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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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81화
동경의 대상
모용가가 옛 위상을 찾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후의 일이었다.
이유야 뻔했다.
그때쯤 모용수결이 죽었다.
훼방꾼이 사라졌으니 가주는 즉각 기존 무공에 새로운 무공을 덧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고.
“고맙소, 최 대협.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나나 분가 가주들이나 포기하던 참이었소. 장로님 뜻이 워낙 강경하셔서 말이지. 헌데 최 대협 덕에 일이 순탄하게 풀렸소.”
그런데 무신으로 인해 그것이 결국 10년이나 앞당겨지게 된 셈이었다.
가주가 동경 어린 눈빛으로 무신을 바라봤다.
“또 빚을 지게 되는구려.”
“빚은요. 그저 제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개인적 견해라는 것도 다 우리 모용가를 생각해 줬기에 나온 것 아니겠소?”
그리 봐준다면야 무신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는 중천에 가 있는 해를 보며 가주를 돌아봤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벌써 가시오?”
이미 사흘을 묵은 참이었다.
볼일은 진즉에 끝났는데 팔자 좋게 언제까지고 뒹굴 수는 없었다.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떠날 사람은 가야지요.”
“그래도 아쉽구려. 마땅히 챙겨준 것도 없는데.”
“챙겨준 게 왜 없습니까? 제 생애 이런 호의호식은 처음 해봤습니다.”
첫날에는 갖가지 보석과 전표를 받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요령에서 나는 여럿 산해진미를 맛보았다.
심지어…….
“제 막내딸이 지금 혼기인데, 괜찮으시면 얼굴 한번 보고 가시겠소?”
혼자리까지 들어왔다.
무신은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여인 치맛자락에 숨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남녀가 뒤섞인다고 할 일을 못 할 바는 없겠으나 혼자보단 분명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막내딸이 너무 부담스럽단 점도 컸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나이 이제 열다섯.
신장은 그의 어깨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작았고, 외모도 예쁘단 말보다 똘망스럽단 말이 더 잘 어울렸다.
그래, 그냥 아이였다.
‘그러고 보니 선유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는 파천에서의 인연을 떠올리며 막내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선유의 나이와 외모도 꼭 이만큼이었다. 2년이 흐른 지금은 많이 성숙해졌겠지만.
가주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더 깊은 관계가 되면 좋을 텐데… 허나 대협의 뜻이 그렇다면 내 이 이상 묻지 않겠소.”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니. 그것은 독단으로 밀어붙인 내가 할 말이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주의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모용수결도 거뜬히 잡아내는 고수.
딸을 구해준 은인.
그에게 무신은 여러모로 놓치기 싫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만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신과 함께했던 이도 그랬다.
“가시는군요, 무사님…….”
모용선화였다.
무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어딘지 서글펐다.
어쩌면 그녀는 가주와 다른 의미로 무신을 놓치기 싫은 것일지도 몰랐다.
예컨대, 사모했다거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제 맘을 속으로만 삼킬 것이다.
깨졌을지언정 그녀는 이미 혼인을 약속했던 몸이었다. 다른 이에게 마음을 줄, 그리고 받을 형편이 못 되었다.
“그간 즐거웠습니다, 모용 소저.”
“네. 저도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너무 감사했어요.”
“감사, 감사, 감사.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다음에 만나거든 벗처럼 담소나 나눕시다.”
무신은 그녀에게 장난 삼아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정말 가보겠습니다. 그럼’ 하고는 모용가를 나섰다. 가주가 가는 길까지 사람을 딸려 보내준다고 했으나 괜찮다며 거절했다.
목적지는 흑룡강.
거기서도 혈교.
애꿎은 모용가의 가솔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지난 사흘, 건초를 양껏 먹은 말이 힘차게 굽을 내디뎠다. 모용가를 가리키는 문패가 점점 작아졌다.
***
강호 북서의 어느 외딴 골짜기.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나 그곳은 야밤처럼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우거진 나무 탓이 아니었다.
그 나무 위로 시꺼먼 안개가 껴 있었다.
빛은 거기서부터 차단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그곳에 안개와 분간이 안 되는 시꺼먼 말 다섯 필이 들어왔다.
놈들은 열 장쯤 더 가서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걸어간다.”
흑포를 두른 남자가 가운데 말에서 내렸다.
시꺼먼 안개와 시꺼먼 말.
그의 복장도 마치 그것의 연장선 같았다.
그를 따라 나머지 마주들도 고삐를 풀었다. 복장은 동일하게 흑포였다.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아도 어쩌겠어. 자칫하면 정마대전이 벌어지게 생겼는데.”
“그렇기야 하지만… 교주께서 방해받는 걸 워낙 싫어하시잖습니까?”
“그거 때문에 나 혼자 일 처리 했다고 하면 오히려 더 싫어하실 게다.”
정마대전.
교주.
마주들의 정체는, 정마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단 위험에 교주를 부르러 온 부교주 마정태와 이하 간부들이었다.
마정태가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어차피 이쯤이면 슬슬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시다. 방해라고까지는 생각 안 하실 게야.”
“잠이요?”
마정태가 그것도 못 알아듣느냔 투로 간부를 타박했다.
“저 시꺼멓게 낀 안개를 보아라. 교주께서 어떤 잠을 청하고 계시겠느냐.”
“아, 죄송합니다. 제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
“까딱하면 니들 목 정도는 그냥 날아갈 테니 조심하거라.”
“예?”
천재지변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는 하나 안개는 결코 아니었다.
단지 시야만 흐려질 뿐이었다.
그런데 어찌 목이 날아… 간부의 등골이 서늘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상한 돌풍이 그의 귓전에 파고들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간부들도 벌벌 몸을 떨었다.
