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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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42화
42화. 매화곡의 방문 (2)
운경각 지하실에서도 시간이 흘러갔다.
무흔은 일정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다.
자연스럽게 한쪽에는 불태워야 할 책이 쌓였다.
매우 드물게 발견된, 보관할만한 무공 비급은 이류부터 시작해서 삼류까지 분류해서 한쪽에 정리해 두었다. 당연하게도 절정 무공에 해당하는 특별한 비급은 없었다.
일하는 와중에 무흔은 틈틈이 무공을 수련했다.
천단비화신공을 운기하며 체내에 응어리진 내력을 흡수하려 애썼다. 이 과정은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가 고수로 거듭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그는 새로운 무공 비급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체득하게 됐다.
다른 부문은 상관없으나 내공을 다루는 심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삼류 심법을 익힐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심법끼리 섞이더라도 상관없었고 심지어 그보다 높은 수준의 심법과도 서로 방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일류 수준이 되면 서로 다른 성질의 심법 간에 충돌하며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가 익히고 있는 심법의 요체는 천단비화신공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 심법은 일류 수준의 다른 심법과 어울리지 못해 유사한 책을 읽었을 때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무흔은 심법 관련 서적만은 읽은 것을 포기했다. 적어도 천단비화신공보다 더 나은 심법 책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굳이 읽을 이유가 없게 된 셈이다.
심법을 제외하고 다른 무공은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덕분에 각종 검법, 장법, 지법, 권법에 이르기까지 별별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쑥쑥 늘어났다. 당연히 그 이해도는 그의 몸에 5성의 숙련도로 새겨졌다.
지하 서고에서 운공을 마치고 다시 책 분류작업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급하게 서고로 들어왔다.
“무흔아!”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아냈다. 진풍이었다.
“무슨 일인데?”
무흔은 찜찜한 표정으로 진풍을 째려봤다.
“너, 바쁘냐? 할 일 생겼다.”
진풍이 서고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서고에 처음 들어와 보는 모양이었다.
“왜? 나 바쁘거든? 그리고 난 다른 일은 모두 면제일 텐데?”
“그래도 서옹 어르신이 너랑 나랑 둘이서 챙기라고 한 일이야.”
진풍이 어째 횡설수설하고 있다. 자신에게 떨어진 일을 그에게 일부 떠넘기려는 수작인가?
“무슨 일인데?”
“소, 손님이 왔거든. 그 손님들에게 무림맹 내부를 안내하는 일이야.”
“그럼 너 혼자 하면 되잖아?”
“에이, 같이 해야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진풍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책을 집었다.
“적어도 여기서 고리타분하게 책만 보는 것보다…… 어?”
무심코 책을 펴보던 진풍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무흔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교롭게도 녀석이 집은 책이 춘화도가 그려진 화보집이었다. 불태워 없애려고 한쪽에 쌓아둔 것을 하필이면 진풍이 집은 것이다.
진풍이 책장을 넘기면서 입을 쩍 벌렸다.
“이야, 너! 여기 숨어서 이런 재밌는 것을 혼자 보고 있었구나?”
“뭔 소리야? 그냥 거기 잘 놓아둬라.”
“에이, 나도 좀 보자고.”
진풍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입가로는 침이 줄줄 흘렀다.
“우와! 주, 죽이는구나!”
무흔은 그를 향해 매서운 눈길을 보냈다. 진풍이 찔끔하더니 책을 내려놓았다.
무흔이 옷을 털면서 일어났다.
“그래서 누가 왔는데?”
“흐흐, 보면 깜짝 놀랄 거다. 엄청난 미녀들이 구경 왔지 뭐냐.”
무흔은 짐작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출입구로 나갔다. 진풍이 황급히 그를 따라 나가려다 힐끔 춘화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춘화도로 보이는 책이 여러 권이었다.
***
운경각 입구에 다섯 명의 여인이 모여 있었다.
나이는 대략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무흔과 비슷한 또래다.
