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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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9화
익숙한 감각
혈교가 멸교했다.
그러니 그 소식이야 진즉부터 퍼져 나갔다.
흑룡강을 비롯해 근방 지역에서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사실로 여긴 이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다들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요?
믿지 않은 이유야 뻔했다.
혈교는 사파 최강이었다.
사파라는 게 요즘 들어 정파나 마교에 비해 그 입지가 줄었다고는 해도 혈교만은 알아줬다.
그런 곳이 사라졌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겠는가.
“이제부턴 착하게 살아, 새끼야.”
그런데 혈교, 그곳에서도 교주라 불리우는 자가 웬 청년에게 뒤통수를 맞더니 이번에는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있었다.
그 큰 적라성의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얼굴부터 떨어진 탓에 콧잔등이 조금 까졌다.
원체 뻘건 피부라 잘 티는 나지 않았으나 애당초 상처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라성이 저 꼴이 났다는 게 중요했다.
“이, 이게 무슨…….”
머리를 처박고 있던 수염인은 무어라 입도 떼지 못했다.
반쯤 들린 그의 고개가 불안한 눈초리로 청년과 적라성을 쫓았다.
꿈인가 싶어 그가 제 볼을 세게 꼬집을 즈음, 적라성이 청년의 배낭을 받아 들었다.
그것도 굽실거리며.
“허…….”
여타 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넋을 놓은 얼굴로 청년의 ‘하수인’으로 있는 적라성을 쳐다봤다.
그들에게 혈교의 멸교를 알렸던 자 역시 반응은 비슷했다.
설마 이 지경까지 됐을 줄은 그도 몰랐던 것이다.
청년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표사들인가? 고생들 하는구려.”
“아, 예예……!”
표사들은 저도 모르게 극존대를 사용했다. 적라성을 주무르는 자니 적어도 적라성보다는 높거나 강한 존재란 뜻이기 때문이었다.
청년이 ‘그럼 일들 보시오’ 하며 다시 말에 오르려 했다.
수염인이 용기 있게 물었다.
“저… 헌데 누구십니까?”
“최무신이오.”
최무신.
수염인은 왠지 그 이름 석 자가 익숙했다.
“마향대와 마청대를 쓰러뜨렸다던… 그 최 대협 말씀이십니까?”
“거기에 혈사대와 허대건까지 잡은 자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맞소.”
“……!”
청년이 자신에게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적라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리고 최근에는 이놈까지 잡았지. 어쩌다 보니 혈교를 없애버렸구려.”
***
금의환향이었다.
서문을 나갈 때만 해도 적성마에 실린 먹을거리가 전부였는데, 들어올 때는 무려 개방의 비기가 있었다.
비월내각신공.
거기에 우사개 모추동의 패까지 얻었다.
여전히 먼지가 풀풀 나는 비월내각신공 무공서와 달그락달그락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패를 들고 무신은 혈교 정문에 진입했다.
보초를 보던 강시들이 그를 보며 빠릿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쪽으로만 잔뜩 지능을 키워놨더니 상급자 모시는 법을 잘 알았다.
그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비린내에 가득 찼던 곳이 향긋한 꽃내음에 뒤덮여 있었다.
간판을 떼고 보면 혈교가 아니라 화원 같았다.
‘무공 익히기 딱 좋은 환경이군.’
그는 한껏 숨을 들이키며 대련장을 찾았다.
그리고 비월내각신공을 펴 들었다.
잠재기를 먼저 깨우는 것.
그가 북해빙궁으로 가지 않고 다시 혈교로 돌아온 까닭이었다.
내용은 여전히 복잡했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눈이 끔뻑거렸다.
누가 눈알을 쑤시는 것 같았다.
‘어려운 일일수록 성과가 큰 법이지.’
그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담았다.
그림으로 표현된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실행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수련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그는 거의 반 미쳐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유림의 검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었다.
완전한 힘.
검신.
천하를 주무르는 위대한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바람이었다.
그는 큰 기대는 안 했다.
