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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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7화
다사촌
다사촌(多蛇村).
부근에 뱀이 많이 나타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
가뜩이나 변두리인데 흉물까지 지천에 깔렸으니 객인들 왕래가 거의 없을 법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떤 날은 하루에 수십 명도 더 오고 갔다.
이유야 뻔했다.
뱀으로 몸보신을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청사탕(靑蛇燙)은 저 멀리 강호 밖에서도 알아주는 음식, 아니, 명약이었다.
한 대접 뚝딱하면 병든 아랫도리도 발딱 선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니 다사촌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사내들이었다.
개중에서도 나이 먹은 중년인이나 노인들이 많았다.
아니다 다를까 무신의 앞에 곧 수염 덥수룩한 중년인들이 너덧 명 나타났다.
뾰족하게 홈이 파인 철대에 짱짱한 보따리.
그들은 그것을 한 쌍씩 들고 있었다.
뱀을 잡는 도구였다.
“어디 청사 한 마리 안 나타나나.”
“너무 큰 꿈은 가지지 말게.”
“왜 큰 꿈인가? 여기서 청사가 얼마나 났는데.”
“한 해에 한두 마리 잡히는 것에 얼마나라는 말을 쓸 법한가?”
“크흠.”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 그냥 나오는 것에 만족하라 이 말일세.”
충고하듯 말하는 어느 중년인의 말을 무신도 동의했다.
청사는 다사촌 전체를 쥐 잡듯 뒤지고 다시 그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잡을까 말까 한 희귀한 놈이었다.
차라리 청사탕 먹은 자의 배를 갈라 놈의 녹은 사체라도 꺼내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청사탕을 한번 먹기는 해야 하는데 말이지.’
무신은 중년인들을 지나치며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게 그가 이곳에서 할 중요한 볼일은 아니었다.
그는 청사보다 더 귀한 놈에게 갈 생각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슈!”
“어서 오게나!”
일각 정도 걸어가자 여기저기서 인사말이 울렸다.
그 뒤로 시장 좌판처럼 줄줄이 장사치가 서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장사치가 아니었다.
이곳, 다사촌 주민들이었다.
“맛 한번 보고 가세요!”
누군가 무신의 팔뚝을 붙잡았다. 왼쪽 눈 옆에 점이 박힌 어린 계집이었다.
무신은 잠깐 서서 그녀가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널찍한 목재 원탁 위에 보글보글 탕이 끓고 있었다.
이 속에 뱀 두어 마리는 들어 있음을 그는 냄새만 맡고도 바로 눈치챘다.
뱀탕은 아무리 잘 끓여도 특유의 누린내가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둥그런 그릇 하나를 내밀었다.
그는 ‘맛없으면 땡전 한 푼 없을 줄 알아’ 하며 그것을 받았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그릇을 넘겼다.
“뱀탕을 맛으로 먹나요.”
그리고는 ‘이거 때문에 먹지’ 하며 무신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어린것이 보기보다 음탕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곳에서 살아오며 자연스레 익혔을 상술임을 무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김이 풀풀 나는 뱀탕을 후후 불다가 한입에 모두 넘겼다.
동시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나 누린내가 지랄이었다.
그래도 목 넘김은 괜찮았다.
칼칼한 것이 딱 그가 원하던 맛이었다.
“괜찮군.”
“맛이요? 아님, 이게요?”
또 제 아랫도리를 가리키는 계집을 보며 무신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입만 몇 번 털면 치마폭도 열어줄 기세였다.
그는 땡전 몇 개를 던져 주고는 자리를 나섰다.
그러나 쉽게 나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것도 한번 먹어봐요!”
“여기서 제일 끝내준다네! 이리 와보게!”
“한 국자면 사흘 밤낮도 끄떡없어! 안 먹으면 후회할걸?”
무신은 생각을 다시 바꿨다.
이들은 다사촌 주민이 아니라 그냥 장사치였다. 언변이 철근도 육포로 속여 팔 것 같았다.
