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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6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6화

26화. 뱃놀이 (2)

 

 

 

이틀 후, 제갈수는 운경각을 찾았다.

역시 예상대로 2층 서고에 무흔이 퍼질러 앉아서 비급을 읽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 녀석은 선천적으로 책 읽기를 좋아하며 책 속의 숨은 뜻을 파헤치는 성향이 있음이 틀림없다. 적어도 서고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확실하다. 천재인지는 모르겠다. 볼품없는 녀석을 천재라고 칭하기엔 제갈세가의 후예로서 자존심이 상하니까.

“읽어봤나?”

제갈수가 무흔이 손에 든 책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무흔이 든 책은 잔백수라십이검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너무 어려운 것을 처음부터 맡겼군.

“아……, 네.”

무흔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제갈수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이 말이지, 잔백수라가 다소 고약하게 적어놓았지? 알아먹기 힘들도록. 그래서 그 무공을 제대로 해석하기가 힘들어.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작업…….”

“다 읽었는데요?”

무흔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응? 아하하,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충 이해도 했어요.”

“응?”

제갈수는 눈을 비볐다. 이 자식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는 책꽂이에서 잔백수라십이검을 꺼냈다. 그는 책장을 넘겨 앞쪽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무흔은 제갈수가 지적한 부분을 쓱 봤다. 그는 별것 아니란 투로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잔백수라 이 자식이 이 부분을 엉터리로 써놓았어요. 의도적인 것 같지는 않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다 보니 기경팔맥과 백팔혈도 이름 가운데 헷갈린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 부분을 요렇게 고치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죠.”

무흔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갈수에게 한참 동안 내용을 설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제갈수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급기야 입을 쩍 벌렸다.

“저, 정말 이걸 이틀 만에 알아냈다고?”

“에이, 이틀은 무슨. 그날 한 시진 만에 바로 보이던데요?”

“뭐?”

제갈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 진짜 천재였나?

무흔은 제갈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던 책장을 넘겼다.

제갈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천재라고 인정해야 하는데 죽어도 그러기는 싫었다.

“설마 잔백수라십이검을 익힌 것은 아니겠지?”

“에이, 전 무공에는 소질이 없어요. 비급을 읽는다고 다 익혀지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흔은 이미 잔백수라십이검을 5성이나 익힌 상태였다. 당일 손목에 5/12가 새겨졌을 때 연무장에서 시험해보았다. 물론 제대로 내공을 실어 시전해 본 것은 아니었으나, 기본적인 검로를 파악하기 위해 휘둘러보긴 했다.

첫 느낌은 역시 어마어마한 무공이었다. 비천삼검 만큼은 아닐지라도 대단히 위력적이고 잔혹한 검법이었다. 당연히 삼재검법과는 비교 불가능. 비천삼검이 너무 패도적이라 쓰임새가 제한되는 반면 이 검법은 초식이 다양하여 훨씬 유용한 면이 있었다.

무흔은 이 검법을 자신의 주요 무공으로 삼기로 했다. 제갈수의 평에 따르면 잔백수라십이검은 이 층 서고에 있는 무공 비급 가운데 특별한 것이라 했었으니.

물론 제갈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줄 의무는 전혀 없었다.

“하하, 그렇지? 읽는다고 다 익혀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모두 이해했단 말이지?”

제갈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숨은 뜻을 이해했다면 언제든 이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뜻이니까.

“대충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5성과 12성은 다르다. 제대로 익히기 시작하면 나중에 모르거나 잘못 이해했던 부분이 또 나올 수도 있으니까.

제갈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생각에 잠겼다.

‘무서운 놈. 정말 머리가 뛰어나군. 이건 제갈가의 수치다. 하지만 지금은 이놈을 잘 이용해서 어려운 무공서를 해석시켜야겠어.’

생각을 굳힌 제갈수는 무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했다.

“좋아. 역시 자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잔백수라십이검은 시간 나는 대로 해석본을 만들어 보게. 그건 그렇고 자네 백 소저를 만나봤나?”

백단영 이야기가 나오자 무흔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백단영은 그날 다친 이후로 연무장에 나오지 않아 멀리서도 보기 힘들었다. 단지 그녀가 몸조리하고 있다는 정도의 소식만 들었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본 제갈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난 작전에서 다친 사람이 많잖아? 분위기도 전환할 겸 마실을 나가자는 의견이 있어서 말이지. 자네도 그때 많은 공헌을 했고. 어떤가? 함께 놀러 나가는 것이?”

