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9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9화
흑룡강
늦은 오후.
남은 주먹밥을 까먹던 무신은 문득 저쪽 일, 그러니까 분기탱천하여 무림맹으로 달려갔던 팽영권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팽영권의 보고를 받았을 무림맹 맹주 곽이천이.
그자 성격에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어떤 식으로는 갚아줄 것이다.
당한 것보다 몇 배, 몇십 배… 급기야 정마대전까지.
어쩌면 정마대전보다 더 심할지도 몰랐다.
그자는 정말 그러고도 남을 자였다.
‘그리된다면야…….’
무신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불구경만큼 재미난 것이 싸움 구경.
개중에서도 정파와 마교의 대립이라면 오히려 돈을 내고라도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정파나 마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뿐더러 위치도 너무 반대편에 있었다.
라고는 해도 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전자야 당장 팽가나 모용가만 들어가도 될 일이고, 후자는 마음먹고 달려가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당도할 거리였다.
물론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애당초 다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정마대전은커녕 그냥 사과만 받고 끝날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거나.
단지 현 맹주의 성격상 그럴 공산이 적단 뜻이었다.
‘우선 혈교부터 해결하고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봐야겠군.’
무신은 재미있겠다는 듯 웃었다.
그의 생각대로 된다면 정말 화끈한 무림난투극이 펼쳐질 것이다.
그는 그러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었다.
이후 쉴 새 없이 여정을 이어가던 그가 말에서 내린 것은 나흘 정도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다사촌과 같은 마을 때문이 아니었다.
흑룡강.
그곳의 간판이 성벽 위 깃발 안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이제, 정말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무신은 입구를 지나쳐 흑룡강 중심으로 들어갔다.
갈림과는 비교도 안 될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사방팔방에 박혀 있었다.
도적 떼로 유명한 곳이 저기 저 사천이나 섬서처럼 부를 이루고 있으니 참 천인공노할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다 훔친 재물로 쌓았다는 것 아닌가.
흑룡강의 주인이 혈교인데 도적 떼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마는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세상에 도적 떼를 사파라 부르는 이는 많아도 정파라 부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신은 파천의를 들고 일단 의류점부터 찾았다.
팔두사를 잡은 날부터 한 번도 때를 게워내지 않아 지금은 들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오는 내내 땀을 많이 흘린 탓도 있겠지만.
“어서 오게.”
그곳 주인장은 푸근한 얼굴의 중년인이었는데, 솜씨가 좋은지 옆에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솜씨가 좋은 정도가 아니지. 그냥 장인이야.’
무신은 주인장을 잘 알고 있었다.
팔각수(八各手) 포원경.
주인장은 그에게 파천의를 만들어줬던 자의 제자였다.
“옷감 좀 맡기러 왔습니다.”
“어디 한번 보지.”
대강 상태만 확인하겠단 말이었다.
무신은 ‘알겠습니다’하며 입고 있던 것과 여분의 것까지 파천의를 넘겨주었다.
앞뒤로 뒤집으며 정말 대강 상태만 확인하던 주인장이 ‘응?’ 하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리곤 한참을 더 살피더니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파천의로구만.”
“알아보시는군요.”
무신의 대답에도 주인장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은 여전했다.
이곳은 강호.
비록 도적이나 혈교 천지라고는 해도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모인 흑룡강.
파천의급의 옷은 과장 조금 보태어 열댓 장씩 쌓일 정도로 봤을 것이다.
결코 의아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헌데 솜씨가 대단한데? 이거 누가 만들었나?”
그게 주인장이 의아해하는 이유였다.
무신은 질질 끌 것 없이 말했다.
“팔각수 포원경. 이쪽 최고의 장인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주인장이 ‘그, 그게 정말인가?’ 하며 말을 더듬었다.
무신은 ‘그렇습니다’하고 고개글 끄덕였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참으로 재미난 광경이었다.
그는 겨우 웃음을 삼키며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주인장이 ‘이런 우연이…’ 하며 말했다.
“그분은 내 스승이었네.”
“그게 정말입니까?”
무신은 방금 전 주인장이 했던 말을 토씨만 바꾸어 도로 전해주었다.
포원경이 이곳 주인장을 소개시켜 주진 않았으니 꼼짝 없이 연기를 해야 했다.
물론 자신 있었다.
무신은 모른 척의 대가였다.