비월내각신공 무공서를 받을 때부터 생각했듯 1할만 되찾아도 좋았다.
아니, 1푼까지 떨어져도 괜찮았다.
그는 건량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며 비월내각신공 무공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날이 아주 저물어 달이 떠오르는 와중에도 자리를 지켰다.
그가 비로소 엉덩이를 뗀 것은 시꺼먼 하늘 위에 수백 개의 별이 가득 찰 즈음이었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졸려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끝낼 뿐이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는 유림이 하늘에 박히면 꼭 저 별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침실까지 갈 것도 없었다.
바닥이 이부자리요, 하늘이 천장이었다.
새로운 것을 익힌단 기대감 때문인지 그렇게나 딱딱한 바닥과 그렇게나 드넓은 천장이 왜인지 안락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누군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 앉았다.
마음은 쌩쌩해도 몸은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
“요 근방에 녹림이 좀 많거든? 가서 좀 정리하고 와.”
다음 날, 무신이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멀뚱멀뚱 서 있는 머저리에게 녹림 소탕을 지시한 것이었다.
내둬봐야 인력 낭비니 뭘 시켜서 굴리는 편이 나았다.
녹림놈들 대가리가 아무리 커졌어도 혈교의 흑룡강을 치겠느냐마는, 무신 자신을 위해서였다.
비월내각신공을 익히는 대로 흑룡강을 나갈 테니 미리 귀찮은 족속들을 제거해 두는 것이다.
머저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백의 강시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곧장 교원을 빠져 나갔다.
그들의 등 뒤에는 혈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혈이란 말 그대로 꼭 피의 색을 띠는 게 다소 꺼림칙하게 보였다.
그러나 남들 눈에만 그럴 뿐이었다.
무신의 눈에는 멋 부리려 복장을 깔맞춤한 허세꾼들로밖에 안 보였다.
저들을 혼자 가지고 놀 수 있는 자의 여유였다.
무신은 간단히 아침까지 챙겨 먹고서 비월내각신공 무공서를 펴 들었다.
어제 이론을 거의 다 떼놨기에 두 시진도 안 돼서 그는 가부좌에만 몰두했다.
비월내각신공의 실전이었다.
그것은 여타 신공과 시작부터 달랐다.
여타 신공이 단전을 느끼고 거기에 내공을 축적하는 식이라면, 그것은 단전을 느끼지 않으며 내공을 축적하지도 않았다.
잠재기.
무존재한 것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우선이란 말도 우습지. 찾으면 그냥 끝인 거야, 비월내각신공의 오의는.’
무신은 옅은 미소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헤엄쳤다.
아주아주 어두운 미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뭘 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모추동이 왜 시작도 못 했는지 금방 깨달았다.
이제 보니 이것은 하나의 경지였다.
무공을 수련하는 게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해는 갔다.
잠재기란 게 팔다리 열심히 휘두른다고 쌓이던가. 감춰진 힘을 찾는 일이니 깨달아야 한다.
그는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흐트러졌던 집중이 이내 곧 무겁게 그의 몸을 짓눌렀다.
뺨을 할퀴던 바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손가락을 간질이던 햇볕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딱딱한 바닥은 은연중에 연기처럼 하늘거렸다.
그에겐 익숙한 감각이었다.
화경, 현경, 생사경, 자연경, 그리고 신화경까지 거치며 수천, 수만 번도 더 겪었다.
어쩌면 하루 세 끼보다도 더 자주 몸에 베여 있었다.
그는 어느샌가 그 미지의 세계로 돌아왔다.
매한가지였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음에도 보이는 것은 그저 시꺼먼 시야뿐이었다.
지금 그에겐 세상의 눈도 닫혀 있었고, 정신의 눈도 닫혀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염라에게도 허락받지 못한 유림의 검을 한낱 인간이 찾겠다고 있으니 석 달 보름이 걸려도 달게 받아야 했다.
물론…….
‘유림의 검이 진짜 내 잠재기가 된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그는 닫힌 세상을 정처 없이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
머리통이 돌부리처럼 바닥에 박혀 있었고, 창자가 수풀처럼 발에 채이고 있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한마디로 그것이었다.
