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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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4화
적라성
“건드리면 안 돼? 호오, 무슨 이유로?”
“네놈이 저승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지.”
“이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있는데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오는 길에 정신 줄을 놓고 온 이는 적라성이 아니었을까 무신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적라성이 조소와 함께 역으로 물었다.
“네놈이야말로 아직 모르겠나?”
“응?”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아, 무신은 그제야 알아챘다.
헉헉거리던 적라성의 숨소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잦아들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어쩌면 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적라성의 숨소리는 정말 차분하게 돌아왔다.
무신도 그 부분에서는 조금 의아했다.
확실히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벌써 폭혈단이라도 씹은 거야, 뭐야?”
“그까짓 하등한 약초 따위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좀 거칠기는 해도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폭혈단은 잠깐 내공을 배로 불려주지만, 주화입마란 위험이 따른다. 게다가 일정수준쯤 되면 내공은 늘어나지도 않고 애꿎은 단전만 망가진다.
적라성쯤 되는 자에겐 하등한 약물임에 분명했다.
“그럼 아까 네 부하들이 말했던 ‘그것’을 쓰는 모양인데… 일단 대혈초왕신공은 아닐 테고.”
“뭐?”
“서열 1위도 겨우 알았던 무공을 저런 일개 교도들이 알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적라성의 얼굴이 순간 싹 굳었다.
“네놈이 대혈초왕신공을 어찌 아느냐?”
“어찌 아느냐고?”
무신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기력을 회복했는지 말해주면, 나도 알려주지.”
“아니다. 생각해 보니 네놈은 뻔할 뻔 자구나.”
“갑자기 무슨 소리시래?”
“허대건을 죽이기 전에 캐물었겠지. 목숨 붙이기에 급급했던 놈이 대혈초왕신공에 대해 실토했을 테고.”
“오.”
무신은 박수를 보냈다.
“좋은 추리야.”
“그 머저리 같은 놈이 혈교의 긍지도 모르고 비기를 그렇게 다 말…….”
“허나 틀렸어.”
“틀렸다고?”
“원래 알고 있었거든.”
그렇다고 해봤자 적라성은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을 건덕지가 있었다.
“대혈초왕신공의 극을 달리면 귀경대혈초왕신공란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지? 내 알기로 이건 허대건도 모르는 부분일 텐데.”
“네, 네놈이 어찌 그걸…….”
“알고 싶으면 네가 든 패를 까 봐.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지.”
그렇게 말만 할 뿐이었다.
무신은 딱히 적라성의 ‘그것’이 궁금하지 않았다.
효과가 좋다고 해도 일반 교도들까지 죄 알고 있을 정도라면, 그다지 대단한 무공은 아니란 뜻이었다.
차라리 귀경대혈초왕신공이 몇 갑절은 더 나을 것이다.
“어찌 알았느냐 물었다!”
갑작스런 호통에 근방에 있던 교도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신경은 적라성의 말보다 무신의 말에 더 가 있었다.
대혈초왕신공.
그리고 귀경대혈초왕신공.
배우지도, 접하지도 못한 무공이 남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모기 소리 같이 작은 소리였으나 여기저기 한데 뭉치니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물론 적라성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것들이 어디서 주절거려!”
무신은 주절거리단 어휘를 처음 들어보았다. 열이 뻗친다고 대강 아무 말이나 지껄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럴 정도로 순간 화가 치솟은 적라성이 다시 또 제 부하를 죽였다.
이번에는 한 놈이 아니었다.
입을 벌린 자들이 여지 없이 썰려 나갔다.
좋은 본보기가 되었는지 이후로는 숨소리 하나 잘 들리는 법이 없었다.
무신은 끌끌 혀를 찼다.
“거 좀 떠들었다고 제 식구들을 죽이는 꼴이라니. 혈교 수준을 알 만하군.”
“…….”
“뭐, 광분한 것 같으니 알려는 주마. 어찌 알았는지.”
