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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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6화
6화. 예속 부대 (2)
“결투는 무슨.”
무흔이 슬쩍 피하려는 찰나 서옹이 껄껄 웃었다.
“호오, 결투라? 재밌겠는데? 좋아. 정확히 한 달 후에 두 사람의 비무를 보도록 하지. 그때까지 열심히 수련해봐.”
“네?”
무흔이 깜짝 놀라 서옹을 바라봤다. 어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흘흘, 뭘 놀래? 말한 그대로다.”
서옹이 다시 확언했고 진풍은 대소를 터트렸다.
“캬캬, 네 녀석 이제 죽었어! 한 달만 기다려라.”
이미 다 이긴 것처럼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진풍이 무흔을 향해 주먹감자를 먹이고는 사라졌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무흔이 서옹에게 하소연했다.
“아니, 어르신!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흘흘, 진풍 말도 틀린 건 없지 않으냐. 예속 부대는 말 그대로 본대를 돕는 지원부대다. 전투에 임하지 않으니 무공이 강할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너무 처지면 오히려 방해되는 법이니까. 네 녀석이 예속 부대에 머물고 싶다면 빨리 무공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좋을 거다.”
단호한 말에 무흔은 앞이 깜깜했다. 불과 한 달 만에 무슨 재주로 곤륜파의 제자, 그것도 일류 문턱에 걸린 자식과 싸워 이긴단 말인가.
한숨만 내쉬고 있을 때 서옹이 그에게 말했다.
“네 녀석은 앞으로 이곳에서 회계 일을 해야 하니까 내일 아침부터 물자가 들어오면 재료를 점검하고 돈을 치르도록 하여라.”
그가 할 일이 떨어졌다.
***
백단영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배정된 숙소에 들어갔다.
당연히 숙소는 남녀가 나누어져 있었고, 여자들은 인원수에 맞춰 다시 둘로 나뉘었다.
용봉대는 모두 서른 명. 이 가운데 여자는 모두 열 명이었다. 이 열 명이 넓은 두 방에 다섯씩 분포됐다. 그녀는 침상 다섯 개가 나란히 정렬된 방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곳에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 서먹한 상태가 되리라 생각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같은 방을 쓰는 다섯 가운데 둘이 어제 객잔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바로 일화라는 모용예와 일봉이라는 남궁이화였다. 두 사람 모두 유명 세가의 금지옥엽인 데다 이미 무림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다.
나머지 둘은 그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비구니로 아미파의 제자라 했다. 법명을 후연(後緣)이라고 썼다. 남은 한 사람은 하북팽가의 막내딸 팽수아라 했다. 하북팽가는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무공 면에서 남궁세가와 쌍벽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었다.
나이는 모두 그녀와 엇비슷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이라 금방 죽이 맞았다.
“자, 모두 인사했으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각자 소개를 주도한 남궁이화가 말했다. 백단영을 제외하고 나름 유명한 사람들이었으나 남궁세가를 등에 업은 남궁이화의 말에 모두 순순히 따랐다.
어느새 남궁이화가 이 방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침상은 배정된 대로 쓰도록 하자. 혹시 바꿀 사람 있냐?”
백단영의 자리는 가장 안쪽 구석진 곳이었다. 그녀의 옆자리가 바로 남궁이화의 침상이었다.
배정이 끝나고 자유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남궁이화가 백단영에게 다시 아는 체를 해왔다.
“우리 동갑이었죠?”
“아, 네.”
“그럼 말 놓아도 되냐? 너도 편하게 말해.”
“아, 네. 으, 응.”
활달한 남궁이화에 비해 백단영은 그렇지 못하여 수동적으로 말을 받았다.
“무공은 얼마나 배웠냐?”
남궁이화가 곧바로 말을 놓았다. 백단영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대답했다.
“열 살 때쯤부터……. 상단에 빈객으로 오신 분께 이것저것 배웠는데…….”
사실 무가가 아닌 하남백가에서 그녀는 무공을 배우기가 정말 어려웠다.
가전 무공이 없는 관계로 식객으로 모신 무림 명숙에게 어쩌다 하나씩 배운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사부를 모시지 못해 배운 무공은 다양했으나 깊이가 없었다.
