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3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0화
30화. 신화곡 (2)
산길을 세 사람이 묵묵히 걸었다.
평범한 나그네 복장에 가벼운 봇짐을 하나씩 들고 걸음을 옮기는 청년 세 사람이다. 먼 길을 걸어온 듯 남루했으나 걸음은 가벼웠다. 무공을 익힌 흔적이 얼핏 느껴졌다.
무흔은 뒤에서 진풍을 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는 대로라면 진풍 혼자 보내면 함흥차사니까 딱 좋다. 진풍을 없앨 기회니까. 그건 조금 잔인한가. 그런데 막판에 진풍과 그의 대립을 우려한 서옹이 대호를 붙였다.
역시 늙은 생강이라 확실히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다.
결과적으로 대호마저 위험에 빠트린 셈이 됐다.
진풍 혼자라면 위험에 빠지더라도 내버려 두고 도망칠 것이다. 물론 그가 위험에 빠지면 진풍도 양심의 가책 없이 도망갔을 테니 어차피 피장파장이다. 하지만 대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역시 산속이라 공기가 좋네.”
대호가 태평스럽게 감탄사를 발하며 무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응, 그렇네.”
이 자식이 현대 도심에서나 할 말을 하고 있다.
갑갑한 곳에 메여 있다가 자유가 주어지는 그런 기분이겠지. 지금 그들이 가는 신화곡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면 저런 소리는 안 나올 것이다.
“근데, 내가 생각해봤는데 서옹 어르신이 왜 나를 너에게 붙여 보냈을까?”
대호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어째 아냐?”
“서찰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한 사람만 보내도 충분하잖아?”
“혼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나 보지.”
“그러면 둘이면 충분하잖아?”
“너라면 나랑 진풍 둘이 보내겠냐?”
“하긴 그렇네.”
그의 핀잔에 대호가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호가 다시 물었다.
“어쨌든 다른 임무는 없는 거지?”
“없어.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라. 여기 엄청 위험한 곳이란다.”
“정파라며? 위험은 무슨.”
그의 경고를 대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저 홀로 앞서가던 진풍이 갑자기 커다란 나무둥치 아래에 주저앉았다.
“어이, 쉬다 가자.”
어제부터 진풍 저 녀석은 툭하면 쉬다 가자며 땡깡을 부리고 있다. 무흔과 대호도 부근의 나무 그늘에 퍼질러 앉았다.
그는 진풍을 못마땅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봇짐 속에서 사과를 꺼냈다. 식자재 점검할 때 빼돌렸던 사과다.
“자, 이거나 먹어.”
하나씩 나누어준 다음 사과를 입에 물었다. 꿀맛이다.
진풍이 지금 저렇게 심통을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저께 저녁에 그들은 꽤 큰 마을에서 묵었다. 그때 진풍이 마을 어귀에 있는 기루에 가보자며 그들을 꼬드겼다.
사실 무흔도 솔깃하긴 했다. 이 동네 와서 기루라고는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기루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식으로 영업이 이루어지는지, 이 동네 여인들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 대호가 판을 깼다. 자기는 고향에 마음을 둔 여자가 있어서 사양하겠다나.
무흔도 그 순간 백단영을 떠올렸다.
백단영과 그는 그런 관계가 아니긴 하지만 왠지 그녀를 배신하는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무흔도 대호의 편에 섰다.
혼자가 되어버린 진풍은 그날 밤 허벅지를 뜯었다. 그때부터 저렇게 모든 일마다 투덜대고 있다.
“얼마나 남았지?”
대호가 무흔에게 물었다.
“내일이면 도착할 거다.”
진풍이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오늘 밤에는 노숙해야 할 거다.”
먼 곳으로 이동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노숙이다. 그들이 경신법이 뛰어난 고수라면 적당히 먼 거리를 하루에 주파하여 야산에서 밤을 맞이할 일은 없다. 계획을 잘 짜면 저녁마다 객잔이나 여곽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다만 이들 세 사람은 그럴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바쁠 것도 없었다.
