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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5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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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5화

시위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물을 부으면 그 모양 그대로 고드름이 만들어진다는 북해의 차가운 날씨 탓은 아니었다.

두 개의 내공.

굳이 이유를 찾자면, 거기에 있었다.

동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팔다리가 달린 사람이었다.

그의 옷자락에 주(主)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해영월이었다.

 

“…….”

 

그의 몸은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입술은 자물쇠라도 걸린 듯 굳게 닫혀 있었다.

반쯤 드러난 목에는 혈관이 잔뜩 돋아 있었다. 움츠리고 있단 뜻이었다.

그러니 미세하게 꿈틀거린다는 것도 사실 손가락 몇 개에 불과했다.

그의 양쪽 검지만이 그가 살아 있음을 알렸다.

살아 있음을 알린다는 것.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방금 전, 자칫 잘못했으면 황천길을 건널 뻔했다. 호기롭게 친 강기가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상대가 ‘한 번 만’ 더 검을 휘둘렀으면 분명…….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간신히 혓바닥을 움직인 것은 상대가 제 검을 집어넣을 즈음이었다.

 

“…내가 졌구만.”

 

비 맞은 생쥐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궁주를 표하던 위세와 긍지와 여유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졌다니요, 궁주님. 제가 궁주님의 공격을 막고, 역으로 공격을 성공시켰을 뿐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었다.

무신은 최대한 해영월을 배려했다.

 

“그리 말해주는 건 고마우나 결국 내가 진 게 맞네. 억지를 부릴 수는 없어.”

“…….”

“우선 결론부터 내지. 자네에게 빙룡정 입장을 허락하겠네.”

 

근엄한 어조는 돌아왔으나 얼굴을 보면 여전히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

눈 아래 시꺼멓게 그늘이 져 있었고, 살갗은 해연수의 그것보다도 더 하얗게 떠 있었다.

해영월이 착잡하다는 듯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도 말리고 싶으나,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가 없구만.”

“걱정 마십시오. 꼭 잡아서 나오겠습니다.”

“자네의 그 자신감이 이제는 믿음직스러워.”

 

해영월이 ‘내가 지고 나니까 말일세…’ 하고 씁쓸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저렇게까지 기가 죽을 게 있겠느냐마는, 저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누누이 말하건데 해영월은 북해빙궁의 궁주다.

항상 최강자여야만 한다.

단순히 그의 자존심을 위해서라기보다도 그래야지만 빙궁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교 교주가 빙궁을 쉬이 건드리지 못하는 것.

그것도 다 해영월이 가진 무위의 영향이었다.

 

“혹, 제안 하나 해도 되겠는가?”

“제안이요?”

“내 이제 자네의 강기를 의심할 수 없는 입장이네만, 빙룡정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일세. 그러니…….”

 

해영월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빙월대 대원들을 넘겨줄 테니 그들과 동행하는 게 어떤가?”

“빙월대라면…….”

“그래, 자네가 우리와 결의를 맺으면 넘게 받게 될 빙궁 최고의 무사들이지.”

 

뭐든 혼자보다는 여럿이 나은 법이었다.

그들은 전원이 초절정으로 이뤄져 있으니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움이란 말로 포장된 희생이었다.

그들이 일을 마치고 빙룡정에서 나올 확률은 1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해영월도 고전한 일이니 충분히 단언할 만했다.

게다가 그들이 도움이 될지조차도 미지수였다.

만약 빙룡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용도라면, 앞선 말처럼 희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다 떠나서 무신은 애당초 혼자가 편했다.

 

***

 

시발점은 어떤 검객이 마향대를 궤멸시킨 일이었다.

그것이 마청대를 불렀고, 팽가와 연결되었으며, 급기야 정마 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대립이 대전으로 이어지기까지도 금방이었다.

무림맹주 곽이천이 직접 정파의 고수들을 끌고 마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발 앞서 팽영권과 여럿 문파인들이 광군학관을 습격했다.

