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50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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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회귀했더니 검신이었다 150화 (완결)
에필로그
전쟁은 짧았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당연했다.
죽은 무인들이 대부분 각 문파의 고수들이었을 뿐더러, 애당초 마계의 워프 게이트는 서역평야 부근에만 열린 게 아니었다.
강호 곳곳이었다.
그 구멍을 타고 마물들이 물밀 듯 쏟아졌으니, 강호는 금방 쑥대밭이 되었다.
미리 고수들을 배치시켜 놓았음에도 피해가 상당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놈들은 금세 제압되었다.
마왕은커녕 최상급 마수들도 없었으니까.
놈들이 밀어 붙일 것은 그저 수적 우세뿐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진짜 끝이 났다.
그리고 말했듯 복구까지는 꽤 긴 시일이 소요됐다.
하지만 어려울 것은 없었다.
모두가 힘을 모았다.
정파, 북해빙궁, 카르베니아, 심지어 사파까지 모두 화합하여 본래의 강호를 되찾아나갔다.
곧 죽어도 뭉칠 수 없는 그들이었지만 한 사람의 존재가 그들을 바꾸었다.
최무신.
강호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인 그가 말이다.
***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갔다.
마왕전이 일어날 때만 해도 가을이었는데, 어느 순간 겨울이 오고 봄이 왔다.
질리도록 더운 여름이 오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쯤해서는 강호도 원래대로 돌아간 상태였다.
객잔.
성.
산.
심지어 마왕전이 벌어졌던 서역평야까지 모두.
하지만 한 가지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화합.
각 세력은 서로 그 끈을 끊지 않았다.
최무신의 눈치를 살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의지였다.
허구한 날 싸우며 세력 다툼 하는 것보다 화합하며 살아가는 게 더 괜찮은 삶임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들이 사는 곳은 강호였다.
무인(武人)들의 세계.
칼부림 없이 그 세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마저도 가능케 만들었다.
실전 대신 대련을.
세력 대신 문파를.
어떻게든 살상을 줄이고자 힘썼다.
…라고는 해도 카르베니아나 사파 쪽은 최무신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아주 많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내 천하(天下)를 삼켰는데, 그 아래서 자잘한 싸움이 일어나서야 되겠소?”
그 말이 세상을 바꾸었다.
강호는 더 이상 무인(武人)들의 세계가 아니라, 그냥 무(武)의 세계가 되었다.
***
천룡무관(天龍武館).
과거, 마왕전에 대비해 만들어진 그곳은 그 이후로 강호의 명물이 되었다.
무인을 꿈꾸는 자들은 꼭 그곳을 들렸다.
아니, 아예 뼈를 묻는 자들도 많았다.
그곳에 모든 게 있으니까.
무(武)의 끝을 경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럴 것이 그곳의 명예관주로 있는 자가 생사경과 자연경을 넘어 신화경에 도달한 천하제일고수였다.
자신들도 그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그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물론 천룡무관의 수련 과정은 매우 고되고 힘들었다.
모든 게 그날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까.
마왕전.
아주 작은 수련도 숨이 헐떡일 때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발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해야만 마왕들을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마왕들을 잡아냈고.
그러니 관생들은 꿋꿋이 버텨냈다.
자신들도 마왕들을 잡아낼 만큼 강해지겠단 일념으로. 그리고 앞서 말했듯 명예관주처럼 되겠단 일념으로.
명예관주가 누구인지는 뻔했다.
최무신이었다.
***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유림교라 불리지만 실상은 강호, 나아가 중원 전체를 호령하는 그곳에서 한바탕 실랑이가 일었다.
“예? 어딜 가신다구요?”
“들으신 대롭니다. 저승에 좀 갔다 올 참이에요.”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허연 피부에 큼지막한 눈, 그리고 오뚝한 코가 매혹적인 여인이 그곳의 교주, 무신을 향해 목소릴 높였다.
“산 사람이 어떻게 저승에 가요! 말도 안 돼!”
“저는 가능합니다.”
“그니까 어떻게요!”
“음, 일전에도 말씀드렸을 텐데.”
무신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기억 안 나십니까? 저 저승에서 22만 년 동안 수련하고 왔다고 한 거.”
“…….”
여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무신이 그거 보라며 계속 말했다.
“기억나시지요?”
“그게 아니라… 그것도 믿으라는 건 아니죠, 지금?”
“허허.”
무신은 그저 웃기만 했다.
보아하니 아무리 설명해도 여인은 알아먹을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인을 탓할 것은 못 됐다.
저승.
그곳에서 22만 년 간의 수련.
세상 순진무구한 일곱 살 베기 꼬마애도 안 믿을 소리였다.
잠깐 생각하던 무신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같이 다녀오시겠습니까?”
“네?”
“어려울 듯하지만, 제가 가진 힘을 사용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끝까지 놀리시기예요?”
이어 옆구리에 손을 얹고 ‘너무해요!’ 하는 여인을, 무신은 그대로 끌어안았다.
이것이 사내의 박력.
여인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으나, 무신은 그런 의도로 여인을 안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 바로 출발합니다, 소저.”
무신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저승, 염라의 문.
여느 때처럼 망령들로 인해 정신 없는 그곳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아니, 기이하단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말했듯 망령들만이 오가는 곳.
그곳에 남녀 인간 한 쌍이 와 있었다.
산 채로 말이다.
“으응?”
“어떻습니까? 정말 저승이지요?”
