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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9화

29화. 신화곡 (1)

 

 

 

책의 앞쪽 절반은 사기 치는 법, 소매치기하는 법, 좀도둑질하는 법과 같은 소소한 도둑의 기술을 나열했다. 이런 것도 책으로 남기나 할 그런 내용이었다. 아래층인 삼류 무공 비급 서고에 놓아두어도 이상할 그런 내용이 잔뜩 담겨 있었다.

“설마 이걸 읽으면 내가 천하의 사기꾼으로?”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책을 계속 읽었다. 묘하게도 시선을 계속 잡아두는 뭔가가 있었다.

대충 절반을 읽었을까.

백단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무흔, 난 갈게. 넌?”

“아, 저요?”

무흔은 손에 쥔 책을 슬쩍 본 후 대답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갈게요.”

“그래, 열심히 해. 난 수련이나 더할래.”

백단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청담호 사건 이후 그녀가 더욱 열심히 무공에 매진하는 것이 보였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험난한 무림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무흔은 그녀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이것도 비급이라면, 내용은 도둑질 후반부로 진입했다.

-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정말 먹고살기 힘든 중생이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삶의 기술을 요약한 것이다. 부디 삶의 의지를 잃지 말고 이 기술을 습득하여 좀도둑으로서나마 긍지를 가지고 인생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어휴, 이게 대체 뭔 소리냐.”

좀도둑의 긍지라! 그는 어이가 없어 책을 덮었다. 좀도둑을 양성하는 책이라니. 이 세상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그런 잡서가 아닌가.

무심코 책을 덮은 그의 눈에 책에 묻은 손때 자국이 보였다.

역시 제목 덕분에 이 책을 꺼내본 사람은 많았다. 앞쪽 부분에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앞쪽 부분뿐이었고 뒤로 갈수록 손때가 사라졌다. 대부분 초반 몇 장을 훑어보고 읽기를 포기했거나 인내심을 갖고 봤어도 중반이 전부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 그처럼.

만변귀공을 원위치에 꽂아 넣으려던 그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가 이 책을 이 층 서고에 분류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뭇거리던 그는 다시 책을 빼내어 책장을 넘겼다.

이어지는 후반부. 그는 빠르게 책을 읽어나갔다.

- 노부는 좀도둑으로 평생을 살았으나 능력이 부족해서 대도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노부에게는 이 세상을 속일 여러 기술이 있었다. 노부는 이 기술을 만변귀공이라 불렀다.

이어서 만변귀공에 대한 서술이 이어졌다.

오오! 후반부가 진짜였다!

무흔의 눈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처음에 서술된 내용은 면구 제작법. 시중에서 파는 값싼 재료를 이용해서 상대를 속이는 면구를 제작하는 방법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다양한 재료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면구 제작은 점차 정교해져 급기야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어 제작하는 인피면구 제조기술이 적혀 있었다.

그 뒤로 등장한 것은 각종 역용 기술. 단순히 여인들의 화장 물감을 변장에 응용하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를 노인으로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신기한 기술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 놀라운 것은 기문진식의 기초까지.

아마 이런 기술을 종합하면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공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기술은 무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사 그가 이 비급을 독파한다고 해도 그가 체득한 무공으로 등록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비슷한 내용에 무흔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에 그는 놀라운 무공을 발견했다.

만변귀공. 책 제목에 적힌 무공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물감으로 역용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무공을 이용해서 인체의 골격을 변화시키고 얼굴의 인상을 바꾸는 그런 변신술이었다. 검은 머리를 한순간에 하얗게 변화시키고 작은 키에 뚱뚱한 체형을 큰 키에 홀쭉한 체형으로 변화하는 무공이었다. 심지어 하얀 피부를 검게 바꾸는 그런 기술까지.

그 뒤로 각종 은신술을 비롯하여 자객이 쓸 그런 무공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무공이…….”

만변귀공의 놀라운 능력에 무흔은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의 모습을 어떤 형태의 다른 인물로도 변화 가능한 신비의 무공. 역용술과 축골공, 은신술의 끝판왕이라 할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그제야 그는 이 비급이 왜 이곳에 비치되어 있는지 깨달았다. 대부분 사람은 이 비급의 실제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앞부분만 보다가 덮었다. 덕분에 사실상 만변귀공의 실체를 발견한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무흔은 이 무공의 근본이 되는 기의 운용법을 차근차근 읽으며 만변귀공을 습득했다.

