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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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화
11화. 구곡산으로 (1)
무흔은 갑작스럽게 걸린 비상을 반겼다.
상대의 기연을 가로채려는 무흔에게 이것은 커다란 기회였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으니까 적절히 대처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용봉대가 떠날 때 예속 부대도 그 뒤를 따라간다고 했다.
예속 부대는 챙길 것이 많다. 주력 부대가 먹고 자는 모든 물품을 준비해야 하므로 당연히 출발부터 주력 부대 대비 한참 늦을 수밖에 없다.
무흔을 비롯한 예속부대원들은 야영용 천막과 각종 식기와 식자재를 실은 수레를 챙겼다. 모두 세 개의 수레를 말이 끌었고 대원들은 걷는다.
물론 대부분 경공을 익혀 말이 끄는 수레의 속도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다. 그래 봐야 급히 떠난 본대를 따라잡기에는 한참 떨어지지만.
무흔은 공공십팔보를 5성까지 수련한 상태다.
엄밀히 따지면 경신법과 보법은 다르지만 모르는 것보다 확실히 낫다. 더구나 공공십팔보는 약간 변형해서 경신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봐, 괜찮나?”
대호가 그의 옆에 붙어서 몸을 날리며 물었다. 그는 무흔이 경신법이 약하다고 걱정했다.
“아직은 버틸만해.”
무흔은 그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는 더욱 힘을 냈다. 이런. 저 자식은 브이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려나.
확실히 5성의 공공십팔보로는 부대를 따라가기 어려워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다시 대호가 옆에서 우려를 표시할 때였다.
“무흔! 얼른 뛰어라, 응? 요령피지 말고.”
갑자기 뒤에서 그를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흔은 안면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서옹이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뒷짐을 진 채 설렁설렁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놀라웠다. 이상하게도 거리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됐다.
“아! 시파! 누구는 꽁지가 빠지라 뛰는 데 누구는 뒷짐 지고, 마실 나온 마냥 설렁설렁이야.”
무흔은 짜증이 나서 혼잣말을 뱉었다.
그때 뒤에서 서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 무공 좀 익혀라, 응?”
“에이.”
가르쳐주고 저런 소리를 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무흔은 뒤를 한차례 째려보고는 다시 발놀림에 신경을 썼다.
이건 총체적 난국이었다. 내공이 없으니 금방 지쳤다. 주위의 다른 대원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아직 쌩쌩하고 그보다 훨씬 경쾌하게 뛰고 있었다.
“큭큭, 고생하는구나?”
진풍이 비웃음을 날리고는 보란 듯 앞으로 질주했다.
“젠장.”
무흔은 한숨을 내쉬며 대책을 강구했다. 어쨌든 자신 때문에 늦어지는 피해를 주기 싫었다.
지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갑자기 경신법을 익힐 재간이 없으니 알고 있는 공공십팔보라도 극성으로 올려야 했다. 보법이라지만 경신법 효과도 있다고 했으니.
지난번 비무 때 삼재검법을 12성으로 만든 사기 능력이 필요했다. 그는 운경각에서 읽었던 잡다한 무공 가운데 필요 없는 무공의 숙련도를 공공십팔보로 옮겼다.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오, 예!’
놀라웠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발놀림도 자유롭게 변했다. 과연 어떤 무공을 극성까지 익힌다는 것은 새로운 경지를 의미하나 보다. 최하류 무공이라는 공공십팔보가 지금 이 순간에는 웬만한 경신법을 능가했다.
“어? 웬일이야? 갑자기 잘 나가네?”
옆에서 대호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크크, 내가 힘을 좀 비축해 두었거든. 얼른 가자고!”
무흔은 손가락으로 전면을 가리키며 힘껏 발을 놀렸다.
***
중간 중간에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열심히 쫓아갔건만 용봉대는 흔적도 없었다.
그만큼 거리가 벌어졌음을 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양쪽 부대의 무공 차이와 어깨에 지고 있는 짐이 완전히 달랐으니.
해가 질 때까지 강행군한 예속 부대는 어두워지자 잠잘 곳을 찾았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 굳이 찾겠다면 작은 마을에서 머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야영이 떨어졌다.
적당히 밥을 해 먹고 나자 서옹이 전반적인 작전 상황을 알렸다.
“흘흘, 모두 정신없이 오느라 고생했군. 오늘은 여기서 푹 자고 내일 다시 본대를 따라잡는다.”
대원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어르신,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서옹이 질문한 녀석을 쓱 보더니 툴툴대며 대답했다.