그녀를 가르쳤던 명숙들은 그녀의 재능을 칭찬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비전절기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무공만을 익혔다. 그런 무공으로 일류에 접어들었으니 재능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남궁 소저께선…….”
“그냥 이화라 불러.”
“응, 이화는?”
“난 어려서 글을 깨칠 때부터 무공을 함께 배웠거든. 오라버니 남궁천기를 따라. 조신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고집이 세서 그냥 막 떼를 썼지 뭐. 가문 무공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제왕검형을 배우지 못했지만 다른 무공은 거의 습득했잖냐.”
그녀의 솔직한 자기소개에 백단영은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녀와 너무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솔직히 무림맹에 들어와 봐야 배울 것이 없지만, 같은 또래와 승부를 겨루며 성장하고 싶어 참여했지.”
남궁이화의 장담이 백단영은 무척 부러웠다.
그녀는 아마 일류를 이미 넘어서고 있는 상태, 즉 절정 초입 단계가 아닐까. 역시 무림세가 출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단영은 남궁이화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깨닫게 되자 기분이 우울해졌다.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모용세가의 모용예와 아미파의 후연, 하북팽가의 팽수아. 세 사람 모두 그녀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을 것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정표 봤냐?”
남궁이화의 물음에 백단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무림맹에서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 식사 전은 각자 수련시간, 식사 후 오전에는 이론 강의. 무공의 근본 이론을 다시 설명해주고 살펴보는 시간이라 했다. 점심 후에는 단체 수련. 오후가 넘어가면 다시 각자 수련이고 저녁을 먹은 후는 자유 시간이라 했다.
즉 단체로 함께 배우는 시간은 이론 시간과 단체 수련시간.
그리 많지 않았다. 남궁이화처럼 확실한 가문 비전이 있는 경우라면 필요 없겠지만 백단영에게 단체로 움직이는 시간은 매우 중요했다. 오히려 개인 수련시간에 그녀는 익힐 무공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내일을 기약하며 백단영은 잠자리에 들었다. 반드시 무림맹에서의 생활을 충실히 하여 여기서 나갈 때쯤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등한 고수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했다.
***
어둠이 걷힐 때쯤 무흔은 눈을 떴다.
“흐아! 어떻게 알바하던 때보다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냐!”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무흔이 투덜거렸다.
현대에서는 상상치도 못할 일을 이곳에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 이른바 해 뜰 때 일어나기. 이 동네 사람들은 왜 이리 부지런한가. 실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게다가 그가 예속 부대에서 맡은 일은 급식용 식자재 검사. 무조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흐아, 미치겠군.”
연신 하품을 하면서 무흔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식자재 납품상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폈다.
이곳에서도 확실하게 갑과 을이 존재했다. 당연히 이 일에서만큼은 무흔이 갑이다.
“나리, 오늘 물건 좋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납품상이 아부를 섞어가며 재빨리 서둘렀다. 일일이 식재료의 상태를 봐가면서 행하는 전수 검사였기에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긴 했다. 검사 후 납품업체에서 제시한 납품목록과 대조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총액을 계산했다.
“아저씨, 여기 틀렸잖아요.”
무흔이 목록의 금액 합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목에 힘을 주었다.
“그…… 그럴 리가요.”
“다시 계산해보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동원한 납품상이 입을 쩍 벌렸다.
“처, 천재이십니다!”
“앞으로 떼먹지 마세요. 나 천재예요.”
“아, 알아보시겠습니다.”
아침 식사 후 서옹은 그에게 다른 서류를 주어 검토하게 했다.
주로 월말 결산 회계자료로 품목이 다양하고 금액도 많아 복잡했다. 그래 봐야 중학생 정도면 충분히 해치울 계산 수준. 무흔에게 이런 일은 매우 쉬웠다. 계산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암산으로도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 있습니다.”
“헐? 벌써 다 끝냈다고?”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내자 서옹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동안 회계 계산 때문에 꽤 골머리를 앓았던 모양이었다.
“흘흘, 대단하군. 덕분에 내가 편해졌어. 오늘 일 끝났으니 알아서 쉬게나.”
