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4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45화
45화. 내공심법 (1)
산산이 주저 없이 무흔 옆에 앉았다. 갑자기 향긋한 여인의 향내가 훅 들어오자 무흔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역시 저쪽보다는 이쪽이 더 좋죠?”
진풍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으며 먼저 말을 뗐다. 그러나 산산은 진풍을 벌레 보듯 흘겨보고는 무흔을 향해 말했다.
“무흔이라고 했죠?”
“아, 네. 그렇습니다만.”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바로 진풍이 끼어들었다.
“하하, 산산 같은 미인이시라면 뭐든지 다 들어드립니다.”
산산은 진풍을 병풍 취급했다.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춘화도 때문이다. 진풍은 무안해져서 머리만 긁적였다.
“무엇입니까?”
무흔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림맹에 이런 검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 해서요.”
“어떤 검요?”
“얼핏 보기엔 평범한데 검신의 색깔이 시커멓답니다. 무게는 조금 나가고요. 하지만 명검이에요.”
산산의 말을 들은 무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말을 종합하면 바로 묵천신검의 외양을 의미했다.
무흔이 안색을 굳히며 대답을 하지 않자 진풍이 대신 대답했다.
“그런 검을 쓰는 사람은 용봉대 내에는 없어요. 요즘은 검도 멋진 놈을 쓰거든요. 거무튀튀한 색상을 좋아하지 않죠.”
산산은 진풍의 대답을 무시하고 무흔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기, 장 소협이나 남궁 소저는 어떤 검을 쓰죠? 오늘 비무에서 쓰던 검인가요?”
“비무에서 사용하는 검은 연습용으로 별도로 제작한 겁니다. 본 검과 무게를 맞추어서요. 하지만 두 분 모두 검신이 하얀색이라 검지 않습니다.”
무흔은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 여자가 왜 이런 걸 물어보나 고민이 되었지만 자칫하면 들킬 우려가 있어 아예 생각을 멀리하려 애썼다.
산산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친분을 표시했다.
“앞으로 그런 유형의 검을 보게 되면 꼭 알려주세요.”
“그러죠.”
굳이 무흔은 무엇 때문인지 묻지 않았다.
“우리는 내일까지 이곳에 머물 거예요. 내일도 안내를 부탁드려요.”
산산이 눈웃음을 치며 원래의 탁자로 돌아갔다. 그제야 무흔은 긴 숨을 내쉬었다.
진풍이 낄낄대며 그를 놀렸다.
“무흔 이 자식, 미녀 앞에서 긴장도 다 하고 웬일이래?”
미녀 때문이 아니라고 변명해봐야 먹히지 않을 테고. 무흔은 단지 한차례 째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
식사를 마치고 부근 여곽까지 안내해준 무흔은 무림맹으로 다시 돌아왔다.
꽤 늦은 시각. 연무장에는 사람 하나 없고 주위는 고요에 잠겨 있었다. 무림맹은 평소에도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는 인적이 끊어진다. 대신 아침 기상 시간이 매우 빠르다. 기운이 정순해지는 아침 시각에 운공을 행하는 무인이 많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가려던 무흔은 운경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경각에 두고 온 개인 물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운경각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 층. 누군가가 이 늦은 시각에 책을 읽고 있다는 의미였다.
“누구지?”
누구일지 짐작이 되지 않은 무흔은 조심해서 이 층으로 올라갔다. 도둑이 들리야 없겠지만 이 밤에 서고를 방문한 자가 있는 것도 이상했다.
이 층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간 무흔은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추었다.
익숙한 그림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서고를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바로 백단영이었다.
잠시 그는 백단영의 행동을 지켜봤다.
이 책을 빼서 훑어보다가 저 책을 빼서 훑어보는 등 다소 정신없는 모습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기에 오히려 그가 당황했다.
“아가씨?”
무흔은 조용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응? 무흔?”
뒤를 돌아보는 백단영의 안색은 평소와 마찬가지였지만, 그 속에서 무흔은 말라버린 눈물 자국을 봤다.
“뭐 하세요?”
“으응, 책 보고 있어.”
“갑자기 이 밤에 무슨 책을요?”
“그, 그게…….”
백단영이 당황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무흔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백단영이 쥐고 있는 책을 쓱 훑어봤다. 일류 수준에 해당하는 내공심법 책이다.
“무공이 필요하신가 보네요?”
백단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탁 집어넣고는 그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당황한 무흔은 급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백단영이 신경질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무흔은 급히 그녀를 뒤쫓아 갔다. 그는 운경각 입구에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아가씨, 잠시 이야기해요.”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던 그녀는 강제로 자신을 잡는 그를 잠시 원망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잠잠해졌다.
무흔은 그녀와 함께 건물 담벼락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제가 운경각에서 엄청 오랜 시간 머물고 있잖아요. 저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그, 그게…….”
백단영이 한숨을 내쉬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임을 알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기분이 진정된 듯 백단영이 입을 열었다.
“나 힘들 것 같아.”
더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무흔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옆에서 바라봤다.
오늘 벌어진 일은 그녀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 비무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흔하다. 예전이라면 이름 없는 소규모 문파의 제자를 맞아 이기든 지든 그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용봉대에 속한 지금은 달랐다.
그동안 이름난 문파 출신에 치여 기를 펴지 못한 데다 오늘의 패배는, 그것도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패배는 주변 동료를 보기에 민망했을 것이다.
어떤 동료는 부대의 명예를 훼손한 그녀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감당은 오로지 그녀의 몫. 그녀에게 오늘의 일은 동료 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굴욕이었다.
“난 재능이 없나 봐. 이곳에 들어온 지 몇 달인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야.”