어느 문파 소속일까. 연한 분홍색 무복으로 통일한 여인들의 미모가 한층 돋보였다. 적어도 하남 지역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무흔은 갑작스럽게 맞이한 다섯 명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매화곡에서 왔어요. 매화곡은 사천성에 있는 작은 문파예요. 멀리 이곳까지 무림맹을 구경하러 왔답니다.”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이 정중하게 소개했다.
물론 무흔은 매화곡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진풍이 핀잔을 주며 추가설명을 했다.
“매화곡은 여인으로만 구성된 신비한 문파야. 과거 사마련과의 싸움에서 무림맹의 편을 들어 무림맹과 돈독한 사이지.”
“가끔 우리가 지금처럼 중원 나들이를 하거든요. 이 분이 바로 장문 제자이세요.”
설명하던 여인이 가운데 선 한 여인을 가리켰다. 일행 가운데서도 특히 돋보이는 미모를 소유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백단영에 필적하는 미모를 발산했다.
여인은 특유의 싸늘하고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무흔은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었다. 멀리서 온 소규모 문파 사람이니 이곳 내부를 잘 구경시켜달라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일이 그에게 떨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 진풍이 뭔가 수를 부린 게 분명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흔은 장문 제자라는 대빵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매화곡의 장문제자가 잠시 그에게 눈을 마주쳤다. 무흔은 흠칫하는 기분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어째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압박감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머릿속을 더듬었다.
매화곡, 매화곡이란 곳이 나왔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들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란 의미인데. 풍기는 분위기며 외모로 따져보면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지나가는 배역이 여주와 막상막하의 미모를 보일 수도 있는 걸까.
그의 의문은 설명하던 여인에 의해 바로 풀렸다.
“장문 제자께선 성함이 은옥상이시고요, 저는 산산이라 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애들은…….”
설명하는 여인, 산산이 각자의 이름을 소개했다.
하지만 무흔에게 그다음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지나가는 사람의 이름은 기억할 필요 없는 법이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자신도 모르게 장문 제자라는 여인을 다시 힐끔거렸다.
은옥상. 마교의 셋째 소교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 여인으로 훗날 무림맹을 무척 괴롭혔던 여인이었다. 지닌 무공 또한 상상불가일 정도로 고절하다. 그녀는 주로 용봉대의 후기지수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자를 죽였다.
다만 소설 속에서 그녀는 장후성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됐다.
무흔은 예전 소설에 등장했던 은옥상의 행적을 되새기면서 그녀가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이유를 생각해봤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몰래 무림맹에 잠입할 일은 없었으니까.
“야, 너무 그렇게 얼빠지면 민망하잖냐.”
진풍이 넋이 나간 무흔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제야 무흔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산산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무흔을 쏘아붙였다.
“왜 그러세요? 혹시 저희 장문 제자님을 아시나요?”
“아, 아닙니다.”
무흔은 황급히 사과했다. 진풍이 다시 끼어들었다.
“이 자식이 못 배워서 그래요. 그래서 사람은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 아닙니까.”
“배움요?”
“하하, 저처럼 구파나 세가에서 배워야죠.”
우스개로 받아들인 산산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무흔이 머리를 긁적이며 곁눈질로 힐끔 보니 은옥상이 피식 실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 이 은옥상이란 여자는 위험인물이다. 그가 감히 대적하기 어려운 무공의 소유자였다. 아마 현재로는 용봉대의 그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번 팔곡산에서 사마극을 상대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이들이 마교의 인물이란 사실을 알게 된 무흔은 지금 일이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우리는 무림맹을 동경해왔어요. 특히 요즘 무림맹에는 우리 또래의 기재들이 모인 부대도 있다면서요?”
산산이 요구사항을 전해왔다.
아는 내용이 나오자 진풍이 반갑게 맞았다.
“하하, 용비봉무대라고 있습니다. 보통 용봉대라 부르죠. 제대로 만나신 겁니다. 제가 거기 전문이거든요.”
