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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4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48화

48화. 고산령 (2)

 

 

 

이윽고 사람들이 모이자 상단을 중심으로 앞뒤로 무사가 포진한 다음 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수레에는 비룡상단과 낙양 무관의 깃발이 펄럭였다.

임호군의 나이는 사십 대. 그는 낙양 무관에서 상단에 파견한 중견 무사였다.

사실 낙양 무관은 백단영의 백가 상단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지역이 같아 오랜 세월 백가상단과 성장을 함께했다. 실제로 백가상단 호위의 거의 절반가량을 낙양 무관에서 맡고 있었으니까.

임호군 역시 지금은 비룡상단과 함께였으나 백가상단과 일한 적도 무척 많았다.

그는 무관과 계약을 체결한 상단을 따라 다닌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일 년 중에 절반은 상단을 호위하며 외지를 돌았고, 나머지 절반은 출신인 낙양 무관에 머물며 무공수련과 인근 객점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덕분에 지금은 상단 소속 호위무사보다 오히려 더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런 그의 감은 이곳 고산령을 통과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는 산적의 동향이 신경 쓰였다. 산적들이 통행료를 올리려고 상단을 거세게 압박했다. 게다가 지금은 호위무사의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에서 그는 해결책이 추가 호위무사를 모집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모집한 무인이 모두 여섯. 현재는 상단소속 넷과 낙성 무관 소속이 여섯이었고 나머지 여섯이 충당한 낭인이었다. 적정 숫자인 스무 명에 약간 못 미쳤다. 하지만 이만한 인원이라면 크게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앞뒤로 포진한 무인을 훑어보며 그 실력을 가늠했다. 그의 현재 무공 수준은 일류였다. 상단소속에 일류가 한 사람 더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 아래였다.

“저 둘은 삼류도 힘들겠지?”

그는 방금 확보한 용병인 무흔과 대호를 살피며 수준을 가늠했다. 무공 고수라면 걷는 것만으로도 표시가 나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다. 무공을 익혔더라도 그저 그런 수준인 것이 확실했다. 소속만 무림맹이면 뭐하나. 살짝 들인 돈이 아까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위안했다.

일반적으로 산적 무리는 잘해야 이류와 삼류이고 단순한 쌈박질 꾼도 많다. 그 수가 특별히 많지만 않다면, 혹은 산적 무리 가운데 희귀하게 등장하는 고수 한둘만 없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예상했다.

큰 싸움이 아니라면 그와 상단에 포함된 다른 한 고수가 모두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시간이 흐르고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기 시작하자 더욱 힘들어졌다.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가기를 한참, 마침내 고갯길 중턱에 다소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임호군은 행군을 멈추고 휴식을 명령했다.

무흔과 대호는 그늘서 옆에 앉은 낭인들의 대화를 들었다.

“아후, 힘들어.”

“다리가 뻑적지근해서 죽갔네.”

“힘을 비축해.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고개 정상이야. 그 부근에 고산령 산채가 있어. 고산령 산채는 녹림에 소속된 꽤 큰 산채라서 여차하면 도망쳐야 해. 믿을 건 두 다리밖에 없으니까.”

경험 많은 두 낭인의 대화에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중원을 휘젓고 있는 산적들은 그들대로 연합맹을 구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채 열여덟 개를 모아 녹림십팔채라 불렀다. 녹림십팔채 각각은 작은 무관과 맞먹을 정도의 힘이 있고 그들 연합은 문파 하나와 대등한 힘이 있다. 물론 정파와 사파에서는 녹림을 가소롭게 여기고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다.

이곳 고산령 산채는 십팔채에는 속하지 못했으나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그럭저럭 이름이 있는 규모였다.

“칼부림만 안 나면 좋겠군. 기껏 은자 한 냥씩 받아놓고 팔이라도 부러지면 더 손해야.”

순간 무흔과 대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두 낭인의 몸값이 그들보다 두 배 더 많았으니까. 사람 심리란 게 이상하다. 모를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아는 순간 기분이 팍 나빠지니 말이다.

‘그래서 연봉을 공개하지 말라는 거지.’

