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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0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90화

놈의 수준

 

 

우연한 만남은 아니었다.

혈교로 가려는 찰나 웬 집채만 한 기압이 움직이길래 잠깐 방향만 틀었는데, 놈이 떡하니 서 있었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무신은 놈을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했다.

혈수라철골강시 우백관.

눈이 시뻘겋고 몸의 혈관이 지나치게 튀어나온 것만 봐도 틀림 없었다.

 

‘혈교 부교주였는데 남궁가를 잘못 건드려 공개 처형을 당한 후 저 신세가 됐지.’

 

무신은 우백관의 과거도 줄줄 꿰고 있었다.

심지어 우백관이 고형계란 원로의 머리통을 깨부순 것도 알았다.

그만큼 회귀 전 우백관의 일거수일투족은 유명했다.

흑룡강을 넘어 갈림에 요령에 그 아래 지역까지 모두 들쑤시고 다녔으니까.

 

“반갑다, 우백관.”

 

무신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혈수라철골강시를 마치 고향 벗처럼 대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열에 아홉, 아니, 열에 열 미친놈 취급을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딱 그 생각이었다.

 

“화, 화를 돋우지 마라!”

 

무신은 겁에 질려 소리친 웬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생판 모르는 남이었다.

그러나 왼쪽 어깨에 경산파라 쓰여진 문양을 보노라니 금방 감이 왔다.

 

“경산파 장문… 오동학이었던가?”

“자, 잡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엎드려! 뒤지기 싫으면!”

 

그렇게 말하는 오동학은 이미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바닥에 붙이고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하며 역겨운 동정을 호소하고 있었다.

꼬리가 있었다면 아마 개새끼처럼 흔들어댔을 것이다.

 

“한심한 놈.”

 

무신은 쯧쯧 혀를 차며 오동학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팔두사를 잡은 이후 단 한 번도 바깥바람을 쐰 적이 없는 흑라신검이었다.

녀석이 잔뜩 성을 내며 입을 벌렸다.

콰콰콰콰쾃!

무신에게 무언가 한 소릴 하려던 오동학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우백관을 보며 느꼈던 ‘벽’과 똑같았다.

아니, 그 이상인 것도 같았다.

오동학은 헐레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구부정한 자세에 그의 빈틈이 여기저기 드러났으나 우백관은 그를 공격할 생각을 전혀 못했다.

우백관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오로지 무신이란 것을.

 

“궁금하군. 혈수라철골강시는 얼마나 다를지.”

 

무신은 빙긋 웃으며 우백관과 마주했다.

놈의 검에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물론 거기에는 굉장한 내공이 형성되어 있었다.

오면서 느꼈던 집채만 한 기운보다 몇 갑절은 더 큰, 과장 조금 보태어 태산이 쪼개질 힘이었다.

 

‘혈수라철골강시쯤 되면 화경에 가까운 건가?’

 

무신은 애매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힘 자체는 그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과연 화경이란 깨달음의 경지에까지 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의문은 길지 않았다.

붙어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무신은 검신을 높이 쳐든 채 놈에게 달려갔다.

몇 발자국 디딜 것도 없었다.

놈이 흉흉한 안광과 함께 먼저 그에게 쇄도해 오고 있었다.

콰쾅!

이윽고 화염처럼 타오르는 붉은 검과 그윽한 흑빛 검이 부딪쳤다.

언뜻 보기에는 전자의 승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전자가 까앙! 불편한 소음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반면 후자는 매우 멀쩡했다.

 

“역시 화경까지는 아니로군.”

 

무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제자리를 지켰다.

당장 공격을 이어가면 십합 안에 우백관의 목을 자를 수 있겠지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혈수라철골강시가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애꿎은 시간 낭비는 아닐 것이다.

그는 어차피 혈교를 궤멸시키는 대로 교도들을 강시로 만들 계획이었다.

결과물의 수준을 파악해 두면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리는 판단력이 생기게 되겠지.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유로운 무신과 다르게 우백관은 고래고래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놈의 검도 조금 더 열을 냈다.

