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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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24화
흔하디흔한 검객
팽영권이 죽었을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던 게 곽이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의 눈은 초점이 흔들릴 정도로 놀라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진 것은 덤이었다.
“그것은… 빙룡검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청년이 예를 갖추며 그렇게 답했다.
곽이천은 어안이 벙벙했다. 빙궁의 궁주만이 가진다는 것을 서른도 안 됐을 이가 들고 있었다. 심지어 다루는 모양새도 무언가 여유로웠다. 빙룡검이 아니라 그냥 나무막대기를 쥔 것 같았다.
“최무신. 파천 출신의 신성. 내가 아는 그 청년이 맞는가?”
“맞습니다, 맹주님.”
“허허.”
곽이천은 말문이 막혔다. 최무신이 대단하단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빙월대 대장이라서?
혈교를 혼자 궤멸시켜서?
그것들도 그것들이지만 곽이천의 정신은 여전히 빙룡검에 팔려 있었다.
“궁주의 것을 들고 온 것은 아닐 테고… 직접 빙룡을 잡아 얻은 겐가?”
“예.”
“궁주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들었는데?”
“예, 저도 그리 들었습니다.”
“헌데 자네가 해냈다고?”
최무신이 멋쩍게 웃었다.
곽이천은 ‘혼자 해낸 것은 아니겠지?’ 하고 바로 이어 물었다.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그의 속마음이 남몰래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 들어갔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는 게 싫어서.”
“…….”
“그래서 제법 고전하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렇게 대답하는 최무신의 얼굴은 매우 차분했다. 빙룡정을 동네 마실 다녀온 듯 말하고 있었다.
곽이천의 얼굴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사람을 보는 것인지 괴물을 보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경정길이 말하는 인간마물이 혹 이 청년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더해졌다.
곽이천은 임시주둔지로 펴놓은 대형 천막 한쪽을 가리켰다. 앉아서 더 이야길 해봐야 될 것 같았다.
당장 마교 교원을 들어가기로 했었으나 그것은 지금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올해로 스물여덟이 되었다고?”
“예.”
“대관절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져야 자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겐가?”
“재능이라… 뭐 있겠습니까? 그저 남들과 똑같이 자고 먹고 검을 휘둘렀을 뿐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재능이라 부르네.”
크지 않은 원탁.
강호 최강의 무인 중 하나라 꼽히는 자와 강호 최강의 신성 중 하나라 꼽히는 자가 마주 보고 앉았다.
주위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두 사람의 기압에 눌려 천막 밖으로 나가 있었다.
각 문파의 수장들만이 천막을 기웃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궁금해할 뿐이었다.
“난 놈이야, 난 놈.”
“북해빙궁의 궁주가 현경이지 않소? 그자도 실패한 것을 얻었단 것은 저 청년이 현경 이상이란 소리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기도 안 차는군. 저 젊은 나이에.”
수장들 또한 곽이천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몇 마디 더 중얼거리다 꾹 입을 다물었다. 천막 안에서 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혹,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거치며 이리 젊은 모습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신체 나이는 스물여덟이지만 실제 나이는 나와 비슷하지 않느냐 묻는 것일세.”
곽이천은 합리적인 의심과 의문과 해석을 던지고 있었다. 최무신의 무위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1,500년이 넘는 강호와 중원의 역사.
거기서 나이 스물여덟에 ‘현경’이 된 자는 전무했다.
그러나 최무신은 지겹도록 들은 말이라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반로환동은커녕 환골탈태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은 파천에서, 이후로는 강호에 들어왔으니 폐관수련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영문을 모르겠구만.”
폐관수련이란 말에 최무신의 눈이 잠깐 반응했지만, 곽이천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령 봤을지언정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해봤자 얼마나 했겠는가.
누누이 말했듯 최무신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여덟이었다.
그러나… 곽이천은 몰랐다.
최무신이 저승에서 22만 년 머무르다 왔음을.
“밖에 적라성과 혈교인들은 자네가 강시로 만들었다 했나?”
“그렇습니다.”
“강시술이 금술인 것도 알고 있다 했지?”
“예, 맹주님.”
“그럼에도 저렇게 한 이유는 혈교인들이 저지른 죄를 그대로 돌려주기 위함이라고?”
“맞습니다.”
“자네 뜻은 이해하네만 그 역시 정파무도에 어긋남을 알아야 하네.”
곽이천의 말은 언뜻 부정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렇게 덧붙였다.
“허나 혈교인을 상대라면 구태여 정파무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지.”
“그리 생각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던 최무신이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곽이천은 왜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추측이오나 최무신의 무위는 현경 이상.
그만한 고수가 이렇듯 예를 갖추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나 화산파의 장문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있겠느냐마는, 최무신은 경우가 달랐다. 북해빙궁 소속이므로.
곽이천은 말 나온 김에 넌지시 물었다.
“자네는 경지가 얼마나 되는 겐가?”
“화경입니다.”
“화경?”
예상을 제대로 빗겨가는 대답이었다. 환골탈태나 반로환동을 거치지 않았다니 이제 막 현경에 올랐다고는 볼 수 있어도 화경은 좀 의외였다.
“화경으로 빙룡을 잡는 게 가능한가?”
“저는 가능했습니다.”
본인이 그렇다니 곽이천이 더 할 말이 없었다. 다만, 대략 짐작은 해볼 수 있었다.
‘내공이 많다는 뜻인가.’
곽이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비로소 본론을 꺼내 들었다.
