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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3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3화

해연수

 

 

해연수.

삼봉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북해빙궁 궁주의 딸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외모까지 출중하니 강호, 아니, 중원 전역을 통틀어도 이만한 배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달랐다.

그는 빙궁까지 오면서 그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배필으로서는 더더욱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빙룡검뿐이었다.

그것만 얻으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어떤가? 내 딸을 배필로 주면 조건이 좀 맞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하는 말을 면전에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들으니 그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해연수에 대해서.

그는 흘깃 그녀를 쳐다봤다가 다시 해영월에게 고개를 돌렸다.

 

“배필이란 것은 평생을 함께 할 인연인데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기야 하지.”

“저는 괜찮으니 그 내용은 빼주십시오.”

 

아무렴 빙궁의 귀인으로 불린다고는 해도 무신은 해연수에게 오늘 처음 보는 청년이었다.

그는 그녀의 의사가 당연히 ‘거절’이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뜻밖의 말이 새어 나왔다.

 

“음, 전 너무 좋은걸요?”

“예?”

“너무 좋아서 아버지, 아니, 궁주님이 지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 지금 그게 무슨…….”

 

무신은 간만에 말을 더듬었다.

해연수가 대여섯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이가 원래 그리 넓지 않았기에 두 사람 간 거리가 반 장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본 해연수의 얼굴은 멀리서 본 것보다 더 곱고 매끈했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도 어쨌든 남자였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해연수가 말끝을 흐리며 두어 발자국 더 걸어갔다.

무신과의 거리는 이제 코앞이었다.

그녀가 그의 귓속에 속삭이듯 말했다.

 

“무사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도 이상할 게 없다고나 할까?”

“귀인에게 그 무슨 무례냐! 당장 물러나거라!”

“아버지도 참. 남녀끼리는 이게 더 예의 차리는 거예요.”

 

해영월의 따끔한 질책에도 해연수는 능구렁이처럼 받아쳤다. 무신의 귓속에 ‘아니면 입술 말고 다른 부위를 내드릴 수도 있구’ 하고 재차 속삭이기까지 하며.

아, 무신은 그제야 기억해 냈다.

북해빙궁 궁주의 딸.

삼봉.

해연수를 수식하는 말은 그것들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광녀(狂女)라는 수식어도 붙어 있었다.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모든 면에서 적극적인 성격의 영향이었다고.

하지만 좋게 말해서 그렇지 나쁘게 말하면 원본 그대로 광녀였다.

그녀에게 잘못 걸리면 평생을 시달린단 소문도 있었다.

물론 무신이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그녀나 해영월은 결코 모를 것이다.

좀 시간이 지나야 밝혀지는 사실이니까.

무신은 그녀에게서 얼른 시선을 뗐다.

차라리 길바닥 돌부리와 배필을 맺는 편이 낫지 그녀는 아니었다.

평생 옥죄어 살기는 싫었다.

실질적으로 검신에도 이르는 자가 뭐 옥죄일 게 있겠느냐마는, 남녀 관계에서 힘은 그리 영향이 없다.

누가 더 지독스럽게 하느냐의 차이지.

 

“미안하네. 내 딸 성격이 워낙 활달해서.”

 

활달하단 말로 포장할 게 아니었다.

정말 광녀가 딱 적합했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아비가 딸을 그리 지칭하겠는가.

무신은 ‘활달해야 인생 살기가 더 편하다 들었습니다’ 하고 대충 장단을 맞춰주었다.

 

“봐요, 봐. 더 편하다잖아.”

“그만하고 저쪽 가서 얌전히 서 있거라.”

“칫, 알겠다구요.”

 

해연수가 더는 버티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토라진 얼굴이 제법 귀여웠다.

정말, 입만 다물면 천상미인이 따로 없었다.

아닌 말이 아니라 그렇게만 한다면 무신도 당장 그녀와 입을 맞출 용의가 있었다.

다른 부위를 맞추겠다고 해도 역시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그만큼 매력이 철철 넘쳤다.

그는 그만 그녀를 뒤로하며 해영월에게 집중했다.