애당초 숨길 것도 없었다.
적라성이 ‘그것’인지 뭔지 되도 않는 비밀 무공을 선보이길래 무신도 거기에 맞춰 입을 털었을 뿐이었다.
무신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사실은 내가 회귀를 했다. 그래서 대혈초왕신공이든 귀경대혈초왕신공이든 차후 밝혀질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거야. 아, 우백관이 혈수라철골강시로 제작됐다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때, 궁금증이 싹 풀렸나?”
“네놈이 날 능멸하려 드는구나.”
대답하는 적라성의 입이 바득바득 떨리고 있었다. 입 하나로 그 많은 분노를 담긴 어려울 것이다.
무신은 ‘어이, 어이, 진정하라고’ 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이니까 사실을 말하는 거 아니겠어?”
“개소리도 그보단 사실적일 것이다.”
“허나 그게 아니고서야 내가 니들이 꽁꽁 감쳐둔 것을 어찌 알았을까?”
“내통하는 자가 있었겠지.”
“내통하는 자를 내가 왜 죽여?”
간단한 논리에 적라성은 말문이 막혔다.
무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혈교 교주는 난 자리라더니 그리 멍청해도 앉을 수 있는 거였나? 신기하군.”
“네, 네 이놈!”
“아까부터 소리만 빽빽 지르는 게 영 교양도 없고 말이야.”
무신은 본인 말에 푸하하하 복장을 터뜨렸다.
인간 말종과 다를 바 없는 사파에게 교양이란 말을 썼다는 게 너무 우스웠다.
그러나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니었다.
사파 중에도 얼마든지 ‘인간’은 많았다. 그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잡아다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다면.”
무신의 비아냥거림은 점점 더 끝을 달렸다.
그런데 적라성이 이번에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아니야. 아니지. 네놈 같은 재료를 그리 망가뜨릴 수는 없어. 산 채로 잡아다 활강시로 만들어주마.”
적라성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신은 이미 우백관보다 몇 갑절은 더 강한 혈수라철골강시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계획은 무신이 먼저 세웠다.
“본인 운명을 본인이 소개하는군.”
적라성은 무신의 말을 알아먹지 못했다. 그저 제 말에 취해 껄껄거리기 바빴다.
심지어 원로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이놈 이거 잡는 대로 바로 작업 들어갈 거니까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 놔!”
“아, 알겠네!”
“빨리빨리 움직여!”
존대마저 사라져 있었다. 거의 말단 교도에게 지시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원로들이 군말 않고 그 말을 따랐다.
혈교의 체계가 얼마나 일인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무신이 귀경대혈초왕신공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은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진 모양이었다.
적라성의 관심은 오로지 무신을 활강시로 만든단 것에 쏠려 있었다.
적라성이 너덜너덜해진 옷을 잡고 그대로 뜯었다.
훤히 드러난 상반신에 근육이 기괴할 정도로 잡혀 있었다.
분명 아까와는 달랐다.
옷을 입고 있었다고는 해도 저만큼은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누군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저것의 정체는 뻔했다.
이제야말로 대혈초왕신공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달랐다.
시뻘건 몸에 기괴한 근육까지 그날 그때의 허대건과 똑같은데, 무언가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무신은 그것을 금방 알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적라성의 몸이 성난 들소처럼 움직였다.
아까보다 반 배는 더 빨랐다.
체감은 그 이상이었다.
‘이게 대혈초왕신공의 극, 귀경대혈초왕신공이군.’
무신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더 이상 까딱까딱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석판 위 강시 신세가 될 지도 몰랐다.
그는 좀처럼 쓰지 않던 목청수의 검술까지 꺼내 들었다.
쾌(快)를 상대하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적라성은 그가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냥 계속 속도가 증가하는 느낌이었다.
“어떠냐! 혈교 교주의 위용이! 크하하하하하하하!”
귓전에 적라성의 조롱이 맴돌았다.
그간 당한 비아냥거림을 이번 한 방으로 모조리 갚아주겠단 심산 같았다.
