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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2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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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2화

산물

 

 

사방이 석벽으로 꽉 막힌 동굴 같은 곳이었다. 중앙에 큼지막한 횃불 하나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밝혀주고 있었고, 저만치 앞에 덩그러니 입구가 박혀 있었다. 잔뜩 녹이 슨 것으로 보아 아마 철문인 듯싶었다.

횃불 주위에는 다섯 등분된 고깃덩어리가 볼썽사납게 너부러져 있었다. 머리통이나 팔다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분리된 상하체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구불구불한 창자들은 퍽 역겨운 광경이었다.

두 번째로 착지한 방우돈이 간으로 추정되는 물컹한 것을 밟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우라질!”

 

재빨리 손을 짚어 코가 찧이는 굴욕은 면했지만, 방우돈의 표정은 도무지 풀릴 줄을 몰랐다. 그래, 애당초 그가 육두문자를 토한 것은 넘어져서가 아니었다. 우청길. 불과 1분 전까지도 옆에 있었던 일행이 죽어서였다.

방우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우청길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도끼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휘둘렀다. 턱.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나더니 날파리 같은 것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성인 남자의 주먹만 했다. 크기만 보면 결코 날파리는 될 수 없겠지만, 생김새는 분명 날파리였다. 벌려진 아가리에 송곳처럼 촘촘히 박힌 수십 개의 이빨만 빼면.

방우돈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이까짓 것에 초절정고수가 당하다니.”

 

우청길이 약해서일까. 날파리가 강해서일까. 답은 후자였다. 세 번째로 떨어진 의뢰인 하나도 머리통이 찢겨 죽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정수리든 뒤통수든 다 뚫려 두개골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그 안에서 뇌수가 줄줄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여 이상하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뇌수를 할짝이는 날파리의 아가리였다.

마침 네 번째로 떨어진 마형추가 그 날파리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한 마리가 아니었기에 그의 검은 다섯 번을 더 움직였다.

 

“이빨에 검강을 박아놨나.”

 

우청길까지 둘.

전력이 크게 빠졌음에도 마형추는 대수롭지 않단 투였다. 남을 사람만 남아서 오히려 잘됐다는 듯 ‘원래 이런 일은 소수가 더 편한 법이지’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서예림이 저 꼴이 됐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무사히 착지했다. 그가 찰싹 달라붙어 강기를 쳐준 덕분이었다.

 

“끔찍하군.”

 

가장 늦게 떨어진 무신은 흉측한 두 구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는데, 그도 마형추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아무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저 지경까지 된 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절정고수란 명함이 아까웠다.

무신은 주위를 둘러보며 마형추에게 물었다.

 

“여긴 어디요?”

“옛 마교의 연회장이자…….”

 

마형추 역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마물들의 무덤이오.”

“호오, 우리의 최종 목적지잖소?”

“그렇긴 하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방우돈이 아까까지만 해도 바닥이었던, 지금은 천장이 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들어오는 곳이오?”

“그럴 리가. 그랬다면 이 둘이 이렇게 됐을 리가 없지.”

 

마형추가 우청길과 남은 의뢰인의 시체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특정한 주술을 읊어야만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소. 물론 들어오는 위치도 전혀 다르고.”

“헌데 왜 이렇게 된 거요?”

“나도 모르겠소. 허나 차라리 잘됐소.”

 

잘됐단 말에 방우돈이 기겁했다. 두 구의 시체가 턱 하니 옆에 있는데 도대체 뭐가 잘됐느냔 얼굴이었다.

마형추가 볼살이 패이도록 껄껄거리며 말했다.

 

“원래대로 들어왔으면 몇 시진은 더 걸렸을 거요. 그 길목에서 마물도 더 마주쳤을 테고. 여러모로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이득이오.”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해도 그로 인해 죽은 일행들 앞에서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방우돈이 ‘그래,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정말 일행의 죽음이 안타까웠으면 시체에 대고 묵념이라도 한번 했어야 했다. 그게 정파가 추구하는 강호무도의 정(正)이었다.

무신 역시 아까와 같은 생각이었다. 일행이 죽든 말든 전혀 관심 없었다. 어차피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모인 이들. 죽었다고 눈물 질질 짜는 그런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

무신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녹이 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물었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 거요?”

“그렇기는 한데…….”

“그렇기는 한데?”

 

마형추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답했다.

 

“단단히 준비하시오. 대협들마저 저 꼴 되면 내 좀 곤란할 것 같아서. 방 대협은 특히 더.”

 

무신의 실력이야 앞선 전투들에서 이미 증명됐지만, 방우돈의 실력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정확히 이렇다 저렇다 밝혀진 게 없었다. 그나마 우청길보단 낫다 정도였다.

방우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 몸뚱이 하난 잘 챙길 자신 있으니.”

