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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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6화
내년 가을
엄밀히 따져서 유청하는 무신에게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그녀는 그의 아군이니 그녀가 성장할수록 그의 세력도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다시 또 만나거든 그때도 대련을 하겠지만, 만약 그 전에 초절정의 경지까지 오르면 다른 곳에 먼저 들리게끔.
어디인지야 뻔했다.
백산.
백산검(白山劒) 목청수가 있는 곳이었다.
‘유 소저 재능이면 능히 사부의 수련을 통과하겠지.’
그는 그녀를 의심치 않았다.
지레짐작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불과 1~2년 사이에 백운격에 통달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목청수의 수련이 아무렴 발군의 재능을 요한다 해도 그녀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는 유청하가 남기고 간 발자취를 기억하며 슬슬 채비를 갖췄다.
그녀가 그녀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듯 그도 그의 목적을 행할 차례였다.
그는 나무 등치에 세워둔 배낭을 멨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 안을 살펴보니 이것저것 먹거리가 있었다.
육포나 건량 따위가 아니라 어제 먹은 주먹밥 따위였다.
‘이것 참…….’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 새벽에 이것을 다 준비해 놓고 간 것이다.
잠은 잤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쉬기는 쉬었을까.
이럴 것이었으면 차라리 더 있다 갈 것이지 왜 먼저 갔을까.
그는 다음에 또 만나거든 자신이 그녀를 대접하기로 했다. 아주 근사하게.
***
갈림 시장은 어수선했다.
아직 다 치워지지 않은 마적들의 시체 탓만은 아니었다.
묘령의 여검객.
단신으로 일백의 마적들을 잡은 그녀의 무위.
그리고 그런 그녀를 홀린 남검객.
어떻게 봐도 의문투성이였다.
좌판 가득 물건 팔 생각은 않고 주야장천 그 얘기만 반복됐다.
무신이 그곳에 들어선 것은 마적들의 시체가 치워질 즈음이었다.
줄줄이 도착한 관부들이 두세 사람 힘을 모아 시체를 들어 날랐다.
그들은 날파리 꼬인 것을 참 잘도 상대했다.
그러나 창자가 쏟아져 나오거나 머리통이 잘려 나간 것은 그들에게도 고역이었다.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는 작업을 빨리했다.
얼른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들 덕분에 무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어쩌면 주민들은 그가 어제의 그 남검객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한 1년 후면 저쪽에도 일이 터지겠군.’
그는 시체 썩은 내 때문에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관부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쪽.
관부들의 관이 아니었다.
그들의 꼭대기, 황실이었다.
일은 지금부터 약 1년 후 1553년 가을에 터졌다. 의문의 무사들이 황실에 침입, 옥새를 들고 달아났다.
급히 추적대가 붙었으나 그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3년.
추적대는 기나긴 추적 끝에 겨우 옥새를 되찾았다.
머나먼 땅, 대막(大漠)에서.
의문의 무사들의 정체는 그곳 광풍사(狂風沙)란 문파의 사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겁도 없이 황제의 옥새를 건드린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과거, 황제의 지휘 아래 본인들 땅이 풍비박산 난 것에 대한 복수.
그리고 옥새에 깃든 미지의 힘.
대막의 신조가 자긍심이었으니 전자는 당연했고, 미지의 힘으로 강력한 무사를 양성할 수 있으니 후자 역시 당연했다.
특히 후자의 영향이 컸다.
그들에겐 다시 대막을 일으킬 기반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에 발목이 잡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옥새에 걸린 주술을 풀었음에도 감춰진 하나의 주술을 풀지 못한 것이다.
아니, 그들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게 신호탄이 돼서 황실 추적대가 결국 옥새의 위치를 알아낸 거지.’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황실이 뒤집어졌던 대란이 회귀로 인해 재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방관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황실에 발도 못 갖다 댈 그런 하등한 삼류 무사가 아니었다.
고귀한 검신이었다.
그는 그 힘을 이용해 옥새를 가로채고 싶었다.
