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5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5화
평생 간직해야 할
유림.
망령의 숲에서 그녀와 대련한 날만 해도 무려 10만 년이 넘는다.
무신에게 대련이란 것은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유청하를 상대로는 그 익숙함을 빌리지 않아도 됐다.
실력 차가 너무 컸다.
“그럼 시작할까요?”
“예.”
유청하가 검을 뽑았다. 마적들을 썰었던 자태가 위엄 있게 드러났다.
무신도 검을 꺼내 쥐었다.
두 남녀의 검에 번쩍거리는 내공이 감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멀리서 보면 반딧불 수만 마리로 보일 것이다.
물론 무신의 것이 더 압도적으로 밝고 짙었다.
유청하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역시… 대단해요, 최 소협.”
“유 소저가 더 그렇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해주에서와 비교하면 유청하는 지금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때보다 거의 곱절은 더 검이 크고 길었다.
정확히는, 검신에 맺힌 내공이.
“그럼 시작할까요?”
무신의 말에 유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와 하수의 대결이었으니 선공은 당연히 후자의 몫이었다.
유청하가 입을 앙다문 채 무신에게 달려들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그의 코앞까지 가 있었다.
신속하단 말로는 모자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첫 일격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내공을 줄기줄기 뽑아내는 검이 그의 빈틈을 노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만 빈틈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상체만 살짝 젖혀 그것을 피해냈다.
이어진 연계도 비슷했다. 그녀가 찌르는 족족 그의 몸을 빗나갔다.
그녀의 공격이 느린 탓은 아니었다.
아까 마적들은 이보다 더 느린 것도 못 피해 머리통이 잘리고 복장이 터져 죽었다.
“직접 느껴보니 최 소협이 얼마만큼 고수인지 알겠어요.”
“유 소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냐오냐해 주면 괜한 자만심만 생겨 사람을 그르치게 만드는 법이었다.
그래서 무신은 보이는 그대로 말해줄 심산이었다.
좋지 않으면, 즉시 고치게끔.
그런데 굳이 지적할 게 없었다.
유청하의 검술은 수준급이었다.
십오합을 부딪쳤을 때쯤, 무신은 설마 하며 물었다.
“백운격을 익히셨습니까?”
“네.”
백운격.
무신이 망령의 숲에서 통달한 그것을 유청하도 완벽히 몸에 익히고 있었다.
무신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봤자 햇수로 1~2년이나 지났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공통 검술 중 수위에 드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 정도 재능이면 삼봉에도 들겠는데.’
그는 군침을 다셨다.
삼봉의 고수가 아군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달콤한 일이었다.
물론 유청하 말고도 또 있었다.
백산에서 만난 이나희.
심지어 그녀는 삼봉이 되는 게 이미 확정돼 있었다.
회귀 전 기억이 그것을 증명했다.
“여기까진 것 같아요.”
대련은 금세 끝이 났다.
그러나 무신에게나 금세지 유청하에게는 세 시진도 넘는 고역이었다.
더 이상 쓸 체력이 없다는 듯 그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고요한 호숫가에 허억허억 가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면, 무신은 주저앉기는커녕 아직도 팔팔했다. 얼굴도 땀 몇 방울만 빼면 매끈했다.
가쁜 숨소리는 여전히 유청하의 입에서만 나왔다.
유청하가 겉옷을 풀어 헤치며 말했다.
“저, 백 년은 지나야 화산파에 복수할 수 있겠어요.”
“그보다 훨씬 빨리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요?”
“차이야 좁혀지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 소저 성장속도를 보니 강산이 변하기 전에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정말 ‘전력의 무신’을 이기는 것이라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 정도로는 불가능이었다.
백 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유청하가 망령의 숲에 들어가 수련하지 않는 이상에야.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물론 애당초 유청하 또한 무신의 말을 진담으로 듣지 않았다.
그녀가 겉옷을 아예 벗어 던지며 말했다.
“그치만 꼭 좁혀보도록 노력할게요.”
“아, 예, 그러시면 좋은…….”
덕담이 됐든 뭐가 됐든 한마디 해주고 싶은 무신이었으나 그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땅에 떨어진 뭇여인의 옷자락.
