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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4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4화

이어갈 인연

 

 

맞은편 골목의 건물이라고는 해도 거리가 제법 있었다.

거기다 그 건물의 꼭대기였다.

그럼에도 무신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

이유야 뻔했다.

그녀의 왼쪽 뺨에 칼자국이 있었다.

그가 본 여인 중에서 저런 흉터를 가진 이는 딱 한 명뿐이었다.

유청하.

화산파의 제자로 있었으나 스승이 그 화산파에게 암살을 당한, 그래서 해주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던 여인.

그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연을 다시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북에서 하성운을 만났던 것처럼.

 

“웨, 웬 놈이냐!”

 

그 사이 마적들 자리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말들이 대가리를 쳐들고 날뛰었다.

정신을 못 차리기는 그 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다급히 말에서 뛰어내린 마적 하나가 둥그스름한 무언갈 밟았다.

제 두목의 머리통이었다.

방금 전까지 두 눈 번뜩이며 살아 있었던 그것은 이제 길바닥 돌부리 신세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모퉁이에 가 처박혔다.

비참한 최후였다.

 

‘머저리 같은 놈,’

 

무신은 재미난 광경을 지켜보며 큭큭 웃었다.

 

“저쪽이다! 죽여!”

 

마적들은 의외로 빠르게 정비했다.

창객들은 창을 뒤로 젖혀 유청하를 겨냥했고, 부객들은 성큼성큼 건물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무신의 눈에는 허둥지둥하는 것으로 보였다.

일백의 머릿수.

대열을 갖춰도 지저분해보일 판에 저리 무질서한…….

거기까지였다.

창객들이 바람 앞에 갈대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단순히 뒤로 넘어간 게 아니었다.

목구멍에서 피를 토했다.

 

“커헉!”

 

그 탓에 수십 개의 창은 던져지지도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자들이 있었으나 도로 창을 주울 생각은 못 했다.

몸을 돌려 그대로 도망쳤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은 판단이었다.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그들은 제 두목처럼 머리통이 잘려 죽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

깨끗하게 잘린 단면 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검풍이었다.

많이 강해졌네, 무신은 검을 거두며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는 유청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다 해결할 것이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저, 저거 뭐 하는 년이야!”

“다들 도망쳐!”

 

그녀를 쫓아가던 부객들이 차디찬 주검으로 변해 건물과 골목 안쪽에서 굴러떨어졌다.

하나 같이 목덜미가 예리하게 잘려 있었다.

이번에는 검풍이 아니었다.

순수한 검술.

이리 빠른 시간에 저리 많은 수를 잡았다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쾌검을 쓴 거지.’

 

직접 보지 않아도 무신의 눈에는 다 보였다.

그는 검술 하나만 22만 년을 갈고 닦은 괴물이었다.

 

“…….”

 

시끌시끌했던 거리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황천길에 발을 걸친 반시체들이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으나 그도 곧 멎었다.

백여 구의 시체.

머리통 잘려 나간 것은 의외로 멀쩡한 편에 속했다.

복장이 터져 창자가 죄 빠져나왔거나 사지가 끊어져 과연 사람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노련한 무사가 봐도 역할 광경이었다.

그런데 유청하는 눈살 한번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마, 마적들이 전부 죽었어!”

“이, 이게 무슨 일이래?”

“대체 누가…….”

 

갈림 주민들은 그때쯤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칼부림은 진즉부터 났지만, 객인들이 멋도 모르고 마적들에게 달려들다 죽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어, 어머나!”

 

그러다 유청하를 발견하고는 다들 놀라 뒤로 자빠졌다.

그녀의 온몸이 피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다.

그녀가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란 뜻이었다.

 

“다, 당신이 한 거요?”

 

어느 중년인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으나 그녀의 신경은 딴 데 가 있었다.

기척도 없이 서 있는 웬 청년.

이제야 본 모양이었다.

 

“…….”

 

유청하가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무신은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눈이 커졌다. 못 볼 것을 봤단 기색이었다.

못 볼 것.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녀의 입가에 점점 미소가 자리했다.

비로소 그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가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겼다.

