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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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7화
이계인
참새 몇 마리가 지저귀며 지나갔다.
하루에 서너 번은 듣는 것이 지금은 유독 더 크게 들렸다.
자리에 감긴 침묵은 그 정도로 무겁고 두터웠다.
이러다 지렁이 기어가는 소리도 듣겠다 싶을 즈음, 털썩! 누군가가 주저앉았다.
관주였다.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게 아주 얼이 빠져 있었다.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힘없이 놓쳐진 그의 검이 바닥에 볼썽사납게 떨어졌다.
우사개 모추동.
당장 망룡학관을 두고 뛰쳐 나가도 이름난 문파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고수.
아직도 개방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라 불리는 고수.
심지어 동급의 무인들 입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오르내리는 고수.
그런 자의 반응이라기에는 너무 볼품없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누구도 그의 반응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다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곳에는 무신이 서 있었다.
관주와 달리 그는 매우 평온했으며 벌컥벌컥 물까지 마시는 여유를 보였다.
그러다 관주를 돌아보며 옅은 미소를 띄웠다.
대련 중에 띄웠던 바로 그 미소였다.
관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 자네 이름이 뭔가?”
대련은 끝났다.
망룡의, 그리고 일각 안에 승리하면 개방의 비기를 주겠단 약조도 미리 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말을 해도 되었다.
무신은 공손히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최무신입니다.”
뒷말까지 더해 겨우 여섯 음절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파장은 여섯 장 밖까지 퍼져 나갔다.
자리한 무인들 대부분이 ‘허억!’ 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관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히려 무인들보다 동요한 모습을 보였다.
주저앉았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무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금… 최무신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허.”
관주와 무인들이 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무신은 알 것 같았다.
뻔한 이유였다.
신성.
그것에 대한 소문이 슬슬 강호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관주는 개방의 실세였으니 당연히 아는 것이고.
‘이성구가 고경림까지 아는 것은 조금 의외이기는 한데… 하기야 저 멀리 북해빙궁까지 퍼졌을 정도면 진즉에 알고도 남았겠지. 저 여자는 아닌 모양이지만.’
무신은 힐끗 주가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정말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뭔데요? 뭔데? 하는 얼굴로 이성구와 고경림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혼이 나가 입을 열 생각도 못했다.
다행히 관주가 해답을 풀어주었다.
“…설마 하니 신성이 왔을 줄이야.”
“관주께서 직접 신성이라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살아생전 신성을 면전에서 보기는 처음이라 내가 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네.”
주가영이 ‘네? 신성이요?’ 하며 관주와 무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신성에 누가 속하는지는 몰라도 신성 자체가 갖는 의미는 그녀도 아는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고경림이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알고 사시오’ 하고 핀잔을 주며 말했다.
“무려 마교의 마청대와 혈교의 혈사대를 단신으로 잡아내고 신성의 반열에 올랐지. 심지어 서열 1위 허대건까지 쓰러뜨렸소.”
“호, 홍전풍 허대건이요?”
“그래, 그 허대건.”
“그,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서 직접 해냈으니까 신성의 반열에 올랐다 이 말이오.”
실상은 그 허대건조차 약과였다.
이 직전, 혈교를 통째로 무너뜨린 것에 비하면.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소문이 아무리 빨라도 여기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무신은 잠자코 있었다.
가뜩이나 난리가 난 곳에 더 큰 것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인 그였다.
관주가 약이 오른단 얼굴로 말했다.
“신성인 줄 알았다면 내 더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을 텐데 말이야.”
“하하.”
“그저 그런 실력이었겠거니 생각한 내 잘못이구먼.”
말을 함과 동시에 관주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백산검법에 통달했다고 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나.”
“그거 가지고는 신성까지 연결시키기 어렵지요.”
“그렇지. 백산검법이 아무렴 대단하다고는 해도 신성까지 연결시키기는…….”
말을 이어가던 중, 관주의 고개가 설마 하는 기색으로 꺾였다.
“자네… 혹, 백산자화신공까지 익힌 겐가?”
무신은 이번에도 그저 ‘하하’ 웃고 말았다.
관주에게는 그것이 긍정으로 비춰졌다.
“저, 정말인가?”
말을 더듬을 정도로 관주는 당혹스러워했다.
그의 팔자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옷자락을 까보면 심장도 쿵쾅대고 있을 것이다.
무신은 목례하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관주의 눈알 동태의 그것처럼 튀어나왔다.
“하, 한번 볼 수 있겠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이제는 아주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그만큼 백산자화신공은 대단한 무공이었다.
무신은 ‘알겠습니다’ 하며 여지껏 드러내지 않았던 내공을 일제히 끌어모았다.
일부러 감춘 것은 아니었다.
내공을 쓰지 않는 게 이곳의 규칙이었다.
곧 그의 단전에 내공이 감돌았다.
그것은 이내 그의 상반신을 거쳐 온몸에 휘감겼다.
여타 무인에게는 단전에서만 제한돼 있는 것이 그에게는 온몸까지 허용되었다.
백산자화신공의 힘이었다.
무인들이 꼴깍꼴깍 침을 서너 번 삼킬 즈음, 그의 육신은 하나의 활화산이 돼 있었다.
건드리면 터질 듯 뜨겁고 강렬했다.
무위가 약한 무인들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무신은 살기를 전혀 꺼내들지 않았으나 상대적 하수에게는 그마저도 두려웠던 것이다.
저것을 견디지 못해 죽을까 싶어.
무신은 그들을 배려해 내공 회전을 그만 멈추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였다.
몇몇 무인들에겐 이미 배려가 아니었다.
“크엑!”
괴음을 내며 토악질을 하는 자도 있었다.
