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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9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9화

가석

 

 

흑라신검에 무시무시한 내공이 피어올랐다.

그것이 적라성을 죽인 힘임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서 아무도 없었다.

오십의 사내들이 혼비백산하여 대열을 풀었다.

창백하다 못해 희뿌옇게 뜬 얼굴은 이미 죽었단 기색이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몸이 뻣뻣해서 말이다. 너희들이 좀 풀어줘야겠어.”

 

흑라신검에 여전히 줄기줄기 검강이 뻗고 있으니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대련 상대가 되란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신의 입장에서지 교도들의 입장에서는…….

 

“살려주십시오!”

 

사망 선고였다.

교도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통을 땅에 처박듯이 조아렸다.

아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무신의 마음은 미동도 안 했다.

아련?

우습지도 않았다.

애당초 저들은 그러한 감정을 담을 자격도 못 되었다.

 

“죽이진 않을 터이니 일단 서봐.”

“허, 허나…….”

“뭐가 그리 두렵나? 그냥 대련을 하잔 것이다, 대련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 봤자 어차피 무신의 손바닥 안이었다.

그는 도어검을 쓰는 화경의 고수였다.

직접 두 눈으로 본 교도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대열을 갖추었다.

무신은 친히 옆 사람 간 간격까지 신경 써주었다.

어느 교도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물었다.

 

“간격을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시는…….”

“무인끼리의 대결은 각이 생명이지 않느냐? 그것을 맞출 뿐이다.”

 

우습지도 않은 소리였다.

생사를 다투는 와중에 각을 신경 쓸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그러나 겁에 질린 교도들은 그 간단한 이치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혹 노여움을 살까 그저 무신의 말만 듣고 그대로 따랐다.

대열은 금세 완성됐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주 깔끔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흑라신검을 치켜들었다.

최대한 힘을 뺀다고 뺐는데 교도들 눈에는 ‘엄청나고 또 엄청난’ 검강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더 힘을 뺐다.

교도들이 그제야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봤지? 나는 그저 대련을 할 뿐이래도.”

“예……!”

 

대답에도 조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때는 지금이었다.

무신은 ‘그럼 대련을 시작하지’ 하는 말과 동시에 맨 왼쪽으로 튀어나갔다.

우경비(羽輕飛).

구보전답(七步電踏).

천라지경(天羅地境).

그리고 암향표(暗香飄)까지.

심지어는 교주의 비기로 그것을 더욱 가꾸었으니 교도들이 그의 움직임을 쫓는 것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불가능하다.

눈 깜짝할 새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고, 교도들의 눈동자는 공허한 허공만을 쫓았다.

뒤늦게 자각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벌어진 후였다.

흑라신검이 거칠게 포효하며 덩치만 큰 하룻강아지들을 집어 삼켰다.

방법이야 간단했다.

뻗어가는 대로 무언가가 잘려 나갔다.

거기에는 두 눈을 부릅뜬 머리통도 있었고, 미처 대응하지 못한 양팔도 있었으며, 머뭇거리다 통으로 내준 상반신도 있었다.

반대편에 있는 자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다.

그들은 ‘상황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 정도는 얻었다.

하지만 볼 수 있다 해서 그들이 무언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앞선 이들보다 황천길을 걷는 시간이 늦어졌을 뿐이었다.

 

“제, 제발 살려주십…….”

 

오십 번째 사내가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목덜미가 꿰뚫렸다.

까딱까딱 움직이는 손가락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승에 대한 미련이었다.

무신은 그것마저 깔끔히 제거했다. 아등바등대는 꼴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잘린 머리통과 팔다리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누군가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다면, 이곳을 대련장이 아니라 작게 축소된 전장으로 볼 것이다.

그만큼 참혹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개운하단 얼굴이었다.

정말 몸을 풀었다는 듯이.

 

“닦을 것 좀 가져와.”

 

오십 명을 죽였으니 가장 피 칠갑이 된 쪽은 오히려 무신이었다.

그는 그새 뛰어 갔다 온 어느 교도로부터 허연 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몸을 닦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천에 시뻘건 이물이 묻어났다.

다섯 장을 더 쓰고서야 더 이상 묻어나오는 게 없었다.

수백 번 빨아도 이물이 지워지지 않을 천을 시체 위에 내던지는 그를, 시종 역할로 따라 붙은 교도들이 벌벌 떨며 쳐다보았다.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이미 죽은 목숨은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할까.

딱 그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신은 이미 몸을 다 푼 후였다.

게다가 곧 잘 밤에 또 피비린내에 찌드는 것은 정말 살육에 미친놈이나 할 짓이었다.

지금 그가 한 행동이 그 짓이 아니겠느냐마는, 그는 달리 생각했다.

어차피 쓰레기들이었다.

시장 바닥 가난한 행상인들의 재물을 빼앗고, 어린 소녀들을 겁탈하고, 죄 없는 무인들을 심심하다며 죽이고.

대충 꼽아도 그만큼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 행동은 그 짓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행에 가까웠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덕분에 찌뿌듯했던 몸도 풀었고 말이다.

 

“인사 올립니다.”

 

혈교의 하루는 어스름한 달이 뜬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대련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무신에게 속이 훤히 비치는, 나신과 다를 바 없는 차림의 여인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몇몇은 여인이란 말보다 소녀란 말이 더 어울리는 어린 것들이었다.

거기서 다시 한 녀석은 소녀란 말로도 부족한 꼬마였다.

그녀들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그나마 자신들의 몸을 가려주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갖가지 교태로운 몸짓과 함께 사뿐사뿐 무신 곁으로 모여들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기관진식처럼 따박따박했다.

소녀들과 꼬마까지 그러고 있으니 무신은 당장 지하주술장으로 뛰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적라성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은 오히려 놈에게 면죄부를 씌워주는 꼴이 될 것이다.