 

“최 소협! 최 소협 맞죠!”

“예, 맞습니다.”

 

기쁜 것이야 무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그녀야 이제서 그를 봤지만 그는 그녀가 건물 꼭대기에 있을 때부터 봤다.

다만 지금 상황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원래 포옹까지 하는 사이였던가.

가볍지도 않았다.

젖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아주 꽉 안겨 있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잠깐이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가 북받쳐 울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 그는 굳이 묻지 않았다.

원래 아픔이 많은 여인이었다.

 

“저 검객은 또 누구래?”

 

자리는 여전히 술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이들은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유청하의 피.

정확히는, 마적들의 피.

저것에 자신의 그것도 섞일까 그들은 두려워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어… 예… 그러셨군요.”

 

무신은 순간 이곳이 오작교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유청하에게 지금 그는 잠시 작별했던 연인이었다.

얼떨떨하게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빠끔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눈가가 그새 팅팅 부어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또 만날 인연이었나 봅니다.”

“사실은 제가 꼭 만나길 기도했었거든요.”

“하하, 그러셨군요. 헌데 이거는 언제까지…….”

 

무신은 등 뒤에서 점점 더 조여 오는 유청하의 손깍지를 가리켰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그의 품에서 빠졌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이제야 알았단 얼굴이었다.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반가움의 포옹이란 말도 있는 것을요.”

 

그녀의 뺨이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올랐다. 마적들의 피도 저리 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신은 그녀에게 이런 엉뚱한 면이 있나 싶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분위기를 돌리는 것은 무신의 역할이었다.

유청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네, 네!”

 

떠듬거리며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무신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침없이 마적을 잡아나가던 사냥꾼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어느 순수한 여인이었다.

 

유청하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최 소협은 잘 지내셨나요?”

“저야 물론 잘…….”

 

말을 이어가려던 무신은 숨죽인 채 자신과 유청하를 주시하는 갈림 주민들을 쳐다보았다.

울타리만 쳐 있으면 아주 동물원이 따로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살짝 귀엣말을 건넸다.

 

“장소를 좀 옮길까요?”

 

***

 

섬서성 화산파.

무림맹과 마교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면서 그곳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파의 모든 문파는 무림맹 부속이기 때문에 무사차출을 요구하거든 무조건 지원을 보내야 했다.

물론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곽이천.

무림맹의 현 맹주가 화산파의 전 장문이었다.

화산파로서는 그냥 장문의 지시에 따르는 격이었다.

 

“그나저나…….”

 

바쁘게 일을 처리해나가던 현 화산파의 장문, 백형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유청하, 그년은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자리에는 그 말고도 몇몇 간부들이 앉아 있었다.

개중 하나가 말했다.

 

“신경 쓰실 거 있겠습니까?”

“영 뒤가 쑤셔서 말이지.”

“그래봤자 풋내기가 아닙니까?”

 

백형도의 고개가 저어졌다.

 

“그년이 재능 하나는 끝내줬지 않느냐. 당장 소군형을 죽이고 도망친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소군형만이 아니었다.

당시 유청하를 죽이기 위해 해주로 갔던 화산파의 무사는 열댓 명도 훨씬 넘었다.

간부들의 안색도 조금 굳어졌다.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수련만 하다가 복수를 위해 화산파를 찾아온다… 라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백형도가 눈을 빛냈다.

 

“허나 사실 니들 말이 맞다. 대화산파를 상대로 제깟 년이 뭘 할 수 있겠느냐.”

 

***

 

“여기서 수련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시장 외곽의 어느 호숫가.

무신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유청하에게 그렇게 말했다.

 

“계획된 건 아니었어요. 여차저차 하다 보니 갈림까지 오게 되더라구요.”

“하기야 무인의 삶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무신도 최초에는 산동으로 들어왔으나 유청하의 말처럼 여차저차 하는 사이 산서에 하북에 요령까지 거쳐 이곳 갈림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엄밀이 따지면 그와 그녀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행보는 의도된 것이었다.

혈교.

그곳을 궤멸시키기 위해.