백단영이 기운이 쑥 빠진 목소리를 냈다.
“노력도 많이 했어. 그런데 앞날이 보이지 않아. 이곳에선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거든.”
그녀의 기분을 이해했다. 처음 무림맹에 들어오면서 들떴던 기분이 완전히 식어버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오늘 같은 일을 당하고 보니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드는 상황일지도.
그녀에게 더 노력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지만…….”
무흔은 그녀에게 훗날의 일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힘내셔야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백단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아. 곧 다가올 휴가 기간이 지나고 나면 용봉대 내부에서 공식적인 비무 대회가 벌어질 거야. 거기에서 난 최하위권을 맴돌겠지. 다른 사람들은 상단 출신은 어쩔 수 없다고 비난할 거고.”
그녀는 앞으로 닥칠 일이 막막한 모양이다.
“소규모 문파보다도 못한 상단 출신이란 말을 듣기 싫어.”
무흔도 그 기분을 안다. 평소 진풍에게 그 역시 엄청 시달리고 있으니.
아마 그녀는 그보다 훨씬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아, 난 어려운가 봐.”
자포자기한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에 무흔은 절로 머리가 섬찟했다. 그녀가 자포자기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야말로 리메이크 한 소설이 산으로 올라가는 상황이다. 물론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의외로 훗날 목숨을 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무림맹 외부에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무흔은 그녀를 도울 방법을 생각해봤다.
“같이 고민해봐요. 아가씨를 힘들게 하는 것이 뭡니까?”
백단영이 무심코 그에게 시선을 돌리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단순한 머슴일 뿐인 그에게 무슨 기대를.
“그래도 제가 운경각 귀신이잖습니까? 필요한 것 말씀만 하세요. 구해드리죠.”
무흔은 가슴을 탕탕 치며 호기롭게 선언했다.
말만으로도 백단영은 다소 위로가 됐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무흔은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을 떠올리며 그녀의 심정을 유추했다.
“역시 무공이 문제죠? 문파의 비전절기에 준하는 절세 무공이 필요한데 이곳에서는 그런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응, 차라리 구대 문파의 속가제자나 아니면 유명 무관에 들어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
그녀의 재능으로 유추해보면 어릴 적 주변 무관에 들어오라는 유혹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속가제자로 들어가면 절정 무공은 힘들지라도 그 아래 단계의 무공까지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무흔은 자신이 익힌 천단비화신공과 비천삼검을 떠올렸다. 이 두 무공은 뭐라 해도 절정 무공이 확실했다.
그때 태워 없애지 말고 그녀에게 줄 걸 잘못 했나.
“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심법이고요?”
“응, 맞아.”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그녀가 익힌 심법은 그동안 많이 먹었던 영약의 기운마저 제대로 몸에 흡수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심법은 조심해야 한다. 서로 성질이 다른 심법은 융화되지 못한다. 자칫 이상한 심법을 익혀놓으면 훗날 그녀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도 있다. 훗날 그녀의 사부가 누구였더라…….
“아! 생각났다. 아가씨, 저를 따라와 보세요.”
무흔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운경각 이 층으로 안내했다. 그는 서고를 쭉 살피다가 책을 하나 빼서 백단영에게 넘겼다.
“이 책이 전진파의 심법을 다룬 것이거든요. 아마 지금 아가씨께서 익힌 심법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이건 어때요?”
전진선천심공. 이 비급이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전진파 무공의 기초가 되는, 꽤 중요한 심법이었다.
도가 계열의 심법으로 다른 심법과 충돌이 없고 변형할 수 있어 나중에 다른 심법을 익히더라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그런 무공이다.
“나쁘지 않네.”
책을 쓱 훑어보던 백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욕심에 이런 수준의 비급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심법의 고절함을 떠나 이런 유형은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어쩔 수 없지. 이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미 이곳 운경각을 대충이나마 훑어본 그녀는 이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문득 무흔에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책을 뺏어 원위치를 시킨 다음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 다른 것도 있는데 한번 살펴보실래요?”
“그, 그걸까?”
백단영이 어색하게 그에게 잡힌 팔을 빼며 그를 뒤따랐다. 무흔은 그녀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서고는 낮에 늘어놓은 그대로였다.
분류하던 책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고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마저 풍겼다.
“요즘 여기에서 일해?”
“어쩌다 서옹 어르신에게 꿰어서 말이죠.”
백단영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뭘요, 여기 일 재밌어요.”
무흔은 책을 뒤적거리다가 깊숙한 곳에서 한 권을 빼냈다.
그 책은 그가 이곳 지하 서고에서 찾아낸 가장 특이한 책이었다. 비록 비급의 겉장은 낡았지만 그 내용은 특별했다. 절반가량 읽어본 그는 이 비급이 적어도 이 층 서고에 꼽힐 책 수준이라는 판단을 내렸었다.
백단영은 책을 받아 들고 표지를 읽었다.
“무애잡아함경(无涯雜阿含經)? 불가 쪽의 비급이야?”
잡아함경이란 말이 해탈을 의미하니 불가 쪽의 심법이란 추측은 당연했다.
“내용으로 보아선 그쪽인 것 같긴 해요. 어느 문파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그런데 의외로 내용에 깊이가 있어요.”
이 비급을 발견한 순간 무흔은 보물을 찾았던 기분이었다. 만일 그가 천단비화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일 순위로 익혔을 그런 심법이었으니까.
백단영은 무흔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그동안 무흔이 수많은 서적을 탐독했고 그 능력 또한 인정받아 이곳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가 권했다는 것은 적어도 중간 이상의 비급임이 분명했다.
“무애잡아함경이나 전진선천심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에요.”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무애잡아함경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