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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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0화
신전
적라성이 번들거리는 눈알을 깜빡이며 석판 옆에 섰다.
주술을 외우던 원로들이 부리나케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술사들은 진즉부터 빠져 있었다.
우백관이 깨어날 적에 원로 하나의 머리통을 터뜨렸다더니 적라성도 그러지 않을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에 반해 무신은 잠자코 있었다.
적라성이 제아무리 흉포한 존재로 변해봤자 그에겐 그냥 적라성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인격을 다 죽여도 본성은 남아 있는지 적라성도 무신을 잘 알아보았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괴상한 소릴 지껄이는 입, 아니, 아가리는 당신이 내 주인이냐는 듯한 어감을 품고 있었다.
무신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적라성이 큼지막한 몸을 반도 더 숙였다.
교도들에게 늘상 받는 예의와 비슷했으나 그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다른 이유야… 이유를 찾는 것도 우스웠다.
적라성은 며칠 전까지만 사파 최강의 문파의 우두머리로 있던 자였다.
그런 자가 몸만 인간인 짐승이 되어 굽실거린다는 것.
침을 질질 흘리며 주인을 모신다는 것.
가랑이 벌려 오줌을 누라면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눌 것이라는 것.
어느 하나 다르지 않을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무신은 적라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을 핥는 개새끼마냥 적라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옆에서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원로들과 술사들이 숨죽인 채 전 교주의 종말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신은 다시 몸을 편 적라성을 쳐다보았다.
신장은 그대로인데 체격이 반 배는 더 불어나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냔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술사 하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혈수라철골강시의 특성입니다!”
“그래?”
“아! 영약 등을 주사한 영향도 있습니다!”
순간, 그 영약을 차라리 직접 먹을 것을 하고 후회한 무신이었다.
하지만 무공도 멀쩡하지 않은 판에 영약이라고 멀쩡할 리 있겠는가.
갖가지 위험 요소를 달고 있을 게 뻔했다. 이처럼 강시가 되어 흡수시키지 않고서야.
무신은 원로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이리 와봐.”
“예?”
“얼른.”
그리고 바로 보이는 원로 하나를 자신 앞에 오도록 했다.
정확히는, 적라성의 앞에.
“가능한 한 최대로 강기를 쳐. 네 몸뚱이에.”
“예?”
“일단 쳐.”
영문도 모른 채 튀어나온 원로는 ‘예?’만 하다가 ‘아, 알겠습니다’ 하고 무신의 지시대로 제 몸에 불그스름한 강기를 쳤다.
코앞에 적라성이 있어서인지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애석하게도 그 불안이 맞았다.
왜냐하면…….
“이거 터뜨려 봐.”
무신이 원로의 머리통을 가리키기 무섭게, 적라성이 그것을 쥐고 터뜨렸다.
검을 든 게 아니었다.
오로지 손아귀의 악력만을 사용했다.
‘손바닥에 벽력탄을 달아놨나.’
무신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늙다리라고는 해도 고수는 고수.
그만한 자의 강기를 이렇게 쉽게 터뜨린단 것은 완성도가 굉장히 높단 뜻이었다.
강시로서.
게다가 말했듯 손아귀의 악력만 사용한 게 아니던가.
“……!”
가뜩이나 조용하던 주위는 더욱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나이 어린 술사 중에는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지린 자도 있었다.
강시도 만드는 사람이 이깟 머리통 하나 터진 것에 놀란 탓은 아닐 것이다.
자신도 저 꼴이 날까 두려운 것이지.
뒤늦게 보니 오줌을 지린 자는 오히려 정신력이 강한 편이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기절한 이도 있었다.
“하, 하하하!”
침묵을 깬 것은 짝짝짝 박수갈채와 함께 어색한 미소를 지은 나성로였다.
그가 두어 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힘이 아주 좋군요.”
말도 또박또박 아주 잘도 했다.