“이거야 원, 너무 쉽구만.”
팽 자 문양을 단 자가 그 난장판 속에 서 있었다.
그의 주위로는 내공을 잔뜩 개방한, 척 봐도 날고 길 것 같은 고수들이 수십도 더 운집해 있었다.
그, 아니, 하북팽가의 가주 팽영권이 계속 중얼거렸다.
“아무리 광군학관 근처라지만 뭐 이리 하수들밖에 없소?”
“내가 보기엔 하수들밖에 없는 게 아니오.”
진설세가의 가주 진설정이 팽영권의 말을 받았다.
“우리가 너무 강한 것이지.”
“하하!”
“내 마교 놈들이 이리 형편없을 줄 알았다면 진즉에 좀 혼내줄 것을 그랬소.”
진설정의 말에 팽영권을 비롯한 각 문파의 가주나 장문들이 껄껄 박장대소했다.
그러나 농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해서 ‘광군학관 일대를 뒤엎어라’ 하는 맹주의 지시를 잘 이행했다고 봤다.
팽영권이 눈도 못 감고 죽은 어느 마교인의 머리통을 걷어차며 말했다.
“이제 슬슬 본대로 움직이는 게 좋겠소. 이쪽은 더 건드릴 게 없는 것 같으니.”
“그럽시다.”
신분은 비슷하나 명령권은 팽영권에게 있었다.
그가 가장 강하기 때문에.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뭐, 본대로 가도 우리의 활약은 계속… 커억!”
그런데 가장 강한 자가 머리통이 잘려 죽었다.
방금 전 자신이 건드린 머리통과 똑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딜 그냥 가시려고.”
놀란 정파인들의 앞으로 누군가가 유유자적 걸어왔다.
단신이었다.
그러나 풍기는 기세는 수십 정파인들보다 더 컸다.
진설정이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저, 저놈은……!”
누군가가 비릿하게 웃었다.
진설정의 몸이 이제는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여타 정파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문파의 가주나 장문이란 작자들이 겨우 한 명의 마교인에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절을 안 한 게 용한 일이었다.
오면 안 될 자가 왔으니까.
“반가워, 정파 관계자분들.”
흑관마(黑貫馬) 마정태.
마교의 부교주였다.
***
머저리가 흑룡강 근방의 녹림을 다섯 채나 궤멸시키고 돌아왔을 때도 그는 걷고 있었다.
그해 가을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걷고 있었다.
급기야 대련장 전체가 폭설에 파묻히던 날에도 그는 걷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는 하나의 산이었다.
제 주인이 그 지경이 된 것을 봤으면 치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건만 강시들은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그와 더 멀리 떨어졌다.
/“나와 내 주위 모든 것을 그대로 두라.”/(이탤릭)
반 년 전, 그가 그렇게 지시한 탓이었다.
폭설은 금세 그쳤다.
하지만 이미 쌓인 것은 아직 한창이었다.
녹아내리기는커녕 뒤이어 몰아친 한파에 얼음장처럼 꽁꽁 굳어 버렸다.
이제 그는 정말 산이 돼버렸다.
1만 근짜리 철근이 떨어져도 아무 지장이 없을 만큼 단단해져 버렸다.
죽지는 않았을까.
아니, 이미 죽었을 거야.
혹자가 보면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일은 그때 터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별안간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져 내리며 벽력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오십 장도 더 멀리 있던 교원 내 강시들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심지어 교원 밖 아름드리나무들까지 뿌리째 뽑혀 나갔다.
그러나 빛은 이제 시작이었다.
점점 더 몸집을 키우더니 교원 전체를 집어삼켰다.
강시들이 아주 정신을 잃었다.
적라성도 얄짤없었다. 눈알을 까뒤집은 채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빛이 그쳤다.
솨아아아.
그리고 잠잠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을 내더니 무언가를 툭 하고 뱉었다.
그였다.
그가 광채가 나는 검을 들고 그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