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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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61화
제2장 왕국점령 (4)
가이만 영지에서 벌어진 일이 테오도르 국왕의 귀에도 전해졌다. 마르치니 후작이 최근에 전투를 치르지 않고 대치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테오도르 국왕은 은밀하게 병사들을 파견해서 마르치니 후작군 진영의 동태를 파악했다. 조사를 마친 테오도르 국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유도하고, 조심스럽게 철수 준비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테오도르 국왕의 입장에서 반란을 일으킨 마르치니 후작이 도망치도록 놔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가이만 영지를 수복하고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소니아 왕국은 분열될 수도 있었다. 테오도르 국왕은 적정한 시기에 반격을 획책했다.
며칠 후 마르치니 후작은 철수를 명했다. 대규모 병력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테오도르 국왕은 지켜보지 않고 그 뒤를 쫓아 추격했다. 카이겔 백작가의 대군이 곧 도착할 상황이니 시간만 끌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후방의 추격을 예측하고 있었던 마르치니 후작이 교묘하게 함정을 파고 국왕군을 매복 습격한 것이다. 철수 준비를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도 테오도르 국왕을 속이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국왕군은 예상보다 깊은 치명타를 입고 말았다. 10번의 전투에서 마르치니 후작군을 격파한 후 든 자신감이 방심을 유도한 것이다.
그로 인해 2만에 달하는 병력이 매복습격에 전멸했다.
전력의 차이가 백중세에 달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병력 손실이 전세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성이 아닌 대지에서의 전투는 피해를 누적시키는 소모전이 되었다.
테오도르 국왕은 성으로 회군하려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기회를 잡은 마르치니 후작이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양측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누적 피해만 봤을 때 왕국 전력의 반 이상이 소모된 것이다. 소니아 왕국 주변의 왕국들이 혼란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외세의 침입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주변 왕국들도 소니아 왕국과 같이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테오도르 국왕군과 마르치니 후작군이 혼전을 벌이고 있는 시기에 무진과 에이프런은 병력과 합류했다. 이제까지 대군을 지휘한 지니언 남작은 에이프런이 시킨 대로 마르치니 후작의 함정에 걸려주면서 시간을 지체했다.
“무사히 다시 뵙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저는 그저 백작님의 뜻에 따랐을 뿐입니다.”
지니언 남작은 여전히 우직했다. 내려진 명령에만 따를 뿐 임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시에서 우직함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으나, 지휘자의 능력이 된다면 시기적절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패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지휘자의 역량이다.
마르치니 후작의 함정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어도 병력의 손실은 전무했다. 지니언 남작은 무척이나 더디게 진군하면서 함정을 일일이 걷어내는 작업을 수행했었다. 함정을 무너뜨리고, 대군이 진군할 수 있는 대로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하느라 시간은 계속적으로 소비되는 상황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진격하라는 왕명이 연일 내려왔지만 지니언 남작은 우직하게 에이프런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테오도르 국왕이 이 사실을 알면 혈압으로 사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조금이나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었다.
무진은 군영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피곤해 보이는군. 조금 쉬었다 가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피곤할 텐데.”
반복.
무진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두 번 말하게 한다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 에이프런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그에 대한 답변을 몸으로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을 것이다.
에이프런도 무진의 의도를 알기에 대답했다.
“알았어요. 오늘은 쉬고 내일 이동하죠.”
현재 카이겔 백작가의 병력은 피로도가 제로에 가까웠다. 함정을 무너뜨리고 이동할 때 수시로 병력 훈련을 겸해서, 병사들의 전투력도 상승해 있는 상태였다. 카이겔 백작가에서 이동할 때보다 강해졌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었다.
전장이 혼전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카이겔 백작군은 전시훈련을 나온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쟁의 극과 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군 막사로 무진을 따라 들어온 에이프런이 넌지시 물었다.
“양쪽의 소모전을 기대하는 것은 좋은데, 이러다가 왕국이 망하면 어떡하려고 해요?”
“그럴 가능성은 없다.”
확신을 하는 무진이었다. 에이프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신의를 깨버릴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오늘날의 외교는 국력에 비례한다. 강대국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력이 소모된 만큼 외교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테오도르 국왕과 마르치니 후작이 지닌 힘은 소니아 왕국의 전체와 비슷하다. 카이겔 백작가의 주력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힘이 소모된다는 것은 소니아 왕국의 전력이 약화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왕국들이 소니아 왕국의 소모전을 호기롭게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에이프런은 국가 간의 신의를 인정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태평한 것인지 아니면 에이프런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죠?”
“주변의 그 어떤 왕국도 소니아 왕국을 신경 쓸 형편이 못 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걸 봐라.”
무진은 다크포트에서 조사해 온 자료를 에이프런에게 보여주었다. 뮤켄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세세하게 작성한 자료였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핵심권력의 구도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강의 내용을 파악한 에이프런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시간과 경중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륙의 모든 왕국이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다른 왕국의 일보다 자국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국이었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소니아 왕국이 엄청나게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외침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현상일까! 그것은 의문이다.
“브릴란트 제국의 4대 공작과 황제의 사이가 틀어졌다니, 심각하긴 하네요!”
“과연 그럴까.”
“또 왜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안 되지.”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대륙이 분열되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일까.”
“누군가 대륙의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자꾸 모호하게 말할 거예요!”
무진은 답을 내주지 않았다. 그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언제까지 주어지는 것만 해결해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굳건한 바탕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에서만 맴돌아서는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대륙의 안위까지 신경 쓰기는 싫네요.”
“안위라, 그따위에 관심 가질 필요는 없다.”
대륙의 안위.
