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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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7화
17화. 천단비화신공 (2)
“너희들 줄 떡은 없거든.”
무흔은 자연스럽게 거절하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평소와 달리 이 자식들이 왜 시비를 거는 걸까. 이곳으로 나올 때 그를 주시하던 진풍이 떠올랐다. 진풍의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괜한 기우일까.
“없으면 못 가지!”
위협적인 목소리와 함께 네 녀석이 그를 포위했다. 눈을 껌벅이고 보니 무흔은 그들의 가운데 서게 됐다.
그는 네 불한당의 무기를 살폈다. 둘은 허리에 검을 차고 있고 다른 둘은 손에 긴 몽둥이를 들었다. 몽둥이의 재질로 보아 꽤 단단할 것 같다.
“얘들아, 이 형님이 오늘 좀 바쁘거든? 너희도 알잖아? 서옹 어르신에게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거.”
“그건 네 사정이고.”
한 녀석이 빈정거리며 몽둥이를 흔들었다.
무흔은 안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무림맹 사람이거든? 무림맹도는 건드리면 안 되는 것 정도는 알지?”
“푸흐흐, 무림맹도? 네 녀석도 무램맹도냐? 떡돌이잖아, 떡돌이! 요즘은 떡돌이도 무공한다고 으스대냐? 주제 파악하자, 응?”
네 녀석이 손쉽게 말을 받아넘기며 건들거렸다.
그들의 태도에서 이들이 출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계획적임을 눈치챘다. 역시 진풍의 사주가 맞았나.
굳이 그를 공격해서 말썽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도, 거기에다 어떻게든 그가 빨리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모두 작전처럼 보였다.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효과적으로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하아!”
무흔은 한숨을 내쉬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째 착하게 살려고 해도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 아니, 진풍이 방해하는군.
역시 시간을 끌려고 나온 녀석들인 듯 그의 앞길만 방해할 뿐 굳이 먼저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냐?”
“큭큭, 우린 단지 떡이 먹고 싶은 거야.”
“진풍이냐?”
난데없이 정곡을 찌르자 녀석들이 찔끔했다.
그 순간 무흔은 배후에 진풍이 있음을 알아챘다. 역시 지난번 비무 패배를 그냥 넘어갈 진풍이 아니었다. 그래도 동네 파락호에게 사주하는 것은 아니지.
아무래도 오늘은 따뜻한 떡을 가져가기 힘들 성싶다.
녀석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고 집요하게 그의 움직임만 방해했다. 그가 한발 앞으로 내딛자 포위방도 똑같이 한 발 앞으로 움직였다.
“너희 이름이 뭐냐?”
“우리? 개봉사걸이다!”
이름 하나는 멋있게 지었다.
이제 대충 다 알아냈으니 참교육을 내릴 차례다. 그는 옆구리로 손을 가져갔다. 이런, 젠장! 검이 없다. 식자재를 검사하고 막사에 검을 놓아두고 왔다.
“개봉사걸이 아니라 개봉사견이겠지.”
무흔은 그들을 개에 비유하며 가장 가까운 녀석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가 공격에 들어가자 지금까지 포위만 하고 있던 녀석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한 녀석이 잘 걸렸다는 함성을 지르며 바로 몽둥이로 주먹을 후려쳐 왔다.
무흔은 권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지금 날린 주먹도 그들의 공격을 끌어내기 위한 것일 뿐 특별한 초식은 아니었다.
몽둥이가 날아오자 바로 주먹을 회수하면서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그의 장기는 삼재검법과 공공십팔보. 손에 검이 없는 이상 삼재검법은 무용지물이었고 남은 것은 보법 하나뿐이다.
휘리릭-
공공십팔보를 밟는 순간 그의 신형이 개봉사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목표물을 잃어버린 녀석의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고 다른 녀석들도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정작 놀란 것은 무흔이었다.
“허억!”
그의 공공십팔보는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 공공십팔보의 성취도는 12성, 완숙의 경지다. 아무리 삼류 무공이라지만 극한까지 연성된 무공은 그 위력이 남다르다.
거기에 무시 못 할 내공이 붙었으니 무흔의 공공십팔보는 역사상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위력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그와 같은 내공을 지닌 자가 삼류인 공공십팔보를 12성까지 연성한 적은 당연히 없지 않았을까.
휘리리릭-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치 사방에서 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아!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다!”