 

상황은 더 침울해졌는데, 기세는 오히려 더 좋았다. 식은땀 뻘뻘 흘렸던 동굴 출구에서와 비교하면. 확실히 방금 전 일이 자극이 되긴 된 모양이었다. 가슴을 탁탁 두드리기까지 하는 방우돈을 뒤로 하며 마형추가 서예림을 쳐다보았다.

사실 가장 단단히 준비해야 될 이는 바로 저 여자였다.

 

“내 뒤에만 딱 달라붙어 있어.”

“알겠습니다.”

“네가 죽으면 말짱 도루묵인 일이야.”

“예.”

 

주술사 없이는 함정을 죄다 통과해도 산물을 얻을 수 없으니 서예림의 역할은 굉장히 컸다. 아까 죽은 이가 만약 그녀였다면 마형추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일행은 녹슨 철문 앞에 섰다. 군데군데 구멍도 숭숭 뚫려 있어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거구의 방우돈이 발길질을 해도 철문은 멀쩡했다. 내공을 섞어 대여섯 번 내려치자 겨우 그 속내를 드러냈다.

내부에는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라 케케묵은 먼지가 아닐까 했는데, 콧구멍이 잠잠했다. 분명 그냥 연기였다. 마형추가 먼저 그것을 헤치고 걸어 나갔다. 그리곤 무언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도달한 것 같소.”

“도달했다니?”

 

방우돈이 손으로 연기를 헤치며 마형추의 시선을 따라갔다.

마형추가 흡족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세 개의 석상. 산물은 거기에 있다고 했소.”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횃불까지 켜졌다. 이번에는 중앙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한 자 간격으로 박혀 공간을 대낮처럼 훤히 밝혔다.

널따란 비무장 같은 곳.

그 끄트머리에는 마형추의 말처럼 정말 석상 세 개가 우뚝 박혀 있었다. 30척도 거뜬히 넘을 듯한 거대한 크기였는데, 석상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생동감이 짙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살아 움직일 것처럼.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쿠웅!

세 개의 석상이 눈을 부릅떴다. 시뻘건 눈이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소름 끼쳤다. 그리곤 육중한 몸을 끌어 일행에게 다가갔다. 겨우 두어 발자국이었으나 거리는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사, 살다 살다 돌덩이가 움직이는 꼴을 다 보네.”

 

그렇게 말하며 방우돈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차라리 시체가 살아 움직였다면 이만큼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마형추에게 물었다.

 

“저놈들도 마물이오?”

“강시술로 시체를 깨우듯이 마력으로 무슨 술수를 쓴 것 같소.”

“결론은 마물이다 이거 아니오?”

“그렇소.”

 

마형추가 ‘조금만 참으시오’ 하며 말을 이었다.

 

“저놈들만 처리하면 산물을 얻을 수 있을 거요.”

“얻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질 것 같은데.”

“방 대협의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오.”

“염병, 고맙소.”

 

방우돈이 양날 도끼를 높이 쳐들며 오른쪽에 있는 석상을 향해 튀어나갔다. 어차피 피할 길이 없을뿐더러 애당초 살려면 놈을 잡아야 한다. 그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마형추는 왼쪽에 있는 놈을 맡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의 몸에 여유가 넘쳤다. 자신감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피식피식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는 분명 수상쩍었다.

무신은 ‘좀 이따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남은 석상을 향해 달려갔다.

콰쾅!

몸집만큼이나 놈의 기운은 엄청났다. 팔 한번 휘두르자 검강에 필적하는 기운이 터졌다. 기운. 즉, 마력. 보면 볼수록 기이했다. 만약 저것을 인간이 담으면 어떤 힘을 낼까. 무신은 군침을 삼키며 쭉 검을 뻗었다. 굳이 초식을 읊을 필요는 없었다. 속전속결의 쾌검과 찍어 누르는 중검이면 충분했다. 어떻게 쳐도 맞을 만큼 놈의 몸이 큰 덕분이었다.

물 흐르듯 진행되는 전투.

하지만 무신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꿈쩍을 안 하잖아!”

 

방우돈은 흠집 하나 못 내 쩔쩔매고 있었다. 그의 자랑이라는 양날 도끼도 날이 상했는지 이가 빠졌는지 여태까지와 달랐다. 부강도 농도가 줄어 형편없었다. 어찌저찌 빙 돌아가 30척 높이를 도약해 놈의 목덜미를 찔렀지만, 거기까지였다. 놈은 여전히 꿈쩍도 안 했다.

방우돈이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몸뚱이 노려선 답이 없는 것 같소!”

 

생명체이기 전에 석상.

살갗도 뼈도 창자도 없는 놈들에게 물리적인 타격이 먹힐 리 만무했다. 방우돈이 골치 아파졌다는 듯 놈과 더 거리를 두었다.

가운데 있던 석상의 팔이 잘려나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어 반대편 팔도 종잇장마냥 바스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놈의 두 팔에 무신이 올라서 있었다.