그들이 늦게 돌아간다고 예속 부대가 안 돌아갈 일도 없으니 며칠 늦어진다 하여 문제 될 일은 없었다.
한동안 숨을 고른 그들이 막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길 반대편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이처럼 깊은 산속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다.
평범한 회색 무복을 입은 중년의 세 사람이 그들을 힐끔 보고는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쉬어 가려는 모양이다.
“어디 소속입니까?”
진풍이 그들이 허리에 찬 검에 눈길을 주며 물었다. 적어도 이들 세 사람 역시 무림인이란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우리요? 숭무문이요.”
숭무문은 호북 쪽에 있는 꽤 유명한 문파였다. 당연히 무림맹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정파다. 지금 그들이 찾아가고 있는 신화문보다 더 큰 문파로 알려져 있다.
“하하, 그러시군요. 저는 곤륜 출신입니다.”
진풍이 상대를 깔보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세 사람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예의를 차렸다.
“오! 곤륜이셨군요! 반갑습니다.”
“하하,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인연이지요.”
목이 뻣뻣해진 진풍이 길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분들은?”
마침내 숭무문 세 사람의 시선이 무흔과 대호를 향했다.
“저는 백가상단 소속입니다.”
“저는 절강무관 출신입니다.”
두 사람이 소속을 밝히자 별 볼 일 없는 곳임을 알아챈 그들의 시선이 바로 진풍에게로 옮겨졌다.
“어쩌다 저렇게 엮였습니까? 그래도 곤륜이면 구대 문파와 어울리셔야죠.”
“하하, 그런가요? 사해가 형제라 하지 않습니까.”
저놈들이 오가는 말투가 가관이다. 무흔은 더 듣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저희는 신화문에 가는 중입니다만, 혹시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까?”
진풍이 안면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 살짝 당황하는 표정이 비쳤다.
“아, 예. 저희도 물론 그곳을 지나긴 했습니다만…….”
“혹시 들리셨나요?”
“같은 정파라 가끔 교류하기도 하지요.”
세 사람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무흔은 원래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증이 일어 대호를 쳐다봤다. 사문의 열등감에 민감한 대호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같은 정파에 유명 문파 출신이어서일까. 진풍과 숭무문 사람들의 대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무흔은 대호에게 물었다.
“숭무문 알아?”
“아니.”
무흔은 흥미가 떨어져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그제야 무흔은 숭무문이 기억났다. 소설 상에서 중요한 문파가 아니어서 단지 이름만 한두 번 나왔던 문파다. 이 문파도 훗날 무림맹과 마교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마교의 편에 섰던 문파다. 정파를 배신했던 대표적인 문파에 속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화문도 숭무문도 모두 훗날 배신하는 곳이다. 그중에 신화문은 거짓 정보를 무림맹에 퍼트림으로써 꽤 큰 타격을 준다. 공교롭게도 신화문을 들렀다가 돌아가는 숭무문 사람을 만났다. 우연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미 그들의 배신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닐까.
무흔의 상상은 신화문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던 기억으로 이어졌다.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 시점에서 이미 신화문은 무림맹의 적으로 돌아섰고 오늘의 방문은 그들에게 상당한 위험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머리가 복잡해졌을 때 숭무문 세 사람이 일어났다.
“그만 갑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하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진풍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인사했다.
그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들 또한 출발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풍이 앞서가며 중얼거렸다.
“역시 큰 문파 출신이라야 해.”
마치 그들이 들으라는 듯 한마디 슬쩍 띄웠다. 무흔과 대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
신화곡은 예상외로 험한 계곡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사방으로 치솟아있고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이 낭떠러지 중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무흔은 처음 접하는 장엄한 산세에 감탄사만 터트렸다.
“우와, 저기 구름 걸린 곳 말야, 신선이 사는 것 같지 않아?”
무흔의 반응에 진풍은 실소를 터트렸고 대호는 중원에는 저런 곳이 많다고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곤륜산은 이곳보다 더 험지일 테니, 진풍의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흔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흔은 자연의 신비를 한껏 만끽했다.