 

유청하가 이고 있었던 배낭에서 주먹밥과 몇 가지 주전부리를 꺼내며 말했다.

 

“드셔보세요. 맛은 장담 못하지만.”

“객지에서 먹는 게 어찌 맛없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 유 소저가 만들어준 것인데.”

 

우리 유 소저란 말에 유청하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며 손사래를 쳤다. 부정하는 것과 달리 뺨은 아까 막 포옹울 풀었을 때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무신은 주먹밥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헌데 이건 웬 겁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막 갈림을 나가려던 참이었거든요. 이동 중에 먹으려고 쏴놨죠.”

“아이구.”

 

무신은 반대쪽 손에도 들고 있었던 주먹밥을 내려놓았다.

 

“제가 중요한 양식을 까먹고 있었군요.”

“아이 참. 괜찮아요. 이거 싸는 데 얼마나 걸린다구요.”

“그래도 괜히 시간이 지체되실까 봐서.”

 

마음에도 없는 배려였다. 무신의 손은 이미 다시 주먹밥을 입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유청하가 입을 가린 채 웃으며 말했다.

 

“그거 좀 지체되면 어때서요. 그리고 대신 최 소협을 만나고 있잖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저 최 소협 보고 싶어서 기원까지 했다니까.”

 

기원.

무신은 자신이 유청하에게 그 정도 사람이었는지 의아했으나 돌이켜 보니 충분히 그럴 법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그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녀를 죽이러 왔던 화산파 무사들, 그리고 살막들을 죄다 처치해 주었으니까.

 

무신은 주먹밥을 그새 두 개나 더 먹어치우고선 물었다.

 

“너무 맛있습니다, 유 소저.”

“그래요?”

“예. 입에서 살살 녹는군요.”

“그럼…….”

 

무신은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며 입술을 꼼지락거리는 유청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약간 뜸을 들이다 말했다.

 

“평생 해드릴까요?”

“예?”

 

뜬금없는 말에 무신은 그만 사례가 걸렸다. 먹은 주먹밥이 도로 넘어올 것 같았다.

유청하가 얼른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는 ‘괜찮습니다’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농담을 뭐 그리 진담처럼 하십니까.”

“…그랬나요.”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그러나 설령 진심이었을지언정 무의미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화산파 복수’라는 더 중요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평생 함께 살 형편이 결코 못 되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것을 잘 알 것이다.

 

무신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복수는… 계속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물론이죠.”

 

짤막한 대답에 분명하고 확고한 의지가 어려 있었다. 무엇도 유청하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키워준 스승이 그리됐으니 아무렴 화산파라도 응징하고 싶겠지.’

 

무신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만 갈 뿐이었다.

사실 유청하의 복수가 성공할 일은 극히 적다.

아니, 불가능하다.

일개 무사가 무너뜨리기에 화산파란 곳은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다.

당장 무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유청하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인 걸요.”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며 무신은 고민에 빠졌다.

애당초 그가 해주에서 그녀를 구한 이유는 그녀의 자질 때문이었다.

삼봉(三鳳)에 비견해도 될 만큼 아주 대단한 그것.

그러나 이대로 가면 결과는 뻔했다.

결국 화산파에게 당할 것이다.

해주에서는 알고도 보내줬는데, 지금 이렇게 또 재회하니 마음이 바뀌었다.

놔두면 필히 고수가 될 여인.

무신은 유청하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괜찮은 제안 하나를 떠올렸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유 소저.”

“네?”

“저와의 대련에서 이기시면, 스승의 복수를 하러 가는 겁니다.”

 

유청하는 당연히 난색을 표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예상한 대답이었다.

무신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이기지 못하시면 절대 화산파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유 소저가 더 잘 아실 텐데요.”

“…맞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라는 것은 순 거짓말이었다. 무신은 사실 화산파보다 더 위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림맹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바로 그였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검신.

그리고 유림의 검.

그것의 온전한 힘을 찾았을 때의 경우였다.

 

유청하가 무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길 자신은 없지만… 그동안 제가 얼마만큼 강해졌는지는 저도 알고 싶어요.”

 

무신은 빙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어쨌든 그가 바라던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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