마침내 더는 넘길 책장이 없었다. 끝까지 독파한 것이다.

그는 손목을 걷었다. 잔백수라십이검 5/12 바로 뒤에 만변귀공 5/12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오오!”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무공 비급보다 더 궁금했다.

그는 책을 제 위치에 다시 돌려놓고 머릿속으로 만변귀공을 떠올렸다. 수십만 가지의 변화 모습이 절로 눈앞에 떠올랐다. 온몸에서 이상한 기분이 감지됐다.

두두둑-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안면 근육이 변화되며 십 대 후반의 동안이었던 그의 얼굴이 사십 대 초반의 중년 모습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그의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흰머리마저 내비쳤다.

그가 동경에 자신의 얼굴과 몸을 쳐다보는 순간.

“아니! 이렇게 음탕한 두꺼비 같은 놈이 있다니!”

무흔은 혀를 내두르며 재차 만변귀공을 일으켰다.

두두둑-

매끈하던 체형이 쭉 늘어나며 키가 쑥 커졌다. 동시에 피부가 부드러워졌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변했다.

지금 그의 외모는 이십 대 초반의, 키가 큰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동경에 얼굴을 비추어본 그는 만변귀공이 제대로 먹혔음을 확인했다.

“오! 예! 세상 모든 여자를 홀리고도 남을 꽃미남이잖아!”

이곳의 미녀들을 모조리 휘어잡아보겠다며 키득대던 그는 특이한 무공의 세계에 혀를 내두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현재 그의 신분은 용봉대의 예속 부대에 매여 있다. 게다가 백단영의 수족이라 그가 잘못하면 그녀가 욕을 먹게 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는 특이한 능력을 이용해 무공을 익히고 있으나 이를 외부로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다.

“새로운 신분이 필요해.”

백가상단의 백단영 호위무사이자 용봉대 예속 부대원이라는 신분보다 더 자유로운 신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외부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는 소설 천향무후의 내용을 알고 있기에 거기에서 다루어진 각종 비급이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일부 알고 있었다. 허나, 지금처럼 무림맹에 묶여 있으면 그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다.

무흔은 만변귀공이 그의 목적을 이루어줄 대단히 중요한 무공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좋아. 이 무공 정말 마음에 들어.”

그는 새로운 도전을 맞아 흥분되는 감정을 억눌렀다.

 

***

 

며칠 후 무흔은 진풍과 함께 서옹에게 불려갔다.

지난 흑사방 사건 이후 서옹이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마땅히 부를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 무흔은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예전 소설에서 백단영이 무림맹에 입대 후 바로 백가상단으로 돌아가 버린 인물이었고, 진풍 역시 소설 내에서 존재감이라고는 전혀 없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을 서옹이 불렀다고 해봐야 흐름에 영향을 줄 특별한 사건일 리가 없었다.

“흘흘, 왔냐?”

서옹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진풍은 절도 있게 서옹의 앞에 대기했고, 무흔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삐딱한 자세로 기다렸다. 예전에 군에서 이렇게 짝다리 자세 취하다가 뒈지게 맞았던 기억이 났다.

“흘흘, 무흔? 넌 자세가 왜 그 모양이냐? 우리가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왜요? 그냥 갈까요?”

“흘흘, 이 녀석이 성질머리하곤. 내가 긴히 너희 둘에게 시킬 일이 생겼다.”

시킬 일이라면 지금도 떡을 배달하느라 열심히 하고 있다. 여차하면 사양할 마음으로 무흔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서옹이 품에서 서찰 두 개를 꺼냈다.

“신화곡에 다녀오거라.”

“신화곡요?”

신화곡은 이곳에서 약 열흘 걸리는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는 무림맹 산하의 신화문이란 정파가 있다. 구대 문파만큼은 아니지만 정도 무림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문파다. 물론 백단영과 훗날까지 직접 얽힐 일이 없던 문파였다.

무흔은 신화곡이란 말에 어렴풋한 사건이 떠올랐다.