적라성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
수많은 혈교의 고수 중 단 한 명도 건드리지 못했던 무신의 몸을 건드리기도 했다.
베거나 찌르지는 못했지만 분명 괄목할 만한 전개였다.
몇 합이 더 부딪친 후에는 무신의 검이 엉뚱한 방향으로 꺾이기도 했다.
속도에 밀려 공격할 궤적을 잃었단 뜻이었다.
“날고 기어봤자 내 앞에선 소용이 없는 것이다!”
대혈초왕신공이 극을 달려 귀경대혈초왕신공이 되었든 적라성의 조롱도 계속해서 극을 달렸다.
천박한 웃음소리가 고요한 장내를 꿰뚫었다.
그리고 다시 몇십 합이 오갔을 때.
적라성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무신이 웃고 있었다. 심지어 ‘재미있군’ 하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뭐라고? 재미있다고?”
적라성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순간, 무신의 검이 적라성의 검을 쳐냈다.
적라성이 뒤로 열댓 걸음도 더 밀려났다.
무신에게 속도를 잡혔단 뜻이었다.
적라성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곧장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우세 따위는 없었다.
그가 검을 뻗는 족족 무신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 쫓아왔다.
완전한 호각이었다.
“어, 어찌한 게냐?”
“아까부터 그놈의 어찌, 어찌, 어찌. 정 궁금하거든 날 잡아놓고 협박을 해라. 물론 그럴 일은 없겠다만.”
그렇게 말하며 무신은 또 적라성의 검을 쳐냈다.
이번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찰나에 드러난 빈틈에 흑라신검을 꽂아 넣었다.
적라성이 급히 반응해 스치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옆구리에서 피가 줄줄 쏟아졌다.
곧 저기에서 창자를 쏟아지게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역으로 적라성을 밀어 붙였다.
일단 막은 후 공격이 아니었다.
먼저 공격했다.
이제는 무신의 속도가 적라성을 추월한 것이다.
“이, 이럴 리가!”
떠듬거리는 적라성의 말에 담긴 의미는 간단했다.
그는 이 상황을 부정했다.
교주로서의 진짜 전력을 쓰고 해치우기는커녕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는 것에.
하지만 그것도 아직이었다.
무신은 역공으로 그치지 않고 적라성을 제대로 조리했다.
열뢰대섬검으로 균형을 흔들며 철룡광랑검의 무게를 찔러 넣었다.
유연하고도 묵직한 묵직한 무신의 검이 적라성을 찬찬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적라성이 심기일전해서 들이대 봤자 제 몸에 상처만 더 늘어날 뿐이었다.
이미 그의 왼쪽 팔이 깊게 베여 너덜너덜했다. 쭉 잡고 찢으면 어깻죽지 뼈까지 드러날 것 같았다.
꼴에 무인이라고 고통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것이 쌓이고 쌓여 중상이 될 것이다.
그러다 내상이라도 입게 되면 치명상이 될 것이고.
무신은 잠깐의 쉴 틈도 주지 않았다.
간만에 호흡이 거칠어질 만큼, 적라성을 구석으로 또 구석으로 몰아 붙였다.
무신은 윗입술을 할짝였다.
간만의 가쁜 숨이 간만의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래, 이 맛이었다.
“교, 교주께서!”
두 고수 간 싸움의 여파로 인해 주위는 이미 난리도 아니었다.
멀쩡한 건물이 정말 단 한 채도 없었다.
가루가 되어 무너진 저기 저 무언가는 과연 건물이란 것으로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장 무너진 것은 교도들의 마음이었다.
구세주가 돼야 할 이가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처음과 똑같았다.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열 20위니 30위니 그렇게 우쭐대던 자들조차 슬금슬금 뒷걸음질만 했다.
이유야 뻔했다.
저곳은 지옥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지옥이었다.
발 한 번만 잘못 디뎌도 더는 이승의 공기를 느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