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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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39화
의지
[잠들어 있었던 의식이 깨어납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찾아오던 목소리였다.
알림.
기계적이고 딱딱한 그 알림.
무신은 눈을 부릅떴다.
알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들어 있었던 의식이 깨어난다는 것.
그 내용이 그를 더 흥분케 했다.
‘설마…….’
그는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에게 잠들어 있었을 의식은 하나뿐이었다.
망령의 숲에서 22만 년간 쌓은 결과물.
유림의 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염라에게도 허락받지 못했다.
허락을 떠나 애당초 유림의 검은 회귀 전, 심지어 저승의 힘이었다.
가져온단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본래의 힘을 찾았다면 모를까.
‘본래의 힘이라는 것도… 아직 너무 먼 나라 얘긴데.’
당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이 옥새는 대관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 다른 의식을 찾은 게 아닐까.
무신의 고개가 재차 저어졌다.
다른 의식이 있었다면 진즉에 발견하여 그 낯짝이라도 한 번 봤을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무려 22만 년이었다.
무신은 마른침만 삼키며 잠자코 기다렸다.
당장은 의문이 들어도 알림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깨어나는지를.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옥새에 드리워 있었던 빛이 모두 걷혔다.
정확히는, 무신이 밀어 넣었던 내공이 모두 사라졌다.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나.’
무신은 한숨을 토했다.
예상은 했으나 조금은 기대를 했던지라 제법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의식이 깨어났으면 어땠을까.
유림의 검이 튀어나왔을까.
어쨌거나 이로써 증명은 되었다.
황제의 옥새에는 어떠한 잠재된 의식을 깨우는 일종의 특전이 부여되어 있었다.
현생의 존재들에게 그 특전이 무슨 필요겠냐마는, 누군가 이득 본 이가 있으니 소문이 낫겠지.
저 멀리 남방 대막의 광풍사가 알 정도로 말이다.
‘괜한 헛수고만 했군.’
무신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 빛을 잃은 옥새가 들려 있었다.
용무가 없어졌으니 도로 제자리에 돌려놔야 했다.
직접 황실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
회귀 전의 전개대로라면 어차피 그쪽에서 벌써 옥새를 가지러 출발했을 것이다.
옥새에 깃든 미지의 힘을 꺼내 쓰려함과 동시에 그쪽으로 신호가 가게 돼 있으니까.
벼락이 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지지지지지직!
그리고 푸르던 하늘이 순식간에 시꺼멓게 변했다.
산새들이 푸드득 날개를 펴며 도망갔다.
이어 폭풍이 몰아치더니 울긋불긋했던 가을날 나뭇잎들이 죄 떨어졌다.
당장 지진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무신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고요.
정적.
침묵.
그런 단어들로밖에는 설명이 안 됐던 분위기였다.
‘영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사위를 살피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느껴지는 것 또한 없었다.
물론 설령 영물이 나타난들 무신에겐 아무런 위해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빙룡도 잡아낸 실력을 가졌으니까.
갑자기 마계의 워프 게이트가 열리며 서열 1위 마왕 바알이 튀어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상하다 싶어 옥새를 내려다보는 순간, 눈을 채 뜨기도 힘들 만큼의 광채가 터졌다.
처음 내공을 밀어 넣었던 그 순간처럼.
무신이 손등으로 눈을 가리는 찰나, 인기척이 났다.
방금 전까지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이었는데, 발소리와 함께 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무신의 고개가 의아하게 꺾였다.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운현… 아니, 그놈보다도 더 크고 묵직했다.
그리고 왜인지 익숙했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아, 무신은 그제야 알아챘다.
“또 보는구나.”
옥새를 올려뒀었던 바위 위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역시나였다.
유림.
망령의 숲에서 20만 년이 넘도록 함께 한 바로 그녀였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무신은 영문도 모른 채 인사부터 올렸다.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그래, 반갑다.”
유림이 고고한 눈빛으로 무신을 쳐다보았다.
무신은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은빛 머리칼.
하얗고 매끈한 피부.
호수를 박아 넣은 듯한 맑고 투명한 눈.
베일 듯 오뚝한 코.
옅은 자색으로 젖은 입술.
조막만한 얼굴 아래 사슴의 그것처럼 뻗은 목선.
특히 저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은빛 머리칼.
수십만 년을 봐온 모습임에도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순백의 드레스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신은 순간 진지하게 생각했다.
마왕들이 마계에서 상대했다던 천계의 천사들이 사실은 유림이 아닐까 하고.
유림이 말했다.
“또 너의 의지에 박혀 있다던 나의 검의 힘을 쓴 것이냐?”
“그것이…….”
무어라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보아하니 잠들어 있었던 의식이 깨어나면서 유림의 검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그냥 유림을 불러들인 모양인데, 앞서 말했듯 무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는 심지어 바로 직전까지도 옥새를 도로 갖다놓을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잘된 일이었다.
유림을 만난 것은 뭐가 됐든 무신에게 행운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
도착하면 ‘유림의 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위대한 존재의 검의 힘을 쓴 것은 맞으나 제가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누가 썼단 말이냐?”
무신은 냉큼 옥새를 유림에게 내밀었다. 손을 받쳐서 아주 공손하게.
유림이 이게 무엇이느냔 얼굴로 옥새를 쳐다보았다.
무신은 얼른 입을 열었다.