 

“누구의 강기가 더 대단한지만 보는 것이니만큼 대결 방식은 간단하네.”

“예.”

“상대의 강기를 부수면 되는 게야.”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대결이었다.

해영월도 이미 언급했듯이 현경에 빙룡검을 가진 자를…….

마침, 그것이 왔다.

푸른 천에 뒤덮인 빙룡검을 무사들이 애지중지 들고 왔다.

본 적은 없으나 황제의 옥새를 저리 관리하지 않을까.

물론 빙룡검의 가치가 황제의 옥새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인에 한해서는 황제의 옥새보다 더 귀한 물건일 수도 있었다.

세기의 명검.

흑라신검조차 평범한 막대기로 만드는 보검.

특별하게 관리하는 게 당연했다.

다만 의아한 것이 하나 있었다.

 

“평소에 끼고 다니지 않으십니까?”

 

아직도 애지중지 들려오고 있는 빙룡검을 보며 무신이 물었다.

해영월이 아쉬운 미소를 삼키며 답했다.

 

“워낙 거칠어서 말이지. 반발력이 세다고나 할까.”

“호오.”

“허나 나니까 다루기라도 하지 여타 무인이었다면 손에 쥐기도 힘들 걸세.”

 

제 자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빙룡검을 든 무사들의 관자놀이 양쪽에 식은땀이 한가득했다.

두 다리도 벌벌 떨고 있었다.

빙룡검이 무슨 일천 근, 일만 근 나가는 것은 아닐 테니 해영월의 말이 맞다고 봐야겠지.

그것을 떠나서도 무신은 해영월의 말을 이해했다.

빙룡검은 일종의 마검이었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지푸라기만도 못한 검이 될 수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표물을 잔뜩 실은 이동마차가 한참을 달려 옆 지역으로 이동하듯 빙룡검도 한참을 움직여 해영월의 앞에 당도했다.

그가 손을 뻗자 푸른 기운만 감도는 천에 순간 빛이 일었다.

무사들이 얼른 뒤로 물러났다.

저 빛이 터지면 자신들의 목이 날아가리란 것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무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무사들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래봤자 검인데 저러한 기운을 내는 게 신기해서였다.

그사이 해영월이 푸른 천을 젖히고 속에 든 것을 빼냈다.

푸른 천보다 더 푸른색을 띄는 빙룡검.

그것의 자태는 마치 하나의 빙룡 같았다.

금방에라도 살아서 꿈틀거릴 듯.

줄기줄기 쏟아지는 빛무리는 흡사 내공을 먹은 검과 다를 게 없으니 저것이야말로 명검이자 보검임에 분명했다.

무신은 살짝 일그러진 해영월의 얼굴을 봤다.

자주 쓰는 사람조차 갑작스레 들면 반발력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다루기는 잘 다루신다더니… 이빨이셨나.’

 

그는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해영월, 아니, 빙룡검을 관찰했다.

녀석은 한 마리 맹수가 돼 있었다.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 눈을 부라렸다.

녀석의 눈은 검신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가죽이 잘려 나갈 날카로운 날이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에 구경꾼을 자처한 빙룡 무사들이 한달음에 달아났다.

빙궐대 대장 백충일도 얄짤없었다.

해연수야 진즉부터 구석에 박혀 있었다.

자리가 진정된 것은 그것이 해영월의 손에 완벽히 쥐어지고 난 후였다.

완벽히.

싸울 준비가 되었단 뜻이다.

무신은 느긋하게 흑라신검을 뽑아 들었다.

비로소 여유를 찾은 해영월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그것은……!”

“아십시까?”

“그럼 알다마다. 멸교한 철교 교주의 애검이 아닌가? 이름이 흑라신검이었지 아마.”

“예, 맞습니다.”

“확실히 자네는 난사람이야. 그 나이에 그것을 쥐다니.”

 

무신은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했지만, 해영월의 말이 빈말임을 알았다.

흑라신검과 빙룡검.

과장 보태지 아니하고 애와 어른의 차이였다.

서로 검집을 나온 상태에서 난사람을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실제로 빙룡 무사들 사이에서도 전혀 동요가 없었다.