검신에 맺힌 내공이 아주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저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검풍 같은 게 아니고서야 내공은 어떤 상황에서든 응축하는 게 정석이었다.

아니 하면 괜히 애꿎은 힘만 낭비하는 것이다.

힘이 오죽 주체되지 않으면 저러겠느냐마는 그것은 또 그만큼 자기 제어가 되지 않는단 의미였다.

 

‘강시를 만들거든 저런 부분은 좀 손을 봐야겠는데.’

 

무신은 조금 아쉽단 얼굴로 번쩍 검을 들었다.

잠깐 사이에 우백관의 검이 코앞이었다.

콰쾅!

이번에도 묵직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전개는 달랐다.

우백관이 밀려나지 않고 계속해서 무신을 밀어붙였다.

엄청난 속공이었다.

혈교 특유의 투박한 검술을 섞어 집요하게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니 무신으로서도 막을 도리가… 없을 리 없었다.

그는 가뿐히 막아냈다.

거창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팔만 까딱까딱 움직였다.

심지어 반대쪽 팔은 뒷목을 긁적이고 있었다.

놈은 파상공세였으나 그에게는 어디 저 삼류무사와의 대련시간이었다.

 

“……!”

 

그 우스운 광경에 넋을 놓은 자가 한 명 있었다.

멀찌감치 피해 있었던 오동학이었다.

그는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검격을 따라 눈알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물론 그의 눈으로는 저들의 실력을 쫓아갈 수 없었다.

다만 한쪽이 우세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우세한 이야 당연히 갑작스레 나타난 이름 모를 검객이었다.

대체 누구일까?

흑룡강 사람일까?

경지는 얼마나 될까?

초절정 상급?

초절정 최상급?

설마…….

순간, 오동학의 머릿속에 화경이란 위대한 경지가 스쳐 지나갔다.

망상이 아니었다.

지금 저 검객이 보여주는 모습은 충분히 그것에 어울렸다.

오동학이 그렇게 얼이 빠져 있는 사이 무신은 우백관과 벌써 일백합을 넘게 부딪치고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한순간이었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 일백합은 숨만 몇 번 내쉬어도 이뤄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백관은 대여섯 시진 혈투를 벌인 것처럼 헉헉거렸다.

자신만만해 하던 얼굴이 새파랗게 젖어 있었다.

그럴 것이 오십합이 넘어가고부터 온힘을 다 쏟았는데, 무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에 반해 무신은 땀 한 방울 안 흘렸다.

얼굴도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도 물론 힘을 쏟았다.

그러나 전력은커녕 십분지 일도 쓰지 않았다.

여전히 설렁설렁 검만 휘젓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백관은 꼼짝을 못 했다.

독기가 바짝 올라 더 무신을 밀어붙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공에 검질 후 돌아오는 허탈감뿐이었다.

우백관의 검이 무신의 살갗을 꿰뚫은 경우는 일백합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무신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

그의 검 또한 매번 우백관의 몸뚱이를 빗나갔다.

그러나 베지 못하는 것과 베지 않는 것의 차이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우백관의 팔 하나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더 집중하면 아예 목을 날릴 수도 있었다.

그는 단지 우백관이 얼마만큼 가능성이 있는지 보고 싶을 뿐이었다.

전투 중에 그 무슨 해괴한 생각이겠느냐마는 이게 다 강자의 여유였다.

그리고 그는 강자 중에서도 강자였다.

 

***

 

흑룡강의 한 의류점.

스승에게 파천의를 제작받았던 손님이 왔다간 후, 주인장은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여태 본 그 어떤 고수보다 대단했어. 무기나 기압 따위가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와닿은 것이었으니까.

 

***

 

합이 끝난 것은 약 구백 번을 더 부딪친 후였다.

도합 일천합.

이제 혈수라철골강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기에 무신은 반격을 가하기로 했다.

더 이상은 시간 낭비였다.

그의 검이 뱀처럼 꿈틀거리다 산왕처럼 우백관의 검, 그리고 우백관의 몸을 뜯어 물었다.