무진의 안중에도 없는 관념이다. 대륙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지배하려는 무진에게 평화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무진의 앞에서는 평화를 논하는 것 자체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내놓는 격이다.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는 폭군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내일 발더스성에 도착할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국왕을 도와야겠지.”
“빨리 왔다고 참! 좋아하겠네요!”
“그럴지도.”
늦게 왔다고 테오도르 국왕이 길길이 날뛰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사실 가이만 영지의 소문이 빠르게 퍼진 것은 무진이 다크포트를 통해서 소니아 왕국 전역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카이겔 백작가의 힘과 권위를 드러내고, 백성을 생각하는 귀족으로서의 모범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또한 테오도르 국왕이 조급하게 움직이게 만들기 위한 작전이기도 했다. 내전에서 왕이 직접 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백성들은 왕의 능력을 의심할 것이다.
테오도르 국왕으로서는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힘을 선보여야 했다. 마르치니 후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공을 통해 테오도르 국왕을 위기로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도 무진의 계략 안에 있었다. 무진은 마치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뻔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전쟁이 끝난 후를 생각해야 할 거다.”
“또 뭐요?”
에이프런은 해야 할 일이 자꾸 쌓이는 것이 불만이었다. 요즘 들어 편하게 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피곤은 체력저하, 피부노화, 스트레스, 짜증, 불안, 분노를 불러온다. 그 중에서도 히스테리 많은 노처녀가 될 수 있는 공산이 크다. 나이 때에 비해 노안(老顔)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왕이 되고 싶지 않나.”
“되고 싶기는 한데, 설마……!”
씨익!
무진은 대답 대신 웃었다.
에이프런은 그제야 무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서운 계략이었다. 아마 알고 있다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에이프런은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국왕의 힘을 소모시키고, 카이겔 백작가를 예전의 위치로 올려놓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진은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다.
‘왕으로도 부족하겠지!’
소니아 왕국 정도로 만족할 무진이 아니다. 대륙이 혼란스러운데도 평온한 이유가 있었다. 무진은 대륙의 혼란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프런은 무진의 거대한 야망에 기가 질렸다. 에이프런으로서는 도저히 짐작하기 어려운 무진의 그릇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진이 대륙의 제황이 되면 최소한 황후는 예약된 거네!’
무진의 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한 에이프런은 혼자서 수프 떠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념이 떠나지가 않았다. 역시 부창부수였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에이프런은 무진을 믿고 있었다. 그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신앙과도 같았다.
하지만 대륙으로서는 제황의 등장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일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당신은요?”
“지켜보지.”
“또요!”
“그럼 나설까.”
기세가 차가웠다.
에이프런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진이 나섰을 때 벌어지는 참상이 그려졌다.
‘피바다!’
아마 그 넓은 대지가 붉게 물들고, 짙은 혈향이 수백 년을 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감히 나서라고 말하지 못했다. 차라리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는 것이 덜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에이프런은 기어오르는 놈들까지 인심 써주는 올바른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다음 날 무진과 에이프런은 발더스성에 도착했다. 발더스성은 성을 지키는 병력을 제외하고 전력이 출병한 상태로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에이프런 백작이 도착하자 성에 남아 있던 타이슈 자작이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 폐하께서 직접 전장에 나가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타이슈 자작으로서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전황이었다. 일이 잘못되어 국왕이 죽게 되면 큰일이었다.
에이프런은 이유를 물었다.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가이만 영지의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급한 결정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타이슈 자작은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국왕의 결정은 번복할 수 없으며 물음을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왕국의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국왕 폐하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내전을 끝내고 싶어하셨습니다. 그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면 불경한 죄를 짓는 일입니다!”
“내 말을 오해했군요. 나는 단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찌 감히 국왕 폐하의 선정을 매도할 수 있겠어요.”
주변에 있는 귀족들이나 병사들도 에이프런과 타이슈 자작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국왕이 그런 의도로 전장에 나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국왕은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귀족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귀족들은 에이프런이 일부러 물어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가!’
타이슈 자작은 에이프런 백작이 보통이 아님을 체감했다. 어린 나이에 백작가의 혼란을 잠재운 이유가 있었다. 몸에서 풍기는 기품과 기세가 타이슈 자작이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있었다. 타고난 왕에게서 느껴지는 제왕의 기운이었다.
“우선은 전략을 세워야겠군요.”
“바로 출병을 해야 합니다! 전략을 세우다가는 너무 늦습니다!”
“그럼 아무런 전략도 없이 무턱대고 전장에 나서라는 뜻인가요. 전장에 선 병사의 죽음을 타이슈 자작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는군요.”
“그… 무슨?”
“마르치니 후작군이 왕국군의 주변을 포위하는 진형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정면으로 치고 들어갈 경우 매복함정에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 되지요. 그럼 결국에는 국왕 폐하를 원조하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타이슈 자작도 알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시간이 부족한 이때에 전략수립을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왕 폐하를 사지에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왕국에 충성하는 신하라면 당연히 목숨을 걸고 국왕 폐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타이슈 자작이 먼저 병사들을 이끌고 국왕 폐하를 원조하세요, 그럼 내가 전략을 세운 다음에 폐하를 돕겠어요.”
“그런……!”
마르치니 후작은 발더스성의 원조를 차단하기 위해 왕국군의 후방에 매복, 함정을 설치했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원조를 했다가는 함정에 걸려 죽을 수도 있었다. 타이슈 자작은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말로써는 에이프런 백작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 걱정하지는 마세요. 대강의 전략을 세웠으니 전술만 확립하면 곧 끝나니 말이에요.”
에이프런은 카이겔 백작가의 참모진을 이끌고 전략과 전술 확립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사실 전략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세워둔 상황이었다. 굳이 회의를 연 것은 시간을 소모하기 위한 수법에 불과했다.
타이슈 자작과 국왕파 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