내공이 받쳐주니 확실히 몸놀림이 가벼워지고 빨라졌다. 그 누구도 지금 그가 펼치는 보법이 삼류 무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흐악, 이 녀석이!”
당연히 개봉사걸의 눈에는 공공십팔보가 절정의 무공처럼 보였다. 뜻밖의 사태에 녀석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깜짝 놀란 개봉사걸이 미처 다시 진세를 구축하기도 전에 무흔의 손이 몽둥이를 휘두른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탁-
그가 주먹으로 가볍게 손목을 타격하자 녀석이 몽둥이를 떨어트렸다. 무흔은 번개처럼 몽둥이를 낚아챘다.
이젠 사실상 게임 끝. 검이 아니라 몽둥이를 이용해서도 극성의 삼재검법을 구현할 수 있다.
몽둥이를 뺏긴 개봉사걸이 주춤하며 우물쭈물했다.
“부, 분명히 삼류 간신히 벗어날 수준 이랬는데.”
개봉사걸, 지금 그들 각자의 무공이 딱 그 수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시중 잡배와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이곳 시장바닥에서 마치 왕처럼 군림했다. 물론 무림맹이 코앞이라 많이 몸을 사리긴 했지만.
몽둥이를 빼앗은 무흔이 그들을 둘러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네놈들 말마따나 주제 파악해야지. 응?”
어째 그 미소가 섬뜩했으나 개봉사걸은 물러설 수 없었다. 이미 시작한 것이고 아직도 그들은 진풍의 정보를 믿었다.
“으아아! 공격하자!”
그들의 마구잡이식 공격이 시작됐다. 진검 두 개와 몽둥이 하나에 주먹까지 곁들였지만 그 누구도 무흔의 옷자락 하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 대신에.
빠박-
무흔이 가진 몽둥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한 녀석은 어깨에 충격을 받아 꼬꾸라졌고 다른 녀석은 옆구리를 타격 당해 주저앉았으며 검을 가진 두 녀석은 검이 저편으로 날아가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한방에 그들의 기세가 완파되고 검 두 자루와 몽둥이는 그들의 손을 떠났다.
개봉사걸이 고통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머리 위로 몽둥이가 지나가며 화끈하게 불이 났다.
따 따 따 딱!
“컥!”
네 녀석이 머리통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은 일 각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무흔이 그제야 몽둥이를 거두며 외쳤다.
“주제 파악했냐? 꿇어!”
네 녀석이 움찔하며 바로 무릎을 꿇었다.
무흔은 그들의 앞에서 몽둥이로 바닥을 탁탁 치며 생각에 잠겼다.
이 자식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떡 사는 것을 방해했다고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 사실 이 녀석들은 진풍에게 사주를 받았을 뿐이라 족치기도 모호한 수준이다.
복수하려면 진풍에게 해야 하는데 무림맹 내에서 다툼을 벌이면 바로 쫓겨나니 그럴 수도 없다.
“진풍 맞냐?”
먼저 확인했다. 녀석들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꾹 다물었지만 녀석들의 눈빛을 보면 사실상 긍정이었다.
“그가 뭐라고 했지?”
“그, 그냥 시간만 끌라고 했습니다. 그럼 은자 두 냥을 주겠다고요.”
아마 진풍은 개봉사걸이라면 설사 이기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무흔이 고생이니까. 어쨌든 실제로 그들의 시간 끌기 작전은 성공했다.
결론은 진풍이어서 진풍에게 돌려줘야 한다. 마침내 그 방법을 생각해냈다.
“진풍이 무섭냐?”
개봉사걸이 급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엄밀하게는 진풍이 아니라 그 뒷배인 곤륜파가 겁나는 것이겠지. 진풍 정도라면 이들 넷이 작심하고 덤비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으니까.
“꼼짝하면 혼난다. 잠시 기다려라.”
무흔은 그들에게 눈빛으로 겁을 주고는 떡 가게로 들어갔다.
다시 따뜻한 떡을 사고 커다란 하얀 천을 준비해서 밖으로 나왔다. 겁에 질린 개봉사걸은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따라와!”
무흔은 그들을 무림맹 정문 앞으로 끌고 갔다. 그는 정문 들어가는 입구 옆에 개봉사걸을 쭉 앉혔다.
“이게 뭡니까?”
“잔말 말고 들어.”
그는 떡집에서 급히 만든 긴 두루마기 천을 들고 있게 했다. 천을 본 녀석들이 사색이 됐다.