“어찌 됐든 우리 정파의 편에 서고자 이곳으로 왔단 겐가?”
“예.”
“빙궁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리 발 벗고 나서줄 줄은 몰랐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대가 마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놈들이 설치는 꼴은 영 보기가 힘들어서.”
“그렇구만. 이해하네.”
곽이천으로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하나라느니 평생 가자느니 하는 어쭙잖은 공생 관계라고 하면, 조금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뒤통수를 칠까 싶어서.
그런데 마교 때문이라니 적어도 그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최무신이 하나 간과하는 게 있었다.
“마교인들이 마물의 마기를 끌어다 썼을 가능성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설명을 들은 최무신은 곽이천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럼 더 난리가 나기 전에 빨리 쳐야겠군요.”
***
적어도 수십 년은 됐을 것이다.
마운현은 오래 전 중원을 습격했던 마물을 마공으로 이용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찌저찌 마물을 불러들이는 것에는 성공했고, 그 마물의 마기를 추출하는 것에도 성공했는데, 마무리가 문제였다.
어지간한 몸뚱이로는 마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주화입마.
하나같이 단전이 터져 죽었다.
그 강했던 서열 15위 오성국조차 채 반 시진을 견디지 못하고 험한 꼴을 당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종남파와 거래가 성사됐다.
그게 전환점이었다.
정파의 심법과 마교의 심법을 적절히 섞어 드디어 마기를 정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오성국보다 서열이 두 계단 아래였던 백형곤도 무난하게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 방법만 만들어지면 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남의 것을 빼다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원래 마교 무공, 아니, 마교 마공의 성질이었다.
물론 한계점은 있었다.
마물의 마기가 강할수록 운용하기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적당선만 해도 좋았다.
삼류무사가 이류무사의 힘을.
절정이 초절정의 힘을.
그리고 화경이 현경의 힘을.
한 단계만 올라가도 가히 절대무적이었다.
절대무적.
그 말은 특히 마운현에게 주효했다.
그는 무림맹주 곽이천과 같은 생사경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
더 이상 생사경이 아니었다.
‘곽이천은 이만큼의 내공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마운현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애검이자 자신의 힘의 원천이 되는 마라검(魔羅劍)을 들었다.
놈이 들짐승의 그것처럼 거칠게 포효했다.
시꺼먼 기가 허공 위에 꿈틀거렸다.
“배, 백 대장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화격대 대장 백형곤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운현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북해빙궁이었을 테니 그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 까짓것 죄다 없애 버리면 그만이었다.
북해빙궁이든.
정파든.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이어졌다.
“북서에서 색목인들이 내려왔단 말이 있습니다!”
“색목인들이?”
“예! 탁호영은 아무래도 북해빙궁이 아니라 그들에게 당한 것 같습…….”
마운현의 눈치를 살피느라 수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운현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져 있었다. 색목인은 정말 뜻밖이었다.
“이것들이 사방에서 지랄이구나.”
물론 북해빙궁이면 모를까 색목인은 달랐다.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정파무도와도 사파무도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은 분명했다.
소드 마스터.
이쪽 말로는 화경 이상.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소드 마스터 최상급에 해당된다는 레이스터 발콘이 나타난다면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럼 북해빙궁은 애당초 오지도 않았다는 게냐?”
“색목인들이 나타났단 위치로 말미암아 백형곤은 그들에게 당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해빙궁도 왔다 그 말이야?”
“아무래도 그렇지 싶습니다.”
북해빙궁까지 더해졌다면 방금 전 마운현의 말 그대로였다.
색목인, 북해빙궁, 정파.
사방에서 지랄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
그런데 자리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마운현이 뒤집어지겠다는 듯 복장을 쥐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웃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죄다 정문 앞으로 운집시키거라. 아무래도 마중을 나가줘야 할 것 같으니.”
어차피 천하(天下)를 먹으려고 계획하던 참이었다.
색목인.
북해빙궁.
정파.
그 염원을 이루는 데에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것들이 제 발로 들어와 준 셈 아니겠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니, 긍정적이란 말도 우스웠다.
마운현은 자신 있었다.
세 개의 세력이 한꺼번에 들이닥쳐도 요절을 낼 힘이 있었다.
그의 검이 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그는 머리 반 개 정도 더 큰 신장에 강골이란 말로도 부족한 무골을 지니고 있었다.
선 굵은 이목구비에서는 강직한 힘이 느껴졌다.
손에 쥔 검이야 더 말해야 입만 아팠다. 빙룡검에는 못 견주겠으나 묵직한 기가 검신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
범인이 봤다면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압도적인 무위에 심장이 멎었을지도 몰랐다.
남궁천.
다채로운 검술과 남궁세가 특유의 무공, 그리고 뛰어난 재능으로 강호를 재패했던 검객.
어쩌면 곽이천보다 더 무신의 가슴을 뛰게 만든 이였다.
실제로 훗날에는 곽이천마저 뛰어넘었던 게 바로 남궁천이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으로서의 반가운 마음만 들 뿐, 무인으로서의 반가운 마음은 전혀 없었다.
“반갑네. 남궁천이라고 하네.”
손을 맞잡는 순간에도 그랬다.
무신의 가슴을 멀쩡했다.
떨리기는커녕 너무 덤덤해서 이상할 지경이었다.
왜일까.
까마득하게 생각하던 검객을 비로소 마주쳤는데, 대체 왜일까.
이유는 뻔했다.
남궁천이 흔하디흔한 검객 정도로 느껴질 만큼, 무신은 너무 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