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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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5화
대면
1553년 현재 남궁천의 경지는 현경.
그러니 북해빙궁 궁주 해영월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천하의 남궁천도 무신의 상대는 못 되었다.
무신이 그럼에도 이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은 역시나 회귀 전의 기억 탓이 컸다.
무법자란 말로도 포장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맹주의 자리에도 올라갈 수 있었던 게 바로 남궁천이었다.
“남궁환이라고 하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환.
그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남궁천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서 있었다.
가문의 수장을 대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연배?
그것조차 오히려 남궁천이 더 낮았다.
무신이 알기로 남궁천은 아직 초로에도 접어들지 않았다.
“최무신입니다. 남궁세가의 가주님을 뵈다니 이거 영광이로군요.”
무신은 존칭에 아양을 떨어가며 남궁환의 손을 맞잡았다. 주름진 손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하지만 범인들과 다르게 무인들 세계에서는 이것이 무위의 척도였다.
오래 묵을수록 무위는 더 강해지는 법.
무신은 고개를 들어 남궁환과 얼굴을 마주했다.
손과 마찬가지로 얼굴에도 그간 남궁환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굴만 보면 정말 시장 바닥 노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기품.
한국에서의 말로 하면 아우라.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 느껴졌다.
이유야 뻔했다.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무신이 남궁환에게 예를 갖춘 것도 그것에 있었다.
물론…….
남궁성이나 남궁선검대를 죽인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을 만한 죄를 저질렀다.
남궁성의 경우에는 특히 더더욱.
무신은 그래서 남궁환이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하기 좀 뭐하네만… 일전에 누가 그러더군. 자네가 남궁성과 남궁선검대를 죽였다고’ 했을 때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바로 인정하며 차분히 설명했다.
“마땅히 죽였어야 했다… 라는 말인가?”
“예.”
“넘궁성 그놈이 개차반인 것은 맞으나… 아니지. 자네의 행동이 옳았다 보네.”
남궁환은 어차피 무신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름값.
부.
명성.
제아무리 잘나봐야 이 바닥 안에서는 ‘힘’이 제일인 법이었다.
물론 그가 무신에게 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싸움은 일단 해봐야 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나면 몸 어느 한 곳 성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팔다리 중 한쪽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끔찍한 상상이 스쳐 지나가자 그의 태도는 더욱 유해졌다.
“잘 지내봅세.”
그의 말에 무신이 포권을 취했다.
그는 무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도 관계를 돈독히 하잔 뜻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얼핏 우스운 광경이었다.
대남궁세가의 가주가 일개 검객에게 이렇듯 저자세로 나온다는 것은.
그러나 세상에 나이 스물여덟에 단신으로 빙룡을 잡고 화경에 오른 일개 검객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아니, 없을 것이다.
대부분 수장들이 이해한단 얼굴이었다.
오히려 슬그머니 다가와 무신과 접선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백형도라고 하네.”
숱한 이름이 지나고, 화산파 장문의 이름이 들려왔을 때.
무신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벅차오르다 못해 뜨겁게 달아올랐다.
회귀 전, 남궁천과 마찬가지로 시대를 풍미했던 고수가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의 감정이었다.
무신에게 화산파는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유해주에게.
‘유해주의 스승을 죽인 데에는 백형도의 입김도 들어갔겠지. 그만한 자를 아랫선에서 정리할 리는 없으니.’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비단 유해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형도는 회귀 전부터 악랄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뛰어난 무위에 가려졌을 뿐이었다.
‘정파가 정파 같지 않게 느껴졌던 데에는 이자의 영향도 커.’
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좀처럼 좋게 볼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힘을 모아야 할 때였다.
마교와 맞서기 위해서는 말이다.
“…우리 식구들을 잡아다 강시로 만들어?”
통성명을 한 이 중에는 개방 방주 경정길도 있었다.
그는 무신보다도 무신의 곁에 선 적라성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정확히는 관심이 아니라 분노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지 설마 하니 시체가 그런 농간을 당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경정길의 주먹에 희뿌연 기가 어렸다.
말리지 않으면 저것은 당장 적라성의 아가리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잠자코 있었다.
어차피 알아서 관둘 것이다.
과연 경정길은 이내 주먹을 내렸다. 그리고 무신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맙네.”
적라성을 죽이지 않고 이대로 남겨두는 게 죽은 개방인들을 위한 진짜 복수임을 안 것이다.
비단 경정길만은 아니었다.
대다수 수장들의 뜻도 그러했다.
“다들 모이게.”
짧은 만남이 끝난 후, 곽이천이 다시 수장들을 불러 모았다.
저 멀리 마교 교원이 보이는 평원.
그곳에 곧 수많은 정파인들이 각각의 문파에 따라 무리를 지었다.
일류무사까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죄다 절정 이상이었다.
화산파나 남궁세가의 경우에는 절정도 드물었다.
‘난다 긴다 하는 자들은 다 모였군.’
무신은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몸에 기압이 엄청 났다.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개중 제일은 결국 무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정파인들의 시선은 모두 그를 향해 있었다.
“반갑소, 최 대협.”
걸쭉한 목소리에 무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삼십 대 후반 즈음의 사내가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그러나 왜인지 눈에는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왼쪽 가슴의 문양.
사천당문의 그것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자의 정체는…….
“당가의 당비청이라 하오.”
역시나였다.
무신과 함께 신성에 든 당가의 신흥고수였다.
의아하게도 외관은 그리 특출 나지 않았다. 신장이 무신보다 머리 반 개는 작았으며 무골도 저기 저 절정무사들과 엇비슷했다.
그러나 당가는 여타 문파와 다르다.
무골로 승부 보는 유형이 아니었다.
