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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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60화
제2장 왕국점령 (3)
제이크 자작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지만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이성을 잃으면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였다.
제이크 자작은 조심스럽게 물건을 꺼내 무진에게 주었다.
“제가 줄 것은 두 개입니다!”
“그런가.”
무진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 꺼낸 것은 청푸른색의 구슬이었다. 영롱한 광채를 품고 있는 구슬은 마정석이었다.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만 안에 들어 있는 마나의 힘은 보통이 넘었다.
무진은 마정석을 유심히 보았다.
흠!
“마정석의 기운을 압축시켰군.”
천연마정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종의 정제를 거쳐 마정석으로서 활용을 한다. 마정석을 정제하는 과정 중에서도 마력을 압축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작업에 속한다.
제이크 자작이 건넨 마정석은 최상급의 마정석 여러 개를 합친 블루 스톤이라는 마정석이다. 가치를 따지기 힘든 마정석으로 마법적인 연구 가치까지 가지고 있었다.
무진이 마정석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제이크 자작이 또 하나의 물품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것은 작은 방패였다. 손바닥보다 2배 정도 큰 방패로 방어를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제이크 자작은 방패를 무진에게 건네는 척하면서 재빠르게 정면으로 들이대었다.
“걸렸다! 이놈!”
우우우우웅!
작은 방패에서 실타래 같은 빛이 번져나오더니 무진의 주변을 감싸는 것이 아닌가!
방패는 보통 방패가 아니었다. 일정 공간에서는 절대적인 마법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앱솔루트 홀드 마법(절대정지마법)이었다. 9서클에 달하는 마법이라 그 어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제이크 자작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무진을 믿지 않았다. 무진의 무력이라면 도망친 레이지 남작과 해드폰 남작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대로 무작정 도망치면 어떤 운명이 기다릴지 뻔히 보였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까지 비장의 무기를 숨겼다.
제이크 자작이 사용한 방패는 우연히 얻은 마법 아이템이었다. 그가 다스리는 영지의 동쪽 산이 장마로 무너져 내리면서 던전이 발견되었다. 세월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던전이라 함정의 대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그 안에서 제이크 자작은 마정석과, 방패를 얻었다.
처음에는 마정석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방패는 보통 방패가 아니라 에고 실드였던 것이다.
방패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 어떤 것도 막아낼 수 있으며, 적의 움직임도 정지시킬 수 있었다. 최후의 순간이 되면 믿을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던 제이크 자작은 던전의 존재를 이때까지 철저하게 은폐시켰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이제 반대로 네놈을 갈가리 찢어주마!”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이크 자작은 그것이 앱솔루트 홀드에 걸려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다. 절대마법 앞에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 여겼다.
허리에 찬 검을 꺼내 든 제이크 자작은 방패와 함께 조심스럽게 무진에게 다가갔다. 제이크 자작의 능력이 뛰어났다면 방패의 영역이 훨씬 더 넓었겠지만 오러 유저 하급의 경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절대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마법을 완성한 자나, 그랜드 마스터를 초월한 존재들뿐이다. 현재 그런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무진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의 범주 안에 들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무진은 몸을 감싸는 마나의 파동을 느꼈다. 마법만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진의 주력은 마법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이크 자작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했다.
“이제 그만 죽어랏!”
제이크 자작이 무진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오러 유저의 실력이라고 해도 정지해 있는 상대는 죽일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이 강철이 아닌 이상 결코 살아날 수 없는 상황이다.
살기가 스며든 검이 무진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심장을 깊숙이 뚫고 지나간 제이크 자작은 이상함을 느꼈다. 검이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진의 몸을 완벽하게 뚫고 지나간 제이크 자작은 허상을 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앱솔루트 홀드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절대마법 속에서 미러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상황인가! 직접 경험하고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이크 자작의 판단 기준에서 마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사용했다 여기다니 말이다.
“찢어 죽이겠다고 그랬나.”