무신은 그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여기도 저기도 다 뱀탕뿐이라서 딱히 입맛이 끌리는 것이 없었다.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방이었다.
주민들이 호객 행위를 멈추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객인들도 ‘뭔 일이람?’ 하며 마주 고개를 돌렸다.
무신은 진즉부터 멈춰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보다 반 뼘은 더 큰 신장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온몸에 뒤덮인 거구의 사내.
오른손에는 아까 입구에서 봤던 것과 같은 창대를, 왼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유심히 볼 것은 후자였다.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청사라도 잡았나.’
무신은 흥미롭게 그것을 지켜보았다.
“다들 이걸 보라고!”
과연 예상대로였다.
사내가 보따릴 내려놓더니 그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뱀 한 마리를 꺼냈다.
지켜보던 주민들과 객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 청사잖아!”
“우메! 저걸 어디서 찾았대!”
“자네! 그거 나한테 팔게!”
감탄으로 시작된 반응은 금세 장사로 이어졌다.
주민들이든 객인들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사내를 둘러쌌다.
무신은 자리를 잘 잡은 덕에 몇 걸음 안 가고도 사내의 코앞까지 갔다.
아가리가 묶인 청사가 몸을 이리 꼬고 저리 꼬며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창대가 놈의 머리를 꾹 누르고 있었다.
“잘들 보라고. 이게 청사라는 거야.”
사내가 청사를 들어 올려 사람들 앞에 흔들어 보였다. 녹주석을 연상케 하는 영롱한 빛이 사위에 가득 메워졌다.
빗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청사는 몸에서 푸르른 기운을 내는 성질을 가졌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지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둘둘 말아 장신구로 써도 되겠군.”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나한테 팔라니까!”
물론 이번에도 끝은 장사였다.
우스운 점은 객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주민들이 더 나서서 손을 뻗는단 것이다.
당연했다.
청사는 부르는 게 값.
거금을 주고 사도 다시 거금에 되팔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쪽으로 제법 노련했다.
“금자 한 냥 아니면 어림도 없는 줄 아셔들.”
떡 소리 나는 제시에 객인들이 ‘뱀 한 마리에 금자 한 냥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이의를 다는 자는 없었다.
청사의 효능을 생각하면 금자 한 냥의 값어치에 충분했다.
“간만에 뽕 좀 뽑나 했더니만.”
“접자고, 접어.”
“괜히 기분만 잡쳤네.”
주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금자 한 냥이면 되팔아도 손해를 보는 액수라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한 청년이 불쑥 끼어들었다.
“자, 여기 금자 한 냥이오.”
무신이었다.
그는 진즉부터 꺼내둔 금자 한 냥을 사내의 손 위에 올려놓고는 그대로 청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사내가 얼떨떨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설마 하니 진짜 금자 한 냥을 내놓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 가져가시오.”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말을 더듬은 것이지 지금 사내는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무려 금자 한 냥이었다.
네 식구 한 달 생활비가 은자 넉 냥이니 금자 한 냥이면 몇 년도 놀고먹을 수 있었다.
그는 그래서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금자 두 냥을 불렀을 것을.
하지만 이미 거래는 성사됐고, 애당초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말을 바꿨다간 호되게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는 더 후회해야 했다.
1552년 6월 3일.
얼마 후면 청사의 값은 폭등하게 돼 있었다.
금자 한 냥?
우습지도 않았다.
최소 금자 한 냥부터 시작이었다.
‘청사가 이제 곧 씨가 말라 버리거든.’
무신은 앞으로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금자 한 냥을 흔쾌히 지불한 것이다.
배낭 안에 든 보석과 전표를 생각하면 금자 한 냥쯤이야 사실 별것도 아니지만.
그는 자신에게 몰려든 시선을 뒤로한 채 아까 뱀탕을 팔았던 계집 쪽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세요!
맛 한번 보고 가세요!
하고 재잘거리던 계집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 여기 있어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계집이 손을 번쩍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보니 그녀도 청사 구경에 나섰던 모양이었다.