무흔은 현실 세계를 떠올리며 상한 기분을 억눌렀다.

상단 무리가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창이 하나 날아들었다.

푸악-

녹림의 깃발이 달린 창이 임호군의 발아래 꽂혔다. 모두의 안색이 확 변하는 순간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냐? 통행료를 내라!”

겉보기에 생김새와 입고 있는 옷마저 요란한 무리가 떼거리로 몰려왔다.

임호군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 상대를 맞이했다.

대략 서른 명가량의 산적이 길을 막고 있었다. 모두 커다란 덩치에 흉흉한 인상이었다. 몸 곳곳에 칼자국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 이 녀석들이 작정하고 몰려온 느낌이었다.

“고산령을 지키는 호걸이십니까? 저는 낙양 무관의 임호군이라 하외다.”

“크하하, 임호군 위사구려. 나 부두령 박산이요. 우리가 안면을 튼 지 벌써 몇 년이요? 오늘도 별 탈 없이 지내봅시다. 그런데…… 통행료가 인상되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산적 가운데 가장 커다란 몸집을 지닌 털북숭이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바로 고산령 산채의 부두령인 박산이다.

무흔은 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 산적들의 면면을 열심히 살폈다.

두목으로 예상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말이 많은 부두령 옆에 선, 키가 크고 다소 마른 녀석이다. 손에는 커다란 반월도를 들었다. 풍기는 기운으로 보면 전문적으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다.

대호가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자식이 산채 두목 같지?”

“다른 녀석에 비해 위압감이 있긴 하네.”

무흔도 동의했다. 대략 서른 명가량 되는 녀석들의 면면을 살피다 보니 그 뒤쪽으로 특이한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가장 뒤쪽에서 여유롭게 빈둥거리는 두 녀석이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후반. 이 두 사람은 여러모로 그의 눈을 끌었다.

일단 다른 산적들이 넝마를 뒤집어쓴 듯한 남루한 옷을 입었음에 반해 이들 둘은 깔끔한 흑색과 백색 무복을 입었다. 게다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반면 이들 둘은 손에 무기가 없었다. 겉으로는 누구도 산적이라 믿지 못할 분위기다.

“누구지?”

“저 뒤의 두 녀석? 무림인이야. 제법 할 것 같은데?”

무흔의 질문에 대호가 확신하며 대답했다. 그나마 무흔보다 대호의 강호 경험이 압도적이다. 대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호가 그들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며 파악한 전세를 설명했다.

“만일 전투가 벌어지면 저 둘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 같아. 두목이나 부두목은 임호군 위사 등이 상대 가능하다고 본다면 저 둘에 맞설 자가 우리 쪽은 없어.”

싸움이 벌어지면 불리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웬만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지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생각대로 일은 흘러가지 않았다.

“올린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대체 갑자기 오 할이나 올리면 어쩌란 거요?”

“녹림십팔채에서 그렇게 받기로 합의를 봤다. 협상은 불가다.”

팽팽한 말싸움이 계속됐다. 서로 기세를 올리던 양측이 결국 검을 들었다. 전면전이라기보다 양측이 무력을 가늠해보고 재협상하자는 그런 뜻이다.

“이것들이 털려봐야 정신 차리려나 보군.”

두목이 반월도를, 부두목이 커다란 박도를 내밀며 기세를 내뿜었다. 임호군과 그 옆에 있던 청의 무사가 검을 빼 들었다.

무흔은 청의 무사가 비룡상단의 대표 무사임을 알 수 있었다. 상단과 산적 간에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일촉즉발의 순간 지금까지 뒤쪽에서 빈둥거리던 흑의와 백의를 입은 두 청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박산, 뭐하나?”

놀랍게도 두 청년이 부두목인 박산을 하대했다. 박산이 도를 겨눈 상대에게 눈을 떼지 않고 투덜거렸다.

“이 자식들이 통행료를 거부하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서열 관계가 바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이 두 흑백의를 입은 두 청년 더 높았다.

대호가 금방 둘의 정체를 추측했다.

“아마 녹림십팔채 총채 쪽에서 파견 나온 놈들 같아.”

