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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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11화
더 큰 곳
곤륜파는 지는 해였다.
단조로운 검법과 인재의 부재, 그리고 갖가지 내전까지 삼중고를 겪으며 입지가 많이 낮아졌다.
예전의 그 곤륜파가 아니었다.
하지만 구파일방이었다.
거기에 소속돼 있단 것은 많이 낮아졌을 뿐이지 아직은 건재하단 뜻이었다.
무신은 지금, 그곳의 장문이 될 기회를 얻었다.
원로들을 언급한 것을 보면 거짓이나 허풍은 결코 아닐 것이다.
뻔히 들킬 수작을 이렇듯 진심으로 호소할 리도 없고.
‘음, 좀 당황스러운데.’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짧은 머리칼에 손톱이 닿으니 시원했다.
왠지 마음도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곤륜파 무사들을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든 통성명이 먼저 아니겠소?”
“아!”
그들이 화들짝 놀라 자신들을 소개했다. 중죄를 저질렀단 얼굴이었다.
그들에게 그만큼 무신이 귀중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무신은 ‘이미 아시겠지만들 나는 최무신이오’ 하며 말을 이었다.
“몹시 당황스럽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장문 자리까지 내준다는 게 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편히 생각하시오.”
이정기란 자가 그에 답했다.
“말했다시피 그저 최 대협이 강하기 때문이오. 곤륜파는 거기에 흥미를 느낀 것이고.”
“흥미라.”
“강한 자를 아군으로 끼는 것은 강호 무도의 정석 아니겠소?”
이정기의 시선이 잠깐 저 멀리 서쪽을 향했다.
“상대가 마교와 같은 악질만 아니라면 말이오.”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내가 정파인 것도 아니오.”
“알고 있소.”
이정기의 시선이 이번에는 무신의 뒤를 향했다.
흑룡강.
불과 얼마 전까지 혈교의 산지였던 곳이었다.
“허나 혈교를 없애 버렸으니 정파에 가깝다 봐야겠지.”
“그런 식의 해석은 곤란하오.”
무신은 정말 곤란했다.
그가 혈교를 없앤 것은 그저 귀찮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놔뒀으면 혈사대와 같은 작자들이 계속 달려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정파의 정을 추구하려 했다거나 하는 ‘오지랖’은 결코 아니었다.
이정기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최 대협.”
“말하시오.”
“현재 신강에서 정마대전이 벌어진 것은 잘 알 것이오.”
그래서 하북팽가의 가주 팽영권이 죽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기가 눈을 빛냈다.
“만약 거기에 끼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최 대협은 어느 쪽에 서겠소?”
무신은 ‘호오’ 하고 작은 감탄사를 보냈다.
의표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정파의 편에 서겠소.”
“그럼 이제 최 대협이 정파는 아니더라도 정파에 가깝다고는 생각해도 되겠소?”
“하하, 그러시오.”
사실 무신은 원래부터 정파에 가깝기는 했다.
힘을 위해서라면 인신 공양에, 살육에,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마교의 성향은 그와 맞지 않았다.
정파는 그런 면에선 확실히 깨끗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당장 종남파만 봐도 알 수 있듯 마교보다 더 마교 같은 정파도 많았다.
그가 정파를 못 미덥게 생각하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정마대전이 터졌는데 종남파는 어느 쪽에 붙었으려나. 후환 때문에라도 마교에 붙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는 남몰래 웃었다.
이정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우리의 제안은 어찌 생각하시오?”
“흐음.”
“아, 이렇게밖에 찾아올 수 없었던 것은 이해해 주시오. 시국이 시국인지라 곤륜파에 직접 모실 여건이 안 나왔소. 알겠지만 현 장문도 정마대전에 투입되어서.”
“그야 이해하오.”
이정기가 ‘그럼 우리의 제안은 어찌……?’ 하고 재차 물으며 노골적으로 기대한다는 듯한 눈빛을 띠웠다.
그리고 그 한편에는 안심된단 기색도 있었다.
안 하고 배겨?
장문인데?
이미 내정까지 된?
딱 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신은 훨씬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곤륜파.
물론 좋다.
구파일방인 것에서부터 끝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달리 내세울 만한 게 단 한 개도 없다.
