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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6화

무료소설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6화

변해간다는 것

 

 

동영 북서부 해안가.

동영구도(東瀛九刀)의 일인자 카라하라 마스케는 드넓은 대양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둘러라! 늦장 부리다가 정파가 회군이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니!”

“예!”

 

그의 주위로는 삼백에 이르는 동영의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짐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짐.

…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장기간 먹을 식량과 옷가지 등이었다.

그렇게만 놓고 보면 마치 바다 건너로 이주하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카라하라 마스케는 일이 잘만 풀리면 아예 새살림을 차릴 작정이었다.

망상이 아니었다.

현재 정마대전 중에 있는 강호.

텅텅 비어 있을 정파의 땅.

그 빈집에 들어가 자리만 깔고 앉으면 되었다.

 

“오셨습니까!”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던 카라하라 마스케가 번쩍 고개를 든 것은 신장이 10척 가까이 되는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을 때였다.

그는 모두가 눈도 못 마주치는 카라하라 마스케를 상대로 뒷짐까지 지는 여유를 보였다.

형상귀도(刑賞鬼刀) 쿠치하 모로긴.

카라하라 마스케가 동영구도의 일인자라면, 그는 동영 전체를 통틀어 일인자였다.

강호의 무림맹주나 마교 교주처럼.

날카로운 바닷바람에 그의 도가 번쩍번쩍 빛났다.

그것은 살기였다.

스치는 것도 죄다 썰어버리겠다는 듯 잔뜩 성을 냈다.

카라하라 마스케가 움찔했다. 고고한 그의 고개가 말단무사처럼 푹 수그려졌다.

쿠치하 모로긴이 여전히 바삐 움직이는 무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시한 대로 뽑았나?”

“예. 급 낮은 이들은 아예 차출 후보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잘했다. 고급 인력이 정마대전에 다 빠졌다고 해도 몇몇 지킴이들은 남아 있을 터, 실력 출중한 놈들이 아니면 오히려 우리가 먹히겠지.”

“예예.”

 

대답에 긴장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라하라 마스케의 관자놀이 양쪽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무리 동영의 제일인이라고는 해도 단순 대화에 이럴 것까지 있겠느냐마는, 살짝만 수틀려도 손이 나갔다.

쿠치하 모로긴은 그런 사람이었다.

언젠가도 제 그림자를 밟았단 시답잖은 이유에 이름 높던 무사 하나의 목을 벤 적이 있었다.

강호의 저기 저 위에 있는 혈교의 교주와 비슷… 그러고 보니 최근, 혈교에 큰일이 있었다.

카라하라 마스케는 복잡하단 투로 중얼거렸다.

 

“헌데 혈교가 그리 패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예견된 일이었지.”

“예?”

“명색이 사파 최강이란 놈들이 정파의 남궁가나 화산파보다도 못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느냐?”

“하기야…….”

“그리고 그놈들은 정파처럼 맹을 구축했어야 했어. 힘을 모아야만 마교에 대응이 가능하니 말이다.”

 

쿠치하 모로긴이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갔다.

 

“헌데 힘을 모으기는커녕 제 밥그릇 키우는 데만 열중했으니 세력이 줄어들 수밖에.”

“미련했군요.”

“단지…….”

 

쿠치하 모로긴의 얼굴에 다소 의아하단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혈교는 혈교다. 어느 정도 힘은 있다, 이것이야. 헌데 과연 누가 그리 만들었을까. 강호는 정마대전으로 정신 없는 와중일 텐데.”

“그게, 정확하지가 않아 아직 보고드리지 않았는데, 최무신이란 이름의 검객의 소행이랍니다.”

“최무신?”

“예. 최근에 신성의 반열에도 든 자라고.”

“신성이고 뭐고 간에 단신으로 혈교를 쳐부쉈단 말이냐?”

“예. 허나 아직 소문임을 염두해 주십시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 게다가 방금도 말했듯이 강호는 지금 정마대전에 혼잡스럽다. 괜한 뜬소문이 나올 상황이 아니야.”

 

쿠치하 모로긴이 ‘그러고 보니…’ 하며 물었다.

