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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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43화
43화. 매화곡의 방문 (3)
은옥상이 가리킨 두 사람은 장후성과 구진광이었다.
“화산의 장후성과 곤륜의 구진광입니다. 두 사람은 일룡, 일검으로 불리는, 후기지수 최강의 인물이죠.”
곤륜 소속인 구진광을 진풍이 목에 힘을 쫙 주며 소개했다.
역시 그녀의 눈썰미는 뛰어났다. 서른 명이나 되는 대원중에 단번에 장후성을 찾아냈다. 한동안 그녀의 눈길은 장후성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원들이 수련하는 무공을 살피던 은옥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흔한 무공이로군요. 혹시 비무 수련도 하나요?”
“당연히 하죠. 비무를 구경하고 싶으신가 보네요? 제가 한번 권해보겠습니다.”
진풍이 구진광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쪽의 의뢰를 열심히 설명한 것 같았다.
곧이어 장후성을 선두로 구진광, 남궁이화, 모용예가 떼를 지어 다가왔다.
“매화곡에서 오셨다고요?”
장후성을 선두로 그들이 서로 인사했다.
비무 의뢰에 용봉대원 사이에서 한참 의견이 분분했다. 한차례 비무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누가 나서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은옥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전 최고 수준의 비무를 보고 싶어요.”
은옥상이 대놓고 장후성을 지적했다. 갑작스럽게 비무를 요구받은 장후성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하신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머뭇거리던 장후성은 자신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짓는 은옥상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무흔은 장후성에게 비무를 요구하는 은옥상의 속셈이 대충 짐작됐다.
아마 은옥상의 주목표가 장후성이었나 보다. 하긴, 용봉대의 무력 정도를 파악하려면 그 수장이라 할 장후성이 가장 중요하니까.
비무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손님 앞에서 제대로 해야 하니 수준이 비슷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장후성의 맞상대라면 남궁이화나 현공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공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고민하던 장후성이 남궁이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화, 나랑 비무할 생각 있어?”
“물론이지.”
항상 무공만을 생각하는 남궁이화에게 비무 거절이란 딴 세상 이야기였다. 둘의 비무는 자주 행해졌기에 특별히 어색한 상황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비무를 견학하게 된 은옥상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용봉대 수준을 확인하려고 왔나 보군.’
무흔은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을 짐작하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실력이 노출되는 점은 그가 아닌 무림맹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서로에게 예의를 표한 다음 비무를 시작했다.
둘 다 검을 사용했기에 사방으로 무시무시한 검기가 펴져 나갔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압!”
남궁이화의 선공으로 비무가 시작됐다.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검격이 서로 합을 이루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사람들의 탄성을 지르게 했다.
챙- 채챙!
두 신형의 움직임도 빨랐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검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검이 마주친 자리에 불꽃이 튀고 검기의 파편이 흩어졌다. 연무장 바닥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오늘의 비무는 다른 날보다 훨씬 격렬했다. 급기야 화산과 남궁세가의 절기마저 일부 화려하게 선보였다. 관전자들은 열광했다.
무흔이 두 사람의 비무를 이렇게 가까이서 관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그에게는 두 사람의 움직임과 검로가 훤히 보였다.
그 역시 그만큼 고수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그에게 두 사람의 비무는 가뭄의 단비였다. 뜻하지 않게 그는 이 관전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됐다.
잠시 비무를 관전하던 은옥상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물론 무흔은 전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시선이 비무를 따라가고 있는 무흔을 보며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비무가 끝나고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서로 인사했다. 두 사람이 땀에 흠뻑 젖은 가운데 우레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남궁이화는 평소처럼 최선을 다했고, 장후성 역시 매화곡 사람들이 지켜보는지라 우쭐한 마음에 전력을 다해 응전했었다.
“대단하군.”
나름 평가내리며 비무에서 시선을 뗀 무흔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은옥상을 발견했다. 그녀와 무심코 눈이 마주친 무흔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내가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은 모르겠지.’
무흔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가운데 은옥상이 물어왔다.
“무공을 할 줄 아시나 보죠? 아, 무림맹에 있으니 당연한 사실을 물었나…….”
“조금은 합니다.”
무흔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은옥상은 그의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당신은 소속이 어디죠? 여기 용봉대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예속 부대 소속입니다.”
“흐음, 예속 부대라…….”
뭔가 꼬투리를 잡은 듯 은옥상이 다시 물었다.
“그럼 용봉대에 연결된 사람이 있나 보네요? 사문은?”
어째 이 여자가 모르는 게 없다.
무흔은 대답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필 진풍이 끼어들었다.
“이 자식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렸었죠? 무가 출신 아니라고요. 상단 출신이죠. 저기 백단영이란 여자를 따라온 거예요.”
기회를 잡은 듯 진풍이 별별 것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무흔은 진풍에게 눈짓으로 항의했다. 왜 자신의 신상을 까발리느냐는 무언의 항의였으나 진풍은 전혀 개의치 않고 비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곤륜 출신이라 비교 불가란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다.
“백단영? 누구죠?”
“저기, 장후성 소협 옆에 있는 여자 있죠? 모용 소저 말고 그 반대편에 청색 머리띠로 머리를 묶은 여자가 바로 백 소저예요.”
진풍이 신이 나서 백단영을 가리켰다.
은옥상이 까닭 모를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녀의 눈이 백단영의 전신을 훑었다. 그녀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어렸다.
무흔은 그 표정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은옥상이 그에게 뜬금없는 요구를 던졌다.
“나도 비무하고 싶어졌어요. 그 상대로 백단영 소저를 선택할까 하는데 어때요?”