말 그대로였다.
되찾아주는 게 아니라 광풍사를 쳐서 역으로 옥새를 훔칠 생각이었다.
광풍사와 달리 그는 이유가 하나였다.
미지의 힘.
그것을 먹고 싶었다.
‘광풍사를 치는 것도 그렇고 주술을 푸는 것도 그렇고 쉽지만은 않겠지.’
그는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였다.
아직 1552년 초여름.
광풍사가 움직이는 것은 내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동안 차근차근 생각하다 보면 뾰족한 수가 나올 것이다.
그는 그만 관부들에게서 관심을 끄고 갈림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그의 눈은 저 멀리 북쪽의 흑룡강을 쫓고 있었다.
혈교가 있는 곳이었다.
***
강호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걸음으로는 몇 년.
마상으로는 몇 개월.
그렇게 걷고 달려도 반대편 끝에 닿을 수 없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소식은 눈 깜짝할 새에 전해진다.
세인들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정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니까.”
흑룡강 중부, 혈교.
그곳의 연회장.
비아냥거리기를 좋아하는 소루검(小累劍) 고형계도 마침 그와 비슷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그쪽 일이 벌써 여기까지 전해져?”
반은 농담조였으나 그의 말에 웃고 떠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평소 헤프다 소문이 자자한 오적삼(烏赤衫) 두만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히려 고형계를 다그쳤다.
“그게 지금 이 상황에 할 말이오?”
“못 할 거는 또 뭐요?”
“혈사대에 활강시 일곱, 심지어 서열 1위 허대건까지 당했소! 농이나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 이 말이오!”
언성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중재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를 이길 자신은 없었는지 고형계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두만경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 일이 어찌 이리될 수가 있소?”
“크흠…….”
무의미한 헛기침만 반복되었다.
상황을 정리해 줄 말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내 뭐랬소? 절대 쉽게 볼 작자가 아니라 했지.”
잠깐의 정적은 사수장(四手匠) 나성로에 의해 깨졌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원수, 그러니까 그 검객을 범상치 않게 본 유일한 원로였다.
그러나 결국 그도 입장은 다르지 않았다.
“후… 나도 마찬가지오. 이해가 안 되기는.”
깨진 듯 보였던 정적이 연회장을 다시 무섭게 집어삼킬 즈음, 거구의 사내가 성큼성큼 그곳으로 들어왔다.
혈추귀(血追鬼) 적라성.
혈교의 교주였다.
그는 긴말할 것 없다는 듯 한마디만 내뱉었다.
“가서 부교주를 데려오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자까지 써야 되겠…….”
고형계가 눈치도 없이 끼어들자 적라성이 불같이 화를 냈다.
“허대건이 당했는데 뭐가 그자까집니까!”
“아, 아닐세! 그자를 꼭 써야 한단 말이었어!”
잘못 건드리면 본인들 목이 날아갈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적라성과 가까이에 있었던 원로들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알겠네. 부교주를 데려오지’ 하고 칼같이 대답만 했다.
적라성이 탁상을 내려치며 중얼거렸다.
“네깟 놈이 감히 혈교를 상대로……!”
이 순간 적라성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벽력탄이었다.
원로들은 그를 피해 얼른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의 지시대로 부교주를, 정확히는 부교주가 있는 곳을 찾았다.
연회장 바로 아래 지하.
바깥으로는 삼엄한 기운이 감돌지만 안으로는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거미줄이나 먼지 같은 것이 잔뜩 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깨끗했다.
원흉은 지하의 내부, 거기서도 가장 끝에 있는 어떠한 방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괴수를 쓸 날이 오다니.”
“까놓고 말해서 부교주까지 꺼낼 일이오?”
“나 원, 교주 손에 머리통 날아가고 싶소? 잔말 말고 문이나 땁시다.”
기어이 뒤끝을 부리는 고형계를 타박하며 나성로는 손바닥을 모았다.