나머지 시간은 사실상 자유였다.
예속 부대의 인원은 모두 서른 명. 용봉대와 인원수가 같았다. 예속 부대는 일의 특성상 모두 남자였고, 대부분 무공이 이류고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높은 수준의 무공을 요구한 이유는 실제 전투 지역에서 용봉대를 보조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은 전투보다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나르고 전투 지역에서 밥을 해주는 그런 잡일을 위해 동원될 사람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예속 부대 또한 인기가 많았다.
무림맹 소속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소속 인물 가운데 구대 문파와 무림세가의 사람도 많았다. 물론 일대 제자처럼 촉망받는 기재가 아닌 그저 그런 자들의 집합소이긴 했지만.
“그런데 어르신.”
무흔이 물러나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뭐냐?”
낮잠을 자려고 눈을 감던 서옹이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반색했다.
“혹시 무공은 안 가르쳐 줍니까?”
“엥? 무공을 왜?”
“그래야 예속 부대가 본대를 더 잘 보조할 것 아닙니까?”
“필요 없어. 무공은 각자 사부에게서 배워야지. 그래서 이미 꽤 하는 녀석들로 뽑았으니까.”
“그럼 저는 어떻게 합니까?”
무흔은 시위하듯 자신을 가리켰다.
서옹이 배를 벅벅 긁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흘흘, 자넨 무공이 필요 없어. 지금처럼 계산만 잘하면 쫓아내진 않을 거니까.”
“그럼 한 달 뒤 비무는 어떻게 합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서옹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고는 눈을 감았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무흔은 뒤로 물러났다.
그는 연무장 한쪽 구석 담벼락에 주저앉았다. 다른 녀석을 보니 각자 알아서 무공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도 무공수련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 이내 접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삼재검법밖에 없어 수련할 맛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는 한 달 뒤 비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들어온 목적을 달성하기가 난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백단영 곁에 있게 되었지만, 이 상태로는 흐름에 주도적으로 끼어들기가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그는 연무장 저쪽 편에서 단체 수련에 임하는 용봉대 생도를 관찰했다.
지금은 단체 수련시간. 생도들은 남자는 짙은 푸른색, 여자는 짙은 붉은색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용봉대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 복장이었다.
그들은 교관의 주도하에 흔한 각종 보법과 경신법을 익히고 있었다.
엄밀하게는 이런 보법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실전에서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무공이란 자신의 것을 잘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무공을 파악해서 약점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가 보기에 생도들은 그리 열심히 수련에 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 오직 한 명, 유일하게 백단영만 열심히 교관의 말을 경청하며 몸놀림을 따라 하고 있었다.
무흔은 멀리서 그녀를 발견하자 한편으로는 기쁨을, 한편으로는 동변상련을 느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녀 또한 저곳에서 꽤 텃세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잘하네.”
그는 백단영의 수련을 구경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제 봤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설 속의 최고 여신. 비록 아직 제대로 꾸미지 않은 얼굴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더 아름답다고 순위를 매겼다. 이 세계에서 최고 미인이라는 모용예와 비교해보면 확실했다.
지금 당장은 그녀를 내버려 두어도 큰 무리 없이 무공에서 성장할 것이다.
“그래, 아가씨를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내가 걱정이야.”
그는 왼쪽 손목을 걷어보았다.
49:23:03.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실로 돌아가려면 아직 만 이틀은 더 지나야 한다.
슬슬 지겨워졌다. 이대로 계속 빈둥거리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에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삼재검법의 초식이 떠오르고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압!”
그는 기합과 함께 삼재검법의 세 초식을 반복해서 수련했다.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만큼 지겨웠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검을 휘두르는 방식이 점점 능숙해졌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점차 검이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왔다.
한참 검을 휘두르던 그를 빈정대는 목소리가 깨웠다.
“푸흡! 삼재검법? 그걸로 나를 꺾겠다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풍이 그가 수련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는 수련을 계속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에 따라 검로가 춤을 췄다.
그의 삼재검법 수련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됐다.
그는 모르고 있었으나 팔목에 표시된 작은 글씨가 변했다.
삼재검법 6/12. 5성의 숙련도를 보였던 삼재검법이 6성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