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2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2화
12화. 구곡산으로 (2)
“어디 갔다 왔지?”
진풍이 그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이 자식이 왜 이럴까? 의문 속에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밥해야지. 오늘부터 본대 식사를 우리가 차려야 한다. 네놈 없는 바람에 내가 배로 힘들잖아?”
예속 부대가 하는 일이 본대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니 본격적으로 임무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진풍과 그가 같은 일을 맡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불평하면 안 되지.
무흔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일하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커다란 솥에 밥이 지어졌고 한쪽 옆에서 국을 끓이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주위에 자욱하게 깔렸다.
서옹이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아직 익숙지 못한 녀석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인석아! 빨랑빨랑 움직여. 곧 본대에서 저녁 먹으러 온다.”
이리저리 손가락질하던 서옹이 꾸물대는 무흔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흔!”
“넵!”
“내일 낮에 네가 할 일이 생겼다.”
무흔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낮이면 표국이 팔곡산을 지나갈 시각. 그는 구곡산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뭔데요?”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식재료를 사 오거라. 내일 저녁부터 먹을 게 없다. 무슨 말인지 알지?”
식재료 검수하는 일을 해오다 보니 밖에 나와서도 같은 일을 시키려나 보다.
“흘흘, 돈은 갖고 있지?”
“네.”
무흔은 뜨끔했다. 그 돈 가운데 무려 열 냥을 오늘 배를 산다고 써버렸으니. 빈 금액을 맞추어 넣으려면 머리가 복잡할 것 같다.
“잊지 마라. 잊으면 모두 쫄쫄 굶어야 하느니라.”
“알았다고요.”
무흔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다시 밥을 하러 갔다.
잠시 후 본대의 대원들이 몰려들었다. 무림맹이란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들은 평소와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제각각 달리 입고 있어 같은 부대원인지도 혼동될 정도였다.
본대 대원들이 등장한 후로 시끌벅적해졌다.
무흔은 진풍과 함께 국을 그릇에 퍼주었다.
진풍을 보니 친한 사람에게 많이 퍼주고 있었다.
‘치사한 놈…….’
고개를 저으며 국을 푸다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밥과 국에 반찬까지 가져가는 대원들의 나무 식판에 그릇이 가득하다. 이래서는 먹는 사람도 힘들지만 설거지하는 사람은 고역이다.
“이렇게 비효율적이어서야. 군대가 그리워지기는 처음이야.”
무흔은 군용 식판을 떠올리며 언젠가 개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백단영이 배급받은 밥을 들고 그를 찾아왔다. 그녀는 평범한 청색 무복을 입고 있어 무관에 갓 들어온 신입생 같은 분위기다.
무흔은 그녀와 함께 구석진 숲으로 옮겼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자리를 잡았다.
“잘 지냈어?”
“물론이죠. 아가씨.”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으니 한결 분위기가 좋아졌다.
“내일 낮이 작전 시작이죠?”
“응. 현재 알려진 정보로 보면 내일 이곳을 통과할 거야. 상단과 이를 호위하는 표국 무사들이라 위험은 없다 하더라고.”
백단영이 재잘댔다. 평소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던 탓일까. 각종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흔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적들은 흔한 표국 무사가 아니고 무려 마교의 고수가 섞여 있다. 지난 소설에서 백단영은 그들과 교전을 벌이지 않고 멀찍이 물러서 있었기에 다치지 않았었다. 내버려 두면 예전과 같이 흘러가겠지.
“그렇더라도 절대 끼어들면 안 돼요. 위험하니까요.”
“응?”
“그 표국 무사들이 보통이 아닐 수 있잖아요. 항상 위험은 방심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에이, 그래도 내가 상단생활이 몇 년인데…….”
그의 신신당부에 백단영은 툴툴대면서도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무공에서 진전이 있나요?”
“기초가 튼튼해진 것은 확실해.”
이류 삼류 무공을 다시 되새김질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백단영의 안색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아마 무림맹에 오고 난 후에도 생각만큼 절정 무공을 접하기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쯤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요? 잘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끝내주는 무공을 접할 때가 오겠죠.”
