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1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61화
함정
무신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내내 걸어왔는데 호흡이 가빠졌다. 목구멍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긴장이 아니었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강자를 만날 때의 쾌감.
언제부터인가 그는 고수와 맞붙는다는 것에 정말 그 감정을 받고 있었다. 15년을 삼류무사로 살았기 때문일까. 그때 풀지 못한 한을 이제야 풀고 싶어서일까. 뭐든 상관없었다. 좋은 느낌이므로, 그는 그 느낌을 한껏 만끽하고 싶었다.
“긴장하시오들!”
마형추의 지시가 무신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그까짓 흥분에 22만 년의 노고를 잃는 것은 미련한, 아니, 병신 같은 짓이었다.
무신은 윗입술을 핥으며 미리 뽑아둔 흑라신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반응은 다른 이들보다 곱절은 더 빨랐기에 이미 검신 가득 방대한 양의 기가 맺혀 있었다.
우청길의 얼굴이 경악스럽게 물들었다.
“저, 저게…….”
쿠르번은 물론, 그 많은 루캉과 뱅갈을 잡을 때도 전력의 반에 반도 안 쓴 무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서 3할을 더 끌어다 썼으니 단순히 ‘저게 뭐지?’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우청길의 눈에 무신의 검은 한 마리 괴물이었다.
제법 잠잠했던 우청길이 그럴 정도였으니 방우돈의 반응이야 안 봐도 뻔했다. 그는 아예 혼이 나가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머리통을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마형추는 의외로 별 반응이 없었다.
까딱하면 골로 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벌써 코앞이었다.
“요즘 마물들은 인간 흉내도 내나 보오?”
정말 인간과 흡사했다. 몸뚱이에 팔다리에 심지어는 한 손에 검까지 쥐고 있었다. 눈알은 없고 구멍만 숭 뚫려 있는 게 흉물스럽게 보이기는 해도 분명 전체적인 생김새는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관심을 갖는 이는 무신뿐이었다. 그가 이어 ‘마침 머릿수도 딱 다섯이군. 한 명씩 잡아 싸우면 되겠소’ 하는 말에도 다들 상대의 동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형추가 갖가지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말했다.
“뮤라한이오.”
“뮤라한?”
“편하게 눈알 없는 검객이라 생각하시오.”
“허나 수준은 보통 검객이 아니겠지?”
“그렇소. 보시다시피.”
무신은 흑라신검을 쭉 펴며 다섯 마리의 뮤라한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죄 똑같은 줄 알았는데, 유독 기운이 짙은 놈이 하나 있었다. 면밀히 들여다보니 짙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둑 터진 강물처럼 온 전신에서 시꺼먼 연기가 쏟아져 내렸다. 마물의 내공이라는 마력이었다.
“저, 저놈은 누가 맡소?”
방우돈이 저도 모르게 던진 물음표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입과 다르게 이미 적임자를 쫓고 있었다. 가장 강한 놈을 맡을 이는 여기서 ‘한 사람’뿐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우청길도 나머지 두 의뢰인도 그 한 사람, 무신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마형추라면 승산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팔 한쪽은 꼼짝없이 내줘야 할 것이다. 그만큼 놈과 그의 격차는 컸다.
무신은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회귀 전의 마형추는 과연 저놈을 어떻게 상대했을까. 정말 팔 한쪽을 내줬을까. 무신은 고개를 저었다. 회귀 전에 마형추를 본 적은 없지만, 외팔이란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애당초 외팔이로 그만한 자리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신은 ‘회귀 전과 상황이 다르게 돌아가는 건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입꼬리의 미묘한 차이가 웃는 상과 우는 상을 만들어내듯 그의 존재로 인해 마형추의 운명에도 변화가 생겼을지 몰랐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앞으로의 나날에도 변화가… 무신은 그만 상념에서 벗어났다. 상대할 뮤라한이 아무리 그의 적수는 못 된다고 해도 딴청 피우면서까지 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형추의 말처럼 까닥하면 골로 갈지도 모른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센 기운이 몰아쳤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운 그것에 서예림이 크게 휘청거렸다. 재빨리 벽을 짚어 다행이지 자칫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무신은 끌끌 혀를 찼다. 무공도 제법 익혔다더니 전혀. 아주 형편없었다.
