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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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0화
돛대
사실 나쁠 것은 없었다.
해연수는 삼봉이었다.
실력은 이미 증명이 된 셈이니 그녀가 동행한다면 도움이 되면 되지 방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목이 걸린다는 게 문제였다.
정마대전.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 속에서 그녀가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중하십시오, 해 소저.”
“자중을 왜 해요. 무사님이 떠나가게 생겼는데.”
해연수가 단호하게 말하며 팔짱을 딱 꼈다.
해영월이 직접 언질을 놔도 저 팔짱이 풀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무신은 정신을 단단히 하며 재차 말했다.
“가면 목이 날아가실 겁니다.”
“무사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전혀 아깝지 않아요.”
“지금 당장 죽으라 해도 죽으시겠습니다, 아주?”
무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연수가 품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문파의 여식들이 으레 끼고 다니는 비수였다.
그녀가 그것을 제 목에 갖다 댔다.
“그럼 당장 죽을까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단검을 다시 품에 넣는 그녀를 보며 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못 당할 여자였다.
창밖으로는 어느 샌가 노을이 가득했다.
울긋불긋한 것이 마치 그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어쨌든 간에 해 소저는 여기 계시는 겁니다. 저를 따라오지 않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영월에게도 얼른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이제 빙궁을 떠나 신강으로 갈 것이라고.
해영월의 반응이야 안 봐도 뻔하기는 했다.
겨우 우리 사람이 되었는데 그렇게 또 위험한 곳으로 가버리면 어쩌냔 식이겠지.
해영월에게는 미안하지만, 결의를 맺었다 해서 무신이 거기에 맞춰줄 의무는 없었다.
무신은 애당초 든든한 빽을 얻으려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해영월을 이겨 버리면서 빽의 의미가 좀 퇴색됐기는 했지만.
막 등을 돌리려는 무신을 해연수가 불렀다.
“저, 무사님.”
“예?”
또 무슨 해괴한 말을 늘어놓을까, 무신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불안이 가득했다. 목구멍으로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남의 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수련했어요. 무사님의 위상에 비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결국 삼봉까지 올랐구요. 지금 하는 말도 그거예요. 무사님을 따라가도 짐이 되지 않은 자신이 있어요.”
“…….”
“괜한 고집에 어리광이 아니라는 거죠.”
목소리에서 진중함이 묻어 나왔다. 해연수같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굳게 다물어진 입술에서는 강인함마저 엿보였다.
무신은 그녀를 다시 보았다.
이제야 삼봉다웠다.
그러나…….
다시 봤을 뿐이었다.
그녀가 동행했을 때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삼봉이 감당하기에 지금 신강의 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거칠었다. 제 발로 황천길에 뛰어드는 꼴이었다.
무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 몸을 조금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두 뺨에 홍조가 어렸다. 이 순간 제 마음을 얼굴로 대신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고마웠다.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좋아해 준다는 것이.
그래서 이제부터 하려는 말을 꺼내기가 더 미안했다.
그녀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해야 했다.
세상에서 제일 못할 짓이 괜한 미련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무겁게 입을 뗐다.
“말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왜요?”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지그시 바라보며 하는 그의 말에 해연수의 입술이 머뭇머뭇했다. 굳이 열리지 않아도 안에 갇혀 있는 말이야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 있대두요.
믿어주세요.
저 할 수 있어요.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목구멍 밑으로 삼켰다.
그가 이미 다시 돌아서 있었다.
“종종 오겠습니다. 또 뵙지요.”
백년가약의 인연이었어도 이별은 짧게 하는 게 만남의 원칙이렷다.
무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성큼성큼 방을 빠져 나갔다.
“…나쁜 사람.”
그가 떠난 곳에 해연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
신강 마교 교원 외곽 북부.
본래는 수림(樹林)이었으나 연이은 교전으로 인해 그곳은 혈림(血林)이 되어 있었다.
당장 지금도 여기저기에 중상자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다리 양쪽이 모두 잘려 팔을 질질 끌며 움직인다거나, 잘린 옆구리 틈으로 밀려 나오는 창자를 손으로 집어넣는다거나, 독기에 맞아 온 몸이 굳어버린다거나.
