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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5화

25화. 뱃놀이 (1)

 

 

 

대정문에서 돌아온 후 용봉대는 다친 사람이 꽤 많아 한동안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그들 중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은 백단영과 현공이었다.

백단영은 별원 쪽에서 감금된 인질을 찾다가 황마에게 걸렸다. 현공은 적마와 싸우는 장후성을 돕다가 크게 다쳤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무흔의 일상은 평소와 같았다.

대정문 딸을 구출하는 공을 세웠으나 특별한 포상이나 감사를 받지 못했다. 그가 예속 부대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서옹도 한차례 격려해주기는 했다. 물론 말뿐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수익이 있긴 했다. 떡 심부름을 시킬 때 돈을 조금 더 후하게 준다는 것. 덕분에 무흔은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무흔은 오랜만에 운경각에 들렀다.

출입금지가 선언됐던 때부터 한 달이 지나 다시 허가가 떨어졌다.

“그동안 제가 없어서 심심하셨죠?”

무흔은 안으로 들어가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고 관리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당연히 서고 관리인은 찝찝한 눈으로 반응했다.

오랜만에 서고를 찾으니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어차피 그가 갈 곳은 삼류 비급을 모아 놓은 책장이다. 그는 그곳에서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비급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비급을 읽어봐야 도움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읽고 나면 손목에 5성만큼 익혔다고 글자가 떴다. 뭔가 달성하고 업적을 쌓은 것처럼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열심히 비급을 읽고 있자니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누구? 아…….”

고개를 돌리던 그는 제갈수를 발견했다. 제갈수가 머리 위에서 그가 보는 책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무흔은 재빨리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그는 예속 부대 소속이고 제갈수는 본대 소속이니까.

“예전에 내가 자네에게 재능이 있다고 했잖아?”

“아, 계산요?”

“그래, 계산 말고 다른 쪽에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아, 그런 거 없습니다.”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아 무흔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지금까지 읽던 비급을 덮고 서고에 다시 꽂으려 했다.

제갈수가 손을 내밀었다.

“한번 줘보게.”

무슨 생각이지? 그는 머뭇거리다 찜찜한 표정으로 비급을 넘겼다.

“흠, 기문단심법? 내공연마서로군. 다 읽었나?”

“네, 지금 막 다 읽었습니다.”

아마 무흔의 손목에는 기문단심법 5성이라고 새겨져 있을 것이다.

제갈수가 유심히 그를 쳐다보더니 책을 폈다. 잠시 책장을 넘기던 그가 무흔에게 한 구절을 가리켰다.

“이게 무슨 뜻인가?”

당연히 무흔이 읽긴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무흔은 물러서지 않고 반대로 물었다.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시간을 준다고 모르던 내용을 금방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제갈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흔은 눈을 감고 방금 읽은 기문단심법을 떠올렸다. 이미 5성으로 숙련된 심법이 저절로 뇌리에 새겨졌다. 그가 몸 안의 기운을 심법대로 유도하자 서서히 내력이 혈맥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물론 삼류 무공이었기에 유별난 특징은 전혀 없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무흔은 제갈수가 가리킨 구절을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그건 내기를 거궐혈에서 하완혈로 이동시킬 때 임맥을 통해 바로 움직이지 말고 낙맥을 적절히 이용하라는 뜻입니다.”

방금 직접 운용해봤기에 무흔은 수월하게 해당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이미 5성에 달하는 숙련도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제갈수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자네 천재 맞군. 계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무공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어.”

“에이, 제가 무슨…… 이거 이래 봐야 겨우 삼류 심법 아닌가요? 무림인치고 모르는 사람 없어요.”

무흔의 변명에 제갈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지. 자네는 이걸 방금 처음 읽었잖아? 한번 보고 그렇게 단번에 알아내는 자는 흔치 않아.”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들었다. 상급 무공을 익혔다고 하여 하급 무공의 무리(武理)를 단번에 알아챌 수는 없다. 비록 하급 무공에 불과하지만 무흔이 보자마자 그 내면의 이치를 풀어낸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흔은 제갈수와 얽히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자신은 현대에서 넘어온 특이한 사람이어서 누군가가 그를 세세히 관찰하는 것은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에이, 제가 여기에서 비급들만 허구한 날 읽었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모두 삼류 비급이었나?”