마교의 새싹들을 키우는 곳을 친다는 것.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겠단 뜻이었다.

선봉으로 팽가의 가주 팽영권을 내세웠기에 그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광군학관이 초전박살이 났다.

그러나 ‘그’의 등장으로 인해 상황은 대번에 반전되었다.

마교 부교주 흑관마 마정태.

역으로 팽영권이 죽었다.

여럿 문파인도 물론 함께였다.

광군학관과 마교 교원까지의 거리는 내내 말을 타도 한 달은 족히 걸리기에…….

곽이천은 그 소식을 한참 지나서야 들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그런데 그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단 투였다.

 

“약지 하나 부러졌을 뿐이다. 다들 동요 말고 하던 대로 간다.”

“예……!”

“그리고 자네는 잠깐 이리 와보게.”

 

그가 부른 자는 종남파 장문 진해천이었다.

진해천이 부리나케 그의 앞까지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자네, 일을 하나 해줘야겠어.”

“일이요?”

 

곽이천이 멀리 서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방향에 있을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지금, 정파의 최종결전지가 될 곳.

마교 교원이었다.

곽이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마교 교원에 잠입해서 마교 놈들의 동태를 살피고 오게.”

“매, 맹주님!”

“왜 그러는가?”

 

진해천은 차마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뻔한 이유였다.

말이 동태를 살피는 것이지 마교 교원으로 잠입하는 것은 그냥 자살행위였다.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곽이천 본인이 간다 한들.

그러나 곽이천은 재목이 진해천밖에 없단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라면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게야.”

“아, 아시겠지만 저는 무위도 그리 출중하지 못합니다.”

 

장문이나 되는 자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화산파 장문이나 낭궁가 가주와 비교하면 분명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수였다.

그럼에도 곽이천의 뜻은 강건했다.

 

“죽을 각오로 임하면 뭔들 못하겠나?”

 

진해천이 결심한 듯 목구멍에 맺힌 말을 꺼냈다.

 

“하필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시련이라니. 섭하구만. 난 자네에게 기회를 주는 걸세,”

“기회요?”

 

곽이천이 흐뭇하게 웃으며 답했다.

 

“마공을 받고 정파의 기밀을 넘겨준 자. 마교의 끄나풀. 이 자리에도 쳐 죽여도 시원찮을 자에게 회생의 기회를 준다, 이 말일세.”

“……!”

“이제 좀 할 맘이 생기는가?”

 

진해천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곽이천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실패하면 당연히 자네는 죽겠지. 마교 교원 안에서든 여기서든. 다만 자네의 목으로 끝나지 않음을 명심하게. 듣자 하니… 몇 년 전에 딸아이를 하나 낳았다던데? 이제 막 말이나 뗐을 꼬마 숙녀가 칼에 찔려 죽으면 그거 참 볼만하겠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란 말은 입에 담지도 말게. 자네는 그저 군말 없이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게야.”

 

진해천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곽이천의 손가락이 다시 방금 그곳을 가리켰다.

 

“알겠으면, 얼른 가보게.”

 

***

 

“그럼, 이제 제 낭군님이신 거죠?”

 

호화스런 만찬이 차려진 연회장.

궁주가 무신의 빙룡정 입장 허락을 알린 가운데, 해연수가 무신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무신은 순간 먹던 것이 얹힐 뻔했다.

 

“예?”

“아버지가 지면 무사님께 절 내주기로 했잖아요.”

 

무신도 그녀를 따라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그건 없던 걸로 하기로 했었습니다만.”

“누가요? 누가 없애요?”

“제가 그랬잖습니까? 같이 자리했었는데 기억이 안 나시는지?”

“전~혀 안 나는데요?”

“나게 해드릴까요?”

 

해연수가 몸을 바짝 붙였다.

 

“어떻게요?”

“머리에 충격을 받는 겁니다.”

“충격?”

 

탁상 아래 무신의 주먹에 내공이 맺혔다.

