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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3화

초토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다.

적포를 입은 자들이 구름 떼, 아니,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

제 앞에서 서열 10위권 고수가 죽어나갔는데도 오히려 더 패기가 넘쳤다.

 

‘교리의 힘인가.’

 

무신은 몸서리치며 중얼거렸다.

저리 용명한 무사들이 또 있을까.

그러나 저리 비춰지기만 할 뿐이었다.

실상은 교주들에게 현혹된 불쌍한 영혼들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저들을 무고하다 볼 순 없겠지.

혈교를 택한 것은 저들 본인이었다.

 

개미 떼란 말이 무색하게 무신의 검은 조금 여유롭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허세 부리려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개미 떼.

큼지막한 발자국 하나면 그대로 다 죽게 돼 있었다.

무신의 검은 지금 이 혈교 교도들에게 그 큼지막한 발자국이었다.

기초 중의 기초 초식만 읊어도 우후죽순 쓰러져 나갔다.

멀리 있는 자들의 운명도 다르진 않았다.

검풍을 날리듯 내공만 몇 번 긁어주면 여지없이 뒤나 앞으로 고꾸라졌다.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 해도 몸 어디 한 구석에 이미 치명상이 박혀 있었다.

차라리 바로 죽어 고통을 더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데 무신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백발성성한 노인네들이 나타난 직후였다.

 

‘원로들이잖아?’

 

무신은 애매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모용가의 모용수철처럼 저들 역시 시대를 풍미한, 지금도 한자리 꿰차고 있을 고수였다.

그러나 애매하다는 게 저들의 힘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저들은 강시술의 대가.

혈수라철골강시란 괴물을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그렇담 죽여야 할까, 살려야 할까.

답은 당연하게도 후자였다.

교도들을 잡아다 강시로 만들기로 했으니 저들은 걸리적거리더라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원로들이 달려들질 않았다.

당장 이 와중에도 수십의 교도들이 명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들은 금붕어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허리춤의 검은 허리띠를 감추기 위한 장식인 모양이었다.

무신은 기가 찼다.

하지만 달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면 그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는 뒤를 노리고 달려드는 이름 모를 고수를 검지 하나로 제압하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높다란 기둥 뒷 선에서 눈이 시뻘건 괴인들이 서로를 밀치며 튀어 나왔다.

하는 짓만 봐도 저들의 정체는 훤히 보였다.

강시.

그러나 보통 강시는 아닐 것이다.

최소… 무신은 거기서 그만 생각을 멈추었다.

뭐가 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혈수라철골강시도 잡은 마당에.

 

사람 시체 옆에 강시 시체가 쌓이기까지 일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일각이란 것도 머릿수가 많았던 탓이었다.

무신이 강시 한 마릴 잡는 데에도 검 한 번 휘두르면 충분했다.

일격에 서너 마리가 나가떨어지기도 했으니 어쩌면 검 한 번도 사치였다.

무신은 수십, 수백 구에 달하는 시체들을 바라보며 이마를 훔쳤다.

정말 그야말로 초토화를 시켰는데, 그가 흘린 것은 몇 방울의 땀뿐이었다.

옷자락의 피는 남의 것이 튄 것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도 상반신이 죄 찢겨 나간 어느 교도가 출혈을 막지 못해 헐떡이고 있는데 말이다.

다만 한 무리만은 멀쩡했다.

줄곧 구경만 하던 원로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꼴사나운 광경이었으나 무신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다행이었다.

혈교를 지키겠다니 어쩌겠다니 하면 부득이하게 죽여야 될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저들 스스로 그 애매한 경계를 지켜주고 있었다.

일이 마무리되거든 칭찬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앞을 쳐다봤다.

공방이 좀 잦아든다 싶더니 교도들이 더 이상 오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도 무신이 아닌 뒤를 보고 있었다.

급기야 양 옆으로 밀착해 가운데에 길을 만들었다.

의아한 상황을 무신의 퍼뜩 이해했다.

안 그래도 갑자기 느껴지던 참이었다.

이깟 벌레들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의 기압 덩어리가.

누구인지는 굳이 볼 것도 없었다.