 

“몇 해 전에 사카모토 히사시 놈이 죽은 것도 어느 일개 검객에 의해 벌어진 일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참, 네가 조사하러 갔는데 실패했었지?”

 

카라하라 마스케는 깜짝 놀라 ‘그게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종적을 감춰버려서…!’ 하고 얼른 덧붙였다.

다행스럽게도 쿠치하 모로긴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때 그 검객이 혈교를 쳐부순 검객이라고 하면, 너무 망상 같으냐?”

“아닙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깁니다.”

 

카라하라 마스케는 비위를 맞춰주려 한 말이었으나 쿠치하 모로긴은 진심이었다.

그의 촉이 분명 말하고 있었다.

그때 일이나 혈교 일이나 단신으로 그 난리를 피우는 ‘일개 검객’은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강호란 땅은 참 재미있단 말이지. 후후후.”

 

쿠치하 모로긴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자리했다.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구나.”

“그 검객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카라하라 마스케가 입에 침을 바르며 아양을 떨었다.

 

“총주님을 보면 아마 까무러치게 놀라 줄행랑을 칠 겁니다.”

“날 상대로 도망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냐?”

 

카라하라 마스케는 아차 하며 말을 바꿨다.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기백에 눌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겁니다. 그리고 총주님 검에 목이 베이겠지요.”

“뭐, 그래도 만만찮게 볼 놈은 아닐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물자가 어느새 배에 모두 실렸다.

작업을 마친 무사들이 총주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치하 모로긴은 그만 ‘얼굴도 모르는 검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발을 뗐다.

 

“가자. 무법자들의 땅으로.”

 

1553년 2월 15일.

동영의 강호 빈집털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제갈령이라고 하네. 여기서 이렇게 신성을 만날 줄이야.”

 

무신의 무리에는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령이 끼어 있었다.

그는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먹색 장포에 긴 머리칼을 둘둘 말아 상투를 틀고 있었는데, 정갈한 모습이 마치 무인보다는 문인에 더 어울려 보였다.

당장 서적 하나만 쥐어줘도 책사로 보일 것이다.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제갈세가가 그렇다.

무(武)보다는 문(文)을 더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제갈령도 아마 단순 무위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문파의 소가주나 부장문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저렇듯 무림맹주 곽이천의 옆자리를 차지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문인인 덕분이었다.

그는 이번 정마대전의 전술 지휘를 맡았다.

대부분 대패하면서 입지가 조금 좁아지긴 했으나 그의 탓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전술이 무의미해질 만큼 마교인들이 강했으니까.

 

‘어쨌거나 이거 인연이로군.’

 

무신은 뜻 모를 미소와 함께 제갈령의 인사를 받았다.

 

“제갈가의 큰 어른을 만난 것이 더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와 제갈령은 간접적으로 인연이 있었다.

제갈문.

파천학관에서 만난 젊은 청년이 바로 이 제갈령의 넷째 아들이었다.

제갈문은 잘 지내고 있을까.

검술은 얼마나 익혔을까.

그런데…….

 

“일전에 내 아들을 챙겨준 것은 고맙네.”

“예?”

“동명이인이겠지 했는데 얼굴도 문이가 설명해 준 것과 똑같구먼.”

 

제갈령이 무신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인자한 미소에 아들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도 함께 묻어났다.

무신은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이런 순간을 만들기 위해 제갈문을 도와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굳이 놀랐다고 한다면, 시기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뿐.

무신은 넌지시 물었다.

 

“소협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습니까?”

“잘 지내네. 밤낮 가리지 않고 검술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말일세.”

 

검술을 익히려 가문을 뛰쳐나와 파천학관에 들어온 자였으니 밤낮뿐이겠는가.

꿈속에서도 검을 휘두를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단 것이 의외였다. 회귀 전의 제갈문은 몇 년을 더 고생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끼어든 게 영향이 된 건가.’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무신은 제갈문에게 엄청난 은인이었다.

 

“언제 우리 가문으로 한번 놀러오게. 거하게 대접하지.”

“예.”

 

단순한 식사 대접이 아닐 것이다.

도씨세가처럼 금은보화를, 혹은 북해빙궁처럼 딸을 내줄지도 모른다.