도만경 등의 나머지 원로들도 거기에 동참했다.
고형계는 가장 늦게 끼어들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땀을 흘렸다.
“사실 무서워서 그렇소, 무서워서.”
“아군인데 무엇이?”
“잘못 만들어지면 이따금 아군도 친다던데?”
고형계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뒤로 빠지려 했다.
나성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소.”
“만약이란 게 있잖소?”
“아예 없었다니까 만약은 또 어떻게 있소?”
따끔한 지적에 고형계는 두 발을 다시 앞으로 내놓았다.
그 순간에도 행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합장.
그리고 십칠 원로들의 기운.
이 방 내부에 있는 존재, 부교주를 깨우는 의식이었다.
그것은 금방 끝이 났다.
녹슨 철문이 삐거덕삐거덕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오랜 시간 방치한 것치고는 그래도 멀쩡한 편이었다.
원로들은 숨을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뭐가 무섭냐고 핀잔을 줬던 그들이었으나 정작 부교주를 마주하자 똑같이 행동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벌벌 떨었다.
“깨어나라!”
의식의 종점을 찍는 순간에는 그래도 정신을 차렸다. 합장과 기운을 유지한 채 부교주를 불렀다.
부교주는 방 안 한가운데 석판에 고이 누워 있었는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얼굴, 아니, 온몸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유는 고형계의 입에서 나왔다.
“부교주가 강시로 개조될지 그 누가 알았겠소.”
혈장정(血場停) 우백관.
남궁가, 거기서도 삼화라 불리었던 남궁유경을 건드린 게 화근이었다.
현 무림맹주 곽이천과 함께 무림 최강의 검객이라 불리우는 남궁천.
그가 우백관의 사지를 잘라놓겠다며 직접 흑룡강의 문을 두드렸다.
강약약강의 신조가 투철한 적라성은 급히 타협을 봤다.
일을 일으킨 우백관을 공개 처형하는 대신 뒤탈이 없게끔 부탁한 것이다.
혈교 교주가 허리까지 숙여가며 나왔으니 남궁천도 더 이상은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적라성이 자신의 오른팔을 그리 쉽게 버릴 리 없었다.
그는 약조대로 우백관을 죽인 후, 곧장 강시로 개조했다.
지금 이렇게.
“얼마나 끔찍한 힘을 가졌을지…….”
“좋게 생각합시다. 어쨌든 우리의 세력이 커지는 셈이니.”
“말도 잘 안 들어먹을 텐데 우리는 뭐가 우리오?”
“어차피 우리 원로들 영향력이야 이놈 살아 있을 적부터 바닥을 기고 있었잖소.”
“거, 조용히들 하시오.”
곧 깨어날 괴수가 만들어내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그나마 멀쩡한 나성로가 저지했다.
하지만 소란스럽지 아니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우백관.
원래부터 지랄 맞은 성격을 가졌던 그였다.
최강의 강시를 제조하겠다며 적라성이 이것저것 금술을 죄 박아 넣었으니 그 지랄은 한층 심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깨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대강 느낌만으로도 분명 좋지 못한…….
우백관이 눈을 뜬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눈알이 시뻘겠다.
그 불안한 색이 온몸으로 번지기까지 불과 찰나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일이 터졌다.
“……!”
혈수라철골강시(血修羅鐵骨僵尸).
사상 최강의 강시가 고형계의 머리통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
또다시 지긋지긋한 여정이 찾아왔다.
무신은 오가는 표국들을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하지만 잠시였다.
표국도 계속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차라리 길바닥의 돌부리를 세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을 더 세게 몰았다.
지루함이든 따분함이든 결국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면 절로 깨지게 돼 있었다.
그가 말을 멈춘 것은 갈림을 온전히 벗어난, 이제는 흑룡강이 더 가까워진 부근에서였다.
관도로 들어가는 길에 촌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관부들이 찾아오지 않을 듯한 아주 작은 촌.
그는 잠깐 여정을 중단했다.
여기서 중요한 볼일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