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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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04화
그만큼 빠르고 강한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우선 여기 이 고수들과 먼저 대련을 치르게. 가장 강한 자만이 나와 대련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그거야 안 해봐도 뻔합니다.”
“뻔하다니?”
“제가 가장 강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성구가 허공에 창을 휘둘러 보였다. 내공이 아주 약간만 섞였을 뿐인데도 건물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 정도야 나머지 무인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관주가 뒷짐을 풀며 물었다.
“흐음, 내 한마디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십시오.”
“군더더기가 너무 많구먼, 비록 한 동작이라 해도 말이지.”
가슴 탁 펴고 자신만만하게 서 있던 이성구가 발끈했다.
“군더더기가 많다고요?”
“내 검술만 연마해서 창술을 잘 모르네만 기본기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확실히 군더더기가 많은 동작이었네.”
관주의 단호한 어조에 무인들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성구가 그들을 흘기며 재차 목소릴 높였다.
“한 동작 가지고 뭘 판단하십니까?”
“그럼 초식 하나 읊어볼 텐가? 내 자세히 봐주지”
마음껏 해보라는 듯 관주가 양손을 휘이휘이 저어보였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성구였다.
“아, 됐습니다, 됐어요. 군더더기 많은 창술로도 이 정도 하수들은 제압할 수 있단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허허, 알겠네.”
사실 이성구의 창술에 정말 군더더기가 많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운사개(韻士開) 모추동.
관주의 눈에는 고경림이나 주가영의 것도 형편없게 보일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도 본인 실력이 더 좋다면 하수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우선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지.”
명색이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대련은 밖에서 치러졌다.
망룡무관 뒤편의 어느 들판.
벽력탄이 수십 발 터져도 무너지고 망가질 것은 오로지 수풀밖에 없는 곳이었다.
“자, 그럼 지지부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하겠네.”
대련 상대는 관주가 내키는 대로 정해주었다.
이성구가 ‘아니, 선택을 하든 제비를 뽑든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고 이의를 달았지만, 관주가 ‘누가 걸리든 어차피 이기기면 하면 되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무신의 상대는 그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큰 어느 장한이었다.
아닌 말이 아니라 정말 두 배는 더 컸다.
‘방우돈을 보는 것 같군.’
기억 너머로 사라진 이를 떠올리며 그는 엉덩일 깔고 앉았다.
그의 차례는 맨 마지막이었다.
“대련 규칙은 간단하네. 내공을 쓰지 않고 순수 검술이나 창술 등으로만 승부를 보면 돼.”
“내공도 실력인데 왜 못 쓰게 하시나요?”
“나와의 대련 때문이지.”
“관주님과의 대련 때문에요?”
“내가 내공을 쓰면 자네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날 열 번 이상 건드릴 수 없어. 그러니 가능성을 좀 열어주는 걸세.”
“그 가능성을 지금부터 미리 경험해라?”
“그런 셈이지.”
“다른 규칙은요?”
“죽이지만 않으면 되네.”
“음, 팔다리 정도는 잘라도 된단 말씀이세요?”
첫 번째 대련으로 나선 주가영이 상의 단추를 두어 개 풀며 관주를 쳐다보았다.
관주가 ‘그것도 웬만하면 자중하게’ 하며 말했다.
“망룡의를 얻으러 온 게지 누구 피 보게 하려고 온 것은 아니잖은가?”
“그렇기는 한데… 뭐, 알겠어요.”
“자네들도 마찬가지일세.”
나머지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첫 번째 대련의 막이 올랐다.
그깟 대련에 무슨 막까지 오르겠느냐마는, 다들 어딜 가든 한 자리씩은 꿰찰 고수들이었다.
‘종합격투기 빅매치랑 비슷한 셈이지.’
무신 역시 한껏 들떠 있었다.
드디어 주가영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만 주목할 것은 아니었다.
상대도 노련미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음, 팔다리 정도는 잘라도 된단 말씀이세요?’ 하는 모욕을 들어서인지 눈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안 되겠다 싶은 자는 포기한다고 외치게.”