“한 십여 년쯤 됐나. 스승께서 구동으로 내려가시기 전까지 배웠었지. 아직 구동에 계시지? 얼마 전에도 한번 찾아뵀었는데.”
“예, 아직 구동에 계십니다.”
“그땐 이 얘기가 없으셨는데, 언제쯤인가? 자네가 구동에 간 것은.”
“햇수로 2년쯤 됐습니다.”
“나도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기간이 겹쳤어도 말씀 안 하셨을 겁니다. 매일 같이 검만 드는 자에게 검을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기간이 겹쳤다면 포원경은 주인장에게 파천의, 정확히는 무신에 대한 말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날 그가 무신을 본 감정은 그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제 3자인 주인장은 무신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러네만… 파천의는 어디 내놔도 안 꿀릴 대단한 옷이네. 아니, 옷보다는 장비란 말이 더 어울리겠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리게. 내 금방 새 것처럼 만들어줌세.”
“차례를 건너뛰어도 괜찮습니까?”
무신이 수북이 쌓인 일감을 가리키며 말하자 주인장이 ‘내 스승님으로부터 온 손님인데 요 정도 혜택은 주어야지. 대신 비밀일세’ 하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주인장이 나서서 그리해 주겠다니 무신은 냉큼 그 제안을 받았다.
작업은 식사를 하고 오자 다 끝나 있었는데, 새 것처럼이 아니라 그냥 새 것이었다.
무신은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내 무슨 장인까지 되겠나. 그런 호칭은 스승님 같은 분에게나 쓰는 걸세.”
“너무 겸손하십니다.”
주인장은 끝까지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게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변변찮은 실력으로는 흑룡강과 같은 큰 지역에서 의류점을 낼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의 솜씨가 이제 포원경을 넘어섰을지도 몰랐다.
무신은 굳이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우상을 깎아내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돈을 지불하고 파천의를 가져가는 무신에게 주인장이 ‘헌데 자네…’ 하며 의미심장한 운을 뗐다.
“다른 옷을 얻을 생각은 없나?”
“다른 옷이요?”
“흑룡강 근방에 파천의보다 더 좋은 옷이 있네.”
무신은 주인장이 어떤 옷을 말하려는 것인지 대번에 눈치챘다.
흑룡강 근방.
그러면 ‘그 옷’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이번에도 모르는 척이었다.
“어떤 옷이길래?”
“그게 말일세.”
주인장이 입에 침을 바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과연 무신의 예상대로였다.
그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옷’이었다,
“어떤가? 좀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자네라면 왠지 그 옷을 얻어낼 것 같아 내 한번 말해봤네.”
“예, 괜찮겠군요. 헌데 제 어디가 그 옷을 얻어낼 것 같습니까?”
무신은 이번에는 정말 몰라서 물었다.
겉만 보면 흑빛만 선명한 흑라신검.
한껏 억누른 내공.
어지간한 고수도 몸서리친다는 ‘그 옷’ 사냥에 나갈 위인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주인장이 잠깐 뜸을 들이다 답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숱한 무인들, 아니, 숱한 고수들을 봤는데 말이지. 자네 같은 느낌은 처음이라 그러네.”
“느낌이요?”
“무언가 아주 장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야.”
두루뭉술한 말이었으나 무신은 퍼뜩 이해가 갔다.
검신.
그에게 있어 아주 장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는 그래봤자 한낱 범인에 지나지 않은 주인장이 그것을 알아보는 게 신기했다.
정말 고수들을 많이 봐서 눈썰미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주인장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너무 신경은 쓰지 말게. 그 옷 얻으려다 골로 간 무인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대답만 할 뿐이었다.
무신은 설사 수십, 수백의 무인들이 죽어나갔어도 그 옷을 얻으러 갈 생각이었다.
위험요소가 분명 따르겠으나…….
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난도 상쇄 시킬 ‘힘’을 가지고 있었다.
***
혈교와 도적의 소굴, 흑룡강.
사실상 사파의 본거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지만, 일반 문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향력만 적을 뿐 소규모 문파도 얼마든지 많았다.
개중에서 경산파(硬山派)란 곳은 그래도 흑룡강 내에서 꽤 알아주는 편이었다.
딸린 무사들도 많고 역사도 제법 되어 그들만의 비기를 제법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였다.
머릿수는 도적의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으며 역사는 혈교보다 한참 아래였다.
하지만 그곳의 장문만은 달랐다.
사기검(絲氣劍) 오동학.