“아, 정말요? 저희가 제대로 찾아왔네요.”
“당연하죠. 제가 바로 곤륜 출신 아닙니까.”
“어머, 곤륜요? 명문이시네요. 역시 무림맹에는 뛰어난 출신 인물이 많네요.”
“그렇죠? 하지만 저 친구는 무가 출신 아닙니다. 하하.”
산산과 진풍이 죽이 쭉쭉 맞았다.
거기에 반해 은옥상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무흔은 진풍의 속셈을 깨달았다.
진풍이 자신이 돋보이려고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어차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신경 쓸 일은 없다지만 상대가 무려 마교 소교주이기에 염려가 됐다.
진풍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무흔에게 지시하듯 말했다.
“무흔, 어서 이분들에게 운경각을 안내해줘라.”
무흔은 진풍을 째려보고는 그들을 서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물론 외부인이 구경할 수 있는 범위는 일 층뿐이다.
운경각에 비치된 수많은 장서 앞에서 매화곡 여인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서고를 구경하는 동안 무흔은 진풍을 쿡 찔렀다.
“야,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뭐가?”
“이들이 대체 누구냐고.”
“나도 몰라. 서옹 어르신이 안내해주래. 듣기로는 오늘 개봉에 도착했나 보더라. 무림맹이 무림인에게는 꿈이잖냐? 당연히 한번 구경해보고 싶겠지.”
“진짜 매화곡 맞냐?”
뒤에 마교 아니냐고 붙이려다가 참았다. 진풍에게서 당연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화곡 아니면? 다른 문파의 문도가 저렇게 예쁠 수 없잖아?”
후아, 이 자식은 예쁘면 정파로 착각하는 놈이다. 무흔이 한숨을 쉬고 있자니 진풍이 그에게 주먹을 보이며 경고했다.
“저기 장문 제자랑 산산이라는 여자는 내꺼다. 건드리지 마라.”
욕심도 많네. 무려 둘씩이나.
위험한 마교 소교주인 은옥상과 멀어지는 게 소원인 무흔은 당연히 바라던 바였다.
“그래, 너 다 가져라. 안내도 너 혼자 하고.”
그들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산산이 질문했다.
“혹시 위층으로 가볼 수 있나요?”
“아, 그건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무흔은 그들을 저지했다. 다섯 여인이 실망한 빛을 띠었다.
서고 구경은 금방 끝났다.
무흔은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서고 밖에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진풍이 앞장을 서고 그 옆에 은옥상과 산산이 붙었다. 그 뒤를 남은 세 여인이 이었고, 무흔은 가장 마지막에 뒤따라갔다.
무흔은 연신 싱글벙글하고 있는 진풍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옆에 있는 여자는 엄청 위험한 인물인데…….’
무림맹의 주요 건물을 소개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용봉대 연무장 앞에 이르렀다. 마침 용봉대원들이 연무장 한쪽에서 비무를 비롯한 각종 무공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저들은?”
은옥상이 진풍에게 물었다.
“아, 저들이 바로 무림맹 최고의 후기지수인 용봉대원들입니다. 마침 무공수련 중이네요. 한번 가볼까요?”
진풍의 들뜬 대답에 은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서 산산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열심히 수련 중인데 우리 진풍께서는 왜 여기서 놀고 있나요?”
“네?”
“위대한 곤륜 출신이라면 당연히 용봉대 소속 아니던가요?”
“아하하, 저는 소저들을 안내하느라…….”
진풍이 말을 하며 연신 무흔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그에 무흔이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자 진풍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물론 무가 출신이 아닌 저 친구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만.”
하지만 진실을 이미 알아차린 듯 산산은 콧방귀를 날렸고, 여전히 은옥상은 관심이 없는 듯 시선을 수련 중인 용봉대에 두었다.
마침 용봉대원들은 이인 일조로 짝을 이루어 실전의 합을 맞추어보고 있었다.
은옥상의 시선이 장후성에게 멎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