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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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0화
20화. 대정문 원정 (2)
화려한 장식이 벽면을 장식한 실내.
양쪽 가장자리에 침상이 두 개 놓여 있고, 그 위에 각각 두 인물이 가부좌하고 앉아 있었다. 적색과 황색이 울긋불긋하게 수놓은 특이한 옷을 입은 인물, 바로 마교의 적황쌍마였다. 예전에 구곡산에서 무흔에게 천년적화초와 비급을 탈취 당했던 자들이다.
붉은 옷에 뚱뚱한 인물이 적마였고, 노란 옷에 홀쭉한 인물이 황마였다.
이들은 마교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고위급인사다.
적황쌍마는 조용한 실내에서 운기에 몰입해 있었다.
반듯하게 정좌를 하고 앉은 적마의 머리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운기 중인 적마의 주위로 붉은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놀라운 일은 황마 쪽에서도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운기조식에 빠진 황마의 몸에서 금빛이 찬란하게 일었다. 운기조식이 절정에 이르면서 금빛은 눈이 멀 만큼 강렬하게 발산됐다.
고오오오-
이 모든 현상은 두 사람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차 붉은 기운과 금빛이 사라지며 마침내 두 사람이 눈을 떴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적마와 황마가 상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뒤집었다.
강렬한 붉은 기운과 노란 기운이 양손에서 뻗어 나와 중간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푸스스-
양쪽 침상 가운데 놓인 탁자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적황쌍마가 손을 거두었다. 그들의 눈빛이 점차 평범하게 변했다.
“흐흐, 자네 무공이 더욱 증가한 것 같군.”
“너야말로 달라졌어. 기운을 갈무리하는 능력이 한층 증가했어.”
적마와 황마가 서로에게 덕담을 전했다.
적마가 뚱뚱한 몸을 가누고 침상에서 내려서며 물었다. 침상이 놓인 벽면에는 흑사방이랑 글자와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바로 이곳이 흑사방 내부임을 알려줬다.
“흑사방 녀석들은 믿을 만한가?”
“흐흐, 그 자식들은 감히 우리를 배신하지 못해.”
“만혈대 비도를 확실하게 대정문에서 빼앗을 수 있단 말이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중요한 것은 비도가 무림맹으로 넘어가지 않는 일이지. 게다가 예상대로 용봉대 자식들이 끼어들었어. 지난번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황마도 따라서 침상에서 내려왔다.
적마가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적화초 호송 때문에 문책당한 것 생각하면 무림맹을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때 그 사공의 정체는 밝혀졌나?”
“글쎄…… 그게 좀 모호하단 말이지. 용봉대에는 그런 놈이 없어. 아마 용봉대원 가운데 어떤 놈이 위장했을 가능성이 커. 이번에 보면 알겠지. 흐흐.”
“어쨌든 우리는 흑사방을 부추겨서 비도가 무림맹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천년적화초를 훔쳐간 사공 놈을 잡아 족치는 것이 중요해.”
“그렇지, 실추한 명예를 회복해야지.”
적마와 황마가 서로 손을 맞잡았다.
구곡산의 실패 이후 그들은 만혈대 비도를 얻어내기 위한 작전에 몰입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였기에 그들은 어떤 작전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만혈대 비도는 마교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무림맹에는 대단히 유용한 물건이다. 정파인 대정문에 이 비도가 있다는 정보를 얻은 이후 그들은 이 비도를 빼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작전은 흑사방을 통해 대정문을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최근에 용봉대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복수를 불태웠다.
“자, 흑사방주를 만나보세.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는지.”
황마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적마도 종종걸음으로 황마의 뒤를 따라갔다.
용봉대원들이 대정문을 도우려고 머리를 싸매는 가운데 흑사방에서는 마교의 두 인물이 흑사방을 이용해 용봉대를 노리고 있었다.
***
제갈수가 간밤에 남몰래 대정문을 방문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용봉대와 대정문 사이에 모든 정보가 교류되고 작전이 시작됐다.
대정문에서는 흑사방에 전갈을 넣었다.
흑사방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사실상 백기를 든 것.
대정문에서는 이틀 후 저녁에 흑사방에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양 문파의 화합을 위해 양쪽 문파 수뇌부가 참석한 잔치를 벌이자고 요청했다.