그가 신화문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문파가 훗날 마교의 중원 정벌에서 앞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즉 나중에 정파에서 마교로 돌아서는 대표적인 문파다. 신화문이 무림맹에 흘린 잘못된 정보 때문에 용봉대가 무척 고생한 것만은 기억났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 초반에 한 줄로 그 정황이 묘사되어 있었다. 무림맹에서 신화문으로 전서를 보냈을 때 그때마다 함흥차사였다고. 즉 전서를 전달하고 다시 돌아온 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헉! 그럼 이 심부름이 죽음의 길?’

무흔은 앞이 깜깜해졌다. 역시 진풍이나 그나 쓸모없는 엑스트라라더니 이런 곳에서 드디어 죽음을 맞이하나. 으, GOD 작가 녀석이 술수를 부린 건가.

“흘흘, 이것은 현재 문주인 벽해결에게 전하고…….”

서옹이 서찰 하나를 진풍에게 넘겼다. 함부로 열 수 없도록 단단히 봉인이 찍혀 있었다. 서옹이 다른 서찰 하나를 무흔에게 휘리릭 던졌다.

“이건 전대 문주인 북악신군 주천룡에게 전해라.”

무흔은 받은 서찰을 살폈다. 마찬가지로 봉인이 철저했다.

“이, 이걸 왜 저희가 전합니까?”

“흘흘, 너희가 안 하면 누가 하냐? 용봉대원에게 어떻게 심부름을 시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냥 하도록 해라. 혹시 답장을 주면 받아오도록 하고.”

무흔은 찜찜한 표정으로 서찰을 쳐다봤다.

심부름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기억하는 한 문구 때문이었다. 신화곡에 전서를 갖고 가면 죽는다는데 어떻게 간단 말인가. 이 서찰은 저승행 표나 마찬가지니 좋을 리 없다.

그가 주저하는 모습을 본 진풍이 버럭 화를 냈다.

“야! 무흔. 어른이 시키면 군말 없이 따라야지. 어르신, 그렇지 않습니까?”

“흘흘, 이제야 진풍 네 녀석도 철이 드나 보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마땅한 변명이 없었다. 무흔은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서옹이 그의 심정을 이해한 듯 살살 달랬다.

“인석아, 그래도 여기서 너희 둘이 제일 믿음직해서 보내는 거란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무공도 너희 둘이 그나마 쓸만하지 않냐.”

무흔은 피식 웃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면 본인이 직접 하든가. 그 놀라운 신법이면 며칠이면 바로 다녀오겠구먼.

문득 생각해보니 방금 서옹이 한 말에서 묘한 여운을 풍겼다.

무흔은 정곡을 찔린 것처럼 움찔했다. 이 늙은이가 내가 요즘 무공이 급상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설마 이 늙은이가 내 기연을 알아챘나?’

물론 초절정고수는 하수의 무공 수준을 쉽게 파악한다지만……

무흔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서옹을 살폈다.

“진풍 홀로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안 돼.”

서옹이 단칼에 거절했다.

무흔이 무안해서 머뭇거릴 때 진풍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서옹이 껄껄 웃으며 두 사람에게 재차 당부했다.

“흘흘, 좋아. 명심해라. 반드시 본인에게 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 알았지?”

“걱정 마십시오.”

진풍이 분명하게 장담하고는 몸을 돌린 후 무흔을 노려봤다.

“안가냐?”

“가, 가야지.”

무흔은 어쩔 수 없이 진풍의 뒤를 따랐다. 돌아가는 것을 보니 꼼짝없이 가야 할 판이다.

그는 한숨이 나왔다. 가면 죽어 돌아오지 못한다. 거기에다 왜 죽었는지 특별히 알고 있는 정황도 없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뒤쪽에서 서옹의 말이 들렸다.

“흘흘, 가기 싫은 모양이네?”

무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어르신이라면 진풍 저 자식과 같이 가고 싶겠습니까?”

그와 진풍이 항상 티격태격한다는 사실을 서옹도 잘 알고 있다. 그냥 불만을 말했을 뿐인데 뜻밖의 말이 되돌아왔다.

“그럼 대호도 데리고 가거라.”

무흔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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