적당한 무공과 적당한 입지와 적당한… 그런 것들의 연속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혈교의 강시 군단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무신은 이만 대화를 매듭짓기로 했다.
“제안만 감사히 받겠소.”
“최 대협……!”
“썩 내키는 자리가 아니오.”
이정기의 동공이 위아래로 심히 흔들렸다.
목구멍 속으로 꼴깍꼴깍 마른 침 삼켜지는 게 보였다.
무언갈 장황하게 설명하는 듯했던 손은 갈피를 잡지 못해 그대로 굳어졌다.
그가 떠듬거리며 물었다.
“연유를 물어도 되겠소?”
“방금 말한 대로요. 썩 내키는 자리가 아니라고.”
그가 ‘그러니까 그게…’ 하며 말끝을 흐렸다.
무신은 그 뒤에 숨은 말을 바로 알아챘다.
“왜 썩 내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오?”
“그렇소.”
대강대강 넘어가 봐야 미련만 남겨질 뿐이었다.
그것은 이정기에게도, 그리고 무신에게도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더 좋으리라.
“나는 더 큰 곳을 바라보고 있소.”
“더 큰 곳?”
“이를 테면…….”
무신의 손가락이 저 멀리 북쪽을 가리켰다.
이정기의 눈이 그곳을 좇았다.
“북해의 빙궁이라던지.”
“빙궁이라… 확실히 우리 곤륜파보다는 큰 곳이구려.”
“인정해 주어 고맙소.”
이정기가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 곤륜파를 욕보이는 일이지’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빙궁은 정파나 사파, 그리고 마교와 같이 하나의 세력으로 부류되니 말이오.”
“잘 아시는군.”
“허나…….”
이정기가 확신에 차서 말을 이었다.
“최 대협이 아무렴 대단하다고는 한들 빙궁에서 포섭 제안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오. 혹, 들어와도 우리 곤륜파와 같은 엄청난 조건을 내걸진 않겠지. 그 점은 알아줬으면 하오.”
미안한 말이지만 그 점은 알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미 빙궁에서 포섭 제안이 들어왔으며 빙월대 대장직까지 보장받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후자는 어떤 의미에서 곤륜파 장문보다 더 가치가 높았다.
뱀의 대가리와 용의 목덜미.
용의 꼬리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백에 백 후자가 나았다.
“우리 곤륜파의 문은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열려 있소. 마음이 바뀌거든 바로 찾아주시오.”
“알겠소.”
“그럼.”
이정기와 곤륜파 무인들은 곧장 떠나갔다.
잡고 늘어질 만도 하건만, 의외였다.
아무래도 북해빙궁 이야길 꺼낸 게 주효했다고 생각하며 무신은 다시 말에 올랐다.
이번에도 그를 태워줄 놈은 적성마였다.
놈이 뒷발을 박차며 벼락같이 튀어나갔다.
***
강호 최남부 광동성.
그곳은 사파의 개방이라 불리우는 ‘하오문’의 본거였는데, 과연 강호전역의 갖가지 소식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오갔다.
그러나 말만 소식이었다.
대부분은 시장 좌판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자잘자잘했다.
개중에서 그나마 화두가 되는 것은 정마대전에 관한 것이었다.
하오문은 사파였으니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지만 문주부터 이하 말단 무사들에 이르기까지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이유는 뻔했다.
얼마 전, 혈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혈교를 그리 만든 원흉이 새외무림 출신의 검객 ‘한 명’이란 점이었다.
“그 검객이 누구라고?”
“최무신. 당가의 당비청, 화산파의 한철룡, 마교의 마준환과 함께 최근 신성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른 놈들은 그렇다 쳐도 마준환과도 비견될 정도라면… 그래도 그렇지 단신으로 혈교를 박살내다니.”
“항간의 소문으로는 강시도 함께 제거했단 말이 있습니다.”
“강시?”
“예. 혈교가 몰래 강시술을 써왔다고.”
문주 서용루가 ‘어쩐지. 무언가 수상쩍기는 했어’ 하며 말을 이었다.
“남궁가 일로 공개 처형을 당했던 우백관놈도 강시로 만들어졌겠군.”
“그럴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도 막지 못했다라… 허허, 대관절 얼마나 강하다는 건지.”