대정문에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니 당연히 흑사방에서도 대환영이었다. 대정문과 흑사방 모두 협상과 잔치 때문에 분주해졌다.
이 무렵 용봉대원들은 인근에 모여 작전을 수립하고 있었다.
제갈수가 모두를 둘러보며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흑사방이 노리는 것은 만혈대 비도야. 이 비도를 대정문주가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거지. 대정문주가 순순히 내놓지 않으니까 흑사방에서는 대정문주 딸을 납치했어. 대정문에서는 딸을 구해내려고 노력했으나 사마련의 도움을 받는 흑사방에 상대가 안 되었던 거지.”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분개했다.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다.
장후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 작전의 최우선 순위가 인질을 구출하는 거지?”
“그렇지. 대정문과 흑사방이 협상 회담을 열거야. 이날 우리가 잠입해서 인질을 구출해야 해. 공식적인 대정문의 협상 인사는 문주 가족 세 사람과 구대 문파 인사로 현공, 후연. 장후성과 나는 대정문도로 변신할 거야. 겉으로는 대정문도 다섯에 구대 문파 둘이 공식 방문 사절이지. 구대 문파 둘은 비도와 딸을 바꾸는 이 거래를 공증해줄 인사로 참여하는 거야.”
“딸을 구해주면 비도를 내주기로 한 것도 확실하고?”
“그렇지. 딸이 돌아오면 비도를 무림맹에 주겠다고 확답했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지?”
제갈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모두 잠입해서 도와야지. 먼저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동네 아낙으로 변신해서 흑사방 주방에서 대기한다.”
이날 흑사방은 대대적인 잔치를 연다.
당연히 외부로부터 식재료를 비롯한 많은 물품과 인원을 지원받아야 했다.
백단영과 남궁이화는 음식을 장만하는 손을 빌려주는 마을의 아낙 신분으로 흑사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난 요리할 줄 모르는데?”
백단영이 걱정을 토로했으나 남궁이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아냐? 장검으로 사람을 썰든, 부엌칼로 대파를 썰든 어차피 칼질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백단영이든 남궁이화든 가문에서 애지중지하는 여식이다 보니 요리를 제대로 해본 경험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리고 구진광과 진풍, 무흔은 식자재상으로 분장해서 흑사방에 잠입한다.”
제갈수가 남은 사람의 할 일을 설명했다.
식자재상이란 말에 무흔은 무림맹에서 하던 일을 떠올렸다.
역시 그를 데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식자재 일이니 어려울 것은 없지만 어째 조금 위험해 보인다. 그 이유는 전혀 상인처럼 보이지 않는 구진광과 진풍이 함께 맡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분장에 필요한 옷가지와 물품이 지급됐다.
상인으로 분장하고 있는 무흔에게 제갈수가 물었다.
“자네 무림맹에서도 식자재 공급을 맡았다며?”
“네? 그렇긴 합니다만.”
무흔은 멀뚱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계산도 잘하겠네?”
“계산이야 뭐…….”
무흔이 머리를 긁적이자 제갈수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흠, 그 어려운 것을……. 머리가 아주 좋은가 본데?”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쪽에 재능이 좀 있을 뿐이죠.”
“신기하군. 어쨌든 납품할 식자재를 싣고 흑사방에 가서 잘해주길 바라네. 알다시피 다른 사람은 그런 일하기 힘들잖아.”
평소 하던 일을 하는 것뿐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옆에서 진풍이 괜히 시비를 걸었다.
“야, 잘해야 해. 네가 잘못하면 작전 다 망가지니까.”
진풍 이 자식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목에 힘을 준다.
제갈수가 그에게 흑사방에 배달할 식자재 목록을 내밀었다.
“흑사방에서 요구한 양이 모두 육십인 분의 식자재야. 그 육십인 가운데 대정문 쪽이 일곱이고 흑사방 주요인물이 열셋. 나머지는 일반 문도야. 필요 식자재를 종류별로 표시하고 계산해두었으니 그대로 배달하면 돼.”
음식 종류가 많고 먹는 양도 신분에 따라 달라 목록에 나열된 숫자는 꽤 복잡했다. 이 숫자를 모조리 한문으로 써놓았으니 이게 제대로 계산될 리가 없다.
‘어휴, 아라비아 사람들이 천재였어! 아라비아 숫자가 이렇게나 편한 것이었군.’