그는 뮤라한 한 놈과 대치했다. 나머지 네 놈은 두 용병과 마형추들이 이미 잡아채고 있었다.
그는 길쭉하게 솟은 놈의 검강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농도가 검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마치 저 자체가 하나의 검 같았다.
그는 ‘검강이라기보단 마강이라고 해야 되나’ 하고 중얼거리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놈이 그새 면전까지 와 있었다.
까앙!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철근을 두드린 느낌이었다. 그는 조금 놀랐다. 보통 같았으면 이 일격에 뒤로 나가떨어졌을 텐데, 이놈은 받아냈다. 뒷걸음질 한번 안 치면서. 거기다 역공까지 해오고 있었다. 어디서 배운 검술인지는 몰라도 정교했고, 또 빨랐다.
그는 어렵지 않게 피했다. 제 아무리 잘난 검술이래 봤자 22만 년을 갈고 닦은 그의 검술을 따라갈 순 없었다.
이후 상황은 말해야 입만 아팠다. 두 용병과 마형추들이 기겁할 정도로 강한 놈이었지만, 십오합도 못 버티고 목이 잘려 죽었다. 마력이 피로 변했는지 잘린 단면에서 검붉은 액체가 줄줄 쏟아졌다. 바닥이 금세 질펀하게 젖었다.
무신은 그 사이를 저벅저벅 걸어가 놈의 목 아래에 검을 꽂아 가랑이 바로 위까지 쭉 내리그었다. 살갗이 쩌억 입을 벌리며 그 안의 것을 전부 뱉어냈다. 헐떡거리는 심장. 구불구불한 창자. 분수처럼 터지는 피. 생김새만 인간인 줄 알았더니 속도 인간이었다.
그는 ‘하기야 생명체라면 자고로 장기가 있어야지. 저승이 아니고서야’ 하고 피식 웃으며 그제야 주위를 돌아봤다. 왠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일행들도 마침 전투를 다 끝낸 상태였다. 다들 헉헉거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초절정고수들의 위상이 말이 아니었다.
개중 하나는 상태가 심각했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어 살짝 베였겠거니 싶었는데, 이제 보니 손가락 사이로 창자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금창약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중상이었다. 내공 운용은커녕 움직이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옷만 찢어진 정도에 그친 방우돈이 그 의뢰인을 보며 난색을 표했다.
“이거 일 났구려.”
못 고칠 상처는 아니었다. 의원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쳐질 것이다. 하지만 백야평야, 거기서 한참을 더 들어온 ‘밝혀지지 않은 지점’에 그런 존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마형추가 검을 휘둘렀다. 뮤라한도 찢어 죽인 그의 비수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다친 의뢰인의 머리통이었다.
푸슛!
머리통의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본인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 것이다.
마형추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검을 집어넣었다.
방우돈이 놀라 말했다.
“아, 아니, 왜?”
“놔두고 가면 마물들에게 잡혀 볼썽사나운 꼴을 당할 거요. 그럴 바에야 죽여주는 편이 낫지.”
“데, 데리고 가면 되지 않소?”
“어지간한 상처였으면 그랬겠지. 허나 저 보다시피 창자가 다 밀려 나올 정도요. 데리고 가봐야 방해만 될 게 뻔해.”
핑계였다. 놔두고 가면 마물들에게 잡혀 볼썽사나운 꼴을 당할 게 걱정이었다면, 그냥 안고 갔으면 그만이었다. 창자가 어쩌고는 해도 분명 멀쩡히 살아 숨 쉬던 자였다. 방해? 그렇게 따지면 서예림이 가장 장애물이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줄줄줄 주술만 외우는 게 다였다.