“제가 사는 이곳, 강호의 황제의 인장입니다.”
“황제의 인장?”
“저승으로 치면 염라의 직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황제를 염라에 비할 수는 없다. 죽은 자들을 관리하는 자와 강호란 좁다란 울타리만 관리하는 자는 천양지차니까.
유림이 흥미롭단 눈으로 옥새를 받아들었다.
“이 작은 것이 나를 불러낼 정도라고?”
“어찌 그런 힘을 냈는지까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유림이 미소를 지었다. 자색으로 빛나는 입술에서 은은한 향이 풍기는 듯 했다.
세상에 저토록 아름다운 미소가 또 있을까.
무신이 다시금 유림의 외모에 감탄하는 사이, 유림이 무언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것의 힘이 아닌 듯싶구나.”
“예?”
“이것이 날 불러들인 게 아니다, 이 말이다.”
그럼 무엇이 유림을 불렀단 말인가?
몇 번을 확인했지만 주위에는 분명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날 무기창을 잡던 날처럼 유림의 검의 힘이 일시적으로 가동된 것도 아니었다.
유림이 옥새를 돌려주며 무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 녀석이 날 불렀구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녀석의 의지가 날 이곳으로 불러낸 것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림의 검은 회귀한 이후 단 한 번도 꺼내지 못했으며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뭘 했다고?
무신이 한 행동은 옥새에 조금 밀어 넣은 내공이 전부였다.
유림이 바위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섰다.
숨결이 들릴 만큼 가깝게.
움푹 파인 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 무신 고개를 흔들며 유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게 가능하느냐고 묻는 얼굴이구나. 능히 가능하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네 녀석은 많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의지를 깨울 만큼 말입니까?”
“그래. 허나 나의 검 대신 내가 직접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아직은 더 수련이 필요할 것 같구나.”
아직은 더.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무신은 족했다. 어쨌든 가능성이 열렸단 것 아닌가.
‘비월내각신공으로 잠재기를 빼내는 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건가.’
그는 대강 의문도 해결했다.
유림이 말했다.
“너에게 더 희소식이 있다면, 사실 지금 이 상황이 더 어렵단 것이다.”
“예?”
“나의 검은 말 그대로 나의 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불러들인 것이 더 어렵단 뜻이다.”
“아!”
“나도 모르게 네 녀석에게 응한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유림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회귀 전에 나와 22만 년을 함께했다 했지?”
“그렇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날 움직이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위대한 존재의 머릿속에는 그 기억이 없지 않습니까?”
당연했다.
유림이 만든 권능이라 해도 기억을 안고 회귀한 사람은 결국 무신이었다.
유림에게 무신은 저번까지 더해 이제 딱 두 번 본 사람이라 해도 좋았다.
“혹, 모르지 않겠느냐. 네 녀석이 의지로서 나를 품었듯이 나도 의지로서 네 녀석을 품었을지.”
“정말 그렇다면… 영광입니다.”
무신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유림이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그맣게 들어간 보조개가 또 다시 무신의 심장을 자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유림은 저승에서 온 손님이었으니 용무가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야 했다.
“또 보자꾸나.”
언제나 그렇듯이 유림은 다음을 예고하며 돌아갔다.
번쩍!
하는 빛무리와 함께.
무신은 잠깐 꿈을 꾼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척에 아직 유림의 온기가 가득했다.
그녀의 드레스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도 같았다.
다음에 보면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옥새를 들었다.
그리고 바람처럼 내달렸다.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황실에서 멀지 않은 어느 관도였다.
그는 그곳에 옥새를 고이 내려놓았다.
주변을 꼼꼼히 살폈기에 도적들이나 행인들이 가져갈 일은 없을 것이다.
혹 가져가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옥새는 지금 하나의 추적 장치였다.
황실 친위대가 어디든 따라붙어 도로 가져갈 것이다.
무신은 이후 자신의 집을 향해 움직였다.
새로운 세력의 땅.
유림교.
유림을 기리며 지은 이름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그 뜻이 무엇이고 그 사람이 누구냐며 캐물어왔지만, 무신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뜻과 그 사람을 그들이 알 수 있을까.
아니, 이해할 수 있을까.
직접 경험한 사람도 이렇게 신기한데.
아까 전에 또 재회했음에도 이렇게 믿기지가 않는데.
물론 무신이 진짜 신기해하고 믿기지 않아 하는 것은 자신의 힘이었다.
유림이 반응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
고지가 멀지 않았단 뜻이니까.
***
카르베니아 왕실.
최무신이 마교의 땅에 급기야 유림교란 새로운 세력까지 세웠다는 보고에 윌레이커 카이스의 눈살이 다소 찌푸려졌다.
결국 원점이었다.
마교가 멸교하면서 강호의 힘이 좀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결국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복잡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최무신은 마물화란 금술까지 사용한 마운현을 잡아낸 절세의 고수니까.
“알아보란 것은 어찌 됐느냐?”
윌레이커 카이스의 물음에 부군주 프라이머 킬븐이 ‘그게 저…’ 하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파천 출신이란 것 외에는 달리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이계인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출신 성분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이계인 여부를 알 리가 만무했다.
프라이머 킬븐의 고개는 이번에도 저어졌다.
그런데.
“그럼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예?”
윌레이커 카이스가 몸을 일으켰다.
“채비하거라. 마교, 아니, 유림교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