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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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3화
23화. 인질 구출 (3)
흑사방의 넓은 정원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성, 신음이 정원을 가득 채웠다.
겉으로는 대정문주와 흑사방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해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둘은 무공 수준이 비슷하여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중요한 전투는 마교에서 파견된 다섯 고수와 얽힌 전투였다. 지금 이곳에서 최강이라 할 다섯 괴인을 장후성, 제갈수, 현공, 후연이 막아섰다.
한 사람이 부족한 상황. 다행스럽게도 절대 우위를 확신한 이들 괴인은 무리하지 않았다. 남은 한 사람은 느긋하게 뒤에서 전장을 관전하고 있었다. 바로 황색 옷을 입은 홀쭉한 인물, 적황쌍마의 일인인 황마였다.
“흐흐, 꼬맹아, 잘 버티는구나.”
장후성이 상대하는 자는 바로 붉은 적의를 입은 뚱뚱한 괴인. 마찬가지로 적황쌍마의 일인인 적마였다.
격투로 바쁜 와중에 장후성은 금방 사태를 파악했다. 이들 다섯 괴인의 실질적인 수뇌는 바로 적황쌍마이며 이 두 사람의 무공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검을 쥔 장후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벌써 몇 차례 합을 겨루어봤다. 상대는 그를 향해 장력을 사용했고, 그는 검으로 그 장력을 부수었다. 그의 검초는 상대의 일장에 손쉽게 막혔다.
얼핏 보면 서로 막상막하인 상황. 하지만 실제로는 장후성이 계속 밀리고 있었다. 상대는 그의 생각보다 더욱 강했다.
“하하, 이게 전부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후성은 큰 소리로 도발하며 주위의 형세를 살폈다.
다행히 일방적으로 밀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접전도 남아 있는 저 홀쭉한 녀석이 뛰어드는 순간 깨질 것이다.
“크크, 어린놈이 목소리만 커서는.”
뚱뚱한 적마가 손바닥을 펴고 앞으로 쭉 뻗었다. 손가락에서 쏟아진 기운이 뱀처럼 앞으로 뻗어 나왔다. 마치 그의 손가락이 늘어나서 그림자가 상대를 할퀴는 형상이 그려졌다.
장후성은 전력을 다하여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팍-
그의 검이 십팔 변을 일으키며 손가락 그림자를 조각냈다. 그때마다 파공음과 함께 대기가 일렁거렸다. 적마가 계속해서 그를 따라붙었다.
장후성이 상대의 공격을 분쇄하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손가락의 환영이 그를 엄습했다.
“헉!”
생각지도 못한 공습에 장후성은 뒷걸음질 쳤다.
그의 검은 이제 막 십팔 변을 끝내고 아직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상황. 검은 손가락 환영의 속도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음산한 적마의 비웃음이 귓전을 울리며 손가락 그림자가 시야를 덮으려는 순간.
콰앙-
강력한 일검이 둘 사이를 끼어들며 공간을 찢었다.
적마는 난데없는 공격에 뒤로 물러나며 공격한 상대를 찾았다. 평범한 아낙네의 옷을 입은 여인이 검을 들고 그를 겨누고 있었다.
“또 있었나 보군.”
검으로 적마의 공격을 파괴한 사람은 바로 남궁이화였다. 그녀는 재빨리 장후성의 옆으로 가서 협공의 자세를 취했다.
“괜찮냐?”
“고마워. 저놈 무공이 상당해.”
장후성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구진광이 등장해서 전투에 가세했다. 당연히 백단영도 일행에 합류했다.
백단영에게 흑사방의 무인들이 덤벼들었다. 비록 다른 대원에 비해 무공이 떨어진다고 해도 평범한 무인 수준을 넘어선 그녀였다. 흑사방 무인과 비교될 그녀는 아니었다.
“덤벼라!”
그녀는 앞을 가로막는 흑사방 무인을 가차 없이 베었다.
장후성은 앞으로의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했다. 역시 같은 심정이었던 듯 제갈수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모두 흩어져서 인질부터 구한다!”