“에이, 절정 무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백단영이 그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 쳤다. 밥을 씹으면서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도 사부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흔은 그녀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녀는 전대 기인과 인연이 닿아 무공을 얻을 거라고 당장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
다음날 날이 밝고 아침 식사를 끝냈을 때 무흔은 식자재를 사러 간다며 옆으로 빠졌다.
아마 지금 이 시각 용봉대 본대는 긴장에 싸여 있을 것이다.
산 아래쪽에서 고개를 따라 마교의 호송 물품이 들어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테니까.
그는 구곡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작전은 사실상 그가 소설 속으로 들어와서 작전을 벌이는 첫 번째 시험대다. 만일 이 작전이 무리 없이 성공한다면 그가 소설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증명이 될 것이다.
오늘 작전으로 마교로 갈 영약을 그가 섭취하게 되고 정작 먹어야 할 마교 소교주는 먹지 못해 성장이 더뎌지니까. 훗날 백단영을 죽일 마교 소교주를 생각하면 확실히 일거양득이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자!”
어제 답사를 했기에 가파른 구곡산 방향의 길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런 험한 길로 물건을 호송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마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만드는 목수의 작은 웅덩이에 도착했을 때 무흔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목수 옆에 험한 인상의 두 사람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긋불긋한 적의와 황의를 걸친 두 인물로 신기하게도 체구가 한 사람은 호리호리하고 다른 사람은 뚱뚱했다. 한자리에 있으면 안 될 듯한, 묘한 대조를 주는 두 사람이었다.
무흔은 그들을 접하는 순간 사이한 기운이 몸을 엄습하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느낌이 왔다. 역시 마교의 고수들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마침 오는구려.”
그를 발견한 목수가 환하게 웃었다.
목수 옆에 도착하자마자 적색 옷의 뚱뚱한 녀석이 바로 말을 걸었다.
“네 녀석이 이 조각배 주인이냐?”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무흔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배를 팔아라.”
무흔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수를 바라보자 뚱뚱한 녀석이 다시 말했다.
“비싸게 쳐주마.”
녀석이 주머니에서 은자를 꺼냈다.
무흔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손을 저었다.
“그건 안됩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이 배를 하류로 가져가서 고기를 잡아야 저도 먹고사니까요.”
“잔말 말고 팔아!”
뚱뚱한 녀석이 버럭 소리 질렀다.
옆에 있는 홀쭉한 녀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무흔은 뚱뚱한 녀석보다 홀쭉한 녀석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직감했다.
“저…… 절대 안 되고만요.”
“하! 이 자식이.”
뚱뚱한 녀석이 입을 삐죽이며 주먹을 슬슬 쓰다듬었다. 전형적인 파락호 같은 행동. 그들이 마교인임을 모르고 있었다면 단순한 동네 깡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흔이 겁을 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자 뚱뚱한 녀석이 앞쪽으로 한발을 크게 내디뎠다.
쿵!
강한 진각에 주위가 한차례 흔들렸다.
무흔에게 겁을 주려는 일종의 무력시위다.
겁이 난 척이라도 해줘야 할 분위기다. 무흔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소리 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으아, 왜 이러십니까! 저…… 절대 아, 안 팝니다.”
“하! 이 자식이!”
“사, 살려주십시오.”
뚱뚱한 녀석이 주먹을 꾹 쥐고 쥐어패려는 순간 옆에 있던 홀쭉한 녀석이 말렸다.
“잠깐 기다려보게.”
홀쭉한 녀석이 무흔을 향해 물었다.
“자넨 언제 하류로 내려갈 건가?”
“으으, 지, 지금요.”
무흔은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연기 좋고. 뭔가 적들이 걸려드는 기분이다.
“그럼 화물 하나를 운송해줄 수 있겠나? 배에 실어서.”
“어, 어떤 화물입니까?”
홀쭉한 남자가 목수 뒤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궤짝 하나가 호숫가에 버려져 있었다. 간신히 배에 실을 수 있을 만큼 궤짝은 꽤 컸다.
무흔은 손을 덜덜 떨며 궤짝을 한참 살폈다.
“저 안에는 뭐, 뭐가 들었습니까?”
“그건 몰라도 된다. 가능한지 아닌지만 말해.”