무흔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입만 벌렸다. 이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수준이었다. 마교 소교주라는 무지막지한 신분을 숨긴 은옥상을 아무리 비무라지만 무슨 재주로 백단영이 상대한단 말인가. 둘은 늑대와 강아지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당연히 백단영이 강아지다.
이어진 은옥상의 중얼거림이 그의 마음을 덜컥 주저앉혔다.
“참고로 제가 사용하는 검법은 무척 날카로워서 가끔 얼굴에 상처를 입히기도 해요.”
이것은 또 무슨 말이지?
백단영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무흔은 은옥상이 왜 자신을 주목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향해 묘한 미소를 짓던 은옥상이 앞으로 나가서 장후성에게 정중하게 요구했다.
“저도 이참에 비무를 한번 즐겨보고 싶어요. 어떠세요?”
“저, 저랑요?”
깜짝 놀란 장후성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아뇨, 제가 어찌 훌륭하신 장 소협의 상대가 될 수 있겠어요. 다른 분과 해야죠.”
은옥상의 목소리는 유달리 나긋나긋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비무 요청에 용봉대 남자 대원들이 환호하면서 자청했다.
“은 소저, 저는 어떻습니까?”
그 가운데 가장 발 빠른 자는 바로 구진광이었다. 구진광이면 딱 맞는 상대라며 무흔이 간신히 안심하고 있을 때 은옥상이 손을 저었다.
“호호, 구 소협과 저는 그림이 안 그려지는군요.”
“네?”
“얼굴이 저에겐 비호감이라서요. 음흉한 두꺼비와 아리따운 매화가 어울리겠어요?”
“커윽!”
대놓고 내치는 은옥상의 도발에 장내가 웃음바다가 됐다. 구진광이 얼굴을 붉히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려 했으나 은옥상의 눈빛을 보고 바로 찌그러졌다. 섬전처럼 폐부를 찌르는 은옥상의 눈빛에 구진광이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은옥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용봉대원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저랑 맞는 사람과 하고 싶어요. 흠…… 누가 좋을까…….”
은옥상의 시선이 장후성의 주위에 포진한 여자들에 머물렀다. 모용예, 남궁이화, 백단영……. 그들의 외모를 훑어본 은옥상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를테면 모용예 소저나 백단영 소저는 어떤가요?”
장후성을 비롯한 모두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은옥상을 바라봤다.
당사자인 모용예와 백단영은 더욱 놀란 상태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비무를 제안받았으니 당연했다.
장후성을 향하던 은옥상의 시선이 무흔을 흘낏 살폈다.
‘저 여자가 무슨 꿍꿍이지?’
이 상황에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무흔은 답답함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그건 당사자에게 물어봐야…….”
장후성이 더듬거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 은옥상이 한 사람을 선택했다.
“전 백 소저랑 하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사람들의 시선이 백단영을 향했다.
“백 소저, 한 수 가르쳐주시겠어요?”
은옥상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비무를 권했다. 백단영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저, 저는 미처 준비가…….”
“훌륭하신 용봉대원께서 이름 없는 문파인 매화곡을 겁내진 않으시겠죠.”
묘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말투였다.
“하, 내가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아쉽네. 백 소저가 잘 가르쳐보세요.”
구진광이 옆에서 바람을 잡았다. 덩달아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부추겼다. 백단영의 곤란함을 눈치챈 남궁이화가 벌떡 일어났다.
“은 소저, 그럼 내가 대신…….”
“남궁 소저께선 저에게 너무 과분한 상대랍니다.”
은옥상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백단영은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주위 모두가 그녀의 비무를 원하니 빠질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 비무는 백단영에게 매우 불리했다.
그녀가 이기면 당연하고 반대로 지면 용봉대의 자존심을 뭉갠 꼴이 되니까.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완벽하게 은옥상이 쳐놓은 함정에 빠진 꼴이었다.
“하아……. 알았어요.”
어쩔 수 없이 검을 들고나온 백단영을 찬찬히 훑어본 은옥상이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역시 짐작대로예요. 누구 저에게 검을 빌려주실 분 있나요?”
그에 용봉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장검을 넘겼다.
본래 검이란 사람과 검법에 따라 사용하는 무게와 길이가 다르다.
그래서 자신의 검을 사용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는 생각보다 위력에서 차이가 심하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검을 사용하는 백단영이 남의 검을 사용하는 은옥상에 비해 확실히 유리했다. 그만큼 백단영이 진다면 더욱 망신을 자초하게 된다.
물론 은옥상은 그런 단점 정도는 가볍게 상쇄할 능력이 있는 마교 소교주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은옥상이 백단영을 향해 충고했다.
“전 매화곡의 비전절기를 사용할 거예요. 백 소저도 최고의 무공을 써야 할 겁니다.”
백단영은 마음을 다잡은 후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은 소저 본인부터 걱정하세요.”
“혹시나 상해를 입힐까 걱정되어서 그래요. 특히 그 아름다운 얼굴에 흠집이라도 나면 큰일이잖아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무흔은 그녀의 말에서 상대를 다치게 하겠다는 그녀의 의도를 엿보았다. 이곳에서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야 할 판에 갑자기 왜 저렇게 나오는지 의문이었다.
무흔은 은옥상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저 여자는 정말 백단영의 얼굴을 망치려 하고 있어.’
지금까지 은옥상은 한 번도 백단영을 본 적이 없었다.
무흔과 마주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백단영을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애초에 은옥상은 나중에 나와야 하는 인물이었는데……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마교 소교주인 은옥상과 백단영은 동일 수준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백단영은 위험을 절대 피할 수 없다.
단순히 백단영 망신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무흔은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자, 시작할까요?”
은옥상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비무가 시작됐다. 신중하게 상대를 노려보는 백단영과 달리 은옥상은 장난치듯 가볍게 비무에 임하고 있었다.
검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