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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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3화
재롱
무신은 이미 흑라신검이란 철교 교주의 상징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또 무슨 검이 필요하겠느냐마는…….
흑라신검이 숱한 명검 중에 하나라면, 그 검은 숱한 명검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한 것이었다.
빙룡검(氷龍劍).
빙룡의 뿔을 잘라 만든 것으로 흔하디흔한 고철검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검 자체에 빙룡의 기운이 어려 있다. 일종의 내공이 씌워진 격이다.
또한 특유의 냉기가 검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도 없다.
‘성질만 놓고 보면 마교의 마검인데, 파괴력은 더 강하단 거지.’
무신은 군침을 다셨다.
그러나 현재 빙룡검의 소유주는 청영풍(靑影風) 해월영이었다.
북해빙궁 1인자의 애검인 것이다.
그런 것을 달라 했으니 백충일의 반응이야 뻔했다.
“그게 그러니까…….”
백충일이 이맛땀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빙룡검은 궁주님의 애검입니다…….”
“그렇군요.”
무신이 수긍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백충일이 냉큼 덧붙여 말했다.
“예예! 해서 좀 무리가 있습니다.”
“허면…….”
“예?”
무신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뭐든 다 해줄 수 있단 말씀은 왜 하셨습니까?”
“아니, 저…….”
“이렇게 분명히 안 되는 게 있는데 말이지요.”
선뜻 대답하지 못하던 백충일이 갑자기 ‘최 대협’ 하고 의미심장하게 무신을 불렀다.
백충일의 얼굴이 확 바뀌어 있었다.
“대신 다른 제안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어떤?”
다른 제안이라 해봐야 금은보화나 작은 권력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신은 백충일을 쳐다봤다.
그런데…….
“빙월대 대장직을 드리겠습니다.”
빙월대(氷月隊).
북해빙궁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로만 구성된 타격대.
심지어 그곳의 대장이라면, 북해빙궁 최상위에 속하는 권력이었다.
무신이 생각하던 권력보다 수십 배는 높은 셈이었다.
게다가 자금 운용도 자유로우니 그 역시 단순한 금은보화 수준이 아니었다.
무신은 얼떨떨한 기분을 감추며 물었다.
“송사리에게 바닷물은 너무 큰물이 아닙니까?”
“어디 최 대협이 송사리십니까?”
“무인을 판단함에 있어 무위가 다는 아닌 줄 압니다.”
백충일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필요한 인품이나 경험은 그 자리에 앉은 후에 터득해도 늦지 않습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최 대협에겐 오히려 바닷물이 작기도 하고요.”
아부 따위가 아니었다.
백충일은 지금 진심이었다.
‘빙월대 대장직을 자기 멋대로 꺼낼 수는 없는 거니까.’
무신은 조금 흥분됐다.
그래도 빙룡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제안이었다.
북해빙궁에서 자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느냔 것.
그것에 말이다.
무신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좋습니다. 결의를 맺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제 가는대로 빙월대 대장직을…….”
“그것은 우선 보류해 두십시오. 제가 지금 어디 묶여 있을 형편이 못 됩니다.”
혈교를 궤멸시키겠단 우선의 목표가 있었다. 빙월대 대장직은 그 이후에 가서 맡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크게 할 뜻도 없었다.
무신은 정말 자신에 대한 북해빙궁의 마음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빙룡검에 대한 미련은 여전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빙룡정이란 곳에 빙룡이 산다 들었습니다.”
“예? 아, 예예.”
대답은 했으나 백충일의 얼굴에 설마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무신의 입은 그 설마를 그대로 내뱉었다.
“직접 들어가 빙룡을 잡은 후, 빙룡검을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빙룡정(氷龍庭).
말 그대로 빙룡이 존재하는 뜰이었다.
그곳은 북해빙궁의 외곽에 있었는데, 찾는 사람이 한 해에 열도 되지 않았다.