혈추귀(血追鬼) 적라성.

이 구역 최우두머리가 오는 것이다.

‘어디 갔다가 이제사 오신대’, 무신은 팔짱까지 끼며 최고 우두머리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확실히 의외는 의외였다.

벌써 일각.

길다면 아주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적라성이 그 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는 게 신기했다.

 

‘지하에 박혀 있었나. 아니면 지하게 박혀서 똥을 눴나.’

 

무신은 나름대로의 상상을 하며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콰콰쾅!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검풍 하나가 그의 검에 부딪쳤다.

미리 검을 뻗었기에 그는 가뿐하게 그것을 빗겨냈다.

하지만 위력 자체는 대단했다.

그를 통과한 그것이 뒤에 있던 강시 하나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물론 강시는 그대로 죽었다.

 

“그래도 초면인데 인사 한번 거칠게 하시는군.”

 

그가 덤덤한 투로 중얼거릴 즈음, 누군가가 우뚝 섰다.

교도들, 거기다 원로들까지 목례하는 것만 봐도 혈추귀 적라성임이 틀림없었다. 역시나였다.

무신은 찬찬히 그를 훑었다.

들은 것과 달리 외관은 평범했다.

신장은 6척 반 정도였고, 체격은 방금 죽은 강시보다도 작았다.

그러나 몸이 시뻘겠다.

그게 달랐다.

혈교를 상징하는 피가 저자의 몸의 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단순히 피부가 시뻘겋다고만 볼 것은 아니었다.

 

‘저 역시 대혈초왕신공의 일종인가.’

 

무신은 허대건이 썼던 혈교의 비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 같다면 시뻘게지는 것에 더해 육체가 커져야 했다.

그러나 적라성의 몸뚱이는 결코 커졌다고 말할 수준이 못 되었다.

잘 쳐줘야 장한 정도였다.

그렇다면…….

무신은 대충대충 넘겼다.

알 바 무엇인가.

대혈초왕신공이든 소혈초왕신공이든 어차피 이제 곧 뒤질 놈인데.

 

“…네놈이었구나.”

 

잡히는 것은 뭐든 씹어 먹을 기세로 적라성이 그렇게 첫마디를 뗐다.

수염 가득한 얼굴에 어울리게 목소리가 칼칼했다.

식초 한 바가지를 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무신은 하품과 함께 말했다.

 

“그래, 제가 우리 그 대단하신 교주께서 찾으시던 놈입니다. 반갑구만요.”

 

하품에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으니 보다 못한 교도 몇몇이 무기를 쳐들고 뛰쳐나왔다.

그러나 뛰쳐나오기만 했다.

달려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코앞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바보 병신이 아니고서야 더는 저와 같은 꼴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적라성이 ‘한심한 놈들 같으니!’ 하며 그들의 목을 날렸다.

불쌍하게 희생된 머리통 서너 개가 데굴데굴 굴러 무신의 발치에서 멈췄다.

무신은 박장대소했다.

 

“무슨 교주가 이래? 그래도 너 위하려 나선 놈들인데.”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무신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저깟 놈을 주인이라 모시고 있다니. 쯔쯧’ 하고 반대로 교도들을 흉보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해 안 되는 족속들이었다.

 

적라성이 다시 무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입 닥치거라.”

“뚫린 입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뭐 문제라도 있나?”

“뚫린 입이야 마음대로 써도 좋지만 사람을 가려가면서 해야지.”

“네가 가릴 사람이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오는 길에 정신 줄을 놓고 왔느냐?”

 

낮게 깔린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했다. 당장 달려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무신은 술술 말을 이어갔다.

 

“천하의 혈교 교주도 막상 마주하니 좀 쪼들리나 보지?”

“뭐?”

“아니면 왜 그러고 있어? 제 부하들이 이 지경이 났으면 달려들었어도 벌써 달려들었어야지.”

 

적라성이 무어라 받아치기도 전에 무신이 다시 선수를 쳤다.

 

“맞군. 맞아. 혈교 고수들을 죄 잡은 놈이니 탐색을 해보고 싶었겠지. 내 이해는 간다.”