무신은 ‘교주 출신이라 그런가, 이빨 터는 것 하나는 기똥차군’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죽은 의뢰인의 머리통을 지나갔다. 어차피 제3자. 머리통이 잘리든 뽑히든 그가 알 바 없었다.
우스운 것은 서예림과 남은 의뢰인 한 명도 무신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아니, 더 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형추의 의견에 강한 동조까지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방우돈과 우청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에 살고 정에 죽는 정파 출신이다 보니 마형추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신은 꿰뚫어 보았다. 저들은 죽은 의뢰인에게 동정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도 ‘같은 꼴’이 될 수 있음에 화가 난 것이다.
마형추가 ‘다시 출발하겠소’ 하며 무신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최 대협의 무위는 보면 볼수록 놀랍소.”
“별거 없소.”
“별거 없는 게 그 정도면 강호를 누비는 무사들의 씨가 다 마를 거요.”
방우돈도 ‘내 과장 보태지 않고 최 대협과 같은 고수는 일생에 처음 보오’ 하고 침을 튀기며 끼어들었다.
우청길은 ‘아까 그 검강은 마치… 하나의 섬광 같았소’ 하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를 보듯 말했다.
하지만 무신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쿠르번을 잡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말을 수십 번은 더 들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다들 알아서 하겠으나 조심들 하시오. 꼭 마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함정이 있을 거요. 거듭 말했다시피 여긴 기관진식과 같으니까.”
얼마쯤 가서 마형추가 그렇게 말했다. 컬컬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방을 경계하는 그의 몸짓은 과연 백상교의 전대 교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잔뜩 움츠려 있었다. 일각에 백 번은 뒤를 돌아보는 방우돈이나 우청길보다는 나았지만, 확실히 겁을 먹은 태도였다.
무신은 점점 더 의심스러웠다. 저런 놈이 회귀 전에는 무슨 수로 이곳을 헤집었을까.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어쩌면 힘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그래, 백상교의 전대 교주나 되는 자가 겨우 초절정 언저리의 무위라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마형추의 뒤를 따랐다.
“내가 네놈들 다 죽여서 꼭 금자 50냥 받아간다!”
“죽어! 죽어, 이 새끼들아!”
마형추의 우려와 달리 함정은 없었다. 마물들만 줄지어 나타났다.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진 놈. 입이 귀까지 찢어진 놈. 가죽이 죄 벗겨져 실핏줄이 훤히 드러난 놈. 뮤라한이 귀여워 보일 정도로 놈들의 생김새는 흉측했다.
뮤라한 때문에 죽은 의뢰인이 좋은 자극제가 되었는지 전투는 금방 일행의 승리로 돌아갔다. 우청길이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살짝 긁힌 정도에 그쳤다.
“지랄났군, 지랄났어.”
두 시진쯤 가서 마주친 어떤 마물들은 배가 고팠던지 무언가를 잡아다 산 채로 뜯어먹고 있었다. 아가리에 덕지덕지 묻은 살점을 보며 서예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 동료의 옆구리에서 창자가 흘러내려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더니, 생식의 현장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좀 적응되는 것 같소.”
전투는 또 금방 끝이 났다. 우청길의 말마따나 적응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 이번에는 모두 멀쩡했다. 놈들의 피에 옷만 더러워져 있을 뿐이었다.
안심하는 그때.
별안간 바닥이 꺼졌다. 말 그대로, 정말 바닥이 꺼졌다.
“시, 시팔!”
절로 육두문자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사실 크게 별일은 아니다. 신법을 이용하면 착지야 쉽다. 털끝 하나 안 다칠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 발을 디디는 곳에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착지하기 무섭게, 가장 무골이 형편없었던 우청길의 몸이 다섯 등분으로 썰려 나갔다. 머리통. 팔과 다리. 그리고 상체와 하체까지 정말 딱 다섯 등분이었다. 그는 두 시진 전 죽었던 의뢰인처럼 본인이 왜 죽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남들도 몰랐다. 그가 왜 죽었는지.
“그러게 조심조심 내려왔어야지.”
느지막이 내려온 무신을 제외하고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