아마 죽음이 더 달콤하게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버텼다.
버티고 일어섰다.
일어서지 못하면 손가락이라도 흔들었다.
강호무도란 것은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1순위로 둬야 했다.
목구멍에서 피가 터지고 있는 검객 하나가 겨우 손바닥 하나로 지혈을 대신하며 튀어 나갔다.
그는 점창파의 인고검(刃固劍) 도정기였다.
그의 손에는 피를 잔뜩 맞은 검이 들려 있었다.
개중 절반이 그의 피란 것을 감안하면 그는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목구멍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정파의 힘을 보여주마!”
그는 끝까지 목청을 울리며 항전했다.
하지만 기백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상대의 공세가 너무 강하고 높았다.
마교.
그곳의 서열 상위권을 차지하는 자들이 득실득실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면전을 건 건지 모르겠군.”
마교 서열 25위 탁호영이 도정기의 마지막 발악을 손가락 몇 개로 막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 몇 개.
도정기가 힘이 다해서가 아니었다. 원래 탁호영이 도정기보다 몇 급은 더 위에 있었다.
탁호영은 도정기의 머리통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터뜨렸다.
두개골이 으깨지며 손가락 사이로 희멀건 것이 줄줄 새어 나왔다.
뇌수였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탁호영은 맛있겠다는 듯 혓바닥으로 입술을 날름 핥았다.
몇몇 눈만 뜬 정파인들이 그를 괴물 보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공포에 떨었다.
저 신세가 이제 곧 그들의 신세였다.
그가 이미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빛이 번쩍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쾅!
동시에 지면이 요동쳤다.
피에 물든 아름드리나무들이 좌우로 쓰러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니 번개나 강풍을 추측하기는 힘들었다.
탁호영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훼방꾼을 찾았다.
그러나 잠시였다.
그의 눈알이 심히 흔들렸다.
엉기적엉기적 귀찮다는 듯 말을 몰고 오는 훼방꾼의 머릿수는 어림잡아도 수십이 넘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무리의 선두에 있었다.
황금빛 갑주.
강호, 아니, 중원에서 저것을 착용할 자들은 하나뿐이었다.
색목인.
혹은 이계인들이라 불리는 족속.
이곳의 진짜 괴물은 탁호영이 아니라 바로 저들이었다.
그들은 금방 도착했다.
“호오, 난리가 아주 난리도 아니구만.”
“…….”
머리가 샛노란 자가 중원어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교인 중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색목인들도 이제는 어엿한 중원인이었다.
탁호영이 주춤주춤 선두에 선 자에게 다가갔다.
레이스터 발콘.
색목인들 식으로는 소드 마스터, 중원인들 식으로는 화경 이상에 해당하는 고수였다.
“…여긴 무슨 일이오?”
“정마대전이 치러진다기에 잠깐 구경 나왔소.”
“구경?”
“원래 싸움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다지 않소?”
그렇게 말하며 레이스터가 껄껄 웃었다. 누구는 목숨이 오고 가는데 제삼자가 끼어들어 이러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굴욕적이었다.
그러나 탁호영은 무어라 입도 못 뗐다.
레이스터의 검질 한 번이면, 탁호영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해서였다.
그만큼 격차가 컸다.
그런데 탁호영이 굳이 입을 벌리지 않아도 레이스터는 검을 휘두를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마교고 정파고 그간 우리를 얕본 대가를 좀 치르셔야겠소.”
***
무신의 예상대로였다.
해영월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팽팽했던 얼굴에 잔주름이 한가득이었다.
“자네는 정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신분이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헌데 왜 남의 싸움에 끼어들겠단 겐가?”
무신은 솔직하게 답했다.
“제 힘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힘을 시험해 보다니?”
“빙룡검까지 얻은 제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를요.”
해영월이 기가 차다는 듯 무신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빙룡검을 얻음으로써 증명된 게 아닌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빙룡검을 든 후의 일입니다.”