무흔은 내심 혀를 차며 목록을 재빠르게 암산했다.
그동안 제갈수는 진풍에게 별도의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 명령이 끝났을 때쯤 무흔이 제갈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저, 제갈 책사님.”
엄밀히 제갈수는 무림맹 책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용봉대 내에선 이미 책사로 인정받고 있어서 그렇게 불러도 무방했다.
“왜 그러나?”
“이거 계산이 조금 잘못되었는데요?”
제갈수의 안면이 찌푸려졌다.
적어도 제갈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실수를 추궁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 어디에?”
제갈수가 관심을 가지는 척했다.
“여기 말입니다. 주요 인사는 다섯 명에 돼지 한 마리고, 일반 인사는 열 명에 돼지 한 마리 아닙니까? 거기에다 닭 한 마리에 주요 인사는 삼 인분…… 일반 인사는 사 인분…….”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인다. 게다가 딱 나누어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래 봤자 단순 사칙연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돼지는 8마리, 닭은 17마리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조리하다가 발생하는 로스… 아니 여분이 있어야 하고요. 그렇게 계산하면…….”
무흔이 완벽한 결과를 제시했다.
제갈수의 안면이 더욱 일그러졌다. 무흔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자네 이런 것도 계산할 줄 아나? 그것도 한번 보고 단번에?”
“이 정도는 초등생도…… 아니, 어쨌든 어려운 계산은 아닙니다.”
하긴 제갈수가 분수를 자유자재로 계산할 줄 알까. 물론 그도 분수 개념을 알고 계산도 하겠지만 현대인만큼 암산을 쉽게 할 리가 없다.
“흐음.”
제갈수가 고민하다가 무흔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자네 천재군. 혹시 무공을 연구해본 적이 있나?”
“예?”
깜짝 놀란 무흔은 눈만 말똥거렸다.
생각해보니 제갈수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현대야 문과니 이과니 해서 학문이 여러 분야로 나누어지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시문을 잘하는 사람이 계산도 잘했고 무공 해석도 잘했다.
나아가 이런 사람이 천문 역법이나 기관 진법까지 능했다.
제갈수는 무흔이 다른 방면에도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만간 내가 자네를 긴히 한번 부르도록 하지.”
다른 사람에게 작전을 지시하러 가는 제갈수를 보며 무흔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잡은 돼지와 닭을 비롯하여 온갖 야채까지 수레에 싣고 흑사방으로 떠났다.
평소 식자재를 흑사방으로 실어 나르는 배달상은 손이 달려 인원을 보충했고 자연스럽게 무흔을 비롯한 일행이 이 무리에 끼어들었다.
대정문에서 식자재 값을 치르면서 부족한 손을 걱정하는 배달상에 쓸만한 인력이 있다고 소개한 것이다. 배달상은 소개받은 인력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식자재를 실은 이동 수레만 무려 6대. 각 수레에 둘씩 모두 12명이 붙었다. 이 가운데 셋이 무림맹 소속이었다.
수레를 끌고 열심히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흑사방에 도착했다. 흑사방 역시 대정문과 규모가 다르지 않았다. 위치만 마을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이다.
위장잠입은 완벽했다.
커다란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정원에 나무가 우거지고 건물 또한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제법 은신할 공간도 나올 법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흔은 전체적인 작전을 점검했다. 사전에 들었던 작전 내용과 앞으로 움직여야 할 지점을 비교 분석했다.
무흔 일행은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한 소주방으로 짐을 실어 날랐다.
“이쪽으로 가져와요.”
요리에 정신없는 아낙 가운데 한 사람이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무흔은 그들의 명을 따르면서 소주방 내부를 살폈다. 역시 변장해서 잠입한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보였다. 두 사람은 시골 아낙으로 분장하여 허름한 옷을 입었음에도 그 미모가 제법 눈에 띄었다.
이 작전에서 무흔에게 주어진 일은 많지 않다. 그와 진풍은 보조 인력이라 들키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납치된 대정문주의 딸을 찾는 일은 용봉대원들이 수행할 테니 그들은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무흔과 눈짓을 교환한 백단영이 조용히 할 일을 계속했다.
어째 칼질하고 있는 백단영의 솜씨가 위태위태하다. 무흔은 그녀가 손가락을 썰지 않을지 걱정되어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