아첨을 남만 떠는 게 아니꼬웠는지 다른 원로들도 이렇다니 저렇다니 무신이 긍정적으로 봐줄 의견을 쏟아냈다.
뭐, 무신의 눈에는 병신들의 재잘거림이었다.
갑자기 제 벗이 죽었으면, 그것도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으면 일단 따지는 게 먼저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해는 갔다.
괜히 미운 털 박히긴 싫었겠지.
적라성을 대신할 새로운 교주에게.
무엇보다…….
‘어차피 남 일이니 괜찮다 싶었을 테고.’
무신의 생각에는 그랬다.
그러나 조금 늦어질 뿐이었다.
저들의 운명도 결국 똑같다.
사람으로서 죽는 게 아니라 강시로서 죽는, 그 차이만 빼면.
무신은 적라성을 지하에 무기한 대기시킨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의 뒤를 원로들과 술사들이 헐레벌떡 따랐다.
그는 즉각 교도들을 모두 운집시켰다.
그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 수천의 교도들이 모이기까지 불과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널따란 신전.
그곳을 가득 메운 교도들을 보며 무신은 높다란 단상 위에 올랐다.
교주만이 설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제부터 내가 혈교의 새로운 교주가 될 것이다.”
지지부진 끌 것도 없었다.
무신은 요만 간략하게 말했다.
그런데 허점이 있었다.
새로운 교주가 되기 위해서는 전대 교주로부터 각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의를 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들, 저런들 어차피 이곳 최강은 무신이었다.
그러니 교도들 입장에선 각인과 무관하게 그저 그의 말을 따르면 되었다.
그의 선포에 가장 반색한 이는 나성로를 비롯한 원로들과 우지겸 등의 고수들이었다.
한 자리씩은 보장받았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지겸은 이미 그렇게 하기로 약조돼 있었고.
“경하드립니다.”
무신을 보좌하듯 선 우지겸이 그렇게 말했다.
무신은 쳐다보기도 싫은 몰골이 아양을 떠는 게 뭣 같았지만, 일단은 받아주었다.
이놈이 있어야 일이 편할 것이다.
“모두에게 묻겠다.”
“예!”
“혈교의 상징이 되는 곳이 어디지?”
선포를 끝낸 직후, 무신은 다시 교도들을 아우르며 그렇게 물었다.
교도들에겐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었다.
“신전입니다!”
“그래, 너희들이 서 있는 바로 이곳이지.”
교도들의 눈빛이 매섭게 타올랐다.
원로들이 적라성을 따른 게 아니라 교주를 따른 것이었듯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주가 된 무신을 광적으로 지지했다.
‘혈의 교리가 무섭긴 하군.’
무신은 남몰래 몸서리치며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것들을 전부 강시로 만들 작업을.
“나는 혈교의 상징을 보다 아름답고 호화롭게 가꾸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바람과 같은 골칫거리를 차단하는 게 우선이겠지. 자, 그렇다면 나의 교도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이 신전의 구조를 폐쇄형으로 바꾸도록 한다.”
***
북해빙궁 내궁.
“…해서 결의를 맺든 맺지 않든 최 대협이 시일 내로 이곳까지 온다고 합니다.”
“빙월대 대장직을 제시했는데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빙궐대 대장 백충일의 보고에 궁주 해영월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쌍수 들고 환영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구나.”
“빙월대 대장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그리 끌려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쪽에서 포섭이 들어간 건 아니고?”
백충일이 잠깐 생각하다 답했다.
“저희가 찾아온 것이 약간 신기하단 반응이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서 포섭이 왔을지언정 저희만큼 큰 문파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조건도 저희보다 안 좋았을 테고요.”
“그래?”
“예. 그러니 이쪽으로 왔을 때 어떻게 잘 구슬리기만 하면 충분히 성사될 것 같습니다.”
“될 것 같습니다가 아니지. 무조건 돼야 한다.”
어중간한 고수보다는 잠재력 큰 신출내기가 나은 법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최 대협, 그러니까 최무신이 거기에 정확히 적합했다.