그들은 망령들과 사자들이 자신들을 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 말이 맞냐니 어쩌니 하며.
보아 하니 저 중 여자 인간은 자신이 저승에 왔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한 모양이었다.
남자 인간은 마치 이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이, 심지어 하하 웃음까지 터뜨리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저승의 주인이 끼어들면서 겨우 일단락되었다.
“다, 당신은……!”
저승의 왕.
염라(閻羅).
그가 인간들, 정확히는 남자 인간을 보며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사자들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유림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가 겨우 인간을 상대로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어언 일로 오셨습니까!”
말까지 높이며.
하지만 염라처럼 행동하는 게 맞았다.
저 남자 인간은 ‘유림’만큼 높은 존재니까.
“간만에 유림님을 좀 뵈러 왔습니다.”
***
유림은 기분이 묘했다.
눈앞의 남자가 망령의 숲의 임무를 통과했다는 것도, 그래서 회귀를 했다는 것도,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힘을 찾았다는 것도, 그래서 결국 이렇게 자신을 맞을 단계까지 왔다는 것도 다 아는데…….
막상 볼 때마다 신기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꿈은 아닐까?
푸훗.
꿈이라니.
유림은 스스로의 생각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신에게 꿈이란 것은 없다.
신의 생활이 꿈의 경계보다 더 위에 있기 때문이다.
유림은 남자에게 물었다.
“이승 생활은 어떻느냐?”
“평탄합니다.”
“좋겠구나. 머리 아플 일이 없어서.”
남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듯 볼멘소리를 냈다.
“삶에 스릴이 없습니다.”
“스릴?”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긴장이 없다고나 할까요.”
“바알에게 죽을 뻔한 놈이 긴장 타령을 하니 우습구나.”
“죽을 뻔하기는요? 제가 이것으로 바로 혼쭐을 내주었는데.”
남자가 바로 반발하며 무언갈 뽑아들었다.
아니, 만들어냈다.
유림의 검.
저승의 신의 물건이 인간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유림은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저 남자에게 유림의 검을 다루는 것은 이제 ‘일상’이었다.
유림은 남자의 옆에 선 묘령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 여인은?”
“아, 일전에 말씀드린…….”
“너의 배필이구나.”
“그렇습니다.”
“너무 아까운 걸?”
“예?”
“너에 비해 저 여인의 외모가 너무 훌륭하구나.”
반발은 남자가 아닌 여인에게서 나왔다.
“그… 신님? 맞나? 아무튼, 그런 말씀 마세요. 제겐 세상 누구보다 잘생기신 분이에요.”
“하하! 제 부인이 이렇습니다!”
“이게 당연한 거죠, 낭군님.”
유림은 왜인지 팔다리가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못 봐줄 부부애였다.
“자랑질하려고 날 찾아왔구나.”
“설마 제가 신을 상대로 그러겠습니까?”
“그럼 무슨 이유로 왔느냐?”
남자가 품에서 무언갈 꺼내들었다.
조그마한 서신.
유림은 남자에게서 그것을 건네받았다.
몇 겹이 쌓였는지 굉장히 두꺼웠다.
“이게 뭐지?”
“음, 인사입니다.”
“인사?”
“감사의 인사라고나 할까요.”
“네 녀석이 내게 감사할 게 뭐 있단 말이냐?”
정말이었다.
남자가 여태껏 이뤄낸 일은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 행한 일이었다.
유림은 그저 멀리서, 아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런데 남자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유림께서 존재하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부라도 하려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장난기 가득했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진지해졌다.
“회귀 전의 저와 회귀 후의 저는 같습니다. 그러니 회귀 전에 만난 유림과 회귀 후에 만난 유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같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그래서 그때 받은 도움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
“뭔 소리지 싶으시겠지만 세상에 22만 년을 도와주셨는데 어떡합니까, 그 감사를?”
남자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읽으실 만할 겁니다. 기억에 없는 자신의 행동을 글로 읽어 내려가는 기분. 크, 뭔가 벌써부터 재미있지 않습니까?”
“네 녀석만 재밌는 것 같구나.”
“에이, 그래도 한번 읽어만 주십시오.”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말과 다르게, 유림의 손은 이미 서신을 넘기고 있었다.
***
돌이켜보면, 그저 꿈만 같다.
죽음.
저승.
망령의 숲.
수련.
22만 년.
회귀.
그리고 유림.
누가 나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그 자리에서 ‘날 농간하는구나!’ 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대들이 내게 보였던 반응처럼.
하지만, 모두 현실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 많은 일들을 이뤄낼 수 있었다.
수많은 고수들을 이겨낸 것부터 유림교 교주, 그리고 강호에 길이 남을 천하제일인이 된 것.
그리고 지금 내 옆구리에 파고드는 아리따운 부인까지.
꿈이었다면 그저 망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직도 삼류무사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매일매일 고통스러웠고, 매일매일 도망쳐 다니기만 했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죽었다.
죽어서… 차라리 잘된 일인가?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나는 피식 웃었다.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또 있을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 그 자신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아무 것도 없는 망령의 숲.
그곳에서 홀로 22만 년.
두 번은 못할 짓이다.
차라리 그냥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몰… 다시 생각해 보니 가능할 것도 같다.
왜나면 그때의 나는 그만큼 절실했으니까.
어떻게든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인생을 바꿔야 했으니까.
나는 잠든 부인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잠깐 일어났다. 그리고 고즈넉한 달빛을 그려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 오늘따라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니, 조금은 감성에 젖어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