“탕 하나 끓여주련?”
“그럼요!”
“옛다.”
무신은 이번에는 땡전 몇 푼이 아닌 은자 한 냥을 건넸다. 이것저것 약재까지 넣어 맛나게 끓이란 뜻이었다.
계집이 아주 절이라도 할 기세로 꾸벅 허리를 숙이며 곧장 불을 올렸다.
조리야 쉬웠다.
무신이 청사를 통째로 집어넣으면, 그녀는 준비한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청사가 유독 더 심하대요.”
누린내가 독기처럼 코를 찔렀다.
매일매일 뱀탕을 끓여내는 계집은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이지만, 무신은 아니었다.
시체 썩은 내보다 더 곤욕스러웠다.
‘몸에 좋으면 입에 쓰다는 게 이놈 때문에 비롯된 말인가?’
그는 한숨을 쉬며 푸념했다.
물론 진짜 곤욕스러운 것은 청사의 누린내보다 청사의 끄나풀들에게 있었다.
수십은 될 듯한 사내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보글보글 익어가는 청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였다.
쳐다보는 게 아니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한 입이라도 먹어 효능을 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청사는 본래 남김없이 통으로 먹어야 제대로 된 효능을 보는 법이었다.
무신은 한 입은커녕 한 방울도 줄 생각이 없었다.
“조금은 괜찮지 않은가?”
기력이 쇠한 노인이 손을 벌려왔을 때도 무신은 단호히 거절했다.
애당초 효능을 떠나서 누구에게 한 입을 주면, 다른 누구도 바라기 마련이었다.
괜한 소란만 벌어질 것이다.
꼴깍꼴깍 사방팔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마침내 청사탕이 완성됐다.
살아 있을 적에는 영롱할 정도로 푸른빛을 낸 주제에 지금은 흔하디 흔한 장국 신세였다.
‘완성되니 그런대로 향은 괜찮군’, 무신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릇을 들었다.
그리고 액체가 된 청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것.
그 바람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효능은 대단했다.
온몸에 힘이 펄펄 넘쳤다.
기분상으로는 영약이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화경에 이른 무신에게 이깟 기력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그가 원하는 효능은 다른 것에 있었다.
눈.
벌써부터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미세한 차이였으나 그에게는 아주 또렷하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물론 범인은 결코 느끼질 못할 것이다.
“어떤가? 아랫도리가 좀 달라지는가?”
본인이 먹지 못하면 남의 반응이라도 알고 싶은지 예의 그 노인이 재차 물어왔다.
무신은 허리춤을 잡으며 말했다.
“벗어서 보여 드려요?”
“아, 아닐세. 됐네, 됐어. 과연 효능이 좋나 보구만.”
아무리 발정 났어도 같은 남정네의 그것을 보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더는 말을 섞지 않았다.
잠자코 있던 계집이 기대하는 투로 무신에게 물었다.
“어떠셨나요?”
“왜, 너도 이거 보고 싶으냐?”
이번에도 농을 던진 것이었으나 계집은 노인과 달리 여자였다.
그녀는 오히려 한술 더 떴다.
“보기만 해서 되나요. 먹어봐야 알지.”
“요 녀석 봐라.”
“왜요, 왜. 진심이라구요.”
정말 진심일 것이다.
세상에 금자 한 냥을 땡전 한 냥처럼 내려놓은 남정네를 놓칠 여인은 흔치 않다.
무신은 ‘이거나 더 먹어라’ 하며 땡전 몇 푼을 더 꺼내 계집에게 건네주었다.
맛난 요리를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후 그가 향한 곳은 뻔했다.
청사탕으로 식욕을 돋궜으니 이제 주 요리를 먹을 차례였다.
그는 다사촌 서쪽의 어느 산길에 올랐다.
오는 도중에도 그렇게나 많던 뱀 사냥꾼들이 이곳에선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팔두사(八頭蛇).
이곳은 수십 년 묵은 영물의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