관주의 그 말을 기점으로 두 고수가 맞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떨어졌다.
끽해봐야 십합.
그런데 이미 승부가 갈려 있었다.
“벌써 끝났어?”
“확실히 실력은 있구만.”
“이거 실력 차가 너무 심하잖아?”
주가영은 검으로 톡톡 수풀을 건드릴 정도로 여유로운 반면, 그녀의 상대는 대자로 뻗어 있었다.
어디 베인 곳은 없었으나 이미 승부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이름을 날릴 법했구나.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무신은 중얼거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조금 더 보고 싶었건만 누군가의 말처럼 서로의 실력 차가 너무 심했다.
애와 어른의 싸움 수준이었다.
“깔끔하구먼. 이쪽으로 와 앉게.”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대련까지는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다섯 번째 대련의 경우에는 원체 승부가 나지 않아 관주가 ‘이거 내공을 쓰게 해야 하나’ 하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다행히 한쪽이 오른쪽 어깻죽지를 살짝 베이면서 어찌저찌 승부가 나기는 했다.
여섯 번째 대련은 고경림의 차례였다.
무신은 자세까지 바꿔 앉으며 고경림을 지켜봤다.
고경림의 상대는 볼 것도 없었다.
기백의 차이만 보더라도 이미 끝난 승부였다.
“허어…….”
대련이 시작된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첫 번째 대련처럼 이번에도 십합 정도에 승부가 갈려서만은 아니었다.
고경림의 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상대가 복부를 움켜 쥔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피를 보지 말란 관주의 경고.
그러나 상대의 탓만은 아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상대의 잘못도 컸다.
관주는 당연히 그것을 알아봤다.
“쯔읏, 운이 없구먼.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어.”
관주는 상대를 위로하며 금창약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이 순간 상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피를 멎게 할 약 따위가 아니라 바닥까지 내려앉은 자존심의 회복일 것이다.
“좋은 승부였소.”
겉으로는 포권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플 뿐.
무신은 저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아니, 잘 알았다.
‘지지 않으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그는 주먹을 말아 쥐며 슬슬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한 차례만 더 지나면 그의 차례였다.
남은 한 차례의 주인공은…….
“대협도 참 운이 없소.”
이성구였다.
역시나 초장부터 입을 털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요, 그게?”
“방금 전 대련처럼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으니 말이오.”
상대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내 실력이 최고라고는 못하겠소만 군더더기 많은 이에게 질 정도는 아니오.”
“과연 그리 될까?”
“혓바닥 그만 놀리고 붙어봅시다.”
상대도 이성구 만만치 않게 입을 털었으나 애석하게도 결과는 이성구의 팔을 들어주었다.
십오합.
짧은 마찰이 지나자 이성구의 창이 상대의 입에 겨눠져 있었다.
“더할 테요?”
“아, 아니오. 내가 졌소.”
“그러게 일찍 포기하라니까.”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상대를 뒤로 하며 이성구가 창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왜인지 불만이 한 가득이었다.
“십오합이나 걸리다니. 사실상 내가 졌군.”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관주가 ‘이번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구먼’ 하자 금세 미소를 되찾았다.
이성구가 보기보다 더 단순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무신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말로 그의 차례였다.
“후후, 이거 나도 너무 쉬운 상대를 만난 것 같구만.”
몸집이 유난히도 큰 그의 상대는 벌써부터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게 이성구보다 더하면 더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무인들도 상대를 더 우위로 보고 있었다.
내공을 쓰지 않고 대련한다는 것.
아무래도 몸집이 상당부분 영향을 차지 하니 말이다.
물론 무신의 몸집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파천삼으로 강골(强骨)을 만들면서 그도 어떻게 보면 장한이었다.
단지 상대가 워낙 커 평범한 성인 남자가 됐을 뿐.
관주가 번쩍 손을 들었다.
“시작하게.”
그렇게 말하는 관주조차도 무신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검객.