예상보다 신화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가팔랐다. 이런 골짜기에 거대 문파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올라갈수록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세차게 들렸고 주위의 안개는 짙어졌다. 짙어진 안개는 한 치 앞을 보기 힘들게 만들어 흡사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다.
“안개가 너무 심한데?”
“여긴 천혜의 요새야.”
무흔과 대호는 의견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진풍은 뭐가 그리 급한지 혼자서 계곡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앞에 보이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곳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무흔에게 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더욱 긴장감을 불러왔다.
그는 대호에게 말했다.
“대호야, 만일 여기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면 무조건 튀어.”
“응? 위험한 일이라니?”
“혹시 모르잖아.”
그도 모르니까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짐은 받아뒀다.
중턱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작은 누각과 길을 가로막고 있는 두 무사를 만났다. 이곳에서부터 신화문이라는 표식이자 문을 지키는 호위무사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리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풍을 통해 이미 들은 모양이다.
무흔은 간략하게 대답했다.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위로 한참 더 올라가셔야 합니다.”
“앞에 왔던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미 올라가셨어요.”
호위 문사가 계곡 저편을 가리켰다. 안개에 가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흔과 대호는 꾸벅 인사하고는 다시 계곡을 올라갔다.
열심히 걸은 보람이 있어서일까.
대정문에서 보았던 장면과 비슷하게 커다란 전각들이 십여 채 지어진 넓은 지역에 도착했다. 전각 곳곳에는 무공을 수련하는 수련생들이 보였다. 계곡 한쪽에는 허드렛일을 행하는 잡부도 많았다.
“후아, 다 왔네.”
무흔과 대호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숨을 돌리려 할 때 진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굼벵이 같으니. 이제 왔냐?”
무흔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풍이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두 사람을 조롱기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 언제 철이 들 건지. 무흔은 실소를 머금으면서 물었다.
“벌써 서찰을 전달했나?”
“잠시 기다리란다.”
진풍이 가장 커다란 전각을 가리켰다. 아마 그곳이 바로 신화문주가 머무는 장소인가 보다.
무흔은 대호와 함께 주변에 걸터앉아 전갈을 기다렸다.
잠시 후 들어오라는 안내가 있었다.
그들은 전각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한 곳으로 들어갔다.
전각 내부에는 향이 타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밖에 있다가 들어 온 때문인지 내부는 다소 어두웠다.
무흔은 정면의 용좌에 앉은 중년인을 볼 수 있었다.
대략 마흔가량 되었을까. 일파의 문주치고는 의외로 젊었다. 인상은 준수했고 체격 또한 건장했다. 문주의 아래쪽에 자리가 세 개 배치되었고 그곳에 앉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세 중년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마 신화문의 장로일 것이다.
진풍이 대표로 두 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해 예의를 표했다.
“곤륜의 제자, 진풍. 무림맹의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앉으시게.”
신화문주가 그들에게 한쪽에 놓인 의자를 권했다.
무흔은 진풍을 따라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그는 실내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도 아닌 무림맹 사람을 만나는데 분위기가 다소 이상했다.
“그래, 어느 분이 보낸 서찰인가?”
진풍이 품을 뒤져 서찰을 꺼냈다.
“서옹 어르신입니다.”
“서옹?”
신화문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옹은 대외적으로 유명인물이 아니었다. 강호를 주유하면서도 시비에 끼어들지 않았고 무림맹에서도 중요 부대를 맡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화문주에게 옆에 있던 장로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고 귀띔했다.
“아!”
작은 탄성과 함께 신화문주가 손을 내밀었다.
“가져와 보시게.”
진풍이 서찰을 전달하려다가 서찰 표면을 보고 멈칫했다.
“왜 그러나?”
“저……, 이 서찰은 현 신화문주인 벽해결 어르신께 전하는 겁니다. 맞습니까?”
신화문주가 진풍을 노려보더니 묵직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현재 신화문주는 벽해결이 아니라 나, 주왕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