“그렇죠.”

무흔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시 예전의 우울한 기억이 떠올랐다. 운경각을 출입하려면 허락을 얻어야 하는 줄 알고 서옹에게 심부름을 해주며 허가서를 받아냈던 기억이. 속은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다.

“그럼 위층의 일, 이류 비급은 봤나?”

“거긴 대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못 가봤어요.”

가슴 아픈 곳을 찔린 무흔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대주? 허가받기 어렵지 않을 텐데?”

“전 용봉대의 풍사검객과는 친분이 없거든요.”

무흔은 더는 묻지 말라는 눈초리로 제갈수를 한바탕 째려보고는 다른 책을 고르려고 서고를 훑었다.

제갈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흔, 넌 용봉대도 아닌데 풍사검객을 왜 찾아? 서옹 어르신에게 부탁하면 되잖아?”

“네?”

무슨 말인지 몰라 무흔은 눈을 말똥거렸다.

제갈수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서옹 어르신도 대주야. 예속 부대 대주. 대주!”

“예?”

무흔은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서옹이 대주였다면 설마 그럼 첫날 서옹이 써준 보증서로 이 층 서고를 방문할 수 있었단 의미가 아닌가.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왜 그러나?”

제갈수가 그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무흔은 재빨리 문 앞의 서고 관리인에게 달려갔다.

“혹시 출입 허가서란 게 바로 이겁니까?”

그는 품에서 예전에 서옹에게서 받은 보증서를 꺼내 보였다. 서고 관리인이 찜찜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고는 보증서를 받아 유심히 살폈다.

“맞습니다. 앞으로 이 층을 방문하셔도 됩니다. 삼 층은 안 되고요. 물론 이 층 서고에서도 난장판을 벌이면 한 달간 출입금지입니다.”

서고 관리인이 보증서를 받아 갈무리하며 당부했다.

무흔은 허탈한 마음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첫날부터 이 층을 갈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일 층에만 머물렀던 셈이었다. 따지고 보면 서옹은 그를 속이지 않았다. 그가 제풀에 속아 넘어갔을 뿐.

“으아! 이 늙은이가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고! 진짜 나쁜 늙은이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서고 관리인이 조용히 하라며 노려봤다.

그는 반쯤 우는 표정으로 다시 제갈수에게 돌아왔다.

“자네 왜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제갈수에게 그는 손만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이 층에 가보려고요.”

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은 아래층 대비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무공 서적은 훨씬 많아졌다. 게다가 비급의 제목부터 뭔가 있어 보인다. 물론 그 내부에 수록된 무공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갈수가 그에게 설명했다.

“이곳에 모인 비급은 크게 보면 두 종류야. 하나는 중원 곳곳의 문파로부터 기증받거나 필사한 것, 다른 종류는 정복하고 빼앗은 것. 주로 정파의 무공은 기증받은 것이고 사파의 무공은 빼앗은 거라네.”

무흔은 기대가 어린 눈으로 서고를 훑었다.

“그럼 삼 층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삼 층을 들어가려면 무램맹주나 무림맹 책사의 허락을 받아야 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봐야지.”

“들어가 보셨습니까?”

“아니, 나도 못 들어가 봤어.”

제갈수가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윽고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삼 층에는 놀랄만한 비급들이 꽂혀 있다고 들었어. 떠도는 소문에는 소림 칠십이절예 가운데 절반가량이 필사되어 옮겨져 있다고 하더군. 무당의 비급 역시 일부 보관되어 있고. 얼마 전 무당에서는 실전되었던 비급을 이곳에서 다시 찾아냈다는 소문도 있어.”

“후아, 대단하네요.”