세상에 마교의 마준환보다 더 나은 평을 받는 자는 그자밖에는 없을 것이다.
비단 신성(新星)으로 분류된 것을 떠나서.
하지만 무조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애매했다.
선택권은 최무신에게 쥐어져 있었다.
백충일이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실은… 빙룡검을 요구했었습니다.”
“뭐야?”
“불가능하다 하니 알겠다고 하여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다른 제안을 던지더군요.”
“무슨 제안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는지 백충일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빙룡정에 들어가 직접 빙룡검을 얻겠답니다.”
“빙룡을 잡아서?”
“예.”
“허.”
난색을 표하던 해영월이 이내 곧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이 어떤 곳이고, 또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서 하던 소리더냐?”
“그보다는 갑자기 수백 년 전 얘기를 하더군요.”
“수백 년 전이라면… 그래서 또 뭐라던?”
“전례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크게 보면 무인으로서의 기백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빙룡정은 아니었다.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한 해영월이 가장 잘 알았다.
“만약 최무신이란 자가 우리와 결의를 맺지 않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거기 들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
해영월은 냉철하게 판단했다.
궁주로서.
여타 문파와 경쟁하는 북해빙궁의 우두머리로서.
“남의 문파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느냐, 이 말이다.”
***
한 사람 할 일에 열 사람이 붙고, 열 사람 할 일에 백 사람이 붙고, 백 사람 할 일에 천 사람이 붙었으니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기둥 몇 개만 박혀 있었던 곳에 며칠 새 높다란 벽이 세워져 있을 정도였다.
물론 지시대로 틈 하나 없었다.
해가 아무리 제 몸을 밝혀도 이 벽을 뚫고 들어올 순 없을 것이다.
무신은 기특한 교도들을 격려하며 느긋하게 운기조식과 무공을 연마했다.
때 되면 식사에 잠자리까지 알아서 제공되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었다.
천하제일인을 꿈꾸는 자에게 혈교란 곳은 너무 작은 세계였다.
어서 빨리 강호, 나아가 중원 전역을 누비고 싶었다.
혈교 자체에 대한 거리낌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어나면 수행장.
그리고 대련장.
다시 수행장.
또 대련장.
무신이 그 지긋지긋한 나날에서 벗어난 것은 혈교에 들어온 지 약 석 달이 지나서였다.
그간 무위가 많이 올랐으니 석 달의 시간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지금부터 ‘할 일’의 준비 과정이기도 했고.
무신은 석 달에 걸쳐 모든 변화를 끝낸 신전을 바라보았다.
바닥이며 천장이며 교주 서관처럼 보석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아름답고 호화롭게 바꾸어라.
했던 그의 지시에 딱 맞았다.
하지만 그 눈부신 자태를 뒤로하고 그가 보는 것은 오로지 벽이었다.
사방이 꽉 막힌 그저 벽.
전등을 켜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답답함이 느껴질 법한데도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린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모두 모였느냐?”
“예.”
곧, 새롭게 완성된 신전에 교도들이 우르르 운집했다.
가뜩이나 답답한 것이 더욱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신은 여전히 아니었다.
그에겐 시원했다.
다시 또 곧, 모두 쓸려 나갈 테니까.
“자, 주목하거라.”
교도들을 불러온 우지겸을 옆에 세우며 무신은 시야를 넓게 벌렸다.
개미 떼 같은 것이 한눈에 다 담겼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제 무신을 추종하다시피 우러러봤다.
‘지금보다 더 추종하게 해주마.’
무신은 대뜸 검을 뽑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음에도 이상하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새로운 신전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포부쯤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것에 줄기줄기 내공이 피어올라도 오히려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교, 교주님 기압이 너무 커집니… 커억!”
무신은 우지겸을 단상에 처박은 후, 적라성과 겨룰 때보다도 더 내공을 끌어 올렸다.
흑라신검이 더욱 거칠게 요동쳤다.
준비는 끝났다.
그는 그것을 교도들을 향해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