“그렇다 해도 뻔하지 않겠나?”
“뻔한 것과 확실한 것은 다르지요.”
맞는 말이었기에 해영월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무신을 보낼 그가 아니었다.
“여기서 시험해 볼 순 없겠나?”
“여기서라…….”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 줌세.”
무신은 더욱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궁주님을 죽이길 원하시는 겁니까?”
“……!”
“궁주님이 더 잘 아실 줄 압니다.”
무례했으나 사실이었다.
사실이므로 무례한 말이라 하기에도 애매했다.
“대신 제 직권은 사용하겠습니다.”
“직권이라면…….”
“예. 빙월대를 데려갈 생각입니다.”
“허허…….”
해영월의 실없는 미소 뒤에 감춰진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무력감이었다.
해영월과 무신.
그래, 두 사람은 언뜻 군신의 관계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철저한 갑과 을이었다.
물론 해영월이 을이었다.
그가 무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밥은 먹었는가?’ 정도의 안부 인사뿐이었다.
당연했다.
그는 무신보다 약했다.
힘만이 인정받는 세상.
그것은 강호나 새외무림이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었네. 결국 자네 뜻대로 해줄 수밖에 없단 것을. 그럼에도 내 억지를 부린 것은 그만큼 자네를 아끼기 때문일세. 그 점만 알아주게.”
스스로의 행동을 억지라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해영월 본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무신과 비교해서.
“억지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길을 열어줘도 모자랄 판에 이렇듯 불러다 설득하고 있으니 그게 억지가 아니면 뭐겠나?”
이 정도면 엎드려 절만 안 했지 거의 떠받드는 수준이었다.
무신은 조금 민망했다.
팽가의 가주한테까지 대접을 받아봤음에도 이러한 대접이 아직도 낯설었다.
그리고 새삼 또 힘이란 것의 무서움을 느꼈다.
그것만 있으면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북해빙궁의 궁주를 아래에 두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더 위로 가면 어찌 될까.
무림맹주.
마교 교주.
궁주도 우스워질 것이다. 천하의 지배자들마저 손바닥 안에 넣으면.
무신은 그만 해영월과의 대화를 끝냈다.
벌써 몸이 근질근질했다.
얼른 돛대를 펴고 싶었다.
항해가 끝나면, 그의 손바닥 안에 무림맹주나 마교 교주는 당장 힘들더라도 그들에 버금가는 것이 쥐어져 있을 것이다.
“대장을 뵙습니다.”
빙궁을 떠나던 날.
무신의 뒤로 북해빙궁 최강의 무력 집단이라는 빙월대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백충일의 그것과 같은 청의를 입고 있었는데, 풍기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아주 억세고 거친 야생의 들소 같았다.
풍겨지는 기운에서부터 살기가 가득했다.
아마 범인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목이 잘려나갈 것이다.
가히 압권이었다.
미리부터 나와 있었던 해영월이 말했다.
“자네에 비하면 형편없겠으나 적어도 방해는 안 될 걸세.”
“상대성으로 따지면 이 세상에 강한 군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빙월대는 아주아주 훌륭한 무사들입니다. 방해는 안 될 것이라기보다는 얼마나 더 활약할 것이냐가 더 어울리다 생각합니다.”
“그리 말해주어 고맙네.”
해영월은 마치 무신에게 인정받았다는 듯 반응하고 있었다.
무신은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괜히 부끄러웠다.
얼른 떠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청마 위에 올라탔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 것이 반가운지 놈이 꼬리를 살랑였다.
물론 당장은 얌전해 보이지만 그가 옆구리를 차는 순간, 벼락같이 튀어나갈 것이다.
출항 준비는 이제 끝이 났다.
돛대만 펴면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의 고개만 무언갈 찾아 바삐 돌아갔다.
그가 찾는 것은 뻔했다.
궁주의 딸.
해연수였다.
그녀는 일각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 포기하고 가려는 찰나, 그녀가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뛰쳐나왔다.
“갔다가 다시 돌아오실 거죠!”
“…….”
무신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물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