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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8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8화

잠재기

 

 

“문제가 하나 생겼네.”

 

망룡무관 2층.

관주가 조금 난감하단 투로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니 자네에게 줄 만한 비기가 없어.”

“예?”

“백산검법을 익힌 자에게 검법 관련된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신경을 주자니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개방이 그쪽으로는 내세울 만한 게 없네. 그렇다고 봉법을 일러주자니 검객에게 그 무슨 추태인가 싶고.”

 

추태라는 말을 쓸 정도로 관주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신에겐 의외의 상황이었다.

사실 그는 관주가 대강 아무 비기나 하나 던져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어떤 비기가 좋을 것인지 ‘맞춰주고’ 있었다.

그는 괜찮다는 척 말했다.

 

“비기는 말 그대로 숨겨진 기술이란 특수성을 지니고 있잖습니까? 제게 어울리지 않아도 그 특수성에 만족합니다.”

“성품도 실력 따라 훌륭하구먼.”

 

관주가 ‘그리 말해줘서 고맙네. 허나…’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주는 것은 약조를 어기는 것이라 생각하네.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니야.”

“…….”

“잠깐 차를 마시고 있게나. 내 금방 찾아서 내옴세.”

 

무신을 홀로 남겨둔 채 관주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재에 들어가 비기 목록이라도 살피려는 모양이었다.

무신은 차를 홀짝였다.

관주에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딱히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개방의 비기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뒤진들 그에게 어울리는 것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 직접 말하기도 했듯 비기란 숨겨진 기술이었다.

그가 아는 개방의 비기는 진짜 숨겨진 기술이 아닐 공산이 컸다.

그래봤자 회귀 전의 기억으로만 안 것이니 말이다.

그는 반쯤 남은 차를 입 안에 모두 밀어 넣었다. 목구멍을 적시는 달달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바닷물처럼 맑고 시원했다.

차도 그렇고 하늘도 그렇고 왜인지 괜찮은 예감이 들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관주가 돌아온 것은 일각쯤 지나서였다.

그의 손에 낡은 무공서가 하나 들려 있었다. 겉보기에는 줘도 안 가질 종이 뭉치였다.

그러나 망룡의도 저와 같은 낡은 상자에 들어 있었다.

무신은 기대감에 젖어 그를 맞았다.

 

“개방의 비급을 얻는 일에 그깟 일각이 대수겠습니까?”

“하여간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먼.”

 

회귀 전, 15년 삼류무사 인생이 만들어준 처세술이었다. 무신은 관주와 같은 자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관주가 다시 마주 앉으며 무공서를 내려놓았다.

겉면에 쌓인 먼지가 허공에 휘날렸다.

냄새도 퀴퀴했다.

확실히 겉보기에는 형편없었다.

관주가 그것을 손으로 훌훌 털며 말했다.

 

“이것은 비월내각신공이란 것일세.”

 

비월내각신공.

혓바닥에 감기는 발음이 낯설었다.

회귀 전의 기억에도 없는, 정말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즉슨…….

 

‘진짜 비기는 비기인 셈이로군.’

 

무신은 군침을 삼켰다.

왜인지 괜찮았던 예감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이것이라면 자네에게 어울릴 옷이란 생각이 들어.”

“어떤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우선 신공이니 쉽게 말해 심법이네.”

 

그거야 강호인이라면 열 살 배기 애도 알 내용이었다.

무신은 거기서 조금 실망했다.

간단한 내용을 굳이 알려줘서가 아니라 심법은 그에게 굳이 필요치가 않아서였다.

백산자화신공.

그는 귀곡심법도 단번에 버릴 만큼 이미 대단한 심법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더 들어볼 일이었다.

실용성을 강조한 이가 직접 ‘어울릴 옷’이라고 지칭했으니 말이다.

 

“자네, 선천지기란 말을 아는가?”

 

설명을 해달랬더니 관주가 대뜸 뜬금 없는 말을 꺼냈다.

무신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그것을 받았다.

 

“예, 물론입지요.”

“그럼, 잠재기란 말에 대해서도 아는가?”

 

잠재기.

말 그대로 잠재된 내공을 뜻한다.

하지만 선천지기와 달리 강호에서 잘 쓰는 말은 아니었다.

사용법이 없는 것을 떠나 애당초 잠재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다.

환생하거나 회귀하여 힘을 현생으로 끌고 오지 않고서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무신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유림의 검.