지리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처에만 가도 빙룡의 기운으로 인해 웬만한 무인도 급사하는 탓이었다.
그럴지언데 직접 들어간다고 하니… 백충일의 반응은 아까보다 더 심각했다.
“노, 농이시지요?”
“농은요. 참말입니다.”
“…….”
백충일은 말이 없었다.
그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그냥 미친 짓이었다.
“북해빙궁 역사에 빙룡을 잡아 빙룡검을 만든 전례는 손에 꼽습니다.”
“예.”
“예?”
무신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전례가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전례가 무려 수백 년 전의 일입니다. 현 궁주님의 빙룡검도 그때 나온 것이고요.”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현 궁주, 그러니까 해영월이 수차례 빙룡 사냥에 나섰다가 모두 실패한 것도 알고 있었다.
무신은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있는 것을 받을 수 없다니 만드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허나… 그렇다고 겨우 결의를 맺은 분을 잃을 순 없습니다.”
“제가 빙룡을 잡지 못할 거라 보십니까?”
“예. 절대 잡지 못하십니다.”
“빙룡도 결국 영물입니다. 못 잡을 바 무어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전례도 있고요.”
“초절정의 고수가 서른도 넘게 투입됐습니다. 수백 년 전의 전례에서는.”
백충일이 숨도 안 쉬고 말을 이어갔다.
“헌데 지금은 최 대협 혼자 가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서른이 겨우 한 것을 혼자 한다는 게… 그리고 궁주께서도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신 적이 허다합니다. 당장 최근에도 그랬고요.”
역시나 해영월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무신은 모르겠다는 척 물었다.
“궁주님은 현경의 경지에 올라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런데도 실패하셨단 것은… 빙룡이 현경보다 강하다, 이 말씀이십니까?”
무신의 말처럼 빙룡도 결국 영물이었다.
그런데 대북해빙궁의 궁주가 그깟 괴수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백충일이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단지 빙룡정에 감도는 기운을 견딜 수 없으셨던 것이지요.”
“수백 년 전 서른의 초절정 고수들은 단체로 강기를 쳐서 막았던 것이고요?”
“예. 물론 중심은 화경이었던 당시의 궁주가 잡고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헌데 그게…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화의 흐름상 그냥 물음표를 던졌을 뿐이었다.
무신은 빙룡의 현재가 다른 것 같다는 백충일의 말의 의미를 알았다.
그날 이후로 새롭게 태어난 빙룡.
놈은 수백 년 간 아무 탈 없이 묵으며 영기(靈氣)를 계속 축적했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초절정 수십, 심지어 현경까지 이 악물고 덤벼든들.
“…해서 그렇습니다.”
과연 무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 백충일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무신의 뜻은 더 확고해질 뿐이었다.
이유야 뻔했다.
무신에겐 수백 년 묵은 빙룡의 영기도 견딜 힘이 있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습니다. 아, 물론 이 또한 결의를 맺기 위한 조건입니다.”
영기라고 해봐야 결국 추위.
그는 자연경을 다루는 검신이었다.
***
섬서성 종남파.
장문 진해천에게 서신이 하나 도착했다.
“곧 무림맹과 일전이 있을 듯하니 종남파는 대마교의 끄나풀 노릇을 확실히 하도록 하라… 우라질, 결국 일이 터지는 건가.”
***
백충일은 떠나갔다.
그는 빙월대 대장직은 물론, 무신이 빙룡정에 들어가겠단 것까지 모든 조건을 맞춰주었다.
그는 결국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신성.
그것도 다른 신성들을 압도하는 대(大)신성.
놓쳤을 때의 후회를 떠나 다른 문파가 가져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알겠습니다, 최 대협.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이탤릭)
백충일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는 ‘볼일이 끝나는 대로 북해빙궁에 갈 터이니 결의는 그때 맺도록 합시다’ 하는 무신의 말에도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 않은 갑과 을이었다.