“어쩔 생각이십니까?”
“어쩌기는. 그대로 둬야지.”
“사파에게 치욕을 주었는데요?”
“혈교 그놈들, 말만 사파지 늘 독단으로 행동하지 않았느냐? 마교처럼 하나의 세력으로 불리겠다면서. 그러니 우리의 치욕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말이다.”
서용루가 몸서리를 쳤다.
“단신으로 혈교를 그 지경 낸 놈을 우리가 뭔 수로 감당한단 말이냐?”
***
출발할 때부터 겨울이었으니 여정이 험난하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겨울에 겨울이 한 겹 더 씌워졌다.
살갗이 찢길 듯한 칼바람이 불었고, 그날 내린 눈이 그날 바로 빙판길이 되었다.
어디든 치고 달린다는 적성마의 속도가 절반까지 줄었다.
놈도 고역인 모양이었다.
‘이동마차를 타고 왔어야 했나.’
무신은 어깨를 털었다.
곧 있으면 얼음장이 될 허연 조각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보기만 해도 이가 시린 추위였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지극히 평온했다.
옷깃을 오므리고는 있었으나 콧잔등도 그렇고 뺨도 그렇고 꼭 안방에 누운 사람 같았다.
그가 설인(雪人)이라서 추위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백산자화신공.
그것으로 온몸에 내공을 회전시키니 놀랍게도 추위가 싹 달아났다.
무슨 원리인지는 그도 몰랐다.
그는 단지 춥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애석하게도 적성마는 곧 쓰러질 것 같지만.
과연 흑룡강을 넘어 북해 초입에 들어서자 놈의 대가리가 축 늘어졌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보였다.
무신은 그만 놈을 놔주었다.
어디든 가라고 아예 고삐를 싹 풀어버렸다.
고생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하지만 놈은 가지 않고 그의 몸을 핥았다. 넙적한 혓바닥에 눈이 하얗게 묻어나왔다.
무신은 차갑게 몸을 돌렸다.
보살펴 줘봐야 정만 늘어 떼만 더 쓸 것이다.
“히이이이이이이이잉!”
놈은 한참 입을 찢다가 무신과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오늘따라 울음소리가 구슬펐다.
‘인연이면 다시 만날 것이다.’
무신은 마음속으로나마 손을 흔들어주며 고개를 들었다.
희뿌연 설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북해는 그 자체가 미로와 갔다더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까딱 정신 줄을 놓으면 그대로 사망이었다.
잘못 걸음했다가 엉뚱한 곳으로 갈지 모르니 말이다.
그는 지도를 꼼꼼히 살피며 걸음을 이어갔다.
출출하면 육포를 꺼내 씹었다.
내공으로 녹여 먹으니 그나마 소화는 되었다.
밤에는 가까운 동굴에서 선잠을 청했는데, 일어나니 아직도 세상이 캄캄했다.
겨울이라 아침이 늦게 피는 탓이 아니었다.
등이 배겨 두세 시진 만에 눈이 떠진 것이다.
그는 목만 대충 축이며 가부좌를 틀었다.
어차피 화경쯤 되면 운기조식만으로도 몸이 개운해지는 법이었다.
몸을 뜨겁게 달군 후, 그는 다시 출발했다.
그새 새벽 해가 빠끔히 떠오르고 있었다.
희뿌연 평야에 붉은 꽃이 큼지막하게 피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감성에 젖으며 그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내공을 듬뿍 쌓고 온 터라 내내 암향표를 쓰고 달려도 지치지가 않았다.
“빙궐대 대장 백 대협의 소개로 왔소만.”
강호 밖 새외무림.
북해(北海).
그가 그곳의 가장 중심부, 빙궁(氷宮)에 닿은 것은 흑룡강을 떠난 지 스무 일 만의 일이었다.
말을 타고 와도 한 달은 걸리니 그의 여정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창을 치켜들고 빠릿하게 서 있던 문지기가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힘껏 목청을 울렸다.
“귀인(貴人)이 오셨다!”
동시에, 빙궁의 정문이 개방되며 오색빛깔 장삼을 입은 여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빙궁 자를 새긴 무사들도 물론 함께였다.
‘나 원 참.’
무신은 조금 당황했다.
대접받을 것이야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