정원에서 포위되어 집중 공격을 받는 작금의 상황이 지극히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제갈수였다. 오히려 흩어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작전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먼저 적마를 뒤로 따돌리고 장원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허를 찔린 적마는 따라붙지 못했다. 주위의 다른 흑사방 인물도 두 사람을 막아서지 못했다. 앞을 가로막는 즉시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검이 사지를 절단했다.
포위망이 뚫리자 흑사방의 기세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기회를 놓칠세라 다른 사람들도 흩어지며 포위망을 뚫었다. 순식간에 용봉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잡아라!”
흑사방 무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추적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백단영도 포위망을 뚫고 장원 뒤로 달려갔다.
“흠.”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황마의 시선이 백단영의 그림자를 향했다.
***
무흔은 대정문주의 딸을 데리고 장원 뒤쪽으로 깊숙이 움직였다.
흑사방에는 출입문이 두 군데 있었다. 커다란 정문과 뒤쪽의 작은 쪽문이다. 정문을 뚫을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한 길은 쪽문밖에 없었다.
여인을 데리고 급히 움직이면서 무흔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예정했던 전투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이것은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뜻했다.
대정문주 딸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연락을 주지 않았음에도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은 상황이 많이 일그러졌음을 뜻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질이고 바로 대정문주의 딸이다.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야 해.”
전투 상황을 알 수 없다면 그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바로 딸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다. 이를 확신한 무흔은 걸음을 재촉했다.
“아버지는 어디 있어요?”
대정문주의 딸이 헉헉대며 물었다. 사실 무공을 모르는 그녀에게 다소 급한 움직임이긴 했다.
“아버지는 지금 정문 쪽 앞마당에서 싸우고 있을 겁니다. 오늘 마지막 협상이 있었거든요.”
“그럼 아버지에게 갈래요.”
“그쪽으로 가면 죽습니다.”
“그래도!”
대정문주의 딸이 갑자기 쪽문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건만 무흔은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은 목숨부터 부지하는 게…….”
“싫어요. 아버지에게 갈래요.”
대정문주의 딸은 막무가내였다.
“적들이 몰려오면 우리는 죽습니다.”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단호한 그녀의 말에 무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막막해졌다.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한숨이 나왔다.
“빨리 가야 해요.”
어쩔 수 없이 무흔은 그녀의 팔을 강제로 붙잡아 당겼다.
“싫어요.”
잠시 그녀와 실랑이가 계속됐다.
“이봐, 싫다잖아?”
갑자기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몸이 굳은 두 사람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 구진광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우리 편이에요.”
무흔은 얼어붙은 그녀를 달래고자 귓가에 속삭였다.
여인의 얼굴을 살피던 구진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지? 설마…….”
“대정문주님 딸이에요.”
무흔은 재빨리 대답했다.
구진광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 것도 잠시, 그가 정파임을 드러내듯 포권을 취했다.
“곤륜의 구진광입니다. 소저를 구하러 왔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곤륜이라는 말에 여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안정됐다. 확실히 구대 문파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녀도 무가의 딸이니 무수히 들어봤음이 분명했다.
“전 아버지께 가고 싶어요.”
여인이 재차 구진광에게 하소연했다.
구진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흔에게 피식 웃음을 보냈다. 그가 다시 여인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소저, 아버지랑은 이미 외부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지금쯤 그곳으로 탈출하셨을 겁니다. 소저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의 설득에 여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구진광이 여인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무흔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봤다. 죽 쒀서 남 주는 꼴이다.
어째 곤륜 출신인 구진광이나 진풍이 하는 짓이 하나같이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은 없지만.
“넌 얼른 다른 사람을 도와라.”
구진광이 그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무흔은 전투 요원이 아니다. 그런 그는 도울 능력도 없고 힘도 없다. 그는 저만치 멀어지는 구진광과 여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지금 이곳을 빨리 탈출해야 한다. 무흔도 재빨리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쪽문 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상황 파악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콰앙-
부근 건물 하나가 통째로 부서져 나가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귀를 찢는 파열음에 구진광을 비롯한 모두가 몸을 숙였다.