유청하의 백옥 같은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여기서 매듭 하나만 더 풀면 봉긋한 언덕 두 개도 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무신은 고개를 흔들며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유청하가 손부채질을 하며 가쁜 숨을 이어갔다.
“많이 덥네요.”
남녀 간 육체미야 말 그대로 남녀일 때나 통하는 것이었다.
서로 무인이면 그냥 서로 무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무신은 아니었다.
왼쪽 뺨의 칼자국을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저 미모.
땀에 젖어 더욱 매혹스럽게 변한 저 미모.
그에게 그녀는 무인이기 전에 여자였다.
“저기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에요.”
“옷이 젖으면 더 찝찝하실 겁니다.”
“에이, 당연히 다 벗고 들어가야죠.”
무신의 머릿속에 순간 나신이 된 유청하가 그려졌다. 태산의 절경인들 그보다 아름다울까.
무신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아랫 지역으로 갈 생각이에요. 공통 검술 교본을 좀 구해서.”
공통 검술 교본.
이미 익힌 백운격, 혹은 박룡격이나 월풍격 등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 역시 무신은 이미 다 익혔다.
“소저는 금방 습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럴까요?”
“그럼요. 겪어본 제가 잘 압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신은 목을 축였다.
시원한 것이 넘어가자 목덜미부터 시작해 온몸이 찌릿했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대련이 주는 성취지.’
그는 입꼬릴 말아 올리며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대련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그새 울긋불긋 노을이 펴 있었다.
그는 호숫가를 등지고 그것을 바라봤다.
왠지 모를 감성이 피었다.
앞으로의 미래도 저리 찬란할까.
유청하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협.”
“예.”
“우리 이제 다시 헤어져야겠죠?”
헤어짐.
만남이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따라오게 마련이었다.
무신은 시선은 계속 노을에 둔 채 ‘그렇겠지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그 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부탁이요?”
무신은 그제야 유청하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머뭇대던 그녀가 빠끔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왜… 그… 있잖아요.”
“예?”
왜…….
그…….
뭐가 있습니까?
하는 의문이 ‘예?’ 하나에 함축되어 있었다. 무신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다.
“유 소저?”
무신이 의아하게 물었을 즈음에야 그녀는 ‘네……!’ 하고 겨우 반응했다.
“무슨 부탁을 하시려길래 이리 뜸을 들이십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
말을 못 잇더니 이제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러다 갑자기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무신이 더욱 의아해지는 순간, 유청하가 양손을 엉덩이 뒤로 감추고는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들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감겼다.
“좋아해요, 최 소협.”
소곤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무신의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유청하의 입술이었다.
그것은 눈을 한번 깜빡이기도 전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저 멀리 나무 뒤로 달아났다.
“…….”
파천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도선유가 찢은 손수건을 건네며 입을 맞췄던.
무신은 아직 그 날을 잊지 못했다.
여인이 아닌 소녀의 입술이었을지언정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만은 분명 진심이었다.
유청하도 그렇다.
그녀는 심지어 좋아한단 말을 직접 꺼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이래봤자 해주 때와 이번 갈림 때가 전부였다.
무신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사모란 감정을 쌓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제가 좋으십니까?”
무신은 아직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유청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답했다.
그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망령의 숲에서 처음 유림을 봤을 때도 머리가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할수록 묘했다.
“지금 말씀 안 드리면 계속 못 드릴 것 같아서…….”
조용조용한 목소리는 여전히 나무 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쨌든 상대방이 말을 했으니 이제는 무신이 말을 할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상황.
살아오면서 분명 있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그냥 무감각해진 느낌이었다.
망령의 숲에서의 22만 년이 문제였을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그는 유청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 나오십시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아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제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좋아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렇게만 끝맺었다. 어줍잖은 사족을 다는 것은 그녀에게 괜한 미련만 줄 것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녀와의 인연이 길어지면, 그도 그녀에게 정을 품게 될 지도 몰랐다.
***
강호의 세력은 크게 세 곳으로 분류된다.
정파.
사파.
그리고 마교.
