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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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7화
뿔
빙룡의 섬뜩한 안광이 면전에서 도사렸다.
가공할 살기였다.
기가 질렸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신은 쩌억 벌어지기 시작하는 놈의 아가리를 피해 상체를 반쯤 숙였다.
구겨진 놈의 목덜미가 보였다.
자잘자잘한 털 같은 게 바짝 곤두서 있었다.
저것만으로도 놈이 얼마만큼 흥분했는지 알 만했다.
무신은 거기마저 도약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훤히 드러난 놈의 뒤통수에 검을 꽂았다.
놈의 냉기는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따가운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놈의 영기였다.
그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강기를 바짝 조이며 연거푸 놈의 뒤통수를 쑤셨다.
차가운 피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아까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가 간절했다.
하지만 이 싸움만 이기면 그까짓 물은 수십, 수백 바가지 들이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는 꿋꿋이 인내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윤기가 날 정도로 반짝이던 놈의 뒤통수가 어느 순간 가뭄에 굳은 땅처럼 변했다.
여기저기 쩍쩍 갈라지고 찢어져 있었다.
놈이 그 큰 몸을 마구 흔들었다.
고통에 겨운 발악이었다.
무신은 그쯤에서 검을 놓았다.
이겼다고 자만하려는 게 아니었다.
포기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도어검.
화경의 꽃을 피울 참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흑라신검이 허공에 두둥 떠올랐다.
강렬하게 뿜어지는 그것의 빛이란 빙룡의 영롱한 빛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파괴력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그는 흑라신검을 놈의 머리통 앞으로 이동시켰다. 놈의 눈알이 그것을 따라가는 게 안 봐도 눈에 선했다.
하지만 눈으로 좇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검은 언제나 눈보다 빠른 법이었다.
그는 손가락 살짝 구부렸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무언가가 주저앉았다.
빙룡의 몸뚱이였다.
무신은 펄쩍 뛰어내렸다.
흑라신검이 놈의 눈알에 박혀 있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포효는 이때까지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몸이 달랐다.
고통에 겨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싸움은 이미 끝난 승부였다.
무신은 검을 뺐다.
검이 다시 허공에 떴다.
그리고 그것을 놈의 반대쪽 눈알에 꽂아 넣었다.
‘시작부터 도어검을 쓸 것을 그랬나.’
아쉬움을 삼키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뒤통수를 쳐서 놈의 신경을 분산시켰기 때문에 도어검이 먹혀든 것이다.
다짜고짜 도어검부터 들이댔으면 놈은 우습게 피했을 것이다.
이기어검의 감각이 아무리 훌륭해도 손끝의 감각을 쫓아가지는 못하니까.
물론 도어검 위로 가면 손끝의 감각도 우스웠다.
백어검.
그것부터는 검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었다.
천어검까지 올라가면…….
말해야 입만 아팠다.
그사이, 빙룡이 완전히 중심을 잃은 채 쓰러지고 있었다.
‘끝났군.’
무신은 피식 웃었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싱거울 수가 없었다.
해영월이 그토록 경고했던 영기조차 별 볼 일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달려가 놈의 머리통을 쑤셨다.
이미 주저앉았기에 건드리기는 쉬웠다.
그렇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그는 아차 하며 재빨리 강기를 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빙룡의 영기는 죽을 때 가장 크게 터진다는 것.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자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그는 한달음에 뒤로 달아났다.
저것을 가까이서 맞았다가는 놈과 같이 저승행 신세였다.
하지만 이미 터진 것을 뒤늦게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간이 아무리 빨라봐야 빛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무신은 결국 직격타로 맞았다.
가시밭길을 구른 것처럼 온몸이 따가웠다.
따가웠고…….
‘응?’
그는 의아하게 눈을 떴다.
따갑기만 할 뿐 아무 이상도 없었다.
살갗은커녕 망룡의도 멀쩡했다.
‘같은 룡이라서 어찌저찌 무마된 건가.’
아닐 것이다.
망룡의가 명의라고는 해도 빙룡의 그것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무신의 강기가 빙룡의 마지막 영기보다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아하기를 넘어 황당할 지경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알림이 뜬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신은 신적인 힘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유림의 검이 당신을 수호합니다.]
유림의 검.
이십이만 년의 산물.
그것이 무신을 지켜주었다.
그날, 무기창과의 일전에서 갑작스레 나타났던 것처럼.
덕분에 의문은 금세 풀렸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다시 의문이 들었다.
정확한 발동 조건이 무엇이냐는 것.
얼핏 생각하기에는 ‘죽음에 닥친 상황’이었다.
계승되던 유림의 검이 그 상황을 인지하고 주인을 구하러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방금 전, 무신은 죽음에 닥치지는 않았다.
망룡의는 몰라도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위험한 것으로 따지면 무기창과의 일전이 더 심했었다.
‘비월내각신공의 영향으로 봐야 하나.’
알쏭달쏭한 문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그는 이내 상념에서 벗어났다.
이렇든 저렇든 멀쩡하면 된 것이다.
알림이 떠가면서까지 발동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분명 의문이 파헤쳐질 것이고.
물론 머리 아파서 대강 짐작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휘적휘적 걸어가 거대한 머리통 하나와 마주했다.
흉흉한 안광을 뿜던 그것이 볼썽사납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타고 올라가 드디어 손에 쥐었다.
빙룡의 뿔.
두께는 다 큰 남자 수십 명이 둘러싸도 모자랄 만큼 컸고, 높이는 아름드리나무만큼 길었다.
하지만 잘라내니 딱 검 한 자루 만들기 좋게 작아졌다.
‘영기 때문에 그렇게 컸던 거야.’