“저희 아가씨도 같이 갑니까?”

“당연하지.”

백단영이 같다면 그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무림맹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비록 소설 속의 세계라 해도 새로운 세계인 만큼 이곳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은 컸다. 이번에야 제대로 이 세상을 살펴볼 기회다.

“저도 가겠습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제갈수가 바로 날짜를 알려줬다.

“사흘 뒤 아침 식사 후 떠나기로 했어. 그날 용봉대로 오면 돼.”

“알겠습니다.”

무흔은 총총거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제갈수의 뒷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마실 나가기로 한 당일, 무흔은 식사를 마치고 용봉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뒤에서 그를 툭 치는 자가 있었다.

무흔은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바로 진풍이었다.

“너도 가냐?”

어째 이 녀석은 안 끼는 데가 없다. 생각해보니 진풍도 그날 작전에 투입되었으니 마실에 따라가는 것이 당연했다.

무흔은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다가 그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진풍은 흑사방에서 그가 숨은 곳을 일렀던 나쁜 놈이었지.

“야, 진풍!”

무흔의 딱딱한 반응에 진풍의 입가에서 미소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왜?”

“너 그날 뭐 하고 있었어?”

“뭐가?”

“흑사방에서.”

“나? 대정문주 딸 찾느라 후원을 돌아다녔지. 그러다가 밖으로 탈출했고. 뻔한 이야기 아닌가?”

뻔한 내용은 맞다.

하지만 그날 헤어지자마자 그가 한 행동은 절대 그렇지 않았었다.

진풍이 그를 보며 능글맞게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 설마 내가 너를 고발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째 이 녀석이 반대로 치고 들어왔다. 찔리는 게 많으니 소리부터 지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야! 그런 말 마라. 그날 우리 모두 엄청 위험했었는데 그럴 리 있겠냐? 내가 그쪽 첩자도 아니고 그런 짓 할 시간에 도망치겠다.”

진풍이 어색함을 지우려고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무흔은 그런 녀석의 손을 콱 움켜잡았다.

“너, 그러다 인생 쫑난다.”

“하, 이 자식이 말을 못 알아먹네. 쫑나긴 뭐가 쫑나. 너야말로 조심해라. 나 곤륜이야. 곤륜!”

이 녀석은 걸핏하면 사문을 들고 나온다.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 과시해봐야 무흔에게 먹힐 일은 아니었다.

무흔은 녀석을 노려보다가 손을 놓았다.

진풍이 그를 노려보다가 앞서 걸음을 옮겼다. 무흔은 그런 녀석에게 같잖은 웃음을 날렸다. 저 녀석만 보면 자신이 부처인가 싶었다.

 

***

 

개봉 외곽지역에 청담호라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자연호수 절반, 인공호수 절반으로 조성된 곳으로 유원지이자 주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청담호 가장자리에는 서너 개의 누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곳은 부근 객잔이나 다루에서 운영했다.

마실을 나온 용봉대원들은 이 누각에 자리 잡았다. 주변 호수의 평온한 정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그들은 누각 위에 원탁 상을 펼쳐놓고 빙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가격을 신경 쓸 그런 처지는 아니었기에 이곳 객잔의 대표 요리와 곡주까지 주문하여 한 상을 가득 채웠다.

“후아,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살 것 같군.”

곤륜의 구진광이 모두에게 술을 권하며 분위기를 올렸다.

“현공도 왔으면 좋았을걸.”

제갈수의 말에 화산의 장후성이 손을 저었다.

“현공은 부상이 심해 못 온다고 했어.”

“그거 다 거짓말이야. 술의 유혹에 빠지기 싫다고 안 온 거지.”

오늘 이 자리에는 그날 작전에 참여했었던 아홉 사람 가운데 불교도인 소림의 현공과 아미의 후연만 빠졌다. 대신에 모용예가 끼었다. 덕분에 현재 모인 사람은 모두 여덟이었다.

무흔과 진풍을 제외하면 남녀 비가 정확히 절반씩이었다.

“백 소저는 몸이 어떠신지?”