비단 아들을 챙겨준 것을 떠나 무신은 맹주도 인정할 만큼 고수이기에.

고수와 안면을 트는 것은 강호무도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산해진미를 먹든 금괴짝을 얻든 절세미녀와 동침하든 당면한 과제를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무신은 다시 청마에 올라탔다.

그의 뒤로 정파가 주둔해 있었던 평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고작 몇 시진 사이에 까마득한 거리를 달려왔다.

청마.

그리고 강호의 여럿 명마.

이래서 탈것이 중요하다.

어디 시장 바닥의 말이었으면 아직도 평원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다.

무신은 고삐를 잡아당기며 곽이천의 말을 보았다.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털을 지닌 백마였다.

곧게 뻗은 갈기와 다리가 무언의 위압감을 주었다.

가끔 입을 벌리면 말의 울음소리 이 아니라 용 울음소리 비슷한 게 나왔다.

그것은 당연히 착각이겠지만.

물론 아무리 대단한 말이라 해봤자 안장에 앉은 제 주인만큼은 못 됐다.

망룡의도 한 수 접고 갈 명의를 입은 곽이천은 작게 축소된 영물 같았다.

등 뒤에서도 신묘한 기운이 쏘아졌다.

남궁세가의 가주나 화산파의 장문처럼 그도 무림맹의 맹주라는 이름값을 가져서만은 아니었다.

생사경.

그는 진정한 무인만이 오른다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기어검의 모든 오의는 물론, 환골탈태에 심검까지 못 이룬 것이 없었다.

당장 눈 하나 깜짝 않고 뒤편의 무인들을 죄다 몰살시킬 수도 있는 그였다.

딱 한 명.

무신만 빼놓고는.

 

‘곽이천과 붙으면 어떻게 될까?’

 

무신은 곽이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몹시 궁금했다.

무인으로서의 정도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신은 순간 곽이천의 뒤통수에 내공을 날릴까 고민했다.

그와 동시에 싸움은 시작될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무신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믿음을 준 이를 배신하는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닐뿐더러 애당초 곽이천을 적대시할 이유도 없었다.

누누이 말했듯 지금은 대상이 혈교가 되더라도 손을 잡아야 할 판이었다.

실제로 적라성을 비롯한 혈교 강시들이 각 문파에 섞여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곽이천과 붙을 수 없다면… 그에 버금가는 자와 붙으면 돼.’

 

무신은 미래를 바라보았다.

아주 가까운 미래였다.

슬슬 장엄한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마교 교원.

저 중심에 있을 마교 교주 마운현.

그자가 무신의 상대였다.

빙룡검과 비월내각신공으로 무장한 힘을 시험할 기회가 오는 것이다.

무신은 입술을 날름 핥았다.

아까 허기를 채웠는데 또 배가 고팠다.

배 속에 걸신이 들린 게 아니었다.

검, 그리고 무(武)의 정신이 굶주려 있었다.

어서 피를 보고 싶었다.

 

‘나도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행복한 상상에 젖어가던 무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도망치기 일쑤였던 회귀 전의 15년.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찾아다녔다.

심지어 상대가 강호의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의 수장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

답은 그의 몸에 있었다.

힘.

뭐든 찢어발길 수 있는 강한 힘.

오로지 힘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그는 그저 본인이 가진 힘을 쓸 뿐이었다.

 

“멈춰라!”

 

곽이천이 갑자기 손을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광활한 신강의 땅 위로 어디선가 돌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거칠고 사나웠다.

얼핏 마교인들처럼 느껴졌지만, 아니었다.

색깔이 누르스름했다.

그렇다면 정체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본인들 말로는 골드 풀 플레이트 아머라고 한다는 것을 입은, 이계의 손님들이었다.

색목인.

다른 이들에겐 몰라도 무신에겐 반가운 자들이었다.

만나보고 싶었던 마음을 떠나 그도 이계인이었다. 강호인들과 생김새가 비슷해 색목인이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색목인들을 주시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이곳에 와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됐구만.”

 

하지만 곽이천과 이하 정파인들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들에게 색목인들은 전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 이게 누구야! 곽 무사 아니신가!”

 

무림맹 맹주를 일개 무사로 지칭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정확히는, 저들의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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