그는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하며 한 손에 들어오는 빙룡의 뿔을 내려다보았다.
빙룡검이란 완품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날것 특유의…….
‘맛있게 생겼군.’
그는 군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가 벌린 것은 입이 아니라 손이었다.
그는 빙룡의 뿔을 검처럼 쥐었다.
왜인지 더 착 달라붙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흑라신검보다도 더.
그는 아예 자세를 잡고 휘둘러 보기까지 했다.
밖에서 해영월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무인으로서 새로운 검을 다루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었다.
과연 그 명성대로였다.
휘두르기 무섭게, 무형의 기운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튀어나갔다.
마치 빙룡의 아가리가 벌려져 냉기가 쏘아지듯.
이것을 실전에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신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얼른 해보고 싶었다.
아니, 지금 당장.
하지만 그가 나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이것을 얻기 전에도 이미 북해빙궁의 궁주도 압도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자리는 이것을 들지 않아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지. 있어.’
그는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정마대전.
아직 싸움이 한창일 그곳이 그가 나설 자리였다.
***
진해천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 손톱을 깨물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다 묻은 검은 때가 그의 앞니에 묻었다.
더러운 것이 묻은 것도 모를 정도로 지금 그의 심정은 복잡했다.
미칠 것 같았다.
서재에 앉아 있었으면 위에 놓인 것을 죄 집어 던졌을 것이다.
정마의 기밀을 빼돌린 것.
마교의 끄나풀.
맹주는 도대체 어찌 알아냈을까.
그토록 숨겼고 그토록 조심했는데 도대체 어찌 알아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찾는다고 한들…….
무의미했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뭐 어쩌란 말입니까?”
하고 당당히 소리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말이다.
진해천은 그저 맹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마교 교원으로 들어가 동태를 살피는 것.
목숨 내놓을 각오는 진즉부터 했다.
이대로 도망칠 마음도 간절했으나 그리했다가는 종남파는 물론, 가족들이 깡그리 죽을 것이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닐 것이다.
처참하게.
최대한 처참하게.
어떻게든 더 고통을 느끼게.
맹주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이제껏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진해천은 이를 악물며 더 빨리 내달렸다.
“종남파 장문 진해천이다. 긴히 보고드릴 게 있으니 문을 열어라.”
그렇게 십 수 일을 달려 진해천은 신강성 최중심의 문을 두드렸다.
마교 교원 정문이었다.
그곳은 문지기조차 초절정으로 이뤄진, 삼엄하단 말로도 모자랄 만큼 방비가 탄탄했다.
무림맹의 방비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될 것 같았다.
진해천이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는 사이, 누군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오, 자네 왔는가?”
“다, 당신은……!”
“당신이라니. 말이 너무 짧구먼.”
마교 교주 경화신 마운현.
겨우 산토끼의 입장에 산왕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
그 무렵 중원의 북서부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검이나 창 따위를 든 무사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머릿수는 수백이 넘었다.
중원이나 강호에서 이처럼 많은 수의 무사들이 칼부림하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니 너무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외모가 조금 독특했다.
오히려 그게 이상스럽게 다가왔다.
하나 같이 쌍꺼풀이 짙고 콧대가 높았으며 수염도 듬성듬성하거나 덥수룩한 중원인들의 것과 다르게 촘촘하고 가지런했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살갗이었다.
백설기를 빻아놓은 것처럼 희었다.
얼핏 괴인이라고도 불릴 외양을 가진 자들은 중원에서 한 족속뿐이었다.
색목인(色目人).
다르게는 이계인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들은 며칠에 걸쳐 이곳에 무리를 주둔했는데, 그들을 지휘하는 자는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있겠구만.”
목소리가 조금 칼칼하단 것만 빼면 언어는 특이할 것이 없었다.
흔하디흔한 중원어였다.
중원인들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결국 색목인일 뿐 이들 또한 중원에서 오래 살아왔음을 의미했다.
어쩌면 문화, 그리고 작은 습관까지 흡사할지도 몰랐다.
외양만 빼면 그만큼 차이가 없었다.
“강호와의 접촉이 얼마만이지?”
“못해도 수십 년은 더 됐을 겁니다.”
수하로 보이는 자의 대답이 이어지자 지휘관이 껄껄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그의 만면에 웃음꽃이 사라지질 않았다.
이유야 뻔했다.
그는 지금 강호의 난장판에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설마 하니 정파에서 먼저 선공을 때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날름 핥았다.
“그렇게 큰 대전만큼 알갱이들을 훔쳐오기 좋은 조건도 없지.”
그리고 크게 외쳤다.
“다들 준비 단단히 하거라! 정파든 마교든 도움 되는 것들은 깡그리 가져오는 게 목적이니 말이다!”
“예!”
“또한, 우리는 누구의 편도 아님을 명심하라!”
“예!”
이어 웅장한 함성이 터졌다.
지휘관이 말에 올라탔다.
그의 뒤에 수백의 고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정확히는, 고수들이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Sword Master)들이었다.
***
세 시진이 지났다.
죽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심지어 그 혼까지 사라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해영월은 착잡한 얼굴로 빙룡정 입구를 바라봤다.
저 안은 그 정도로 춥고 냉혹하다.
점점 더 불안감이 쌓였다.
어떻게든 말렸어야 하나, 강제로 끄집어냈어야 하나, 갖가지 후회도 몰려들었다.
하지만 약속이었다.
이제 와 후회하기에는…….
그때, 엄청난 섬광이 번쩍이며 입구가 반으로 갈라졌다.
말 그대로였다.
끝없이 치솟아 있는 빙벽이 수박 쪼개지듯 분리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해영월은 눈을 부릅떴다.
갈라진 입구 속에서, 형형한 검을 든 무사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무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