녹림십팔채 총채라면 사실상 무림인 집단. 짐작이 맞다면 저 둘은 적어도 일류급 이상에 해당하는 고수다. 즉 저들이 끼어들면 전세는 삽시간에 기울어진다.

그제야 두 청년의 기세를 눈치챈 임호군의 안색이 급변했다. 상대의 무공이 범상치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다, 당신들은 누구요?”

“크크, 우리? 녹림신군께서 보낸 사자다. 영업을 잘하고 있는지 보러 왔는데 상황이 영 시원찮아서 말이지.”

녹림 총채주인 녹림신군은 현 녹림십팔채를 사실상 휘어잡고 있는 인물이다. 사자 두 사람의 건들거리는 행동을 보면 상대를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임호군은 기분이 나빠져서 신중하게 상대를 가늠해보았다. 최소한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라고 추측됐다.

백의 청년이 품에서 단검을 쓱 빼 들더니 장난스럽게 휙휙 손재주를 부렸다. 단검이 손에 착착 붙어 현란하게 춤사위를 벌였다.

“좋은 말할 때 내고 가지?”

임호군은 몸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상대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고수였다. 이자와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 녹림의 흑백이귀라고…… 들어봤나?”

물론 들어보진 못했다.

“조, 좋소.”

기가 꺾인 임호군이 검을 내렸다.

백의 청년, 백귀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존의 두 배다.”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리가 손수 나서는 수고를 하지 않았느냐? 당연히 가격이 올라야지.”

“이런 미친!”

임호군이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흑백이귀의 눈치를 슬슬 봤다. 저들이 녹림의 총채에서 파견된 자라면 산적이 아니라 전문적인 무림인이다. 그것도 상당한 고수일 게 뻔하다. 풍기는 분위기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역시 아군에서는 믿을 자람이 자신과 상단의 고수, 둘밖에 없다. 나머지는 산적과 차이가 없는 그저 그런 수준.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을 것 같았다.

그는 가까스로 분노를 삭이고 다시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합시다.”

“두 배! 내기 싫으면 물건을 내려놓고 사라져라.”

도무지 백귀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실실 쪼개고 있는 표정을 보니 사람을 반쯤 놀리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무인에게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다. 때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싸움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였다.

임호군이 입술을 깨물며 검을 굳게 잡았다.

백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꼭 확인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는 놈이군.”

갑자기 백귀의 신형이 임호군을 향해 폭사했다. 깜짝 놀란 임호군이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하얀 그림자가 따라붙으며 검초를 단번에 깨트렸다.

이것이 신호였을까.

“와아! 죽여라!”

산적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개시했다. 순식간에 주변은 전쟁터로 돌변했다.

무흔은 대호의 뒤에서 전황을 살폈다. 백귀와 임호군이 맞서고 있었으나 예상대로 임호군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곳 산채의 두목으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녀석은 상단의 고수와 접전을 벌였다. 여기는 그럭저럭 평수를 유지했다.

뚱뚱한 거한인 부두목 박산은 마땅하게 대적할 사람이 없어 물 만난 듯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순식간에 상단 쪽의 피해가 늘었다. 낙양 무관의 검객 두 사람이 한꺼번에 붙어서야 간신히 녀석의 만행을 저지했다.

임호군이 묶여서 고전하다 보니 수적으로 불리한 상단 쪽이 확연하게 밀렸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흑백이귀 가운데 남은 흑귀 쪽이었다. 흑귀도 백귀 못지않은 고수임이 분명할 터였다.

전장을 둘러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흑귀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한참 접전을 벌이고 있는 둘에게 접근했다가 떨어지는 순간 상단 쪽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풀썩 쓰러졌다.

곳곳에 벌어진 전투가 무흔과 대호에게 경고음을 날렸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애초부터 전투를 고려하고 있었다면 적응이 빨랐겠지만 두 사람은 고향행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일당을 충분히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싸울 의욕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임호군도 두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테니.

한발 물러서서 멀뚱거리는 두 사람은 흑귀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순식간에 흑귀가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그들 앞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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