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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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6화
일각 안에 끝내면
흔히 고수라 불리는 무인들은 어릴 적부터 이미 난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늘 최고였다.
문파에서든, 지역에서든, 심지어 역사에서든.
일생을 그렇게 자라왔으니 본인의 무위에 자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지지 않는단 자신이 있었다.
주가영이 무신을 꺾겠다며 나불거린 것 또한 그것이었다.
얕잡아본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계산이 틀리지는 않았다.
주씨세가 본가의 장녀 주가영.
문파와 일대를 주름잡고, 나아가 역사에 꼽을 만한 재목이 될 수도 있었으니 그녀는 무신에게 자신을 갖는 게 맞았다.
그러나 무신이 초월자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망령의 숲에서 22만 년을 보냈다.
그의 검술은 22만 년을 묵었고, 경험 또한 22만 년이 쌓였다.
그녀가 아무리 잘나도 그가 이룩한 것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봤자 22년이나 겨우 살았을 그녀에게는.
“마, 말도 안 돼…….”
주가영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작게 열린 입술에 갖가지 감정이 복잡미묘하게 쌓여 있었다.
옆구리만 톡 찔러도 끅끅 울 것 같았다.
그녀는 본인이 졌다는 사실보다도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단 것에 충격을 받아 있었다.
꺾인 듯 숙여진 고개가 좀처럼 앞을 보지 못했다. 가려져 있으나 눈의 초점은 한없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진즉부터 바닥에 떨어진 검은 주인을 닮아 미동도 안 했다.
내공이 발현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전 대련 때와 달리 살기가 전혀 없었다.
무신도 사람인지라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 좌절감을 줬나.’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왜인지 미안한 감정이 사라졌다.
왜인지.
그는 그 생각에 피식 웃었다.
애당초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가만두지 않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한 이는 바로 그녀였다.
여자로서 남자에게 차였다 생각해 그런 모양이었지만… 그가 그런 사사로운 감정까지 보살펴 줄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스쳐 지나갈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망룡학관을 나가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그가 연을 맺고 싶은 자들은 하성운이나 이나희 등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회귀한 순간부터 말이다.
“마지막 한 판이 싱겁게 끝나 버렸구먼.”
관주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아쉽단 말투와 다르게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단 얼굴이었다.
너부러진 주가영에게는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그의 눈길, 아니, 모든 신경은 무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망룡의를 넘기게 될지도 모르겠어.”
화경의 고수가 ‘걱정’을 하고 있음에도 놀라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인들이 보기에도 방금 전 무신의 무위는 관주와의 대련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애당초 승패를 가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관주의 몸을 열 번만 건드리면 되었다.
이성구가 턱 밑으로 줄줄 샌 침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내가 저런 사람한테 그 지랄을 떨었다니…….”
스스로의 행동을 지랄이라 표할 만큼 그는 무신이 보여준 무위에 넋이 나가 있었다.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팔뚝에 소름이 잔뜩 돋아 있었다.
잔뜩 커진 동공은 아직도 무신의 검의 잔상을 쫓아다녔다.
그는 옆에 앉은 무인이 움찔할 정도로 몸서리를 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단하지 않았소?”
“대단하고, 또 훌륭했지.”
그의 물음에 대답한 이는 고경림이었다.
고경림이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하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았소.”
그의 말은 이성구가 아니라 무신을 향하고 있었다.
스승의 시범을 본 제자가 감탄을 쏟아내는, 딱 그짝이었다.
“춤사위라니. 말만이라도 고맙소.”
무신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사실은 겸손한 ‘척’이었다.
천하제일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낮추는 게 강호무도의 정석이었다.
그런데 진짜 사실은 겸손하고 어쩌고 하는 것을 따질 것도 없었다.
고경림이 춤사위라 칭한 검술은 무신에게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22만 년 간 몸에 배인 것.
습관처럼 자연스레 나올 뿐이었다.
주가영이 비 맞은 쥐새끼처럼 축 쳐져서는 몸을 일으켰다.