 

“흑라신검이 뭐야?”

 

하고 묻는 이도 있었으나 그래봤자 빙룡검에는 턱도 없을 거란 얼굴이었다.

심지어 무신 본인조차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긴 한데.’

 

그는 윗입술을 핥았다.

전세가 심히 불리함에도 이상하리만치 흥분이 됐다.

이제 보니 그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아찔한 외줄 타기를 즐기는 괴상한 성격이 있었다.

물론 미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만한 힘.

그게 있기 때문에 싸움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회귀 전에는 그게 없었기 때문에 싸움꾼은커녕 내내 내빼기만 하는 도망꾼이 되었던 것이고.

 

“해보나 마나 한 대결이잖소, 이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결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구만.”

“뭔가 수가 있나?”

“수가 있기는. 설령 있다 한들 저것은 또 어찌 막으려고?”

 

팔을 안쪽으로 굽히는 게 아니라 열에 열 모두 해영월의 승리를 장담했다.

서로 검만 들었을 뿐인데 그 지경이 된 것이다.

 

“오오! 우리 빙궁의 긍지가 나오고 있다!”

“마교 교주도 어림 없다는 힘인가!”

“나도 언젠가 저런 힘을 지닐 수 있다면 좋겠군……!”

 

현경의 힘이 솟는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주인을 만난 빙룡검이 마구 날뛰었다.

그러나 저 들소와도 같은 몸짓은 말 그대로 현경의 영향이 더 컸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오금이 저렸다.

만약 살기가 어려 있었다면 진짜로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말았으리라.

무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금이 저리거나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심장이 요동치기는 했다.

긴장이었다.

우사개 모추동을 상대로도 차분했던 놈이 지금은 흔들바위가 따로 없었다.

 

‘나도 전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무신은 다시 윗입술을 핥았다.

흥분됐던 것이 더욱 고조됐다.

미칠 지경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이 시위를 얼른 당기고 싶었다.

 

“내가 먼저 공격하도록 하지. 자네가 강기를 치게.”

“알겠습니다.”

 

선방후공.

무신으로서는 환영이었다.

대련이든 대결이든 무인들 간 싸움에서는 나중에 공격하는 쪽이 더 재미를 느끼는 법이었다.

목숨 걸고 다투는 혈극(血劇)에 재미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의 생각은 그렇다.

세상에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없다고.

그는 양발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흑라신검을 조금 더 부드럽게 감아쥐었다.

곧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경이었다.

그것의 힘이 그를 뒤덮었다.

해영월이 작은 감탄을 토했다.

 

“과연 놀랍구만. 허나… 그 정도로는 안 될 걸세.”

 

느낌이라는 게 있다.

그러면, 싸워보지 않고도 승패를 알아낼 수 있다.

지금 해영월의 느낌은 ‘완전한 자신의 승’이었다.

그는 그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무신의 강기는 그에게 형편없었다.

상대적으로 따졌을 때 말이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느긋하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에 물들었다.

 

“……?”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그의 얼굴만이 그의 심경을 표출했다.

 

“준비됐습니다.”

 

무신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을 때도 해영월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광채가 날 정도로 응축된 기.

당장은 폭발하지 않으나 건드리면 폭발할 게 뻔한 아주 묵직한 기.

해영월의 눈에 그렇게 보이니 다른 이들의 눈은 볼 것도 없었다.

다들 새파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처음, 빙룡검이 들려왔을 적처럼.

 

해영월이 헛기침과 함께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아시는 대롭니다. 스물일곱입니다.”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물어본 걸세.”

“예?”

 

무신이 지겹도록 들은 말이 해영월의 입에서 또 나왔다.

 

“자네 혹… 반로환동을 하였는가?”

“하하.”

“농담이 아닐세. 반로환동을 한 옛 고수인지를 묻는 게야.”

“그런 것이라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정말 이십칠 년밖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럼…….”

 

해영월이 재차 물었다.

반로환동에 이어 무신이 앞으로 지겹도록 들어야 할 또 다른 말을.

 

“환골탈태를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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