궤적이 불분명한데 공격력은 극상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쾌검과 환검, 그리고 중검의 검술이 한데 모아진 결과였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은 이렇게 항상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야, 대단한걸.”

 

일격이면 끝날 줄 알았건만 우백관은 용케도 숨을 붙이고 있었다.

혈수라철골강시.

맷집 하나는 알아줄 만했다.

하지만 막아봤자였다.

그의 어깻죽지가 허연 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뼈도 허연 게 겉보기에는 정말 인간이로군.’

 

무신은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바라봤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는 아니었다.

강시란 죽은 자를 깨우는 것이니 설혹 창자가 줄줄이 튀어 나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우백관은 단지 자신이 당했단 것을 저렇게 분노로 표출할 뿐이었다.

물론 표출만 하고 끝이었다.

무신의 검이 이미 다시 한번 휘둘러지고 있었다.

매우 여유롭게.

그러나 우백관에게는 전광석화의 일격이었다.

미처 손 쓸 새도 없었다.

툭.

하고 우백관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것을 바라보며 무신은 입술을 핥았다.

왠지 모르게 더 베는 맛이 있었다.

똑같은 놈 한 열 명 세워놓고 머리통을 줄줄이 베고 싶은 심정이었다.

혈교에 가거든 정말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비로소 검을 거두었다.

시간은 짧았으나 합은 길었기에 그의 내공도 1할 정도는 빠진 편이었다.

남은 게 9할이니 거의 산책 수준이었으나 그는 그것도 아쉬웠다.

어디 가서 가부좌 틀고 운기조식을 한번 해야 속이 개운할 것 같았다.

단전뿐이랴.

뱃가죽도 꼬르륵 가쁜 숨소릴 내고 있었다.

그도 어떤 의미에선 제법 지친 것이다.

 

“응?”

 

우선 배부터 채우려 몸을 돌린 그의 눈에 웬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몸이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희한한 사람이었다.

 

‘누구지?’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뒤늦게 기억해 냈다.

경산파 장문 오동학.

아직 안 가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 하하하.”

 

오동학은 어색하게 웃었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아까처럼 또 넙죽 엎드렸다.

상황 판단 하나는 기가 막혔다.

 

“제, 제 고수를 못 알아뵙고 허튼소리를 했었군요!”

 

맨 처음, 우백관의 신경을 왜 거스르냐 했던 말에 대한 변명 같았다.

무신은 잠자코 오동학을 쳐다보았다.

비 맞은 개새끼처럼 바들바들 떠는 게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상관없으니 갈 길 가시오.”

“아, 알겠습니다, 대협.”

 

무신이 하오체를 쓰는 것에 반해 오동학은 극존칭을 썼다.

자신보다 뛰어난, 그것도 수백 배도 더 뛰어난 무사 앞에선 무조건 예의를 차리는 게 강호무도의 법도였다.

보이지 않는 법도.

그렇게 오동학이 일어서려는데, 무신이 다시 검을 뽑았다.

 

“왜 이러시는… 커억!”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오동학의 머리통이 우백관의 머리통과 운명을 같이했다.

무신은 탈탈 손을 털었다.

오동학이 가야 할 길은 저승이었다. 그는 정파를 추구하는 척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는 악질이기 때문이었다.

 

‘얼굴 보니까 이제야 떠오르네.’

 

무신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에 칵 하고 침을 뱉었다.

물론 남 일이었다.

오동학이 정파를 추구하든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든 그가 알 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동변상련이란 게 있었다.

회귀 전 15년을 약자로 살아간 그에게 오동학 같은 자들은 그저 짐승이었다.

그러니 죽여야 했다.

죽이지 못하면 사지라도 썰어야 했다.

그래야 속이 후련했다.

두 머리통을 두고 그가 향한 곳은 근처 객잔이었다.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자가 들어왔으나 이상하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흑룡강.

혈교와 도적들의 소굴.

손님들 피 칠갑이야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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