“정말 대단한 것은 과거 중원을 종횡무진했던 대마두의 비급이지. 그래서 삼 층의 무공 비급이 유실된다면 그 여파는 감당 불가능이란 설도 있고…….”

대충 알겠다.

저기 삼 층만 올라가게 되면 최강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과 달리 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5성까지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에게 삼 층의 유혹은 무척이나 컸다.

그가 삼 층을 떠올리며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을 때, 제갈수가 서고에서 두툼한 책을 하나 빼 들었다.

“이거 읽어보겠나?”

“뭡니까?”

“잔백수라십이검. 약 백오십 년 전 중원을 흔들었던 잔백수라라는 대마두가 사용했던 필살 검법이네.”

어째 이름이 무시무시했다. 이름만이 아니었다. 비급 앞부분 표지도 시뻘겋게 칠해져 있었다. 섬뜩한 느낌 때문에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그런 책자였다.

“이게 사실 위층으로 올라가야 할 비급인데 아래층에 있더군. 이곳에 있는 무공 가운데 거의 최상급이지. 내가 여기 있는 무공을 연구하고 있는데,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자네의 조언을 얻었으면 해.”

사파의 비급을 연구한다 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무공을 연구해서 약점을 간파하면 더 쉽게 이길 수 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지만 차기 무림맹 책사로 인정받는 제갈수가 그에게 조언을 얻고 싶다니.

무흔은 이것이 제갈수의 시험임을 간파했다. 그의 시험을 의도대로 받아줄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어쨌든 비급을 읽어보고 결정할 문제다.

“알았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양도 많아서 금방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야. 천천히 보고 있으면 내가 차후에 물어보겠네.”

제갈수가 그를 향해 묘한 미소를 보내고는 사라졌다.

무흔은 잔백수라십이검이란 책을 들고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잠겼다.

 

***

 

그날부터 무흔은 잔백수라십이검을 파고들었다.

솔직히 파고들 일도 없었다. 그는 한번 쭉 읽으면 해결되니까.

그런데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은 삼류 비급들은 두께도 얇고 적당히 읽다 보면 금방 끝이 났다. 재미없어도 시간이 짧으니 버틸 만했다.

그런데 이것은!

재미없는 책을 읽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한글보다도 영어와 숫자가 더 많은 수학책 같은 종류 말이다. 이 책이 딱 그런 책이었다.

첫째 쪽은 그나마 나았다.

- 나는 검객 잔백수라다. 한때 세상을 굽어보다가 늘그막에 이르러 이 비급을 남긴다.

완전히 무게를 잡고 앞장이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뒷장부터는 상태가 달랐다. 이 비급을 쓴 저자는 글이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는 녀석이 분명했다. 분명히 칼부림질만 하다가 글을 썼으리라. 이건 배운 사람이 쓴 글이 아니었다.

“하아!”

무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왜 제갈수가 그에게 이 책을 연구해보라고 했는지. 왜 이 책이 삼 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층에 있는지.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삼류 무공 비급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이 책은 글솜씨만 보면 이류는커녕 삼류를 아득히 벗어났다. 좋게 평가해도 이건 오류다.

“그래도 한번 읽기만 하면 되니까.”

무흔은 마음을 다시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비급에서 문구를 해석하고 그 숨은 뜻을 헤아려 오의를 깨우쳐야 무공을 연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읽으면 된다.

툭-

그의 손에서 책이 떨어졌다. 깜박 잠이 든 것이다.

“후아! 졸려.”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비급을 주웠다.

“수면제가 따로…… 아니, 이 동네서는 미혼약인가. 하여튼.”

그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완전히 의지의 무림인이 됐다.

그날 무흔은 기어코 잔백수라십이검을 독파했다. 그는 손목을 걷었다.

“역시!”

그의 손목에 새로운 무공이 새겨졌다.

- 비천삼검 5/12, 천단비화신공 5/12, 잔백수라십이검 5/12…….

이 순서는 무공의 위력 순일까 아니면 절정, 일류, 이류 순일까. 어차피 그게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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