“어차피 네 녀석이 싸울 것도 아니고…… 자세한 것은 비밀이다. 우리는 본대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진영을 차릴 것이다. 목적지는 팔곡산이다.”
“거기는 아직 멀지 않습니까?”
“멀긴 뭐가 멀어. 이틀이야! 자, 알아서 막사를 치고 잔다. 실시.”
대원들은 불안감 속에서 천막을 쳤다.
무흔은 대호와 함께 막사를 만들어 몇 사람과 함께 막사 속에 누웠다.
모두 다섯 명. 비좁긴 했으나 잠자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야외에서 집 같은 편안함을 기대한 것이 아니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자리에 누워 무흔은 앞으로의 일을 그렸다.
팔곡산이란 명칭을 듣는 순간 이 사건의 개요가 더욱 확실하게 떠올랐다.
마교에서는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자를 사서 마교로 이송했다. 그 물자의 양이 적지 않아 주로 상단을 이용해서 구했고, 상단은 표국을 통해 마교까지 배달해주었다.
이것만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림맹에서도 생필품을 굳이 차단할 명분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보급의 경우 마교에서 우연히 입수한 무공 비급과 영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교에서는 이를 극비리에 마교 본교로 옮겨가고자 했다.
그 방법이 상단을 통해 정기적으로 오가는 생필품에 몰래 포함하는 것이다.
이 정보를 입수한 무림맹은 당연히 중간에서 물품을 검사하고 차단하려 했다. 그곳이 바로 팔곡산이다.
세상일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마교도 무림맹의 움직임을 충분히 예측했기에 당연히 그런 위기를 자초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는 팔곡산이 아니라 구곡산이었어.’
정작 중요한 무공 비급과 영약은 팔곡산의 고개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구곡산의 능선을 통과해서 마교로 전달되었다. 마교는 무림맹의 시선을 팔곡산으로 집중시키고 정작 중요한 물건은 구곡산을 거쳤으니까.
결과적으로 마교는 무림맹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본교로 가져갔고 이 성공은 마교 소교주인 사마극의 무공을 한층 높였다.
‘그걸 뺏어야 하는데…….’
무흔은 구곡산을 통해 전달될 마교의 물건을 노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의 무공으로는 마교를 건드리기 어렵다.
무흔은 돌아누우며 눈을 감았다. 어째 쉽지 않을 것 같다.
***
예정된 팔곡산 고개에 도착한 것은 이틀 후였다.
고개를 중심으로 부근에 용봉대가 진지를 구축했고 예속 부대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에서 꽤 떨어진 지역에 막사를 건설했다. 전투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치한 것이다. 예속 부대의 막사는 팔곡산 자락에 속했지만 구곡산 방향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용봉대의 소식을 들었다. 본대는 하루 전에 도착한 후 만일을 대비해 대원들을 잠복시키며 경계 그물망을 쳤다고 했다. 사실상 작전이 시작된 셈이다.
마교의 물건을 실은 표국이 도착할 시점은 다음날 낮. 아직 하루가 남아있었다.
예속부대 대원들은 그 하루 동안 특별한 일 없이 휴식을 취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무흔이 아니었다.
그는 휴식 대신 홀로 구곡산을 탐사했다.
“마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야 해.”
팔곡산과 구곡산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사천에서도 서쪽으로 일 만리 서쪽에 자리한 마교로 가기 위해서는 이 두 산 가운데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마교의 선택은 구곡산이었다.
고갯길이 뚜렷한 팔곡산과 달리 구곡산은 명확한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흔은 구곡산 봉우리에 올라갔다.
연이어 뻗은 높은 봉우리와 험준한 절벽,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이 눈길을 끌었다.
무흔의 눈에 구곡산 서쪽으로 깊게 팬 계곡이 들어왔다. 능선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동 경로가 능선인가, 계곡인가가 문제인데…….”
얼핏 보면 능선을 타고 움직이기 쉽다. 특히 그들이 무거운 화물을 싣고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곡산의 경우 주 능선은 남북이며 그나마 서쪽으로 이어지는 짧은 능선이 끝부분에서 절벽과 맞닿아 있다. 처음에는 편하지만 나중이 문제다.
즉, 길이 끊어진 절벽이라 답이 없다.