제이크 자작의 바로 등 뒤에서 스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진이 언제 뒤로 이동했는지 제이크 자작은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이성이 저 멀리 허공으로 비상해 버리고 말았다.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자 제이크 자작은 다른 귀족들과 똑같아졌다.
“살…려 주…십시오!”
“네 말대로 나는 버러지들하고 약속 따위는 안 해.”
“그…런!”
쓰레기보다 못한 놈들하고의 약속을 지키는 무진이 아니다. 또한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무진은 버러지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성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철저히 목적을 위해서 거래를 했을 뿐이다. 물론 귀족들에게는 죽음의 거래일 수밖에 없다.
“그럼 약속대로 찢어주지.”
“안… 돼!”
푸아앗!
“으아아아악!”
제이크 자작의 오른팔이 야수에 물어뜯긴 것처럼 뜯겨나갔다. 오른팔이 뜯기고, 왼팔이 뜯겨나갔다. 참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제이크 자작은 미쳐버렸다. 좀 전까지 수족처럼 움직이던 두 팔이 바닥에 떨어져 파닥거리는 장면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오…지… 마라!”
제이크 자작은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형의 기운이 제이크 자작을 옭아맸다. 핏물을 흘리며 발악하는 제이크 자작의 다리를 무진은 가볍게 뜯어냈다.
우드드득!
“크아아아악!”
제이크 자작의 비명성이 산을 메아리쳤다. 서서히 죽음에 맞닿으면서 극악을 넘어서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팔다리가 뜯기고 몸통마저 갈가리 찢겨나갔다. 뜯겨진 제이크 자작의 몸통이 징그럽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무진은 목을 잡아뜯고 하늘로 던졌다. 버러지에게는 버러지다운 최후가 어울렸다.
팟!
제이크 자작의 머리와 뜯겨진 육체가 허공으로 솟았다가 순식간에 분살되었다.
무진의 시선이 레이지 남작과 해드폰 남작이 도주한 장소로 향했다. 가공할 살기가 정면으로 폭사되어 뻗어나갔다. 극에 이른 살기는 지상의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 버릴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산길을 따라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던 해드폰 남작과 레이지 남작은 무진의 살기를 느낀 순간 비명과 함께 급사해 버렸다. 살기를 견디지 못한 그들의 심장이 짓뭉개져 버린 것이다.
무진은 제이크 자작이 사용한 방패를 손에 쥐었다.
“이것이었나.”
방패는 무진의 손이 닿자 주인을 만난 것처럼 공명음을 터뜨리며 반응했다. 카오스의 신기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장소에서 너무나 손쉽게 카오스의 신기를 수집하게 된 무진이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무진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의심이 들지만 피해 갈 무진은 아니다. 만약 자신을 이용하는 존재가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카오스 실드와 계약한 후 카필드성으로 돌아갔다. 뒤처리는 어둠의 정령 둠에게 맡겼다. 혼을 흡수할수록 둠은 완성형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진은 완성되어 가는 둠에게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 마치 미래의 교차점에서 무언가를 해줄 것 같은 강렬한 이끌림이었다. 이끌림은 무진에게 필요한 도구라는 인식으로 다가왔다.
‘키워주지.’
무진이 카필드성으로 돌아왔을 때 전투는 종결되어 있었다. 기사들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전장에서 죽은 시체들을 치우고,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투를 종지부 찍은 에이프런은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어떠한 죄도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카이겔 백작가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이라 병사들은 에이프런 백작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군수물자로 거둬들인 재물과 곡식을 병사들과 영지민들에게 풀었다.
“와아아아!”
“에이프런 백작님 만세!”
마치 오랜 기간 억압받던 독재에서 벗어난 듯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병사들이었다. 죽은 병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은 현재의 삶에 충실했다.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필드성을 정리하고 난 후에야 에이프런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앉아 한가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무진을 보았다. 에이프런이 보기에는 무진이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뭐 하다가 온 거예요!”
“아무 일도.”