“그 입 닥치라 내 말하였다.”

“아차차.”

 

무신은 뒷 선의 강시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놈들 대가리. 혈수라철골강시 우백관. 그놈도 내가 잡았는데, 알고 있나?”

“…….”

“표정 보니 몰랐던 모양이군. 그래도 시체는 잘 받아봤지? 어떻던가? 다섯 등분으로 예쁘게 잘라놨는데.”

 

무신의 비아냥거림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다 떼고 오로지 대화만 놓고 보면 악질은 적라성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그것은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힘 좀 있다고 으스대려는 것은 아니었다.

유치한 말장난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회귀 전에 당했던 굴욕을 도로 돌려줄 뿐이었다.

그래야 저들도 굴욕이란 게 뭔 줄 알게 되겠지.

물론 굴욕은 저들을 완벽히 제압한 후에 비로소 꺼낼 단어였다.

 

무신은 슬슬 칼을 뽑았다.

단순히 검을 든다는 의미보다, 저들과의 상하 관계를 완벽히 정리하고 싶었다.

방법은 쉬웠다.

적라성.

저자만 잡으면 일은 순탄대로일 것이다.

 

“그 입으로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마침 적라성도 움직일 생각이었던 듯 제 몸만큼이나 시뻘건 검을 앞으로 뻗었다.

무신은 저것을 알고 있었다.

혈성검.

혈교 교주들에게 대대로 주어지는 검.

적라성에게 혈추귀란 별호를 달아주기도 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그것으로만 이미 명검이었다.

하지만 진짜 명검은 따로 있었다.

무신은 흑라신검을 꼬나 쥐었다.

철교 교주의 산물에 비하면 혈교 교주의 산물은 나무 막대기 수준이었다.

 

‘그렇게 보면… 빙룡검은 얼마나 대단하단 거야?’

 

무신은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내공을 잔뜩 피웠다.

이제부턴 실전이었다.

벌레들과의 놀이는 진즉부터 끝이 났다.

 

“교, 교주께서 초장부터 그것을 쓰셨어!”

“저 검객… 얼마나 강하단 거야?”

“모두 피해! 우리까지 죽는 수가 있어!”

 

적라성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올 때, 교도들이 외친 말들이었다.

그것.

또 무슨 변화가 있나 싶어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눈알 흰 자까지 시뻘겠다.

아랫도리 털까지 시뻘거면 그것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검을 부딪쳤다.

교도들 것이었으면 대충 흘리며 받아쳤겠으나 적라성의 것은 달랐다.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외공까지 아주 펄펄 끓었다.

탄탄하기는 해도 우락부락할 정도는 아닌데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힘일까.

의문은 길지 않았다.

무골이었다.

태생부터 강골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교주가 될 상은 그래야 된다는 건가.’

 

무신은 불합리함을 느끼면서도 위협은 받지 못했다.

어차피 그도 강골이었다.

 

초장부터 전력으로 시작한 싸움이었기에 여파는 상당했다.

혈 자가 박힌 건물들이 살살 흔들리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평평했던 땅은 들쑥날쑥 요란을 피웠다.

배경이 그 지경이었으니 사물은 말해야 입만 아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교도들이 건물이나 땅에 처박고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먼저 죽은 이들과 같은 신세였다.

 

무신은 짧은 호흡과 함께 잠깐 적라성과 거리를 벌렸다.

그가 그 정도였으니 적라성은 그냥 죽을 맛이었다. 헉헉 거친 숨을 토했다.

 

“벌써 그리 지쳐서야 이거 원. 애당초 싸울 게 못 됐군.”

 

두 사람이 부딪친 것은 고작해야 수백 합이었다.

하지만 그 수백 합에 매번 대량의 내공이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체력 소모도 심해졌다.

벌써 지친 적라성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쌩쌩한 무신이 희한한 것이었다.

 

“왜 네놈에게 내로라하는 우리 고수들이 죽어나갔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이야, 인정해 주는 건가, 나를?”

“허나 너는 크게 실수했다.”

 

적라성이 눈을 빛냈다.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듯이.

 

“나까지는 건드리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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