“실례가 많았어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늘 진 얼굴은 어둡다 못해 산송장 같았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토록 고고했던 학이 한순간에 병아리만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무인들 틈으로 들어갔다.
관주가 말했다.
“잠깐 쉬었다 하지. 아, 그리고 자네들은 원한다면 돌아가도 좋네.”
무신을 제외한 무인들에게 한 말이었다.
이성구가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띠며 답했다.
“뭐 얼마나 오래 걸리겠습니까? 그걸 떠나서 이런 싸움을 안 보면 바보지요, 바보”
“예예. 지금 얼마나 기대되는데요.”
“후딱 시작합시다, 관주님.”
이성구뿐 아니라 모든 무인들의 생각이 그랬다.
물론 주가영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에게 좌절감을 준 상대가 똑같이 좌절감을 맛보길 고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대련이 시작된 것은 일각이 지나서였다.
관주는 최대 한 시진까지도 휴식 시간을 주겠다고 했으나 무신이 거절했다.
왜냐하면 무신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어서 빨리 운사개 모추동의 실력을 맛보고 싶었다.
“말했던 그대로네. 내 몸을 열 번만 건드리면 돼.”
무신이 맛보고 싶은 관주의 실력은 ‘겨우’ 몸을 열 번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냥 무인 대 무인으로 ‘자웅’을 겨루고 싶었다.
겨우와 자웅.
누가 들으면 미친놈보다 더한 미친놈이라 하겠으나 무신에겐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애당초 관주는 착각해도 아주 단단히 착각했다.
본인이 아무리 화경이라 한들 상대 또한 화경일 수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오늘만큼 나도 좀 긴장이 되는구먼. 자넨 여태 본 어느 도전자보다 강해.”
관주가 짐짓 진중한 눈을 했다.
그래도 무신을 특별하게는 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자만하지는 말게. 자네가 앞서 겨룬 상대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테니.”
질적.
관주의 입에서 나오니 전혀 허세처럼 안 느껴졌다.
무신은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될 때까지 밀어붙일 수도 있는 것이잖습니까? 제가 만약 자만한다면 말입니다.”
“허허, 그럴 리 있겠나. 당연히 제한 시간이 있네.”
관주가 손가락 한 개를 폈다.
“이 안에 성공해야 해.”
“일각이요?”
“응?”
관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 농을 잘하는구먼. 일각으로는 날 한두 번 건드리기도 어려울 걸세.”
“그럼 한 시진이군요.”
“그렇네.”
“관주님, 만약에 말입니다.”
관주에게는 농일지 몰라도 무신에게는 아니었다.
무신은 그 부분을 이용해 조금 더 이득을 취하고자 했다. 망룡의 외의 다른 것을 얻을지도 몰랐다.
“일각 안에 끝내면 어찌 됩니까?”
“그럴 리는 없겠네만 정말 만약 그리된다고 하면…….”
관주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개방의 비기를 하나 넘겨주지.”
두 사람을 위해 침묵을 유지했던 자리가 순간 크게 술렁였다.
어디 이름 없는 문파의 비기도 아니고 무려 개방의 비기가 내걸렸으니 벌떡 일어나 ‘와아!’ 하고 소리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저 개방의 비기란 말이 놀라웠을 뿐이다.
그게 무신의 품에 들어가리라 여기는 이는 전무했다.
이성구가 고경림에게 물었다.
“대협은 어찌 보시오? 성공할 것 같소?”
“일각 안에?”
“에이, 그거야 당연히 실패할 테고. 한 시진 안에 말이오, 한 시진.”
“흠, 모르겠는데.”
“그렇지? 나도 성공한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실패한다고도 말 못 하겠소. 그만큼 저 대협의 실력이 출중해서.”
이성구의 고개가 주가영에게 돌아갔다.
“우리 주 소저는 어찌 보시나?”
“무조건…….”
“무조건?”
“한 시진 안에는 성공해요.”
이성구가 왜 그리 생각하냐고 묻자 주가영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절 이겼으니까요. 아주 쉽게.”