관주에게 무신은 딱 그 정도였다.
내공을 쓰지 않는 한해서는 말이다.
그러나 굉장한 오판이었다.
“뭐, 뭐야?”
“바, 방금 무슨 일이…….”
“관주님! 저놈 저거 내공 쓴 거 아닙니까!”
놀란 나머지 저놈이란 지칭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이유야 뻔했다.
장한의 그 큰 몸이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바닥을 디딘 무릎이 바들바들 떨렸다.
까딱하면 골로 갈 뻔했을 만큼 깊게 베인 가슴팍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쏟아져 내렸다.
이 모두 겨우 ‘일합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 할 거요?”
“그, 그만하겠소.”
“너무 쉬운 상대를 만난 것 같다더니?”
“미, 미안하오.”
사과까지 할 정도로 장한은 무신에게 질려 있었다.
간밤에 악귀를 본 자의 얼굴이 저러 할까.
그러나 지켜보든 이들의 얼굴도 장한만큼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단 눈치였다.
이성구가 벌떡 일어섰다.
“분명 내공을 썼습니다!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속도를 낸 답니까!”
“진정하고 앉게.”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니까!”
정말 규칙을 어겼다면, 이성구가 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었다.
흥분할 만했다.
그러나…….
“내공은 전혀 쓰지 않았네.”
“예?”
“썼으면 내가 끼어들어 막았을 걸세.”
“허, 허나 그 속도는…….”
관주가 본인도 놀랍단 투로 말했다.
“저자가 원래 그만큼 빠른 것이네.”
“그럼 힘은요? 빠르다고 해서 저 큰 체격의 상대를 찍어 누를 수 있답니까?”
토씨만 다를 뿐 이번에도 관주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 역시 저자가 원래 그만큼 힘이 좋은 것이네.”
“말도 안 돼…….”
“그리고 그만큼 기술이 좋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관주가 그렇게 말해 버리니 아무리 이성구라도 더 이상 토를 달 것이 없었다.
이성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관주보다 ‘무(武)를 보는 눈’이 더 나을 리 만무했다.
파장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당사자는 유유자적 검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찌뿌듯하다는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주가영이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대협은 어디서 오셨나요?”
“파천에서 왔습니다.”
“성함이……?”
무신은 거기까지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갈 인연에 통성명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지요.”
“쌓아갈 인연이 되면 되잖아요.”
“제가 주 소저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무신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엉덩일 깔고 앉았다.
열여섯 중에서 여덟이 떨어졌으니 이제 여덟 중에서 넷을 가릴 차례였다.
이후에는 둘을 가리고, 종국에는 관주와 대련할 1인이 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진행될 기미가 안 보였다.
“저랑 그럴 생각이 왜 없는데요? 네?”
주가영이 관주의 ‘우선 진정들 하고 대련을 이어가게’ 하는 말도 무시하고 무신에게 달라붙은 탓이었다.
그녀는 관주가 ‘얼른 자리하지 않으면 망룡의를 가져갈 뜻이 없는 것으로 알겠네’ 하고 재차 다그쳤을 때에야 겨우 상대와 마주했다.
무신이라고 그녀와 연을 쌓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지랄 맞았다.
이유 불문 갓난애의 목도 끊는 게 바로 저 여자였다.
‘주씨세가의 소문이 좀 안 좋기도 하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를 쳐다봤다.
연을 쌓기는 싫어도 실력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볼 것은 없었다.
“내, 내가 졌소.”
주가영이 단 오합 만에 상대의 허벅다리를 잘라 버렸다.
이번에는 상대가 막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났는지 상대를 죽일 기세로 달려든 주가영의 잘못이 더 컸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 죽일 기세로 달려들 이는 따로 있었다.
“저와 대련하게 되거든, 각오 단단히 하세요. 더 심한 꼴을 내줄 테니.”
무신이었다.
물론…….
무신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언제 또 주씨세가 본가 장녀를 바닥에 내팽개쳐 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