아주 작았지만, 사람 머리통 하나 날리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걸로 맞으면 금방 기억이 돌아올 줄 압니다.”

“…절 죽이시려구요?”

“너무 모르는 척하시길래.”

 

서로 오래 알아왔던 것처럼 두 사람 대화에는 정이 넘쳤다.

해연수 덕분이었다.

먼저 친근하게 다가오니 무신이 그녀를 대하기도 편했다.

물론, 그는 그녀를 내치려는 이유가 더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그의 이상형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더 뻔뻔하게 나왔다.

 

“몰라요, 몰라. 그냥 내 낭군님 해요.”

“궁주께서 숱한 고수들도 다 잡으시는데 우리 해 소저의 버릇은 못 잡으신 모양입니다.”

“무슨 버릇이요?”

“흔히 땡깡이라 하지요.”

“제 진심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시면 안 되죠.”

“아, 정정하겠습니다.”

“진작 그러셔야지.”

“땡깡이 아니라 억지예요, 억지.”

 

해연수가 ‘뭐, 억지로라도 내 낭군님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죠’ 하며 교묘하게 말을 비틀자 무신은 더 이상 받아칠 것이 없어졌다.

언제 날 잡고 진중하게 설명을 해야 알아들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잡을 날은 아직 까마득했다.

당면한 숙제의 해결이 더 우선이었다.

마침, 해연수가 그에 대한 이야길 꺼냈다.

 

“이제 빙룡정에 들어가시는 거죠?”

“예.”

“잘 다녀오세요.”

“예?”

 

조금 놀라는 무신의 반응을 해연수가 다 안다는 듯 받았다.

 

“아버지를 이겨서 얻으신 기회를 제가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대신…….”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꼭 성공하세요. 꼭.”

 

해영월과의 대결 이후, 그래봤자 일주일쯤 만난 여자였다. 그런데 아까도 느꼈지만 한 몇 년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무신도 조금 그녀에게 몸을 붙였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는 비로소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오묘한 대화가 지나가는 사이, 만찬은 끝이 났다.

무신의 빙룡 사냥을 기원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더러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자리가 되지 않겠느냔 우려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신이 안고 갈 또 다른 숙제였다.

그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그에게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빙룡정(氷龍庭).

시작부터 무지막지한 영기를 토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이군요.”

 

무신은 해영월, 그리고 몇몇 중직들과 함께 빙룡정 앞에 섰다.

산을 몇 개나 뛰어넘고 눈보라를 몇 번이나 헤쳐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고생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곧 덮칠 빙룡정의 혼돈을 생각하면.

그는 설벽이 둘러쳐진 높다란 문을 쳐다보았다.

 

“던전에 입장하는 것 같습니다.”

“던전?”

“하하, 아닙니다. 그런데 영물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문이 있다니… 신기하군요.”

“문이라기보다는 거쳐 가는 길목 정도로 생각하게.”

“길목이요?”

 

해영월이 하나하나 설명을 늘어놓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무신은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달리한다면, 내 자네를 업고라도 돌아갈 의향이 있네.”

 

설명이 끝난 후, 해영월이 넌지시 말했다.

무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제와 달리 할 마음이었으면 애당초 시작도 안 했습니다.”

“후, 그렇구먼.”

 

해영월은 더는 묻지 않았다.

혹시 몰라 동행한 빙월대도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는 너무 위험하네. 이들이라도 데려가게’ 하는 식으로 엮지 않았다.

그는 무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네. 그러니 너무 늦지는 말게. 이 나이에 눈사람 신세가 되긴 싫어.”

“예, 궁주님.”

“그럼, 건투를 비네.”

 

표적은 정해졌다.

조준도 끝났다.

이제 얼마나 시위를 잘 당기느냐였다.

무신은 차갑게 굳은 문을 손으로 살짝 밀었다.

백야평야에서의 그 동굴처럼 일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마법 이펙트 같은 게 아니었다.

저 속에 숨은 녀석의 ‘손님맞이’였다.

그는 조금 긴장하며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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