세 곳은 강호의 역사가 시작되던 날부터 지금까지 늘 원수처럼 지내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추구하는 바와 성향이 다르니 사소한 것에서부터 마찰이 빚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옛말이었다.
마교가 요 100년 사이 갖가지 마공으로 몸집을 불리고, 사파는 소속 문파가 제각기 분열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크게 세 곳이라 분류되던 강호의 세력, 그러니까 강호삼분지계(江湖三分地界)가 무의미해졌다.
사파는 더 이상 낄 자리가 없었다.
물론 정파는 무림맹을 필두로 꾸준히 제 힘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교의 성장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그곳에서 절세의 고수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러니 강호의 패왕은 자연스럽게 마교의 자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수십 년 전 마교 교주가 바뀌면서 더욱 급물살을 탔다.
그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화경에 올랐으며 마교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교주에 오른 것도 그의 나이 불과 서른일곱 때의 일이었다.
그가 즉위한 이후로는 꿋꿋하던 정파마저도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감히 마교의 말을 거역할 생각을 못 했다.
그쪽 교도들이 정파의 영역에 침입해 주민들을 떼로 썰어 죽여도 예예 그러셨습니까 하는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으니 그 산증인이 강호 지천에 널려 있었다.
곽이천이 나타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화산파의 장문으로 있었던 그는 오랜 폐관수련 끝에 생사경의 경지에 다다랐고, 그 길로 무림맹을 집어삼켰다.
말 그대로였다.
대외적으로는 원로들의 추천을 받았다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무력을 이용해 자리를 빼앗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많은 추앙이 쏟아졌다.
강호는 어차피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과정이 어찌 됐든 정파인들에게는 강한 자가 우두머리로 있는 게 더 중요했다.
당연히 곧 그 효과가 증명됐다.
곽이천은 마교에게 굽실거리던 암묵적인 갑과 을의 관계를 무참히 깼다.
정말, 무참히 깼다.
“광군학관을 쳐라.”
광군학관은 초대 마교 교주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마교의 무공학관이었다.
곽이천은 무림맹 타격대주들에게 그곳을 급습하기를 지시했다.
내내 그를 지시하고 나섰던 타격대주들도 이번에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광군학관은 비단 그 목적을 떠나 마교의 상징과도 같은 곳.
그런 곳을 친다는 것은 정마대전 수준이 아니라 아예 끝장을 보겠단 뜻이었다.
그러나 곽이천은 요지부동이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정하거라.”
“알겠습니다.”
맹주의 말은 곧 법이자 반드시 받들어야 할 신조였다.
타격대주들은 결국 지시에 따랐다.
곽이천이 자신을 지지하던 이들조차 난색을 표하는 일을 강행하는 이유야 뻔했다.
일전의 마청대 사건.
그는 그것에 계속 이를 갈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러나 사실 마청대 사건은 불씨를 지폈을 뿐이었다.
그는 애당초 마교를 치려 했다.
천하(天下).
누구도 얻지 못한 위대하고도 장대한 것을 자신의 손으로 얻고 싶었다.
물론 마교를 끝내도 새외무림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을 잡았는데 늑대 따위가 두렵겠는가.
“아주 마교의 뿌리를 뽑을 것이다.”
일부에게 광군학관 습격을 지시한 곽이천은 곧장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신강.
마교의 본거.
개중에서도 교주를 비롯, 숱한 마교 고수들이 머무는 곳.
마교 교원을 칠 생각이었다.
“각 문파의 장문들과 가주들을 모두 소집하라.”
어느 타격대주의 말처럼 이것은 정마대전이 아니었다.
세력을 걸고 다툴 참극이었다.
***
갈림에서의 밤은 짧았다.
주민들의 지대한 관심 탓에 객잔을 두고 호숫가에 잠자리를 펴서가 아니었다.
유청하와 나란히 누워 아침녘이 떠오르는지도 모르고 담소를 나눠서였다.
덕분에 무신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단잠을 잤다.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 운기조식을 행하던 그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대신 네모나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펴드니 오목조목한 글자가 줄줄이 써진 편지였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최 소협.
마지막 문구를 읽으며 무신은 엉덩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편지를 품에, 아니, 가슴에 넣었다.
평생 간직해야 할 고마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