마정태가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말했다.
“느꼈으면, 이제부턴 정신 바짝들 차려.”
“예……!”
그들은 한참을 걸었다.
보신경을 썼으면 금방이었겠으나 굳이 교주의 성질을 돋울 필요는 없었다.
평소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 같아도 수틀리면 괴수로 변하는 게 그의 성격이었다.
아니, 노인이란 말도 사실 우스웠다.
“무슨 일이냐.”
정확히 두 시진 후.
그들이 마주한 교주는 흑발을 휘날리는, 아주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근엄한 말투가 전부였다.
“그,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급한 일?”
“예, 예.”
자리를 비울 적보다 곱절은 강해진 교주의 기압 앞에서 마정태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가 그 정도였으니 이하 간부들이야 볼 것도 없었다. 몸이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다.
마정태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해서 지금 곽이천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교주의 어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그러나 저것이 ‘매우 분노했다’라는 것임을 마정태가 모를 리 없었다.
“혹여라도 정마대전이 벌어질까 하여 내 의중을 물으러 온 것이냐?”
“예, 제가 독단으로 행동할 일은 아닌 듯하여…….”
“후후.”
웃는 교주의 얼굴에 무언가가 꿈틀꿈틀 피어올랐다. 그것이 검붉은 기운으로 화하기까지는 눈 두어 번 깜짝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마정태의 몸도 수하들의 그것처럼 바짝 굳었다.
“전 맹주는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놈이었는데, 현 맹주는 사리 분별은커녕 아예 정신이 나간 놈이로구나.”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룻강아지는 제가 하룻강아지임을 깨달아야 더 이상 기어오르지 않지.”
교주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좋아, 내려가자.”
“예!”
일은 잘 해결됐다.
교주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우려했던 상황도 없었다.
그러나 마정태는 왜인지 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교주가 저토록 분노한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
널따란 강호 바닥에서 지역을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멀기도 멀거니와 가는 중에 기후가 변하는 일도 허다했다.
거창하게 무슨 기후란 말까지 쓰겠느냐마는 지금 무신이 경험하고 있었다.
막 모용가를 나설 때만 해도 늦봄이었는데, 어느샌가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사실 늦봄이나 초여름이나 다를 것은 없었다.
그는 웃옷을 펄럭이며 좀 더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은 아직까지는 힘이 넘쳤다.
바람도 서늘하게 부는 데다가 관도도 잘 포장되어 있어 걸릴 것이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무신에게 있었다.
그는 기나긴 여정에 상당한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죽하면 모용선화를 말동무로 데려왔어야 했단 후회까지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별안간 진동과 함께 땅이 뒤흔들린 것은.
무신은 급히 고삐를 풀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쿠쿠쿵!
저 멀리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다.
무신이 탄 말이 목을 쳐들고 울부짖었다.
제 벗들이 오고 있단 뜻이었다.
과연, 모래먼지가 가까워질수록 말들의 형상이 나타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댓 마리가 넘는 숫자였다.
특이한 것은 안장과 마두가 푸른색에 뒤덮여 있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아주아주 푸른색.
순간, 무신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저들을 알았다.
늘상 그렇듯 직접 본 적은 없으나 귀로는 수십, 수백 번도 더 들었다.
북해빙궁(北海氷宮).
저들은 그곳의 무사들이었다.
새외무림 중 최강이라 불리는 자들이 요령과 갈림 사이의 허허벌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혈교 서열 1위의 허대건을 보고도 멀쩡했던 무신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저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강력한 무위.
일개 문파 하나로 무림맹도 압도하는 엄청난 세력.
저들은 한때 그가 동경하던 자들이었다.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저들은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목적지는 금세 밝혀졌다.
열댓 마리의 청마가 꼭 무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신은 잠자코 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잠 한 번만 잘못 자도 목이 날아가는 게 강호란 세계지만, 저들은 안심해도 좋았다.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 진동도 그저 저들의 기압이 강했을 뿐, 적대 감정은 결코 아니었다.
“빙궁 무사들을 만난다라…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무신이 혼잣말을 중얼거릴 즈음, 열다섯 마리의 청마가 멈춰 섰다.
가까이서 본 청마의 자태는 더욱 눈이 부셨다.
북해의 빙궁.
그것을 상징이 말에 옮겨진 느낌이었다.
물론 청마의 자태 따위야 그 주인, 빙궁 무사들에 비하면 그냥 얼음조각 수준이었다.
처억!
육중한 발디딤과 함께 청마 위에서 내린 그들은 흡사 청룡을 연상케 했다.
존재만으로도 웬만한 고수는 다 씹어 먹을 기세였다.
회귀 전이었다면 무신도 그 상하 관계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벌써 기에 눌려 오금을 저리고 말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안장에 팔 한쪽을 올리고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청마.
그리고 빙궁 무사.
아무리 높아도 검신만큼은 아니었다.
그를 진정으로 떨게 만들려면, 북해빙궁의 최강자라는 청영풍(靑風) 해영월은 와야 했다.
“저…….”
열댓의 빙궁 무사들 중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자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무신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남궁가에도 안 밀릴 문파의 무사가 자신을 향해 저토록 저자세로 나온다는 것.
심지어 저 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화경쯤 되면 초면부터 대접을 받는 건가.’
그는 감회가 새롭단 말의 참뜻을 알 것 같았다.
남몰래 웃는 그에게 빙궁 무사가 말했다.
“최 대협 되시지요?”
“어, 예, 예. 그렇습니다만.”
일부러 놀란 척 대답한 게 아니었다.
무신은 지금 정말로 놀랐다.
대답하기 무섭게 머리를 팍 숙이는 빙궁 무사들.
동경의 대상이었던 자들이 자신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