대답하기 전에 떨면서 저들의 눈치를 보는 척 했다.
둘 다 주먹을 꾹 쥐고 있는 것이 거절하면 그냥 두지 않을 분위기였다. 물론 무흔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저 궤짝이 바로 그가 노리고 있는 마교의 호송 물건이니까. 아마 무공 비급과 영약이 저 내부에 들어있을 것이다.
“으아, 나, 나리, 무겁습니까?”
“아니, 가벼워.”
정말 가벼울까 아니면 그들에게만 가벼울까. 어쨌든 간신히 작은 배에 실을 수 있으려나.
“아……, 알겠습니다.”
무흔이 덜덜 떨며 수락하자 홀쭉한 녀석이 그를 향해 은자 하나를 날렸다.
“수고비다.”
엉겁결에 은자를 받은 무흔은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다. 어제 배를 사느라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이 회수했다.
이걸로 돈 문제는 일단 해결했고.
뚱뚱한 녀석이 곧바로 재촉했다.
“그럼 얼른 가도록 하지!”
무흔은 목수에게서 만들어진 배를 인수했다. 이리저리 훑어보니 꼼꼼하게 잘 만들었다. 배 안에는 작은 노가 두 개 준비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뚱뚱한 남자가 가볍게 커다란 궤짝을 들었다.
쿵!
그가 궤짝을 배 한가운데 놓았다. 소리로 보아 절대 가벼운 물품은 아닌 듯했다.
“으으, 타, 타시죠.”
무흔의 요구에 두 사람이 배에 올랐다. 두 사람이 그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넌 뱃머리에서 노를 저어라.”
“그, 그럼 제가 뒤를 보며 노를 저을까요?”
“상관없다. 난 뒤돌아 앉아 가는 것을 싫어한다.”
뱃머리에 앉아 궤짝을 감시하려면 진행 방향과 반대로 앉아야 한다. 이게 싫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어느 쪽이든 무흔에게는 상관없었다.
자연스럽게 무흔은 뱃머리 쪽에 앉았다. 마교인 둘은 배 끄트머리에 앉고 그 중간에 커다란 궤짝이 양쪽의 시야를 가렸다.
자리 배치는 사실상 최상이었고 작은 배에 궤짝과 세 사람이 타자 공간이 가득 찼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무흔은 출발을 알리며 밧줄을 풀었다.
천천히 배가 연못 중앙으로 떠내려가면서 물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이 시점에서 노의 역할은 배의 추진력이 아니었다. 배가 옆의 바위에 부딪히지 않도록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쏴아아-
싱그러운 물소리와 함께 배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후아, 정말 편한데?”
“힘들게 수레에 싣고 산을 오른 보람이 있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궤짝을 수레에 실어 정상까지 끌고 왔던 모양이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배를 몰았다. 계곡을 따라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자 뒤쪽에서 경고가 날아왔다.
“이봐! 제대로 해. 물에 빠지면 죽을 줄 알아.”
“허어억! 아, 알았습니다.”
무흔은 떠는 목소리를 가장하며 대답했다. 사실은 물에 빠트리는 게 그의 목적이다.
계곡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내려가면서 그는 어제 세웠던 작전을 떠올렸다.
점차 목표했던 지점이 가까워지자 예상보다 배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어째 배를 제어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의 수량이 점차 많아지면서 급류가 빨라지고 크게 회전하는 지점을 만난다. 그 지점 아래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이 배는 그 폭포를 뛰어넘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 그곳에서 급류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폭포를 통과하자마자 휘몰아치는 본류와 옆으로 뻗은 지류. 지류는 작은 동굴로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됐다.
그는 작은 폭포를 통과할 때 배를 뒤집을 생각이었다.
빠른 이동 속도에 급류가 크게 회전을 그리면서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 보였다. 그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폭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눈썰미를 발휘해서 최적의 위치를 잡았고 배가 한바탕 요동쳤다.
“야! 제대로 해라, 응?”
건너편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급류의 회전에 따라 배가 반 바퀴 빙글 돌았다. 동시에 옆으로 걸린 조각배는 작은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
쏴아아아-
첨벙!
배가 뒤집히며 배 위에 있던 사람과 물건이 모두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