눈만 동동 뜬 강시가 놈의 제값을 치르게 하기에는 더 적합하다.

 

“누워보시겠어요?”

 

여인들에 소녀들에 꼬마까지 죄 몸종 노릇을 하려 하니 그럼에도 분노가 가시질 않았다.

이 죄 없는 존재들에게 적라성은 대체 무슨 짓을 해왔단 말인가.

물론 이들은 교도가 아니었다.

밖에서 붙잡혀 온 누군가의 부인, 혹은 여식.

어쩌면 여기서 태어났을지도 몰랐다.

그저 통탄할 일이었다.

무신은 우선 그녀들에게 옷을 입도록 했다.

그리고 내관에서 가장 편하고 안락한 방을 내주었다.

 

“날이 밝는 대로 이곳을 나가십시오.”

 

말투에서부터 교도들을 대할 적과 달랐다.

그녀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니 당연했다.

무신이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대상이 쓰레기일 때뿐이었다.

 

“네? 저희한테 왜…….”

 

그녀들은 무신은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혈교에 대한 두려움이 빠지지 않은 것이었다.

무신은 그녀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혈교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간 고생한 것에 비하면 턱도 없겠으나 보석과 돈도 쥐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혈교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자들은 비단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교원 곳곳에 널려 있었다.

무신은 그들 또한 모두 풀어주었다.

착한 척이라면 착한 척이겠지.

하지만 약자의 설움을 그냥 두고 보는 게 싫었다.

경험자로서.

 

***

 

“그래서 결론이 뭐야? 마향대와 마청대가 누구한테 당했다는 게냐?”

 

신강성 마교.

무림맹과의 심상치 않은 기류에 수행을 중단하고 마교로 돌아온 교주가 마정태에게 그렇게 물었다.

마정태는 냉큼 답했다.

 

“최무신이란 파천 출신의 검객입니다.”

“최무신?”

“예. 최근 마준환과 함께 신성에 들기도 했습니다.”

“마준환에 비견될 정도느냐? 아무렴 단신으로 마향대와 마청대를 잡았다고는 해도.”

“그게…….”

 

마정태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윗선에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그놈이 마준환보다 강하다?”

“그렇습니다.”

 

마준환은 교주가 직접 공언할 만큼 무위가 출중한 자였다.

당장 강호로 뛰쳐나가도 어지간한 문파쯤은 초전 박살을 낼 것이다.

그런데 신출내기 검객에게 밀린다니 교주로서는 퍽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대신, 흥미가 생겼다.

 

“그거 참 재밌는 놈이로구나.”

“처리할까요?”

“마향대 일을 추적하러간 마청대가 그놈을 만나 또 궤멸 당했는데 처리라… 이번에는 왜, 네가 직접 나설 참이냐?”

 

농담조였으나 뼈가 있는 말에 마정태가 움찔했다.

 

“하,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직접 나설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렇겠지. 헌데 말이다.”

 

이 순간에도 무림맹에서 마교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교주의 관심은 오로지 최무신에게 쏠려 있었다.

무림맹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이.

 

“꼭 처리할 필요가 있겠느냐?”

“예?”

“마향대에서 마청대까지. 거기다 마준환보다 높이 평가받는 강호신성. 힘은 확실히 증명된 셈이다.”

 

교주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니, 지시했다.

 

“가서 잡아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

 

외곽으로 나갔던 서열 7위 우지겸이 돌아온 것은 다시 엿새가 더 지나서였다.

 

“…예!”

 

같이 나갔던 몇몇 교도들이 정신 못 차리고 무신에게 달려든 것에 반해 그는 상황 파악이 빨랐다.

무신을 즉각 ‘새로운 교주’쯤으로 모셨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별일은 아니다.”

 

무신은 교원 전체를 아우르듯 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네게 부교주의 직위를 줄 테니 책임지고 이곳을 관리토록 해라.”

“예?”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었다.

안 믿겨서였다.

서열 7위에서 대번에 부교주까지 껑충 뛴다는 게.

무신은 우지겸의 그 기쁨의 얼굴이 같잖지도 않았다. 부교주든 모교주든 다 말뿐인 가석(假席)에 불과한데, 뭐 저리 흥분한단 말인가.

하지만 도움은 될 것이다.

 

“평생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아주 넙죽넙죽 절에 포효에, 지랄 발광에, 우지겸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할 충직한 부하가 되어 있었다.

무신은 그것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평생은 개뿔이었다.

우지겸의 저 원대한 꿈은 길어야 보름, 짧으면 열흘 안에 내려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일반 강시는 몇 분 안에도 제작한다 했으니 여기 있는 놈들 다 강시화시키기에 충분해.’

 

무신은 우지겸을 뒤로한 채 지하주술장으로 내려갔다.

오늘로써 혈교에 들어온 지 열흘.

그의 지시대로 됐다면 작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적라성을 강시로 만드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성로를 비롯한 원로들이 즉각 튀어나와 무신을 맞았다.

얼굴들이 다 자신만만했다.

기한에 맞춰 작업을 끝내놓은 모양이었다.

 

‘강시꼴 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게 유효했군. 하지만 니들도 같은 꼴이 되리란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지.’

 

무신은 웃음을 삼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성로가 재빨리 달라붙어 입을 털었다.

 

“말씀하신대로 완성해 두었습니다.”

 

역시나였다.

무신은 지하 주술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강시들 특유의 냄새가 달달하게 느껴졌다.

얼른 맛보고 싶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깨우려면 주문을 외워야 되는 건가?”

“예.”

 

적라성, 아니, 완성품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석판 위에 놓여져 있었다.

원로들이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읊어대자 그것에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꿈틀거리더니 나중에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벌떡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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