물론 무신은 일부러 갑을 자처했다. 회귀 전 15년 동안 늘 을로 살아와서가 아니었다.
결의.
라는 말로 포장된 거래.
주고받음에 있어 어떻게든 마진을 많이 남기는 게 거래란 것의 목적이다.
그는 그 법칙에 따랐을 뿐이었다.
뭐, 다 빙룡을 잡을 확신이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결과를 모르고 하는 일과 알고 하는 일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해주보다 더한 동네군.”
흑룡강 바로 아래 지역, 갈림.
무신이 그곳에 도착한 것은 빙월대와의 만남 이후 약 나흘 만의 일이었다.
초입부터 다 쓰러져 가는 집채들이 눈에 띄었다.
들어가면 더 가관이었다.
길 한복판에 사람 머리가 굴러다녔고, 시장 좌판에 버젓이 창부가 올라와 있었으며, 길 가는 행인들의 눈빛은 사흘 밤을 지센 것처럼 죄다 퀭했다.
갈림이 이렇게 망가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적.
흑룡강의 그놈들이 가까운 이곳으로 내려와 횡포를 부린 탓이었다.
온갖 재물을 약탈해 갔으니 건물이든 사람이든 멀쩡한 게 더 이상했다.
결국 이 모든 광경은 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물론 이곳만이 흑룡강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당장 요령만 해도 며칠거리였다.
그러나 마적들은 다른 곳은 꿈도 못 꿨다.
자신들보다 더 강한 문파가 터를 잡고 있으니까.
그래, 해주나 갈림이나 다 문파의 부재가 만들어낸 사지(死地)였다.
자의든 타의든 지켜줄 이들이 있었다면 결코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다.
다만 문파의 존재가 꼭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고는 볼 수 없었다.
세인들이 치를 떠는 마교나 혈교도 결국 문파였다.
결과적으로 가장 확실한 답은…….
‘스스로가 강해지는 거지. 어디 나가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무신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회귀 전의 그는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다. 비루한 삼류무사였고, 내내 그렇게 살다 죽었다.
하지만 회귀 후의 그는 달랐다. 시작부터 검신이었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솨아아아아아아.
마침, 그에게 또 한 번 승리를 가져다 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방향은 북동.
위치는 관도 너머 숲길.
상인들이든 행인들이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가운데, 그만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얼른 기어 나오지 못해!”
얼굴 반이 수염에 뒤덮인 사내가 어느 순간 나타나 불호령을 터뜨렸다.
그의 뒤로 족히 일백은 될 듯한 마병들이 줄줄 도열했다.
흑룡강의 마적들이었다.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여기 나와 있다.”
설마 하니 안 숨고 나와 있었을 줄은 몰랐는지 사내가 뒤늦게 무신을 쳐다보았다. 아닌 말이 아니라 웬 병신을 보는 얼굴이었다.
그럴 것이 사내에 비하면 무신은 너무도 초라했다.
백 대 일의 머릿수.
번쩍거리는 은빛 도끼와 달리 밋밋한 흑빛 검.
사내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 물었다.
“우리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힘이 드러나지 않아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반박귀진.
하룻강아지가 범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디 변두리에서 검객 흉내 좀 내다 온 모양인데, 멍청하기는.”
피로를 풀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갈림에 하루 이틀은 묵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무신은 사내를 그냥 놔두었다.
어린애 재롱 보는 맛이 났다.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입을 나불…….”
“두, 두목!”
사내의 머리통이 잘려 나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깨끗하게 잘린 단면 뒤로 경악스럽게 굳은 부하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뭐가 어디서부터 날아와 제 두목 머리통을 가져간 것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고개만 두리번두리번.
진짜 병신 멍청이는 저들이었다.
그에 반해 무신은 한눈에 그 방향을 찾았다
“응?”
바로 반대편 골목 건물의 꼭대기.
낯익은 얼굴의 여인이 검을 든 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