“이러시면 우리가 죽습니다.”
녀석들이 사정했다.
무흔은 피식 웃으며 그들을 달랬다.
“곤륜에서는 절대 너희들에게 해코지 못 해. 정파가 뭐냐? 곤륜이 시정잡배인 너희를 건드리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야. 절대 보복 못 하니 안심해라. 그래도 안심이 안 돼? 그러면 나를 믿어. 내가 막아준다. 곤륜에서 뭐라 하면 내 핑계를 대라고 알았나?”
너무 확실하게 믿음을 줬나. 녀석들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제대로 들어! 그거 들고 너희들 얼굴도 가려야지.”
천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모를 리 없지만 어쨌든 녀석들은 얼굴 앞으로 긴 천을 들었다.
길이 이 장에 폭이 두 자가량 되는 천을 네 녀석이 일렬로 앉은 상태에서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 천에 쓰인 글자는 무림맹 정문을 통과하는 모든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시장 파락호를 동원한 곤륜파는 각성하라!
무흔은 그들의 모양새를 보며 킥킥 웃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은 흡사 현대 세상에서 피켓을 들고 연좌 농성을 벌이는 시위대와 똑같았다. 어디 빨간 머리띠가 없나? 아마 이것을 본 곤륜에서는 식겁할 것이다.
“이크! 떡이 식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무흔은 한참 그 모습을 보고 웃다가 그제야 자신의 임무를 상기했다. 그의 신형이 재빨리 사라졌다.
개봉사걸이 들고 있는 문구의 소문은 무림맹 내에 급속히 퍼졌다. 일부는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무시했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정파인 곤륜파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곤륜파는 개봉사걸에게 보복하지 못하고 대신에 사건의 자초지종을 캤다.
당연히 진풍의 행적이 곤륜 수뇌부의 조사로 밝혀졌다.
곤륜 수뇌부에서는 대노했다.
진풍뿐만 아니라 구진광까지 무림맹에 상주하는 곤륜파 장로에게 불려갔다.
무흔의 의도대로 진풍은 파문되기 직전까지 내몰려 혼쭐이 났다. 진풍은 죄를 면하기 위해 무려 사흘간 장로 앞에서 벌을 받았다. 몇 대 쥐어박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복수였다.
***
무흔은 연무장 구석에서 홀로 비천삼검을 익히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검병을 잡고 비천삼검 초식을 떠올리자 온몸에서 기이한 느낌이 스멀스멀 솟구쳤다. 동시에 비천삼검의 오묘한 초식이 한 장면씩 눈앞에 그려졌다. 삼재검법을 익힐 때와 비슷한 경험이라 그는 놀라지 않았다.
“이것도 5성은 되나 보네.”
어떤 무공이든 5성이라면 기본을 넘은 상태. 비천삼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력을 뺀 채로 천천히 비천삼검의 제 일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휙- 휙-
그의 신형이 검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공간을 점령했다. 일견 패도적인 검의 움직임이었으나 검에 몰두한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주변에 치밀한 검막이 형성되고 대기가 요동치는 파공음이 전달됐다.
쿠르르르-
내공을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신형과 검과 주변 대기가 호응하면서 강력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검의 움직임은 실로 웅장했다.
처음으로 비천삼검 일식이 모습을 드러낸 검무가 끝이 났다.
“후아!”
무흔은 검을 꾹 쥐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뭔가 된다! 만일 이 초식에 내공을 실어 전력을 다해 펼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확실히 삼류 무공인 삼재검법과 비천삼검의 차이는 컸다. 그는 비천삼검이 일류 무공을 넘어 절정 무공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됐다.
마음이 진정되자 이번에는 비천삼검 이식을 펼쳤다. 비천삼검 일식이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는 변(變)이었다면 이식은 빠름을 추구하는 쾌(快)였다. 그의 검이 번개보다도 빨리 전면을 갈랐다. 그가 검의 경로를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검은 그 지점을 베고 있었다.
이어지는 삼식. 비천신검의 삼식은 강(强)이었다.
지극히 패도적인 위력을 지닌 검의 기운이 전면에 내리꽂혔다. 그 강함은 일반 무공에서 절대 구현되기 어려운 중후함을 동반했다.
세 초식을 모두 펼쳐본 무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에 싸였다. 역시 비천삼검의 위력은 지금까지 그가 운경각에서 읽었던 삼류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