 

“공격이 안 먹히면 그냥 못 움직이게 하면 되지! 다 잘라 버립시다!”

 

맞는 말이었지만, 이번에도 무신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방우돈이나 마형추에겐 석상을 자를 만큼의 힘이 존재하지 않… 후자는 아니었다. 마형추가 딱 한 번 검을 휘둘렀고, 석상이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동시에, 무신을 괴롭히던 놈도 사지가 다 잘려 큼지막한 돌덩어리로 전락했다.

 

“허억!”

 

무신이야 그렇다 쳐도 마형추는 여태까지 봐왔던 그 마형추가 아니었다. 곱절은 더 강했다. 입을 다물지 못하던 방우돈이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석상의 팔이 제 면전까지 왔을 때였다.

 

“죽여주마!”

 

방우돈은 재빨리 도약해 그것을 피해낸 후, 이제는 이판사판이라는 듯 도끼를 휘둘렀다. 장차 천하제일부객이 되겠다더니 아주 이빨은 아닌 모양이었다.

방우돈의 공격은 제법 잘 먹혀들었다. 잦아든다 싶었던 부강도 어느새 가장자리의 횃불 수십 개보다 더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어 놈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한쪽 다리를 네 등분으로 나눴다. 무게중심이 사라져 놈이 기우뚱하자 놓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무신이 ‘저 몸을 하고서 움직임이 저렇게 빠르다니’ 하고 중얼거릴 즈음, 방우돈의 발치에도 큼지막한 돌덩이가 우후죽순 피어났다. 하지만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썼는지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형추가 아까의 그 피식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걸어왔다.

 

“수고 많았소, 방 대협.”

 

방우돈이 흉골이 흉골이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할 정도로 헉헉대며 말을 받았다.

 

“마 대협, 왜 여태 힘을 숨겼소?”

“힘을 숨겨?”

“거의 최 대협만큼 강해지던데?”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냔 투로 마형추가 답했다.

 

“죽을 각오로 싸우면 뭔들 못 강해지겠소? 방 대협도 아주 불굴의 힘을 내던걸?”

“하하.”

 

불굴의 힘.

뭔가 있어 보이는 말에 방우돈이 금세 의문을 잊고 껄껄댔다. 너무나도 단순한 대가리였다. 물론 마형추가 아주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방우돈은 정말 죽을 각오로 싸웠고 그게 낼 수 없는 힘을 낸 것이다. 하지만 마형추는 아니었다. 그는 유유자적 싸웠고 그냥 원래 낼 수 있는 힘을 낸 것이다.

그럼 왜 숨겼을까.

이유는 죽은 석상들 뒤에서 서예림이 주문을 외운 직후, 드러났다.

 

“맙소사! 저게 다 얼마치야!”

 

산물이었다. 1천 년 전 강호 전역을 위협했던 마물들의 그것이 산더미처럼 쏟아졌다. 거기에는 은자나 금자 따위로는 구할 수도 없는 진귀한 보석도 수북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방우돈이 금의환향에 눈이 멀어 미친놈처럼 흥분하는 순간, 마형추가 그의 목덜미에 검을 꽂았다. 그리곤 이미 이승을 떠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힘을 왜 여태 숨겼겠어? 아니, 왜 여태 아껴뒀겠어? 이렇게 마지막에 니들 목 따려고 아껴둔 거지.”

 

마형추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가는 방우돈을 밀치며 남은 한 명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번 일에서 마물보다 더 복병으로 생각한 자였다. 과연 복병이란 말에 걸맞게 그다지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팔짱을 낀 채 덤덤히 서 있었다.

 

“왜 나부터 치지 않았지? 이해하기 어렵군.”

“너야 막을 게 뻔했으니까.”

“호오.”

“여태까지 보여준 네 무위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

 

무신은 다시 물었다.

 

“그렇게나 날 높이 사는 놈이 나한테 질 생각은 하지 않았나?”

“물론…….”

 

마형추가 ‘안 했지’하고 덧붙이며 처음으로 복면을 벗었다. 드러난 것은 의외로 평범했다. 코 평수가 좀 넓고 입술이 남들보다 반 곱절쯤 두껍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다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검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씹어 삼켰다.

무언가 이상을 느끼고 대처하려 할 때는 이미 물이 엎질러진 후였다. 마형추의 몸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무복이 팽창을 이기지 못해 죄 찢어질 만큼. 훤히 드러난 상체에는 탄탄하다 못해 징그러울 정도의 근육이 잡혀 있었다. 적록색 핏줄이 그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가 입을 벌렸다. 혓바닥이 붉지 않고 시꺼멨다.

 

“네놈 설마…….”

 

시꺼먼 혓바닥 위로 정체모를 덩어리가 이는 순간, 무신은 눈을 부릅떴다. 동굴에서부터 여기 이 방까지 숱한 마물을 잡아온 그가 저 덩어리의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마력.

마형추는 지금, 마물이 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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