장후성이 백단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관심을 끌게 된 백단영이 대답했다.

“이제 움직일만해요. 내일부터는 다시 무공수련에 들어가려고요.”

사실상 완쾌되었다는 뜻이다. 무흔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구진광이 술잔을 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술이 바로 오곡청주인데 개봉 특산이야. 이 동네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마시는 술이라고. 목을 넘어가는 부드러움이 일품이라 남녀 누구나 좋아하지.”

모두가 술잔을 들었다.

무흔도 맛을 봤다. 쌉쌀한 맛이 제법이다. 이곳에서 마신 술 가운데 가장 입맛에 맞는 술임은 분명했다.

구진광이 일행의 빈 잔에 다시 술을 돌렸다.

“오늘 같은 날은 취해야지. 쓸데없이 내공으로 술을 날려 보내지 말고. 하하.”

“당연하지. 비싼 술을 날리면 쓰나.”

장후성이 호탕하게 술을 받았다.

옆에 앉은 모용예가 고개를 저으며 남궁이화에게 속삭였다.

“어휴, 저 주당들 언제 철이 들는지.”

백단영은 남궁이화의 옆에서 조용히 술맛을 음미했다. 무흔이 보기에 이제 제법 술 마시는 티가 났다.

한참 술이 돌아 은근히 취했을 때 제갈수가 제안했다.

“오늘 뱃놀이를 하는 건 어떠신가?”

“뱃놀이?”

모두가 반색하며 호수를 바라봤다.

호수 곳곳에 노를 저으며 떠다니는 나룻배가 많았다. 대부분 나룻배에는 남녀가 쌍쌍이 앉아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호, 괜찮아 보이는데?”

구진광이 앞장서서 찬성을 표했다.

뱃놀이 장면을 유심히 보던 장후성과 모용예 역시 적극적으로 환호했다. 사실상 모두가 찬성, 반대하는 사람은…… 무흔 밖에 없었다.

무흔의 의견은 꺼내기도 전에 무시됐다.

술 마시고 물놀이라니. 자칫하면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내가고수이고 여차하면 몇몇은 술을 체외로 배출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인지라 큰일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의 상식으로는…….

말이 나온 김에 일행이 나루터로 몰려갔다.

“하하, 장 소협은 모용예 낭자와 함께 타고.”

당연하게 두 사람을 먼저 짝 지운 구진광이 앞장서서 일행을 나룻배에 분배했다.

장후성과 모용예 둘이 같은 배에 타자, 남궁이화는 제갈수와 상의할 일이 있다며 함께 탔다. 자연스럽게 용봉대원 가운데 남은 사람은 백단영과 구진광. 이 둘이 짝이 되어 배에 올랐다.

당연히 백단영과 같이 타려는 구진광의 계략이다.

하필이면 구진광? 무흔은 내심 욕을 퍼부었다.

“너희 둘은 어떻게 할 거지?”

구진광이 무흔과 진풍을 향해 물었다.

무흔은 진풍을 슬쩍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커먼 남자끼리, 그것도 저놈과 뱃놀이할 일은 없다.

“저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나도 네 녀석과는 타기 싫어.”

진풍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던지 손사래를 쳤다.

구진광의 입이 벌어졌다. 백단영과 단둘이 뱃놀이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뱃놀이를 획책한 것은 구진광이었다. 장후성이야 당연히 모용예와 짝을 이룰 것이니 남궁이화와 제갈수만 잘 엮어주면 그에게 백단영과 함께할 기회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호숫가에서 나룻배 세 척이 떠났다.

무흔은 물가에 주저앉아 나룻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확히는 백단영을 향해서다.

모두 떠나고 나자 진풍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계속 기다릴 거냐?”

“그래야지.”

“킥킥, 그럼 난 놀러 갔다 오마.”

진풍이 한 마디만 남기고 복잡한 시장터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무흔은 상념에 잠겼다.

평화로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다행히 백단영이 탄 배는 순조로웠다. 구진광이 열심히 노를 젓고 있고, 백단영은 나룻배 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흔은 그 모습을 보며 꾸벅꾸벅 졸았다.

용봉대 일행이 탄 배가 유유히 호수를 떠도는 가운데 유독 배 하나가 멀어졌다. 바로 백단영이 탄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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