과거 곤륜파의 일원이었던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곤륜신검(崑崙新劍)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新)이란 것은 쉽게 딸 수 있는 별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윗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부.
지위.
명성.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보장된 것을 과감히 뿌리쳤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이 바로 이 경산파였다.
그는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땅은 기존세력에 의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고, 변두리의 땅은 무언갈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흑룡강으로 오게 되었다.
“혈교가 꽉 잡고 있다고는 하나 그게 오히려 보호막이 된다. 우릴 건드리면 정파를 건드리는 셈이거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흑룡강 외곽으로 잠깐 마실을 나온 오동학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오른팔 이고검(理考劍) 주형우가 ‘새로 바뀐 맹주가 그쪽으로는 성격이 워낙 불같으니 더 건드릴 엄두를 못 낼 겁니다’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그렇지’ 하며 다시 중얼거렸다.
“게다가 여건도 좋단 말이지.”
흑룡강만큼 살기 편한 곳도 없었다.
도적들이 갈취한 재물이 이 바닥 시장에서 전부 유통되니 그 돈이 다 어디로 들어가겠는가.
물론, 힘 있는 자들의 경우였다.
일반 주민들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빴다.
“어떻게, 좀 뜯어냈느냐?”
“예. 골목골목 다 돌며 받아냈습니다.”
“잘했다.”
경산파도 결국 다를 것은 없었다.
혈교와 도적이란 이름을 쓰지 않을 뿐, 유통된 재물을 다시 역으로 빼앗았다.
사실상 정파보다는 사파인 셈이었다.
“응?”
무언가 큰 벽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돌아갈 채비를 하던 오동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압도적인 기압.
정말 큰 벽 하나와 마주친 기분이었다.
“혈교가 이쪽으로 움직인다던?”
“아니요. 그런 말은 못 들었습니다.”
“그럼 뭐야, 저것은?”
기압은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것은 압도적임과 동시에 이질적이었다.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이상을 느낀 오동학이 발을 빼려고 할 즈음에는 벽이 이미 지척까지 와 있었다.
동시에 수십의 경산파 일원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검은커녕 어떠한 부딪침도 없었는데 모두 황천길을 건넌 것이다.
주형우는 숨을 헐떡이는 정도로 그나마 형편이 나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도 곧 죽은 이들의 뒤를 따라갔다.
상황은 난장판인데 자리는 고요했다.
그럴 수밖에.
남은 이가 오동학, 그리고 눈알이 시뻘건 바로 그 벽밖에 없었다.
오동학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죽은 수하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이, 이게 무슨…….”
정말 압도적이란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살아생전 이런 기압, 아니, 살기를 느껴본 적이 곤륜파 장문 앞에서도 없던 오동학이었다.
그는 도망치는 것은 무의미함을 느끼고 얼른 무릎을 꿇었다.
“혈교의 교주여! 용서해 주시오!”
흑룡강에서 이와 같은 괴물은 그의 머릿속에서 혈교 교주 적라성뿐이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사죄부터 하고 봐야 했다.
아니 하면 죽을 것이다.
무림맹?
그 보호막도 일단 살아야 쓰든 말든 할 수 있다.
오동학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동학은 살짝 고개를 들어 상대를 다시 쳐다보았다.
6척보다 조금 더 큰 신장.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근육질의 몸.
그가 아는 혈교 교주의 모습은 저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 가까웠다.
남궁세가를 건드렸다가 공개 처형을 당한 부교주 우백관.
얼굴을 가리고 있어 확실치는 않으나 분명 그자의 모습이었다.
근방에서 자주 마주쳤었기에 오동학은 똑똑히 기억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리가 없… 그의 생각은 도중에 멈추었다.
상대가 검을 뽑아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내공이 화산처럼 터져 올랐다.
저것에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임을 그는 무인으로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아무런 손도 쓸 수가 없었다.
기압에 눌려 몸이 굳어 있었다.
그렇게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선 오동학의 목은 멀쩡했다.
그리고 상대가 검의 궤적을 바꾼 채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흑장포를 입은 웬 청년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네놈이 그 유명했던 혈수라철골강시구나.”
말소리가 들릴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혈수라철골강시.
뜬금없는 소리였으나 오동학의 머리는 그 말을 퍼뜩 이해했다.
“서, 설마 죽은 우백관을 강시로…….”
낯선 존재에게 왜 우백관의 모습이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