물론 개천이 흐르는 계곡 길도 만만찮다. 나무가 우거져 우마의 이동이 어렵고 급류가 곳곳에 장애물로 존재한다. 그래서 구곡산이 아닌 팔곡산의 고갯길이 정상통로다.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무흔은 능선이 아닌 계곡이라고 판단했다. 끝에서 길이 없는 능선보다 힘든 계곡이 그나마 무난했다. 계곡을 흘러가는 급류 지역만 피한다면.
그는 능선에 서서 주변을 조망하다가 서쪽 계곡으로 내려갔다.
높은 정상을 막 지나 능선과 계곡으로 길이 갈리는 초입 부근을 지나던 그는 망치질 소리를 들었다.
탕! 탕!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열심히 나무를 다듬고 있는 목수가 있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통나무가 베어져 곳곳에 널려 있고, 그는 커다란 널빤지를 다듬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대략 오십 가량 되었을까. 나무판을 자르고 손질하는 손재주가 심상치 않았다.
“배를 만드십니까?”
무흔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사내가 그의 관심을 끈 이유는 만드는 물건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나무배, 대략 사람 키의 두 배가량 되는 조각배를 산꼭대기에서 만들고 있으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목수가 그를 쓱 훑어보고는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럼 이게 뭐로 보이오?”
다소 민망해진 무흔은 재차 물었다.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드니 이상해서 그럽니다.”
“이상할 것 없소. 이 일대에서는 이곳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으니까. 통나무를 가지고 내려가는 것보다 여기에서 미리 만들어 움직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오.”
무흔은 주변 지형을 살폈다.
목수가 배를 만드는 이곳은 단단하고 쓸만한 목재를 바로 옆에서 구할 수 있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마저 이곳에 고여 작은 소를 형성하고 있던 것이다.
장소가 적절하긴 하다만.
“배는 만들어서 어떻게 합니까?”
“아래쪽 강으로 가져가서 팔지요.”
“강까지 가져가기 힘들지 않습니까?”
목수가 그를 향해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왜 자꾸 말을 거느냐는 불쾌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마지못해 목수가 다시 대답했다.
“여기서 배를 띄우고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면 생각보다 쉽게 강까지 갈 수 있소이다.”
그런 손쉬운 방법이. 대답을 들은 무흔은 이마를 탁 쳤다.
그래, 마교 쪽에서 이용한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어. 무거운 화물 궤짝을 배를 이용해서 옮긴 거다.
“배는 몇 개나 있습니까?”
“보면 모르시오? 이거 하나요. 오늘 이게 완성되면 내일 낮에 아래로 가져가서 팔아야지. 보통 하나 만드는 데 열흘가량 걸린다오.”
그렇다면 목수가 마무리하는 이 배가 이곳의 유일한 배다. 그의 추측이 옳다면 마교는 이 배를 사서 이동할 것이다. 그 누구도 깊은 산속에서 배를 이용하리라고 생각지 못하니 이 이동수단은 들킬 리가 없다. 그림이 대충 그려졌다.
“이 배 얼맙니까?”
목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배를 사시게? 동전 열 냥이오.”
돼지 세 마리 정도의 가격이다. 의외로 그리 비싸지 않았다. 다행히 부대원들 식자재비로 서옹에게 받은 돈이 있다.
무흔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제가 사겠습니다. 내일이면 인수할 수 있죠? 돈을 드리겠습니다.”
찜찜한 표정을 짓던 목수는 동전을 보더니 껄껄 웃었다. 목수 측에서도 굳이 팔려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도 되니 이득이다.
“내일 낮에 오슈. 작은 노 두 개까지 해서 완성해 둘 테니까.”
목수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손쉽게 거래를 성사한 무흔은 계곡을 따라 아래로 이동했다. 위험한 지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곡물이 점차 불어났다.
위쪽에서는 배로 움직이기 만만치 않아 보이더니 조금만 내려와도 작은 배를 띄우기 나쁘지 않아 보였다. 수량이 많아지면서 물의 흐름이 험해졌다. 산을 절반쯤 내려왔을 때 그는 특이한 장소를 만났다.
급류를 형성한 계곡물이 크게 회전하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꽤 위험해 보이는 지역이다. 한바탕 작은 폭포를 이룬 계곡물은 그 이후부터는 비교적 평탄하게 쭉 흘러내렸다.
문제는 그 시작 부분. 계곡물 일부가 바로 옆 절벽에서 입을 내밀고 있는 동굴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이 흘러 들어가는 동굴이라…….”
매우 멋진 풍경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기괴하게 보이기도 했다.
한참 동굴 입구와 물의 흐름을 살피던 무흔은 팔곡산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