쿠우웅-
재차 건물이 종이쪽처럼 찢겨 나갔다. 어마어마한 위력에 무흔은 일순간 몸이 굳었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흙먼지와 함께 튀어나오는 신형이 그를 놀라게 했다.
“아! 아가씨!”
놀랍게도 백단영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이, 이게 무슨 일…….”
무흔은 정신없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구진광과 대정문주의 딸 역시 일순간 몸이 굳었다.
무흔은 백단영의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기운이 빠져 갈대처럼 흔들렸다.
“무, 무흔아.”
“아가씨!”
“빠, 빨리 도망가…….”
백단영이 숨을 헉헉대며 가까스로 중얼거리다가 혼절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다고 그녀를 내버려 두고 도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무흔은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때 무너진 건물에서 황색의 옷을 입은 자가 걸어 나왔다.
그를 본 순간 무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 어떻게 여기에서…….”
황의 괴인의 몸은 홀쭉하고 키가 컸다. 바로 동굴에서 보았던 적황쌍마의 황마였다.
무흔은 구곡산에서 보았던 저들의 가공할 무위를 떠올렸다. 저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 있단 말인가.
황마의 시선이 백단영에게 멎었다가 다시 무흔에게로 옮겨왔다.
“흐흐, 저년이 어디로 도망치나 했더니……. 어? 네 녀석은! 잘됐다!”
황마가 한쪽 손을 허공으로 쓱 들었다. 그의 손에서 노란 기운이 이글거렸다.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마치 황마가 공을 던지듯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 뭉쳐졌던 노란 기운이 포탄처럼 뻗었다.
쐐애액-
콰앙-
무흔은 혼비백산하여 몸을 움츠렸다. 이것은 차원이 달랐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상상불가의 경지였다.
황마가 쏟아낸 기운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구진광의 발아래 떨어졌다.
“으아악-”
구진광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구진광은 황마가 감히 그가 상대할 적수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황마와 대정문주 딸, 그리고 백단영을 번갈아 보더니 허겁지겁 혼자서 도망쳤다.
대정문주의 딸은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고, 무흔은 완전히 넋이 나간 채 백단영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크흐흐.”
황마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흔의 앞에 우뚝 섰다.
“어디에 뒀나?”
그제야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무흔은 그가 무엇을 묻는지 알아챘다. 바로 천년적화초와 무공 비급의 행방을 묻는 것이다.
“그날은 쥐새끼처럼 잘도 빠져나갔다만……. 오늘은 안 될 것이다. 말하라. 그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무흔의 안색이 하얘졌다. 어째 운이 나쁘면 앞으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깨진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황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적마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고……. 아니 지금 눈앞의 황마만 해도 해결이 어렵다.
이대로 죽을 수도 알려줄 수도 없었다.
이미 천년적화초는 그의 배속에 들어갔고 무공 비급은 불태웠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무흔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런 젠장! 겁이 나서 꼼짝도 못 하는 꼴이라니.
황마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무흔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섣불리 그를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물건이 중요하다.
용기를 얻은 그는 황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천년적화초 말이냐?”
그의 반응이 뜻밖이었을까. 그를 물끄러미 노려보던 황마가 대소를 터트렸다.
“크크, 잘 아는군. 그래 어디에 있느냐?”
“네놈이 살려준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죽고 싶으냐?”
황마가 격분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두 손바닥에서 다시 황색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무슨 무공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위력 하나는 끝내주는 마공이었다.
무흔은 검을 붙잡고 상대를 겨눴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시간은 많지 않다. 적마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그리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가 불리하다. 상대는 감히 그가 비벼볼 수 없는 고수이니까. 그가 노릴 수 있는 것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단 일초식이고 그 초식은…… 바로 천단비화신공을 바탕에 둔 비천삼검뿐이다.
결심은 섰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