“뭐 본인이 무위 측정기라도 된다 이 말이요?”
“그럼요.”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당황스러움은 이성구의 몫이었다.
그는 넌덜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대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자, 그럼 준비하게.”
준비란 말이 무색하게 정작 관주 본인은 검도 뽑지 않았다.
손가락만 까딱였다.
이번에도 허세로는 안 보였다.
그냥 저렇게만 있어도 위압감이 있었다.
물론 지켜보는 무인들의 경우였다.
무신에겐 여기저기 빈틈투성이였다.
그는 땅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그의 오른손에 혈관이 도드라질 만큼 흑라신검이 꼬나 쥐어져 있었다.
내공을 전혀 물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맹렬한 위세를 뽐냈다.
그것 자체의 특성이 아니었다.
그의 기백이었다.
화경, 실질적으로는 검신에 달하는 자의 바로 그 기백이었다.
관주가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초점도 흔들렸다.
허리춤에 붙어 있었던 그의 손이 다급히 검을 뽑았다.
그러나 무신은 그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다려 줄 것 없이 흑라신검을 휘둘렀다.
태산도 씹어 삼킬 듯 크게 입을 벌리고 있던 녀석이 관주의 몸통을 물어뜯었다.
“드, 들어갔어!”
이성구의 것으로 추측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관주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옷가지야 당연히 찢어졌고, 속살이 튀어나올 만큼 꽤 상처가 깊었다.
그러나 이도 관주가 재빨리 반응한 덕분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속살이 아니라 뼈가 튀어나왔을 것이다.
관주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여유로웠던 몸짓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듯 혈관이 도드라질 만큼 꼬나 쥐고 있었다.
그도 무신처럼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자네 대체…….”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무신의 공격은 이어지고 있었다.
무신은 검을 밀치는 척, 왼 발로 관주의 복부를 걷어찼다.
힘을 많이 줄 것도 없었다.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 있었으니 살짝만 줘도 바람 앞의 갈대처럼 관주의 허리가 꺾였다.
처억!
관주가 이번에도 놀라운 반응으로 막아나기는 했으나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어쨌든 무신은 관주의 몸을 건드렸다.
승리 조건을 한 번 더 채운 것이다.
“버, 벌써 두 번이나 건드렸어!”
벌써 두 번이나 건드렸음에도 걸린 시간은 눈 대여섯 번 깜빡일 시간에 불과했다.
한 시진은커녕 일각도 우스워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고경림이 냉철하게 판단했다.
“이제부턴 다를 거요. 관주의 저 눈빛을 봐.”
흡사 먹잇감에 굶주린 들짐승의 그것이었다.
관주는 몹시 광분해 있었다.
자신보다 하수에게 당했단 게 일순 치욕으로 변질돼 버린 탓이었다.
그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무신을 아예 죽일 심산이었다.
“위, 위험한 거 아니에요?!”
주가영이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무신이 바라던 바였다.
그는 관주의 이것을 원했다.
관주가 광분한 것처럼 그 또한 흥분했다.
그는 윗입술을 핥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얼마나 기쁜지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부푼 가슴을 누르며 전 개방의 실세이자 현 운사개 모추동, 그리고 망룡학관 관주의 ‘전력’을 만끽했다.
까앙!
내공 없는 두 개의 검이 불규칙한 쇳소리를 만들었다.
귀는 불쾌했으나 마음은 산뜻했다.
무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것을 본 관주가 입을 쩍 벌릴 즈음, 무신은 관주의 몸을 세 번 더 건드렸다.
도합 다섯 번.
그러니 나머지 다섯 번도 시간문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창 대련 중, 무신은 갑자기 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포권을 취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자칫 목이 날아가는 위험한 상황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차피 목적은 관주의 몸을 열 번 건드리는 것.
무신은 그것을 성공했다.
관주가 신음을 토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괴물을 보는 눈이었다.
대련을 떠나서…….
“이, 일각의 반의반도 안 걸렸어!”
떠들기 좋아하는 이성구가 관주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대변했다.
대련이 끝났음에도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것은 한참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