‘저… 저렇게 뻔뻔하다니! 사실대로 말하니 할 말도 없네!’
무진은 대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이프런은 무진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분주하게 움직였건만 정작 당사자는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쉬었다는 뜻이 아닌가! 혼자 열심히 뛰어다닌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억울해서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지경이다.
“아니, 남은 이렇게 바쁜데 너무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이걸 확!’
마음은 한 대 치고 싶은데 현실은 불가능하다. 분노를 삭이지 않으면 에이프런만 괴로울 뿐이다.
“최소한 양… 응? 이건?”
무진이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에이프런에게 내보였다. 목걸이와 팔찌였다.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 정품인증을 거친 특급세공품이었다. 정품인증은 대륙 귀금속연합이라고 불리는 럭셔리 클럽에서 이루어진다. 럭셔리 클럽의 인증이 없는 제품은 귀금속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귀금속연합이다.
목걸이와 팔찌는 한눈에 보기에도 ‘나 비싼 제품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귀족조차도 쉽사리 살 수 없는 고가의 물품이었다.
“이걸 왜?”
“네게 어울릴 것 같더군.”
“정…말이요?”
“싫으면 말고.”
“제가 왜 싫어요! 정말 고마워요! 잘 쓸게요!”
에이프런은 대박 감동 먹었다.
아카데미 시절 많은 선물을 받아보았지만 오늘처럼 심금을 울리는 선물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무뚝뚝했던 무진이 선물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물론 희귀 물품에다가 고가 품이라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싸구려였다면 이만한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잠깐, 이거 꿈 아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너무 좋은 일이 생기다 보면 그에 합당하는 불행한 일이 생긴다지 않은가! 인간은 복불복(福不福). 잘못하면 한 번에 훅! 간다라는 말도 있었다.
‘쥐약일지도.’
기쁨과 감동이 지나가고 나자 의심이 들면서 불안감이 싹트는 에이프런이었다. 무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성격이다. 잘못 먹었다가 배탈 나는 수가 있었다. 목걸이와 팔찌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의심이 많군.”
“선수끼리 왜 그래요! 다 그런 거지!”
“특이한 성격이군.”
“원래 여자는 다 이런 생각을 해요.”
“너만 특이한 게 아니었나.”
“무슨 그런 개… 아니, 헛소리를 해요!”
하마터면 말이 잘못 나갈 뻔한 에이프런이다.
“착용해 봐라.”
도리! 도리!
에이프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착용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는 에이프런의 의도를 무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태까지 무진은 일방적인 사랑을 해왔다. 상대의 의중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인의 심리 따위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원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도 이루었다.
“무슨 뜻이지?”
“알면서 묻는 거예요!”
“모른다.”
“아유! 이런 선물은 원래 남자가 직접 달아주는 거예요! 어쩜 그렇게 매너가 없어요!”
‘흠!’
“경험이 많은가 보군.”
무진의 음성에서 작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지 못할 미세한 변화지만 에이프런은 알아차렸다. 관심이 있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것이 여인의 마음이다.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
“그렇잖아요!”
“아니다.”
“에이! 그런 것 같은데!”
“귀찮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치한 말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지겹다는 표정이었다. 반면에 에이프런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혼자만 마음에 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한 발자국 더 나갔다가는 좋은 분위기를 망친다는 것을 에이프런은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눈치는 빠른 에이프런이었다. 즉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발더스성으로 간다.”
“언제요?”
“내일.”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무진은 알아서 하라고 말한 뒤 홀로 방으로 갔다.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무진은 상념에 젖었다.
‘너무 감성적으로 변했다.’
무진의 성향은 잔인하지만 차갑다. 거칠고 투박한 것과는 멀다. 백련정강처럼 정련된 살기를 품고 있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이프런의 말에 잠시지만 살기를 느꼈다. 이제까지 에이프런에게 껄떡대던 놈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은 가벼운 분노를 경험했다. 당사자들은 이제 두 발 뻗고 자기는 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기는 하군.’
무진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을 다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