고 무신은 입구이자 출구가 되는 곳을 향해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