암기나 독기.
당가는 그것에 능했다.
당장 당비천의 품에도 갖가지 암기와 독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웬만한 고수의 숨은 대번에 잘라낼 만큼의 무시무시한 것을.
‘그런데 당비청은 여기에 무공도 능하다는 거고.’
무신은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단순히 암기와 독기만 좋았다면 고수 소리는 들었을지언정 신성에는 못 들었을 것이다.
무신은 곧 또 다른 신성과도 안면을 텄다.
“한철룡이오.”
화산파의 한철룡.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더니 정말 거대한 용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신장이 몹시 컸으며 체격은 장한이란 말로도 모자랐다.
무골이야 말하면 입만 아팠다.
한철룡이 주먹 한 번만 휘저어도 여기 이 평야의 아름드리나무들 절반은 날아갈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외관 면에서는 당비청보다 수십 배는 더 강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당비청보다 수십 배가 더 강해도 무신만큼은 못 되었다.
무신은 마음만 먹으면 여기 이 평야의 아름드리나무뿐 아니라 무인들 중 5할을 날릴 수 있었다.
물론 ‘진짜’ 마음을 먹으면 9할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최 대협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게 민망하오.”
화산파에 신성.
입지가 입지이니만큼 콧대가 거만할 줄 알았는데, 한철룡은 의외로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말은 편히 하고 있으나 고개는 장문을 모시듯 한껏 숙이고 있었다.
무신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나이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소.”
“강호에 나이가 뭐 중요하겠소?”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애와 어른.
청년과 중년.
중년과 노인.
그만큼의 차이라면 모를까 나이는 그다지 따질 것이 못 되었다.
그리고 사실…….
진짜 나이 서열로 가면 무신이 단연 첫 번째였다.
저기 저 먼 나라에서 22만 살을 찍고 이곳으로 왔으니 말이다.
무신은 대화를 대충 마무리했다.
“어찌됐든 잘해봅시다.”
“그럽시다.”
당비청과 한철룡 외에도 무신과 말을 섞고 싶어 하는 이는 많았다.
당장 지금도 흘깃거리는 시선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일개 식솔이 가주를 찾아가기 어렵듯 그들에게 무신은 너무도 높은 존재였다.
저 멀리 어렴풋하게 드러난 마교 교원의 장벽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도 몇몇 나서기 좋아하는 이들은 손바닥 비비며 다가왔다. 능글맞은 얼굴에 뭐 하나 뽑아먹겠단 술수가 보였다.
무신은 기분 나쁘게 보지 않았다.
회귀 전의 그도 어디 고수가 있다고 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아양을 떨었다.
자존심?
그까짓 것은 생각도 안 했다.
살려면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야 하는 게 강호였다.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무신은 가벼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곽이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필사즉생필생즉사! 강호무도의 철칙을 잊지 말라!”
“예!”
정마대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서로 간만 봤을 뿐이었다.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곽이천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황제의 그것보다도 대단하다는 맹주의 검이 잔잔한 허공에 엄청난 파공을 남겼다.
무신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예상한 일이었으나 막상 닥쳐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것은 정말 정마대전이란 말로는 설명이 모자랐다.
세력을 걸고 다투는 참극이었다.
그러니 싸움이 끝나면 분명 어느 하나는 풍비박산이 나 있을 것이다.
아니, 풍비박산이면 다행이었다.
지도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게 마교든 정파든.
‘마교의 존재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어. 정파만 남으면 오히려 그 안에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신은 복잡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그렇다고 이 싸움이 멈추길 바라는 것도 우스웠다.
이미 너무 많은 선을 넘어버렸다.
무엇보다…….
마교가 마물의 마기를 꺼내 쓴 것도 큰 문제였다.
가만 놔두면 강호 바닥은 마교의 손아귀 안에 들어갈 것이다.
비단 강호뿐 아니라 중원 전체까지.
“자네는 나와 함께 정문으로 가면 되네.”
“알겠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구먼.”
“이미 결심을 한 판에 머뭇거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수십 개도 넘는 마교 교원의 문 중에서 가장 크고 위험하다는 정문.
곽이천을 따라 무신이 향할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곽이천이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암만 생각해봐도 자네의 그 결심을 이해할 수가 없네.”
“어찌 그러십니까?”
“마기 때문에 마교의 세력이 커질까 염려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너무 위험한 일이잖은가?”
“왜 위험합니까?”
“응?”
무신은 등 뒤의 빙룡검을 꺼내들며 대답했다.
“이겨 버리면 될 것을요.”
말은 쉬웠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못 이겨낼 게 무어 있겠는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최강의 세력이었던 화교(火敎)도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상이 무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그런 식으로 말할 자격이 충분했다.
“마운현과 붙어도 감당할 자신이 있나?”
“예.”
“허허.”
“대신 이긴다고는 장담 못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있을 뿐이지.”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는 무신을 곽이천이 잠깐 빤히 쳐다보았다.
아랫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자신과 동급.
혹은…….
‘아무리 그래도 맹주님보다야 위에 있겠습니까.’
무신은 이 순간 곽이천의 머릿속을 대강 짐작했다.
재미났다.
정파 최강의 사나이 중 한 명과 자신을 비교 선상에 둘 수 있다는 것이.
“출발하지.”
곽이천의 지시가 다시 떨어진 것은 드넓은 평원 위에 열댓 명의 무사들만이 남았을 즈음이었다.
남궁세가나 화산파 등 각각의 문파들은 이미 모두 떠난 후였다.
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디뎠다. 뒤꿈치가 왜인지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결국 사람이었다.
긴장이란 것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긴장 때문에 그르칠 일이었으면 애당초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