다루지 못할 뿐 틀림없는 잠재기였다.

비월내각신공이란 게 설마 잠재기를 끌어내 주는 것이라면…….

 

“이것은 잠재기를 끌어내 줄 수 있게 도와주는 비기일세.”

 

관주가 무공서를 펼치며 그렇게 설명했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쏟아냈다.

 

“물론 자네도 알다시피 잠재기란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정말 실존하느냔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많지. 허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겨우 스물일곱에 화경까지 오를 재능을 가진 이라면 분명 잠재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네. 내가 자네를 특별하게 본 게 아니라 그냥 자네가 대단한 것이니 말이야.”

 

칭찬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무신은 지금 비월내각신공이란 것으로 유림의 검을 빼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론 삼천 갑자도 넘었던 내공을 전부 되찾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1할.

그만큼만 되도 좋았다.

무신은 관주에게 비월내각신공 무공서를 받아 들었다.

살짝 펴보니 내용이 상당히 복잡했다.

심법이란 게 원래 그렇다지만 시작부터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빼곡히 들어찬 글자와 그림을 뒤로하며 무신은 관주를 쳐다보았다.

 

“관주께선 이것을 연마해 보셨습니까?”

“물론 해봤지.”

“어떠셨습니까?”

“시간 낭비였네.”

 

제아무리 삼류무공이라도 아주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관주는 그것조차 없었다 말하고 있었다.

이유야 뻔했다.

그에겐 잠재기가 전무했던 것이겠… 무신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예 무공 자체를 익히지 못했네.”

“예?”

“머리로는 백번 이해를 하는데 몸으로는 한번 따라 하기도 힘들더구먼.”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비월내각신공이 비기이지 비급은 아니라서 말이야. 아마 강호 전역을 통틀어도 익힐 자가 몇 안 될 걸세.”

 

관주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모두가 실패할 것을 왜 주느냔 얼굴이로구먼. 뭐, 별것 있겠나. 아까 말한 것과 같네. 자네라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

“내 사람 보는 안목 하나는 있거든.”

 

무신은 ‘그렇게 안목이 좋으신 분께서 제가 화경이자 신성인 것은 왜 못 알아보셨습니까?’ 하려다 말고 다시 비월내각신공 무공서를 쥐었다.

글자와 그림이 왠지 더 빽빽하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관주도 실패했다고 하니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다.

하지만 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의외로 쉽게 넘어설지도 몰랐다.

백산자화신공을 시작과 동시에 깨우친 것처럼 말이다.

무신은 낡은 무공서를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슬쩍 파천에서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오!”

 

이야기를 마친 후 배춘삼의 패를 꺼내 보여주니 관주가 화들짝 놀랐다.

 

“배 장로께선 어찌, 잘 지내고 계시는가?”

“평범한 개방인의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후후…….”

 

관주의 말꼬리는 어딘지 씁쓸해 보였다.

그럴 것이 배춘삼은 개방의 방주로도 거론됐던 거물이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자가 일선에서 빠졌으니 아쉬움이 든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관주 본인도 개방을 떠난 지 오래였다.

 

“언제 한번 찾아봬야겠어.”

“파천에 가면 아직 계실 겁니다.”

“여전히 만두와 죽엽청을 좋아하시던가?”

“예. 아시는군요.”

“그럼. 내 십 수 년도 넘게 모신 분인데.”

 

그렇게 말하며 관주가 잠시 패를 손바닥에 올렸다.

과거를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에 그리움이란 감정이 그렁그렁했다.

그러다 ‘자넨 여러모로 대단하구먼’ 하며 다시 무신을 쳐다보았다.

 

“배 장로님의 은인이었을 줄이야.”

“먹을 것을 챙겨 드린 게 뭐 은인까지 되겠습니까?”

“되네. 충분히 되네.”

 

관주가 패를 가리켰다.

은인이 되지 못했다면 결코 못 가졌을 물건이었다.

 

“가만 있자, 자네에게 선물을 하나 더 줘야겠구먼.”

“예?”

 

무신은 놀란 척 물었다.

관주가 ‘배 장로님의 은인을 그냥 보낼 수는 없네’ 하며 무언갈 꺼내 가져왔다.

휘황찬란한 글자가 박힌 둥그스름한 것.

패였다.