역겨울 때나 올라오는 것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보는 내공질에 반응한 것이다.
그러니 몸만 굳어지고만 이성구나 고경림 등은 굉장히 양반이었다.
반면, 관주는 멀쩡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칼바람을 맞았다 정도였다. 얼굴만은 퍽 일그러져 있었다.
관주가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순식간에 이만치 내공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은 백산자화신공뿐이지. 정말이구먼.”
“제가 아는 관주님도 이 정도는 가능하실 줄로 압니다만.”
“나야 화경이니 그런 것 아니겠나. 백산자화신공 같은 무공을 들고 있는 셈이니.”
그렇게 대답한 관주의 표정에 순간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의 연속이었지만 설마 이번에도 그럴 수 있겠느냐는 듯한 것이었다.
그는 간신히 입을 떼며 물었다.
“…자네도 화경인가?”
“저의 스승께서는 백산자화신공을 익힌 자에게 화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허.”
“과거에는 약관의 나이에 화경이 된 자도 있다던데, 스물일곱의 저는 늦은 편 아니겠습니까?”
어느 무인들 많은 객잔에서 지껄였다가는 양쪽으로 따귀를 맞을 말이었다.
스물일곱.
아무리 더 빠른 전례가 있었다고는 해도 결코 늦다 표현할 나이가 아니었다.
보통 같으면 초절정에만 올라도 불세출의 인재라 칭송받는 게 그 나이였다.
게다가 애당초…….
“약관의 나이에 화경이 된 자는 마교인이었네. 마공을 죄 끌어다 써 작업을 한 것이지.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도달한 자네완 달라.”
순수한 자신의 힘.
면밀히 따지면 조금 애매하기는 했다. 망령의 숲에서 무려 22만 년간 폐관수련을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또한 내 순수한 힘은 맞지.’
무신은 잠깐 옛날을 돌아보며 관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검합일이야 이뤘을 테고… 이기어검의 오의도 깨우쳤나?”
깨우쳤단 말도 우스웠다.
적라성에게도 일러주었듯이 무신은 십구만 년 전쯤 이기어검에 통달했다.
정확히는 화경 이기어검의 도어검을.
내공만 버텨준단 전제하, 자다가 일어나 바로 검을 허공에 띄울 수 있는 게 바로 그였다.
그는 다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관주가 이젠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네 입에서 현경 소리가 나올까 두렵네.”
“그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시간문제일 걸세.”
관주가 확신에 차서 말을 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삼류무사가 초절정까지 오르는 것보다 화경에서 현경에 오르는 게 더 쉽거든.”
“음.”
“일단 화경이 됐다는 것은 깨달음에… 뭐라 해야 할까, 일가견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 생각은 그렇네.”
무신은 관주의 말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후자가 더 어려웠다.
그러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망령의 숲에서 초절정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이후 현경으로 넘어가는 걸린 시간과 엇비슷하기는 했다.
두 사람 간에 제법 진중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 주위는 또 침묵에 잠겨 있었다.
무신이 내공을 발현한 게 거기에 불씨를 지폈고 화경은 장작이 되었으며 이기어검이 결국 불꽃이 되었다.
그들은 무신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아니, 경이롭단 말로는 부족했다.
자신들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자였다.
이성구가 물었다.
“혹… 이계에서 왔소?”
“이계?”
“검을 소드인지 뭔지로 부르는 자들이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나 강하다던데.”
부분적으로 맞기는 했다.
무신은 이계인이었다.
그러나 이성구가 언급하는 ‘색목인’은 아니었다.
“생긴 것부터 다르지 않소? 대협이 말하는 자들과 나는.”
“혹시 모를 일이잖소? 피부색이나 이목구비 정도야 얼마든지 같을… 허,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억지를 부렸군.”
억지를 부릴 만큼 이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단 뜻이었다.
다른 무인들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은 그들을 뒤로 하며 재미있겠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이계인은 그만이 아니었다.
언제고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하며 그는 슬슬 본론을 꺼내 들었다.
“관주님,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응?”
관주는 한 박자 늦게 무신의 말을 이해했다.
“아, 아! 내 깜빡했구먼. 미안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낡은 상자.
무관에서 들고 온 그것이 청초한 빛을 냈다.
온갖 보석이 박히지 않아도 멋들어짐이 나올 수 있음을 무신은 오늘 처음 알았다.
‘멋들어짐은 개뿔.’
그는 이내 피식 웃었다.
저 안에 망룡의가 들어 있어서였다.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면 줘도 안 가질 폐품이었겠지.
“자, 받게.”
“감사합니다.”
이무기를 뜻하는 망룡 어구가 등판에 까만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이외는 일반 무복과 비슷하지만, 착용하면 달라진다.
갑옷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방어력이 일품이다.
‘무슨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했지?’
무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재료가 뭐가 됐든 요긴하게 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근 3년을 함께한 파천의를 그 자리에서 벗어 던지고 망룡의를 착용했다.
본디 그의 물건이었던 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었다.
등판의 망룡 어구는 체내에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강기만 쳐도 웬만한 공격은 죄 막아내는 게 그의 실력이었다.
굳이 망룡의를 입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100과 100에 1이 더해진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천하제일인을 꿈꾸는 자에게는 그 1도 매우 중요했다.
무신은 파천의를 어깨에 들쳐 멨다.
막상 버리게 된다니 조금은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그만큼 성장했다고 보면 오히려 뿌듯해야 할 일이리라.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진짜 본론을’ 꺼냈다.
“아직 더 배가 고프군요, 관주님.”
“하하, 일단 무관으로 돌아가게나. 거기서 알려줌세.”
“예.”
개방의 비기를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