 

“배 장로님의 것에 비하면 그 가치가 형편없겠으나 그래도 쓸 만은 할 걸세.”

 

전혀.

쓸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배춘삼의 패보다 곱절은 더 가치가 있었다.

배춘삼은 일선에서 빠진지 굉장히 오래됐지만, 관주는 이제 십 년 안팎이었다.

개방 내부에서는 관주의 입지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무신은 ‘아이구, 뭘 이런 것을 다…’ 하면서도 냉큼 관주의 패를 집어넣었다.

 

“좋은 만남이었네. 그럼 살펴가게.”

“저도 만나뵈어 영광이었습니다.”

 

무신은 그길로 망룡무관을 나섰다.

그리고 일단 머저리를 찾으려는데, 웬 무인들이 그의 앞을 가리고 섰다.

이성구와 고경림, 그리고 주가영 등.

그와 대련을 했던 바로 그 무인들이었다.

이성구가 손바닥을 비비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주 늠름하시오, 최 대협.”

 

이미 이름을 밝혔으니 최 대협이란 지칭이 낯설지는 않았다.

무신은 가볍게 웃었다.

 

“고맙소.”

“나는 이성구라 하오.”

 

그쯤이야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뒤이어…….

 

“고경림이오.”

“저는 이미 아시겠지만, 다시 한번 소개할게요. 주씨세가 본가 장녀 주가영이랍니다.”

 

하는 소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무신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 심지어 성향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보력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내게 볼 일이라도 있으시오들?”

“그게 그러니까…….”

 

형식상 물어봤을 뿐이었다.

무신은 대충 감이 왔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 뭐 이런 거 아니겠소? 하하!”

 

역시나.

관주에게 인정받는 화경의 고수를 만났으니 어떻게든 엮이고 싶은 것이다.

거기다 신성에 들었기도 하고.

속 보이는 술수였으나 이해 못 할 행동은 또 아니었다.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무연.

무(武)를 중시하는 강호에서는 무연이 가장 제일이었다.

 

“무례했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죄드릴게요.”

 

오죽하면 주가영의 그 고고한 고개가 공손하게 숙여졌다. 제 아비를 상대로도 이렇게는 안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딱히 무신에게 이럴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신은 여전히 그녀와 연을 맺을 생각이 없었다.

비단 그녀만이 아니었다.

이성구나 고경림 등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정도에 불과했다.

난다 긴다 하는 자들을 굳이 멀리할 게 있겠느냐마는, 그래봤자 화경 아래였다.

알고 지내봤자 이득될 것이 없었다.

물론 회귀 전이었다면 쌍수 들어 반겼겠지만.

 

“돈독한 관계는 다음에 쌓읍시다.”

 

***

 

“이보라니까!”

 

흑룡강 서문.

표물 운행을 잠시 중지한 일련의 표사들을 향해 누군가가 한껏 목청을 키우고 있었다.

 

“서문까지 왔는데 혈 자를 단 무사들이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되오?”

“흠.”

“혈교는 그냥 멸교했소!”

 

누군가도 같은 표사였다.

그가 윽박지르는 던지는 말에 수염을 복슬복슬하게 기른 자가 입을 열었다.

 

“혈교 무사들이 항상 입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나는 여전히 못 믿겠소.”

“하, 나 참.”

“은자 50냥을 걸어도 좋소.”

“정말이오?”

 

수염인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파 최강이라는 혈교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슬까슬한 바람이 불었다.

모래 먼지가 아니었다.

비바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난데없는 칼바람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니, 방금 전까지도 날이 맑았기에 수염인을 비롯한 표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저게 뭐요?”

 

한 표사의 손가락이 칼바람 뒤의 무언갈 가리켰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니 두 개의 신형이었다.

둘 다 말을 타고 있었는데, 오른쪽에 있는 자의 체구가 몹시 컸다.

정말 몹시 커서 대번에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적라성?”

 

수염인이 신경질적으로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역시 허풍일 줄 알았다며.

혈교 교주가 저리 버젓이 두 눈 뜨고 살아 있는데 무슨 멸교했느니 어쨌느니 했냐며.

수염인은 동료들과 함께 일단 엎드리고 봤다.

흑룡강에서 적라성을 마주치거든 머리부터 숙이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안 했다가는 죽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얼마나 괴롭혔으면 널 보자마자 저리 엎드리냐?”

 

적라성과 함께 온 웬 청년이 적라성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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